[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지난달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에서 발생한 의류공장 라나플라자의 붕괴로 현재까지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수가 1,100명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며칠 후 붕괴 현장 잔해 속에서 꼭 껴안고 있는 남녀의 시신이 발견돼 전 세계를 또 한 번 울렸고, 지난 10일엔 17일 만에 극적으로 19세의 여성생존자가 구조됐다.
그리고 8일엔 같은 구역의 또 다른 의류공장에서 불이 나 공장 상임이사와 경찰관을 포함한 최소 8명이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연이어 계속되는 참사로 의류업체 아시아 생산기지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사고가 난 라나플라자 공장에는 근로자 4,000여 명이 일하고 있었으며, 이들 대다수는 장시간 근무와 낮은 급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붕괴 위험이 감지돼 같은 건물 내 다른 상점은 미리 철수했지만 공장관계자는 이를 무시, 터무니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12월 12일, 새로운 상품이 얼마나 자주 입고되는지를 알리는 미국 아틀란타 H&M 매장의 광고 문구 |
과거 이 소싱국은 중국이 도맡았지만, 중국 노동자의 가파른 임금 상승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가진 베트남과 방글라데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렇게 동남아시아와 지중해 연안국으로 소싱처는 확대됐고, 동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의류업체의 생산라인은 널리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산기지에서는 저렴한 임금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디자인의 납기일을 맞추기 위한 초과근무 등 노동력 착취가 이루어져 왔다. 이에 ‘아메리칸 어패럴’과 같이 처음부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경영이념으로 내걸어 고객에게 어필하는 브랜드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사고 발생 17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19세 여성생존자 |
월 4~5만 원을 받는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으로 이루어낸 의류 브랜드의 이익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브랜드 ‘자라’를 보유한 인디텍스 그룹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4월 초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처음 3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재산을 195억 달러나 늘려 재산 증가율은 1위를 차지했다.
SPA 브랜드의 폭풍 성장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해외 SPA 브랜드 ‘H&M’, ‘유니클로’, ‘자라’의 국내 매출액 합계는 7,988억 원으로 전년보다 60% 정도 증가했다.
월마트와 H&M을 비롯해, 자라, 베네통, 망고 등 수많은 브랜드가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생산한 의류를 납품받고 있다. 사고가 난 라나플라자에서 제품을 납품받아 온 브랜드는 영국의 프리마크, 이탈리아 베네통, 스페인 망고 등이다. 이들 브랜드의 페이스북엔 화난 고객들의 코멘트가 넘쳐나고 몇몇 소비자는 다른 브랜드의 옷을 입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이어 노동 현실로 또다시 도마에 오른 패스트 패션. 빠르게 교체되는 새 제품 덕분에 우리는 SPA 매장에 들를 때마다 정신없이 매장 곳곳을 헤매곤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빠른 회전율은 열악한 환경 속 수당 없는 초과근무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소비자 역시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사고현장의 참혹한 사진에 슬퍼하며 혀를 차면서도, 정작 옷을 사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이들 매장으로 향하는 우리에게는 과연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할 수 있는지.
노동의 대가는 정당하게 지급해야만 한다. 언제 벌어질지 모를 화재와 붕괴 위험 속에서 밤낮으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방글라데시 근로자의 모습은 불과 40여 년 전 재봉틀을 돌리며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렸던 우리네 언니들의 모습이었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AP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