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이다. 굳이 날을 세어보자면 45일 즈음 되었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티셔츠와 발등에 선명한 쪼리 자국을 보면 내 여기서 꽤 지냈구나 싶다. 스리랑카는 오늘도 덥다. 9월엔 하루걸러 비가 쏟아지더니 요새는 구름구경하기도 힘든 쨍쨍한 날들의 연속이다. 요즘 들어서 부쩍 지친다. 다른 팀원들도 그래 보인다. 날씨 탓은 아니지만, 비 한 번 시원하게 오면 좋을 텐데.
다이어리에 빈 칸이 늘어간다. 처음엔 신기한 것이 어찌 많은지 매일매일 채워나갔는데 말이다. 의무감에 쓰려고 해도 당최 쓸 거리가 없다. 지금도 뭘 써야 할 지 모르겠다.
아. 얼마 전에 혜령 간사님이 다녀갔다. 그러고 보니 간사님이 도착한 날 비가 쪼오끔 왔다. 우리끼리 역시 라온아띠는 비를 몰고 다닌다며 웃었구나. 간사님과 함께 한 일주일은 생기 넘쳤던 것 같다. 간사님의 존재만으로도 그러했지만, 간사님과 함께 온 매력적인 물품들의 영향도 쪼끔 있었던 것 같다. 히히. 이제는 다 먹어 없어졌지만 ㅜ_ㅜ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children’s club’이 있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조 아이들이 많이 빠져서 아쉬워했는데 어제는 한 명 빼고 다 나와서 너무 좋았다. 안젤리가 선물을 줬다. 안젤리는 10살짜리 여자아이인데, 안경을 벗으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안경 써도 예쁘지만. 저번에 안경을 한 번 벗고 왔었는데, 처음 온 아이인 줄 알고 이름을 물어봤다. 왜 그런 만화 속 스토리 있지 않나. 기쁨이랑 둘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니깐 선물은, 파인애플, 포도, 사과를 그린 예쁜 그림과 조개 껍데기를 붙여서 만든 예쁜 카드. 아, 얼마나 감동적 이였는지. 특히 카드에 beautiful이라고 여러 번 써줘서 고마웠다.ㅋㅋ 아이들이 그저 ‘선생님 좋아요’라고 말만 해줘도 너무너무 기분이 좋은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행여 다른 아이들이 보고 부담을 느끼지 않기를.
오후에는 ‘아동인권’을 주제로 한 art competition이 있었다. 7살부터 17살 까지, 8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참여했다. 다들 그림 참 잘 그리더라. 그림 그리는 동안 혼자 구석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우리 조 아이 한 명이 그림을 다 그렸는지 슬그머니 오더라. 이름은 샤시, 12살짜리 남자아이다. 똥글똥글 어찌나 귀엽게 생겼는지. 평소에 사근사근 하던 녀석이 아니었는데, 먼저 놀러 와주다니. 또 감동받았다. 아이들과 있을 때면 싱할라어가 간절하다. 손짓, 발짓, 의성어, 의태어만 가지고 나름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크크. 알아듣진 못했겠지만 노래도 불러주고.
한국어 교실이 생각처럼 잘 안되고 있다. 28일에 한국어 능력시험이 있어서, 콜롬보에 가서 전단지도 뿌리고 왔는데 아직 등록한 사람이 없단다. 그 때는 사람들이 되게 관심 가졌는데 말이다. 한국어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어어어엄청 많더라. 수험번호를 보니 2만 번 가까이 되었다. 우리나라 토익시험 보는 마냥.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국에 가는 사람들은 아주 일부일텐데.
조만간 모라투아에다가 다시 한 번 광고할 듯싶다. 준비도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했던 프로젝트인데 생각처럼 안돼서 진이 빠진 거 같다. 한국어 교실이 시작하면 그래도 무언가 한다는 기분이 들 거 같았는데. 내일부터 다른 일을 찾아야겠군. 음. 탁연이가 담당하고 있는 youth program과 culture show를 도와줘야겠다.
아마도 저번 주 즈음 이였다면 아주 열렬한 에세이를 썼을 거 같다. 하지만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니. 다른 아띠들 모두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면서 모라투아에서 세 번째 에세이는 이만 접으련다.
- 바람부는 모라투아에서 민용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