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1월 17일 베트남 시각으로 정오의 문턱을 막 넘고 있다.
원래 이 시간이면 난 우리의 스케쥴에 따라 동나이라는 곳에 위치한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왜 여기 있냐구?
농땡이라 하면 농땡이이지만 굳이 이유를 대라면 댈 수 있다. 부끄러운 이유.
이건 마지막에 말하기로 하고요
태영오빠가 저번 주말에 에세이를 썼었기에 쓰지 말까 망설였지만
이렇게 계속 혼자 있으려니 무료해서 안되겠다.
이 사진을 보면 이 남자 둘이 어디 위를 달리고 있는지 파악이 바로 되시나요?
비가 오지 않아도 자기 마음대로 넘쳐버리는 강물로 인해 동네의 왠만한 골목들은 물에 다 잠겨버린다.
다행히도 우리가 숙소에서 YMCA까지 밥을 먹으러 자전거를 씽씽 달리는 길은 이렇게 잠긴 적이 없었기에 행복해하고 있었으나..
어느날, 큰 도로가 그 날 따라 많은 물에 잠겨 있었다.
어? 뭐지? 하고 YMCA로 접어드는 더 작은 길로 커브를 도는 순간, 긴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몇 몇 사람과 함께 물에 다 잠겨버린 길이 보였다.
그래봤자 비 많이 왔을 때 비가 길 위에 좀 있는 그 정도겠거니 하고 쭉 내달렸지만
앞바퀴가 음푹 들어가며 물속을 달리고 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앞바퀴 높이의 1/3 정도가 잠겨버리는 이 물을 자전거로 달릴 줄이야
꿈에도 몰랐으니.
그리고 난 발가락에 있는 힘을 다 주어야만 했다. 열심히 패달을 돌리고 있는 내 발이 신은 쪼리를 떨어뜨렸다간, 이 흙탕물 속에선 못 찾을 것만 같았다.
걸어가면 더욱 가관이다.
그래야 종아리에 조금 차는 물도 그 속이 보이지가 않아 걸어가다 발가락에 야들야들한
길쭉한 무언가가 걸리면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길가에 오토바이에 깔려 죽어 있는 무지막지하게 큰 들쥐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들, 고양이와 개의 배설물 등등.
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내 발 위를 춤 추듯이 지나가고 있겠지만 기꺼이 받아들여야
걷기가 편하다
하지만, 자전거로 물살을 가를 때에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바퀴가 물과 부딪히면서 굉장히 맑고 신나는 소리가 난다.
마치 슈퍼마리오 카트게임에서 해안가코스를 달릴 때 모래사장이 아닌 바닷물로 달릴 때
나는, 그런 물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정말 그 게임에서 물로 달리면 속도가 늦춰지기 때문에 물로 달리고 있다 싶으면
육지를 찾아서 달리듯이, 조금이라도 물이 빠지거나 들 찬 땅이 보이면 냅다 그리로 달려간다.
처음으로 물살을 가르는 신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속으로 말했다.
당신이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사드린다고.
내가 이렇게 베트남에 오질 않았더라면, 이처럼 신나게 물 찬 도로를 자전거로 씽씽 달려보지 못했을 거라고.
그리고 +
내가 오늘 숙소에 혼자 남은 이유는 아파서이다.
만약 부모님이 이 홈피를 알고 계신다면 쓰지 않겠지만, 다행히도 내가 안 가르쳐드렸다^^
참 일일평가서에 '아픈 팀원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최다빈도는 조수연, 나일 것이다.
이젠 다들 재미가 붙어서 내가 열이나면 이런 저런 병명이 다 나오다 홍역, 수두도 나온다.
베트남에 처음 와서 배탈이 났다면 물갈이로 생각했겠지만 이제 와서 고열과 복통, 배탈이
5일째 가니 이유도 알지 못 한채, 안그래도 없는 볼살을 더 축내야만 했다.
다행히도 팀원들, 그리고 YMCA의 우리의 밥을 해주시는 꼬남, 스텝들 덕분에 병원에 다녀왔다. 설마 내가 라온아띠 중에 SOS를 처음으로 부른건 아니겠지.. 솔직히 부끄럽다.
한국이었으면 그냥 나 혼자서도 병원에 잘 가서 진찰 받고 약 받아 약 먹고 하는게 어렵지 않지만, 여기에서 아프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내가 계속 구급함에 있는 약을 먹어서 나을 수 있을 것 같은지, 꼭 병원을 가야 하는 것인지,
병원을 가도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을 갈 것인지, SOS로 갈 것인지, 말은 잘 통할 것인지,
병원을 간다면 일이 정말 커지는 건 아닌지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울컥했다.
복통이 심해지면서 든 생각이 있다.
아 그냥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더 있지 못한 그 시간에 대한 미련보다
이런 걸로 그만둬버린 나약한 내 자신에게 두고두고 화가 날 게 뻔하다.
그리고 이렇게 몸이 안 좋으니 정말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친딸처럼 아껴주시고 나만 따로 죽도 끓여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꼬남에게
참 고맙다. 아파서 우는 날 보고 같이 울어주던 꼬남. 일요일 휴일도 반납하고 함께 SOS로 가주고 4시간을 기다려준 찌쑤언. 다들 정말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
p.s. 지혜 간사님, 메일 보내드릴게요~
어제 태영오빠한테 주소를 물어본다는게 제가 그냥 자버려서^^
놀라셨을텐데 정말 죄송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