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와 티모르 감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그들의 삶과 사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의 각각의 티모르에 관한 나의 궁금증들이 엉키고 섥혀 복잡한 한 덩어리로 남아있다. 그들의 무엇에 대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두렵기만 하다가, 먼저 그들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그들의 삶은 이 시대 어느 땅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지난 역사들의 뒤엉킴으로 인한 결과일 것이다. 자, 이제 티모르의 역사를 가볍게 한번 훑어보자. (내용은 국방부에서 편찬한 ‘한국군 동티모르 파병과 띠모르레스떼 탄생’ 책을 거의 옮겨왔음을 밝혀둔다^^)
기원>
기원전 4만년부터 2만년 사이에 폴리네시아 인들이 티모르로 들어와 정착했다. 그 때 정착한 원주민이 아또니(Atony)족이다. 그 후 멜라네시아 계통의 인종과 원시 말레이계 인종이 티모르로 진출했다. 그들이 테툰(Tetun)쪽의 주류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포르투갈의 지배>
7세기 이후부터 중국과 티모르 간에는 부정기적으로 노예 ․ 야생 밀납 ․ 백단목 등의 거래를 위한 무역이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많은 유럽인들이 동양에 호기심을 갖고 진출하던 1500년대 초, 동양에 진출했던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들이 향교무역과 선교를 위해 인도네시아와 티모르에 상륙했다. 이들은 주로 향료의 원료가 되는 백단목 무역에 종사했다. 그리고는 1524년, 티모르 섬을 식민지로 삼았다. 하지만 섬 전체를 조직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았다. 포르투갈은 티모르를 지배하기 위한 개발이나 지배체제 구축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백단목 획득 등 단기적인 이익 착취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식민체제는 대체적으로 불안정했다.
1598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상륙한 네덜란드는 1824년 인도네시아 전역을 식민지화하고, 포르투갈의 거점인 티모르섬으로 진출을 시작했다. 이에 1849년 포르투갈은 티모르섬을 동서로 양분해 서티모르를 네덜란드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국경 조약은 1915년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그 때 서티모르에 포함되어 있던 오이쿠시 지역은 포르투갈이 계속 지배하기로 합의했다. 왜냐하면 오이쿠시 지역은 포르투갈의 최초 거점이자 서티모르 다수족인 아또니 족과 구별되는 테툰 쪽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주민 폭동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1910년 경 대규모 폭동이 18개월간 지속되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연합작전을 펼쳤고, 이때부터 티모르에서는 저항의 역사와 함께 영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점령>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1942. 2. 20 일본군이 티모르 섬의 쿠팡과 딜리에 상륙했다. 딜리(동티모르의 수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군과 연합해 저항하는 동티모르 게릴라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1945년 일본군은 철수했고, 잔학한 통치로 주민 4~6만명이 희생되었다.
포르투갈 재진주>
포르투갈은 일본의 항복 직후, 조속히 식민체제를 복원함으로써 큰 저항없이 동티모르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서티모르를 장악한 인도네시아가 반 포르투갈 세력을 공공연히 지원했다. 인도네시아의 개입으로 1959년 반 포르투갈 폭동이 발생했다. 포르투갈은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친 인도네시아 활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에 대한 부당성을 외교활동으로 국제 사회에 제기했고, 당시 탈식민지화 바람과 함께 국제사회의 설득력을 얻었다.
이 뒷부분이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국내의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연관을 맺고 있어서 내용이 너무 길었고, 미쳐 노트에 적어오지 못하는 바람에..^^ 가볍게 정리를 해봐야겠다,,ㅠㅠ
1975년 동티모르에서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9일 뒤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27번 째 주로 강제합병하고 탄압을 시작했다. 이렇게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기가 시작된다. 인도네시아 점령기간 중 동티모르에서의 인권탄압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독립에 큰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산타크루즈 학살사건’이다. 이 산타크루즈 학살 사건을 계기로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독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 후 2002년 5월 20일, 신생독립국 티모르레스떼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lic of Timor-Leste)가 탄생하게 된다.
1975년 이후에 인도네시아의 강제 점령기를 살펴보면, 냉혹한 세계 정세 속의 티모르를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인도네시아의 군사 행동을 미국이 눈 감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 시기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싶으나, 능력 밖의 일이기에..^^;
국방부에서 편찬한 “한국군 동티모르 파병과 띠모르레스떼 탄생”의 역사부분에 잘 나와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
아, Maubere의 역사이야기에 Maubere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마우베레’ 혹은 ‘모베레’로 읽히며, 티모르의 일반 대중을 뜻한다. “한국군 동티모르 파병과 띠모르레스떼 탄생”에서는 Maubere가 ‘가난하고 힘없는 동티모르 민중’을 뜻하는 말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Maubere라는 표현은 동티모르 현지 노래에 많이 등장하는데, 독립․혁명과 관련된 역사적이고 대중적인 표현이다. 그들의 저항의 역사 속에서 묻어나온 Maubere란 표현. 동티모르의 친구들이 나에게 고맙게도 Maubere라는 영광스럽고 역사적인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에게 Maubere란 이름이 붙고 나니, 그들의 역사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의 역사가 다 그러하겠지만, 침략과 저항의 역사가 우리네 역사인 듯이 쓰라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