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많이 그리울 것 같은 사람들과 장소는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싸우고 웃고 운동했던 숙소, 쌍캉펭YMCA나 YMCA 사람들이 아니라
집 앞에 있는 작은 TESCO LOTUS와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름을 묻고, 여기 왜 왔는지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실 여기서 나는 봉사자가 아니다. 다치면 안되는 '귀빈'이다.
내 이름은 춈푸, 박선하가 아니었고 '콘까올리(한국인)' 또는 '국민은행과 한국Y서포트를 받아서 온 아이' 였다.
그것에 질리고 질려 있던 내게 막무가내로 반말을 찍찍 하며 이름을 묻던 그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Y에서 하지말라는 일은 다 종용하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내가 말을 못알아들으면 발차기부터 날라오는 게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지점장 아저씨가 돈도 안쓰고 앉아서 시끄럽게 놀다가 별 희한한 짓 다 하고 가는 나를 슬슬 째려보기 시작해도 나는 버티고 앉아 있었다.
매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테스코에 가서 가끔 일도 하고, 발차기하고 머리 치면서 놀고, 되도 않는 태국어로 수다떨고,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아이들과 술을 마셨다.
태국 Y의 답답함에 눌려 있던 내게 그 아이들은 오아시스 같았다.
실제로 알콜을 공급해주는 오아시스였다. (ㅋㅋㅋ)
나를 막 대해주는 그 아이들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ㅋㅋㅋㅋ)
쉬는 날에는 차나 오토바이로 시내에 놀러가기도 했다.
유일한 여자아이인 BIW가 남자친구에게 차였을 때 같이 위로주를 마셨다.
며칠씩 다른 지역을 가면 아이들은 언제 오냐, 선물 사와라며 계속 전화를 해댔다.
그러면서 태국어가 참 많이 늘었다.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아이들은 내게 태국어를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던 내게 얼마 전
한 친구가 물었다.
"6일날 우리 다같이 원숭이 보러 가기로 했어. 같이 갈꺼지?"
"나...사실 말 못했는데, 4일날 한국 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가 중요한 선언을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럼 비행기 표 바꾸면 되겠네. 더 있다 가."
며칠 후, 내가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아이들은
내 MP3에 태국 노래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자기 USB를 빌려줬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음에 태국 또 놀러올 때, 그 때 돌려줘. 그니까 꼭 다시 와."
인건비가 싸고 전자제품은 비싼 태국에서 비싼 물건일텐데,
그만 염치도 없이 받고 말았다.
꼭 다시 올게.
이별이 아니라, 돌아가서도 처음 라온아띠 출국날짜를 설레며 기다렸던 것 처럼
다시 너희를 만날 날을 설레게 손꼽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게.
4일,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이별을 고하기에도 내게는 부족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