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한달 반 동안 이렇게 변했습니다..
아니나 - 이지숙
나노 - 안호윤
넬슨 - 조명래
까롤리나 - 이정민
나노 - 말이 많아졌어. 다른 자리에서는 팀장을 맡아도 다른 팀원들 이야기 하는 것 듣는 쪽이었는데, 여기 와서 ‘말을
해야겠다’는 압박감이 들어. 지금도 그렇고.
아니나 - 난 언어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 테툼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어. 인도네시아어도 공부해 보고 싶어. 아예 통번역을
공부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넬슨 - 내 여자 친구가 몽골에 봉사하러갔다 한 달 반 정도 됐을 때 몽골어가 재밌고 러시아어도 공부하고 싶다더니 6년째
몽골에 살고 있는데. 하하하. 난, 외국 생활을 해 본다는 느낌이 이거구나, 싶어. 이렇게 오랫동안 사는 건 처음해 보거든.
까롤리나 - 난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게 됐어. 그냥 안 먹고 싶을 때 안 먹다가 과식도 폭식도 많이 했는데 여기선 세끼를
꼬박꼬박 제 시간에 먹고 있지. 아니나의 영향을 받아 이빨을 잘 닦게 됐기도 해. 근데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이빨 닦으라고 하는 건 ‘착한 아이가 돼야지’ 하는 사회화 교육 중 하나일 뿐이래. 씹어 먹는 동물은 굳이 이빨이
깨끗할 필요가 없다면서. 고로 강요할 필요도 없다고 하더라고. 3월 말까지만 해도 엄청 잘 닦다가 그 책을 읽고 나서는 또
고민 중(웃음).
나노 - 글쎄, 동물들은 칫솔 같은 걸 못 쓰지만 이빨을 깨끗하게 해. 돌이나 나무를 씹거나 해서. 동물도 돌을 씹어서라도
깨끗이 하고. 양치는 자주 하는 게 좋아. ㅋㅋ
까롤리나 - 그리고 일기를 열심히 쓰게 됐어. 옛날에는 오늘 있던 사건 위주로 썼는데 여기 와서는 사건을 쓰기 보다는 내
생각의 연결들, 사고의 과정들을 많이 쓰게 되더라. 일기 쓰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니까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게 됐어. ‘개척자들’ 같은 NGO에서 일하는 분들, 넬슨 오빠네 교회에서 만난 현지
한인들... 동티모르에서 레스토랑이나 수퍼 등을 운영하는 사장님 등...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닿게 됐는지. 한국어시험
추진하던 세 분도 만나고, 각국에서 온 유엔군들, 송진호 실장님 양동화 간사님 등... 다양한 삶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생각이
많더라.
아니나 - 난 가사일을 하게 되었어.
일동 - 오 그래 그래. 진짜 큰 변화다. 양평에서 뻘쭘하게 아무 것도 못하고 서 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ㅋㅋ
나노 - 나도 일기에 대해 할 말 있어. 난 한국에 있을 때는 생각을 많이 적었는데 여기 와서는 뭐가 있었는지 생활 위주로
쓰게 돼. 하루에 뭐 했는지 쭉쭉 나열해. 인상 크게 받았던... 그래서 일기가 처음에는 조금 써졌는데 가면 갈수록 길어져.
나중 가서는 반복되는 것도 있어서 생략되기도 하는데..가면 갈수록 많이 쓰게 되더라고. 그리고 단체생활에 이렇게 잘 적응한건
처음이야! 어딜 가든 두 명 이상 다녀야 하는 게 강박관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넬슨 - 커피에 대한 관심도 많이 생겼어.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일동 - 맞아 맞아.
나노 - 난 NGO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
까롤리나 - 내가 한국에서 너무 편리한 삶을 살았다는 걸 느껴.. 하고 싶은 대로 놀고 사고 할 수 있는..
나노 - 난 이 삶도 되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까롤리나 - 응, 우리가 자급자족 하는 것도 아니니까 크게 불편한 건 없지
나노 - 우리가 오기 전에는 청소해 주고 밥 해주는 마나를 고용할건가 말건가 고민해 본 적이 있었잖아. 와 보니까 이미 고용돼
있어서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우리가 마나 덕에 지금까지 진짜 어려운 게 뭔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자발적인 불편함을 체험하겠다고 왔는데, 한국인인 양 간사님도 없고 마나도 없었다면 반찬 하나 구하는 것도 되게 힘들었을 거야.
영어든 테툼이든 되는대로 썼겠지.
아니나 - 맞아. 그리고 나는 그 동안 참 생각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참 안 해 본 것도 많고... 동생이랑 특히 많은
걸 해 보고 싶어.
<중략>
나노 - 아, 현지식 인사를 배웠잖아. 눈을 치켜 뜨면서 본디아! 하는.
아니나 - 맞아, 난 잘 할 수 있어. 맨날 한다구. ㅋㅋ
까롤리나 - 인사를 제대로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전에 우연히 만났던 티모르 사람이 구수하게 ‘안녕하세요!’하니까 되게 친근했잖아.
<중략>
나노 - 인터넷 안 썼다
아니나 - 나도! 뉴스 안보고도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 한국에서는 컴퓨터에 붙어서 2분마다 네이버 메인을 확인했는데.
인터넷 뉴스 중독자였지.
까롤리나 - 난 텔레비전 안 보는 것. 남자친구 목소리 오랫동안 안 듣는 것.
<중략>
나노 - 할 일을 미루게 된 것 같기도 해. 예전 같으면 생각나는 대로 바로 실행했어. 안하면 잊어버리니까 근데 여기 와서는
내일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 진 것 같고..
아니나 - 연애를 해 보고 싶어졌어. 전혀 라꼬이(원하지 않는다는 뜻의 테툼어)라고만 했었는데.. 요즘에는 짝지가 있는
까롤리나와 넬슨이 부러울 때가 있어. 가족 이외의 누군가와의 사랑이 어떤 건지 궁금해.
까롤리나 - 아, 남자친구가 해주던 절대적인 사랑이 그리워. 옷도 입혀주고 신발도 신겨줬는데
<중략>
아니나 -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어. 원래도 건강에 관심이 많았지만 여기서 만약에 아프면 내 문제만이 아니게 되니까.
일동 - 맞아, 맞아.
넬슨 - 나랑 너는 정규 분포상 양 극단의 2%끼리 만난 것 같아 신기해(아니나는 지독한 변비가 있고 넬슨은 설사를 달고 산다)
<중략>
나노 - 난 개미가 싫어졌어. 아 진짜 좋아했었는데, 오늘 딱 밖에 있다가 열 개 발가락 중에 아홉 개를 물렸거든. 너무 아팠어.
까롤리나 - 난 모기. 너무 싫어.
<중략>
넬슨 - 난 테툼 선생님 아디가 내 말을 자꾸 무시했던 게 생각나.
일동 - 와하하하 맞아 아디가 넬슨 말 무시해.
아니나 - 그건 잘 못 알아듣겠으니까 그런 거 같아. 내가 한 말에도 그랬었거든.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기대했던 바가 있는데
무시당하면 더 슬프지.
까롤리나 - 영어권 나라에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나. 어떤 현지인이 내가 바로 못 알아 듣는 걸 눈치 채고 엄청 천천히
말해주더라고. 이럴 필요까진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왜 그렇게 싫던지.
나노 - 난 천천히 말해 주는 게 고마워. 무시하거나 ‘몰라’라고만 말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중략>
나노 - 난 온종일 슬리퍼 신고 다니게 된 게 신기해. 필리핀 같이 더운 나라 갔을 때는 잘 안 신었는데 여기서는 온종일 신고 다니니까.
넬슨, 아니나 - 맞아. 거의 여름에도 난 운동화 신고 다녔어. 양말도 신고.
넬슨 - 한 달 반째 삼디다스를 신고 다니는데 생각보다 튼튼해서 좋아. 발등이 살짝 아팠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편하고. 근데
혼자 앉아 있을 때마다 삼디다스 위 흰 선에 코리아라고 바글바글 써 있어. 의도치 않게 나 너무 한국 강조하는 신발 신고 온
거 같아. 하하.
넬슨 - 아 그리고 살도 좀 탔잖아. 군대 때 빼고는 이렇게 타본 적 없어.
일동 - 맞아.
나노 - 난 쉽게 타는 편이라 금세 더 까매진 것 같아.
<중략>
넬슨, 나노 - 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어! 그냥 자르기 귀찮아서..
나노 - 난 씻기 귀찮은 것도 있어. 내일은 다시 머리를 밀어볼까.
[호윤의 머리 깎는 모습; 형수, 지숙, 정민이 함께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