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단상(斷想) 1
09년 3월 18일
제목 : 따로 또 같이
- 적도 아래에 위치한 남반구의 땅 동티모르는 전형적인 1)열대기후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의 계절이란 건기와 우기 두 가지 뿐이다. 우리가 도착한 3월은 우기의 막바지였다. 매일 오후에 한차례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다.
나는 한국에서도 방안 혹 차안에서 듣는 빗소리를 정말 좋아했다. 여기서 듣는 비 소리는 또 나름의 감상이 있다. 하지만 나보다 더하게 이곳 사람들은 비가 오면 거리 나들이?를 나올 정도로 비오는 것을 소리 지르며 환호한다.
그런데 오늘 휴일 낮잠을 곧이 자던 나를 팀원 중 막내가 다급히 깨웠다. 눈을 뜨고 부랴부랴 나오니 집 마당으로 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의 물을 얼른 퍼서 밖으로 나르는데 집 밖 역시 도로보다 지대가 낮고 하수구가 막혀서 집으로 물을 쏟아낼 기세였다. 부랴부랴 쇠막대기를 가지고 현지분과 함께 하수구를 뚫고 동시에 마당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쯤 되니 한없이 물을 쏟아 붓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정신없이 물을 푸다가 어느 순간 집밖 풍경을 볼 겨를이 있었다. 윗옷을 벗고 즐거운 미소를 띠고 길거리에 나온 이들에 모습을 보면서....
같은 하늘의 비를 바라보는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순간, 일 년 전 캠퍼스가 생각났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첫 학기의 설렘은 신입생의 입학에 비할게 아니었다. 전역 후 만난 반가운 친구들과 여대생? 그토록 듣고 싶었던 수업 등 그야말로 꿈만 같았던 07년 9월이었다. 개강 보름 후 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따뜻한 미역국은 아니라도 은근히 2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 나는 열병이 나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고 오후2시가 넘어서야 정신을 좀 차리고 혹시나 하는 무언가의 기대를 가지고 투혼을 발휘하여 학교 강의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에게 특별한 오늘은 그들에게 지나가는 일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군대 다녀와서 ‘아직 정신 못 차렸냐?’며 ‘벌써부터 자느냐고 지각이냐!’는 평소 가장 의지하는 형의 말에 눈물이 울컥했다.
우리는 같은 날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기대했던 것이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간신히 눈물을 참고 강의실 밖을 나온 내 앞에 있는 캠퍼스의 모습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화창하고 평온했다. 지나는 학생들 모두 어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지 .........
우리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 다른 기대를 가지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활을 함께 한다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영원히 우리는 “따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