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의 돌덩이
사실대로 이야기 하자면, 내가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된 경위는 지극히 단순했다. 변변찮은 지방대에, 막상 졸업학년이 다가오니 취직 걱정은 되고,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그래서 뭔가 하나라도 해놔야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단순한 스펙 한 줄. 그것이 필요해서였다. 나름 자기소개서에 뭔가 쓰는 것은 자신이 있었던 터라 서류를 넣었고, 결과는 좋았다. 다만 면접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딱히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별로 내세우고 싶지도 않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주안을 두고 이야기 하지 못했던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때 당시 면접 보셨던 분들이 이러한 내 속 마음을 정확히 알았던 것 같다.
3기 이후, 나름 신경도 써서 자기소개서도 다시 준비하고, 면접 준비도 다시 하였다. 주안점은 어떻게 나를 포장하고 열정적이게 보일 것인가가 중점을 두었지만. 그렇게 4기에 지원했고, 결과는 좋았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 국내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단순한 스펙관리, 내 개발을 위해 와 있는 거라고……. 그래서인지 처음 드림텔에서 받았던 아시아의 이해, 각종 자원 활동의 강의를 들을 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나는 내 경력에 플러스를 주기 위해 와 있는 것이었고, 멀리 떨어진 그들보다 내 주변의, 또 내가 찾아가는 애들 또한 사정이 딱하고 절박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나는 현실적, 또 가식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는 전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 작은 변화의 시작
라온아띠에 선발되기 위해서 나는 내가 뭔가 큰 뜻을 가지고 있고, 열정이 넘치는 것처럼 포장하고, 면접 때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선발되기 위해서 포장 했었던 것이고,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하지만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기에 내게 주어진 것들은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행동이 나쁘다고만은 생각지 않았다. 나는 내 개인의 목표를 이루고, 외부적으로 라온아띠에 이미지에 맞게 건실하고, 라온아띠가 추구하는 인재 상으로 보이기 위해 포장하고, 일에도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는 라온아띠에도 도움이 될 꺼라 생각했기 때문에.
여긴 6개월간 보내야 할 또 다른 일터다,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면 또 다른 걸 하자는 생각이 제일 컸다. 나름대로 사회생활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었던 바, 직장으로 생각하니 일은 더 쉬웠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 팀원들이랑 같이 산다는 건 스트레스였지만, 직장으로 생각하고 나니 그냥 한 귀로 흘릴 수 있었고, 누구보다 먼저 움직이고 나름 큰오빠, 형이라 하며 부지런함을 떨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림텔 이후 2주간의 구미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큰마음의 변화를 주었다. 특히 구미요한센터의 이원재 관장님에게 배웠던 것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베풀면서 살 수 있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면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역NGO가 끝나고 난 후 출국까지의 기간이 너무 길었던 탓인가? 출국을 하기 위해 나머지 업무들을 인수인계하고, 처리하는 동안 나는 다시 일에 시달렸고, 다시 사무적으로, 가식적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할 때까지 말이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서는 라온아띠의 이름으로 왔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내게 주어진 일은 되도록 완벽하고, 깔끔하게 하되 사람들하고는 사무적으로 원만하게 거리를 두고 지내자. 그리고 여기 사람들도 나에게 그렇게 대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조용히 성과만 달성하고 돌아갈 수 있게끔.
하지만 여기서 3개월을 넘게 지내고 있는 지금, 이러한 일상에 미묘하게 변화가 생겼다. 모든 사람들을 만나본건 아니지만, 여기서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주변 먼저 챙겼다. 처음에는 저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나, 오지랖도 넓구나 하고 생각 했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일만 아니면 딱히 관심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주변의 다른 이들이 끈끈해 지는 것을 보면서는 나도 흐뭇한 생각이 들게 됐다. KL에서의 스텝들과의 생활, 베다니 홈에서의 생활. 그리고 페낭. 특히 베다니 홈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또 다른 생소함을 느꼈다. 장애 아동들을 미리 접해 본바, 애들과의 생활은 그다지 문제 되지 않았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애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애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관계에 대해서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주변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인식 문제였다. 베다니 홈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다. KL에서도 그렇지만 이들은 누군가를 상대할 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것이 누군가 되었던 가에 가리지 않고 말이다. 진심으로 애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주변 주민들과 선생님들, 스텝들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내가 언제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해보고 걱정해 본적이 언젠가 하는 생각. 나는 너무나 사무적이고 가식적인 것에 길들어져 있었다.
만약 내가 1, 2학년 때 라온아띠에 오게 되었다면 좀 더 다른 변화가 있었을까? 내가 좀 더 열정적이고 무엇인가 하기 위해 뛰어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의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 하기에는 내 남은 20대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앞으로의 나의 생활이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기에는 적당히 가면을 쓰고, 포장을 하고 비위를 맞춰줘야 나에게 이롭다는 것을 너무 빨리 느껴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할 때도 충분히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구미에서의 이원재 관장님의 말씀이 요즘에는 또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내 주변부터 사랑해라. 주변이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해진다…….”
요즘 내가 가장 걱정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나의 변화이다. 지금의 나는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진심으로 남을 대할 때 얼마나 가까워 질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남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았던 내 속만의 이야기도 애들한테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변화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도 남아있을까? 솔직히 지금으로써는 아니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느꼈던 것들은 호숫가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큰 파문으로 보이겠지만, 다시 조용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또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할 것이며, 일에 파묻힐 것이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예전처럼 적당히 맞춰주고, 속으로 욕하며, 가식적으로 대할 것이다. 적당히 나를 포장하면서 말이다. 또.. 지금의 감정을 다시 느끼도록 무언가를 계속 한다는 것은……. 현재의 나로서는 너무 버겁다.
고민과 변화의 사이에서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릴 정도로 오래 되었던 나에게 5개월이란 시간은 변하기에는 너무나 짧다. 다시 가식적이고, 현실만 바라보기에 바빠 급급해버리는 그러한 나로 돌아가고 여기서의 경험은 다 잊히지 않을까. 원래 내가 생각했던 단지 이력서에 한 줄로 남아버리지는 않을까.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덩어리이다.
알고는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가 가져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익숙했던 것에서 떨어져 타지에서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주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부분이 미묘하게 변하는 순간 그 부분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주며 가슴속에 물들었다. 그렇지만 그 변화는 언젠가는 다시 희미해질 것이다. 알고 있다. 이것이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갖다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나는 이 희미해지는 변화를 다시 덧칠하고, 잡아 나갈 것이다. 조금은 달라질 수 있도록, 주변을 좀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