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이제 이 높은 하늘도 더 이상 크게 놀랍지 않다. 트라이시클 매연에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 막았던 기억도 이젠 그냥 기억일 뿐 오히려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아직 여기에 온 지는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이 생활이 정말 편하다. 이제 집안에서 바퀴벌레를 보아도 벽 위를 지나다니는 도마뱀을 보아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냥 귀엽다.


   필리핀과 친해지는 법
   솔직히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은 적응기간이라고 그냥 정해진 일 없이 이리저리 구경 다니고, 집에 있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빈둥거렸다. 그냥 시간이 가는 게 아깝고, 왜 이 곳에서는 일하러 온 우리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을까 답답해했다. 하지만 두 번째 달이 되면서 갑자기 이것저것 해보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일단 하기는 했지만,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 안에서 부족했던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 일정을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심도 있는 고민은 없었다. 게다가 태풍까지 불어 닥쳐서 일정은 계속 펑크가 났고 우린 집에 있으면서 더 파이팅은 못할 망정 마음가짐마저 축 늘어져버렸다. 결국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우린 다시 심기일전했고, 우리의 생각대로 스케줄을 짜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하. 지. 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Aurora에서 우린 처음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활동 갔을 때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 “너희는 friendly하지 않아. kind하지 않아.” 이 곳에서도 첫 날이 지난 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이 아니기에 우리는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다들 우리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 우리도 몇 일만 지나면 금세 가까워지는 성격들이라고. 두고 보라고.
   다들 이런 마음가짐으로 활동들을 진행하다 보니 잘 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밤마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래. 우린 필리핀에 자원활동을 하러 왔고, 아시아의 친구가 되기 위해 왔다. 조금 성격이 덜 적극적이어도 노력해야 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해. 이렇게 생각을 바꿔먹으면서 일은 술술 풀렸고, 결국 우리는 그 곳 나나이(따갈로그어로 엄마라는 뜻)들과 정이 들어서 고작 5일 함께했는데도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난 Aurora에서 느꼈다. 정말 내 첫 필리핀 친구가 생겼구나. 정말 한국에 돌아가서도 연락할 내 친구가 생겼구나.

    변화 속에서 발견한 친구
   Aurora를 다녀와서 우리는 참 많이 변했다. 우리가 그 동안 참 쉽게, 쉽게 가려고만 했었구나, 좀더 고민하고 좀더 관심을 가지면 훨씬 멋지게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우린 적극적으로 남은 수업들을 계획하고, 이것저것 자료도 사서 미리 만들고, 정말 열심히 하였다. 비록 갑자기 또 일정이 변경되어 기운이 조금 빠지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우리도 힘을 얻었다. 정말 남은 기간까지 우린 이 기세로 밀어 부칠 것이다.
 필리핀에 오기 전에는 3주 훈련이 집에서 나와있던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이었고, 지금은 이 5개월이 가장 긴 시간이다.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처음이다. 그래서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나는 정말 누가 물어도 거짓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살고 있다. 기대이상으로 맛있는 필리핀 음식들과 너무나 친절한 필리핀의 사람들. 그리고 나와 참 잘 맞는 이 곳의 문화, 여유로움. 이렇게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것도 정말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50여일 남짓 남은 이 시점에 벌써 필리핀을 떠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울적하다. 벌써 나는 한국에 돌아갔다가 여기 다시 올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곳 에 이미 정말 평생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라온아띠가 되기 전 알게 된 해외친구들과 거의 연락이 끊겨서 되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정말 노력할 것이다.
 라온아띠 활동을 시작하며 오리엔테이션에서 쿠야(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분을 뜻함) 모리토가 아이들의 교육이 참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었다.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도 성공하기가 힘들다. 확실히 발리 크루즈의 데이케어센터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아이들과 이 발리 크루즈 아이들을 비교해 보면 수준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한국 아이들의 수준을 생각하며 어떤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면 솔직히 조금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쓰레기 산 근처에서 교육 재료도 별로 없이 수업만 따라가는 아이들이 어떻게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한 3달 정도 발리 크루즈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정말 교육이 중요하고 정말 이 아이들이 이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육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정부에서 이런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해서 아이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 통하였느냐
   벌써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남은 기간 동안 내 사람들을 더 만들고 가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진심이 이 곳에 전해지는 것. 영어를 잘 못하는 나로써는 말이 잘 안 통하니 진심을 전달하는 수 밖에 없다. 이미 오로라에서의 경험으로는 말보단 진심이 최고인 것을 충분히 느꼈다.
12월 중순인 지금 아직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우린, 피부색도 생활방식도 모두 필리피노가 되어가고 있다. Friends of Asia. 아시아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돌아가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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