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곧 4학년이 된다는 부담감,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졸업을 유예시킬 휴학꺼리를 찾고 싶었고,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게 교내에 붙어있던 라온아띠 포스터이다.
'파견기간 5개월'. 한 학기 즐겁게 놀다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부터도 해외봉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은 많이 했었지만 게을러서 지원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3학년이 끝날 때가 돼서야 4학년 공포증의 힘으로 지원서를 썼다. 그리고 꿈처럼 라온아띠에 합격했다.
3주 간의 국내훈련을 거치면서 라온아띠가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발대식 때 외쳤던 우리 팀 구호 "행복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잘 살다 오겠습니다"는 진심이었다. 행복에 겨워서 눈물을 흘려보고, 사랑을 아무리 주어도 자꾸만 샘솟아 날 수 있다는 기대가 들었다. 또 정말 그 곳 사람처럼 잘 살고 오자는 다짐을 했다.
이곳에 오면 당연히 신나고 즐거운 일들만 펼쳐질 것 같았다. 내 나이 또래 다섯명의 팀원들과 힘을 합쳐서 뭔가 대단한 프로젝트도 이룰 줄 알았다. 하지만 파견 첫 달인 3월에 공식활동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침대에 누워있기였다. 5시에 YMCA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잠이 들 때까지 정말로 지루했다. 머릿 속으로 멋진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가끔 팀원끼리 뭐라도 해보자고 머리를 맡대어 보기도 했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았다.
유치원에 나가면서 바빠졌다. 공식활동 시간도 늘어나고 몸도 피곤하니 잠도 잘왔다. 정신없이 활동에 집중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쓰러지 듯 잠들었다. 3월에 했던 잡생각들은 점점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유치원 활동을 끝내고 6월에 하는 활동은 몸이 편했다. 다시 또 3월에 들었던 생각이 마구마구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베트남과 정이 들어있었다. 두 달 밖에 안 남은 시점이라 이곳에서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아까웠다. 마치 4학년 공포증에 라온아띠를 지원했던 것처럼 나는 조금씩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작은 변화가 주는 기쁨은 꽤 컸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조금 더 크게 웃는 일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나를 편하게 느끼는 걸 보니 내가 즐거워졌다. 지금 조금 더 보지 않으면 다시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순간순간이 더 즐거워졌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또 미래에 이곳에 오게 될 라온아띠들을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잘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일도 벌였다.
라온아띠 파견으로 내 인생에 어떤 극단적인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몇 가지 있다면...... 내가 열정을 다해서 보낸 그 순간들을 기억할 때 내 안에 생기는 그 감정은 살아가는 데 에너지가 될 것 같다. 사랑을 미처 다 주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쏟는 내가 될 것 같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이런 작은 변화들을 씨앗으로 야무지고 알찬 나무를 키워하는 게 아닐까 한다. 5개월의 소중한 선물, 라온아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