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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세이 편리함에서 오는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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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리함에서 오는 불편함 라온아띠 2기 베트남팀으로서 보낸 첫 한 달 우린 한 달 남짓 호치민 YMCA 로 왔다 갔다 하면서 베트남어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거의 우리끼리 하는 공부였다. 숙소도 좋고 인터넷도 잘 된다. 게다가 호치민은 대도시라 웬만하면 원하는 걸 다 구할 수도 있고, 시내 나가면 외국인도 많고 한국 사람들도 많다. 난 베트남에서도 싸이월드를 하고 한국에서 쓰던 샴푸나 로션을 사서 쓰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 YMCA에서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여가 시간이 많았다. 가끔 주말에는 호치민 YMCA 봉사활동 하는 학생들과 시내 명소를 방문하거나 놀러가는 정도였다. 분명 라온아띠를 통해 배운건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배웠는데 불편한게 거의 없었다. 1기를 통해 전반적인 생활을 듣긴 했지만 이만큼 편하고 여유있을 줄을 몰랐다. 라온아띠 어떤 팀보다도 편하게 생활했었지만 속으로는 혼란스럽고 불편했다.다른 팀이 시골이나 고산 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진과 글을 보면서 부럽기까지 했다. 분명 대도시에서 편리하게 생활하는데 고립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팀원들과 대화를 통해 그리고 내가 여기서 큰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왔으니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노력했다.지금 난 봉사활동 하러 오기 전에 반은 유학생, 반은 관광객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주말엔 따로 나가서 시내를 보기도 했고 기계적으로 공부 하던 베트남어에도 사람들한테 말 걸면서 재미를 붙였다. 언어 배우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물론 내가 조금 더 능동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매일 같이 가던 호치민 YMCA 2층에는 봉제 공장을 운영해서 15 - 24 세 정도의 여자애들이 일도 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내가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었는데 3월 달 동안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우리들 스스로도 이 점을 반성하고 지금은 일과 끝나고 Y 앞에서 같이 놀거나 수다 떨기도 한다. 아무리 대도시에서 지내더라도 의사소통을 하면서 하면서 새롭게 느끼는 점도 있으니까 2) 한국대표가 아닌 한국인 4월에 3일 정도 희망학교인 직업 훈련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담당자 분과 얘기하다가 한국에서는 월급이 평균 얼마 정도 되냐는 평균 차 값은 얼마 정도 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질문을 받고 당황하다가 대충 우리끼리 어림 잡아 대답했다.그 후에 캔들데이를 하면서 우리 끼리 이 얘기가 다시 나왔다. 한국 평균 월급이나 차 값은 각자 생각하는게 다 달랐다. 중요한 건 다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거나 불편함을 느꼈다. 예를 들면 날씨가 어떻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네 가지 계절이 있고 지금 기온은 대충 얼마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월급이나 차 값은 각자 생각하거나 처한 상황이 달랐고 아무래도 돈 문제이다 보니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돈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나 경제 관련 질문을 받을 때 대답하기 곤란할 때가 많았다.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국은 어떻다고 대답하기가 곤란하고 불편한지.사실 평균 차 값을 어떠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나의 가장 정직한 대답은 이거다. 내가 사는 지역은 차타는 것보다 대중 교통이 더 편하다. 그래서 차 면허도 없고 앞으로도 면허 딸 생각이 없어서 차 값을 잘 모른다. 물론 팀원들 각자의 솔직한 대답이 다 다를 거고 그 이유는 우리 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대화하면서 영지 언니가 라온아띠 국내 훈련 때 받은 교육 중에 배운 것을 다시 짚어주었다.한국을 대표하지 말라고. 대표하는 범위를 좁히라는 얘기였다. 한국은 이렇다고 얘기하기 보다는 서울은 이렇다. 우리 동네는 이렇다. 나는 이렇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기도 쉽지 않다. 기껏 한 달 반 동안 배운 베트남어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실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베트남도 상황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나중에 알아보니 베트남에선 차에 매기는 세금이 꽤 많아서 한국 보다 차 값이 비쌌다. 이 후에는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베트남은 어떻다기 보단 호치민은 어떠냐 너는 어떠냐..한국이 어떻다기 보단 서울은 이렇다. 나는 이렇다.. 정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질문을 할 때면 각자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난 한국인이지만 한국 대표로 베트남에 온 건 아니니까 2009년 4월 중순 기점으로 쓴 글 from HCM VN
생활 - 적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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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보낸 한 달 3월달 중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1. 베트남어 3월 달 우리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자 유일한 활동은 베트남어 배우기였다. 매일 같이 호치민 YMCA로 출근해서 때로는 누군가 선생님이 돼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 스스로 공부했다.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에게 선생님이 되준 사람은 바로 호치민 YMCA 총장이신 미스터롭, 쭈롭이었다. 우리들은 쭈롭에게 약 1주일 넘게 자음, 모음 그리고 성조의 기초 발음을 배웠다. 쭈롭은 명색히 YMCA 총장이시지만 외국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각종 바디 랭기지와 상황극?까지 연출해주신다. 열정적인 쭈롭의 수업 덕분에 서툴게나마 베트남어 발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발음을 배우고 한국에서 가져간 책으로 공부해도 성조가 6개인 베트남어 발음하기가 절대 쉽지 않았다. 쭈롭은 수업 시간에 연신 very easy 를 외쳐대셨지만 어쩌랴 우리에겐 절대 easy 하지 않은 발음이었다. 책을 통해 배운 베트남어를 현지 사람들에게 사용해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상황1 핸드폰 가게에서 가장 싼 걸 보여달라고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베트남어로) 직원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가고 베트남어가 통한 걸 기뻐하는 찰나, 직원이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온다. 상황2 서점에서 어린이 베트남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직원에게 더 쉬운거 없냐며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직원이 우리 말을 못 알아들어 너무 갑갑한 나머지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갑갑할 때가 있었고 선생님이 없는 날이 더 많아서 우리끼리 공부하기가 무료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 가끔 일기도 써서 사람들에게 검사도 받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사진 첨부 3월달에 쓴 일기와 4월달에 쓴 일기) 아직도 부족하지만 4월달이 넘은 지금 5명 모두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 또 사람들에게 하루 하루 배우는 말도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베트남어 배우기는 아직도 현재진행2. 내겐 너무 버거운 자전거 우린 매일 같이 YMCA로 자전거 타고 출퇴근한다. 자전거로 단 10분 걸리는 길이지만 한국에서 자전거 타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 엄청난 오토바이와 쏟아지는 매연과 먼지 가끔씩 뒤에서 빵빵대는 차와 버스 등등 장애물이 엄청나다. 한국에서도 겨우 겨우 자전거를 타던 난 처음 2~3일간 거의 공포에 질린 상태로 출퇴근했다. 갑자기 나타나는 오토바이에 혼자 깜짝 놀라 동네방네 비명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알고 보니 이런 장애물을 피해 다니는 건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순발력을 발휘하고 팀원들 도움을 받아 겨우 다닐 만할 때 하필이면 내 꼬리뼈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리 안장이 딱딱해도 그렇지 5명 다 타고 다니는데 나만 왜 이리 꼬리뼈가 아픈건지 요즘엔 윤아언니와 함께 걸어서 YMCA로 가고 있다. 걸으면 걸을 수 있는 거리지만 강렬한 햇살과 더위 속에 30분씩 걷긴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아침부터 더워서 베트남 사람들도 안 걷는다.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더위 속에 걸어다니는 우릴 운동하는 줄 안다. 지금도 난 걸어다니는 중이고 정 날씨가 더울 때만 타는 중 추신 팀원들의 자전거 타는 유형 김상현(베트남 이름 : 떰) Tam : 자유인 자유자재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가장 잘 다룬다. 심지어 자전거 타고 오토바이도 추월가능. 길 가던 중에 자전거 체인이 빠질 때마다 고쳐주며 평소에는 가이드 역할까지 겸하고 있음. 자전거 탈 때만큼은 가장 믿음직한 멤버 정병칠 (따이) Tai: 보호자형 상현이와 함께 오토바이도 추월할 정도로 속력을 낼 수 있다. 항상 본의 아니게 자전거를 못 타는 팀원들을 자주 태우고 다니며 뒤에 태운채로 다리 하나도 거뜬히 넘는다. 김영지 (마이) Mai : 무난형 별다른 무리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잘 타는 편에 속함. 유슬기 (번) Van : 불안형 항상 급하게 방향전환을 구사해 보는 사람 불안하게 만든다. 그럭 저럭 탈 수준은 되나 안타깝게도 꼬리뼈를 자주 삐어서 자전거 타기를 자제하는 중 박윤아 (안) Anh : 부상형 자전거를 가장 적게 타나 탈 때마다 팔뚝, 다리에 멍이 든다. 심지어 최근에는 병칠 오빠 뒤에 탄 상태에서 넘어져서 무릎 부상 중 슬기와 함께 걸어갈 때가 많으며 주로 뒤에 타는 유형자전거가 자주 고장나서 힘들 때도 있지만 베트남팀의 필수 교통 수단이다!
[** 3월 베트남 팀 활동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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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4일 ~ 3월 31일까지의 활동을 베트남 팀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짧은생각] 작은 것에 감사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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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흐름과는 상관 없지만 팀원 모두가 너무 이쁘게 나와서 첨부합니다.^^ >저희가 활동하고 있는 이곳 호치민 YMCA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즐거운 웃음과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시는 ‘꼬남’이라는 베트남 최고의 요리사(전적으로 저의 생각입니다^^)와 많은 직원들, 그리고 YMCA 2층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친구들과 있었던 짧은 하루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치민 YMCA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잠시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른 몇 몇의 남자들과 이곳의 대중놀이인 da cao(한국의 제기차기와 비슷한 놀이) 를 함께 하고,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전부터 저와 스캔들이 조심스레 일고있는 이잉 과 봉제학원의 실세인 것으로 판단되는 화와 함께 che(한국의 팥빙수와 비슷함)를 먹으러 가자며 자신들이 사주겠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그동안 배운 베트남어를 사용하며 시간을 보내며 그 둘을 기다렸고, che 를 먹기 위해 함께 YMCA를 나섰습니다.저희는 이것저것 하루일과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제가 알고 있는 베트남어에 한해서 정말 한정된 언어로 서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대충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고, 어떠한 의미인지는 파악이 되기에 더불어 웃고 함께 재잘거립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che 를 시켜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습니다. Tai sao khong di hoc? ( 왜 학교에 가지않아? )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대답합니다.Khong co tien. ( 돈이 없어서 )현재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15세~24세로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금 마땅히 학교에 다녀할 친구들이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제 주머니를 뒤져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지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얼굴에 웃음은 그들보다 훨씬 적고,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그들보다 훨씬 얕았음을 느꼈습니다.다시금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진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을 자꾸 느낍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굉장히 시끄러운 상황이라고 인터넷을 통하여 접해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저 또한 현재 대학교 4학년에 진학예정인 상황에서 좀 더 좋은 직장, 좋은 연봉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던 제 모습이 한없이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고 이야기 한 후 카운터에서 저희가 먹은 che 값을 계산하였습니다. 제가 계산한 것을 알고는 처음에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졌다가 이럴 때 쓰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짧은 시간동안 그들의 웃음과 생각.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 물질에 매여있는 저의 모습이 점차 깨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아무런 활동도 없이 호치민 YMCA에서 베트남어만 배우고 있던 저에게 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하나씩 깨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베트남에서 생활이 더욱더 기대가 되고, 과연 4개월 후 제가 어떤 고민거리들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까 궁금증이 더해가는 하루 였던 것 같습니다.
[Xin chao VN] 베트남에 오시면은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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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오시면은요~ 전쟁박물관 어느 나라든 전쟁을 겪었다면, 이기든 지든 스스로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불과 몇 분 전에 내 눈앞에서 해맑게 웃던 가족들이 한순간의 재로 사라지는 시간이 바로 전쟁의 시간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전쟁을 베트남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베트남 역사를 잘 살펴보면 역사의 반은 침략이고 나머지 반은 거의 전쟁입니다.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열서 베트남에 대해 조사를 할 당시 베트남 내에서 발발 했던 전쟁은 우리를 놀라게 할 만큼 많고 길었습니다. 대략, 30~40년은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월남 전쟁, 즉 베트남 전쟁도 사실 1차, 2차, 3차로 3번에 나누어서 전쟁을 했었고, 마지막 전쟁인 3차 베트남 전쟁이 1981년에 끝났으니까 꽤 최근까지 전쟁을 했었습니다. 전쟁박물관은 이러한 전쟁의 역사와 무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규모는 생각보다 작지만, 그 안은 상당히 알차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밖에는 탱크와 비행기가 있고요. 안에는 무기들 소개와 함께 베트공들의 활약상을 담은 사진과 학살이나 사람들의 사체 사진 등 상당히 생생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자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찾아가기가 수월하고요. 자국인에게는 돈을 안 받아서 좀 더 자유롭게 이용 할 수 있는 듯싶습니다. 아마도 베트남 사람들은 이 곳을 통해서 자신의 역사와도 다를 바 없는 전쟁을 좀 더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몇 가지 테마가 있는데요. 굳이 다 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밖의 탱크나 비행기는 우리 또한 자주 봐오던 것들이라서 그렇게 관심을 끌진 않았고요. 안의 사진은 약간 잔인(?)하달까요? 너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서 비위 약한 저는 오래 있지 못 했습니다. 그 밖에 전쟁의 흐름, 쓰여진 포탄의 양 따위를 그래프로 나타난 방도 있었는데요. 재미없었습니다. 제 관심을 끌던 방은 적게는 9살에서 많게는 15살 정도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된 방입니다. 사진들이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겨서 약간은 뭍혀지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요. 저 처럼 약간 예외의 사람들이 그 쪽을 먼저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단순한 그림 전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베트남 아이들의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담은 단순한 그림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제 오만이더라고요. 이 아이들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고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간단한 질물은 하나 할까해요. 만약에 당신이라면 전쟁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때 무엇을 그리시겠어요? 전쟁을 모르는 우리로써는 전쟁을 그리라고 하면 단순히 탱크나 비행기가 싸우는 것을 연상하기가 쉬울 거 같아요. 물론 비둘기 한 마리 그려 놓고 평화를 외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치 자기가 군인이라도 된 것 마냥 앞장서서 적을 때려 눞히는 그림을 그릴 것 같기도 하네요. 아직 우리는 인종을 뛰어넘은 평화를 쉬이 생각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우리는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우리는 전쟁의 생생한 학살에 대해서는 생각치 못 할 것 같아요. 아직 어린 아이들이에요. 9살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죠. 이 9살 아이의 그림은요. 피의 강에 죽은 사체들이 둥둥 떠있는 그림이에요. 누가 상상했을까요. 피의 강이라는 것 자체를 쉬이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국에서 누가 그러한 그림을 그렸으면, 아마 애를 상담소에 보내고 정신과 진료를 받게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 만큼 우리가 사는 환경은 그러한 그림을 담아낼 수 있을 만한 환경은 아니니까요. 그 외에 'Please Don't'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15살이 그린 그림이에요. 저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전쟁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 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담고 싶어 했을까요? 제가 작가가 아니라서 뭐가 옳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제가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 곳에 아이들이 보는 것과 우리 한국에서 보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죠. - 그 외 갑자기 생각나네요.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쓴 이스마엘(풀네임이 생각이 안나요.) 자신의 전쟁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담아 책으로 출간을 했습니다. 그 안에서 작가는 12살의 나이에 부모를 잃고 전쟁이란는 상황 속에서 집도 없이 오직 자기가 살기 위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어린나이에 총을 잡아야 했고, 어리 나이에 마약을 해야 했으며,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생활 해야 했습니다. 전쟁은 단순한 국가와 국가간의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군인이든 아니든 누군가가 죽는 다면 그로인해 생기는 누군가의 슬픔은 누가 책임 져주나요?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이 아이라면 그 아이를 어떻게 보상을 해줄 것인가요? 아이가 가질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앞으로의 생활을 누가 책임져주나요? 이스마엘이 그랬어요. 자신이 살았던 환경과 다른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만약 이 시간 전쟁터에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까요? 자신은 총을 몸에 품고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삶을 살지만 지구 어딘가에는 편안히 잠자고 게임하고 놀고 쓸데 없는 반찬투정을 하는 아이가 있다고 알고는 있을까요?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고 아이의 행복을 우리가 어떻게 해서 정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을 압니다. 하지만 보통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합의 된 것들, 적어도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아이들이 좀 더 적었으면 좋겠고, 좀 더 가족의 품에서 행복한 웃음 띄며 살았으면 좋겠고, 좀 더 어린나이부터 일하기 보다는 좀 더 놀았으면 좋겠고, 그러한 바람들이 그러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네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은 곳에서 정말 활발히 진행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아이들은, 우리는 그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이스마엘 처럼 운일지 아니면 자신이 개척한 것일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전쟁이라는 곳에서 해방되어 살아가는 아이들이 당연히 있지만 정말 그렇지 못한 곳에서 사는 아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인지 그 삶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아이다운 혹은 아이처럼 생활할 환경을 마련 해 주어도 그것을 힘들어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더운 봄 날씨에 우리를 찾아온 Duy에게 아직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우리에게 봉사를 해주는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을까요. 등이 땀에 흠뻑 젖어 가면서 잘 모르는 호치민 시 시내를 소개 해 주기 위해서 정말 많이 걷고 걸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전쟁 박물관만 가고 안가기로 했어요. 사실 우리가 너무 힘들었고, 아직 죽음의 12시에 움직일 용기가 안났던 것 같아요. 제발이지, 썬크림이 태닝크림으로 변하는 12시에는 움직이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항상 12시에 그렇게 돌아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여러 생각이 겹쳐서 너무 글이 산재되있는 듯 하네요. 정리를 하고 싶지만, 그러자니 추가를 해서 더 복잡해지면 더 복잡해지지 정리 될 거란 생각은 안들어서 그냥 올립니다. 머리아프시거나 글읽다고 힘드시면 그냥 살포시 알트 F4를 누르시는게 나을거 같아요. 저도 다시 읽고 나니 그냥 끄고 싶긴하네요. 그냥... 너무 생각없이 쓴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 ㅜ.ㅜ
단상 Ⅰ : 한달여간의 깊은 인상, 그 어떤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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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단상. 말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단편적으로 적은 글들.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오롯이 글에 담을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기 위해 조금이라도 정성을 들여 본다. 얼마나 솔직할지는 자신할 순 없지만, 수많은 끄적거림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뱉어 보고 싶다. 옥상 : 나를 즐겁게 하는 그곳 Cao son lam hotel의 옥상에 앉아 Buena vista social club의 Chan Chan을 들으며 333 맥주를 홀짝인다. 그리곤 어둑어둑한 이곳에서 이것저것 끄적이기를 반복해 본다.작열하던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나면, 그 열기를 거둔 시원한 바람이 제법 거칠게 주위를 감싼다. 아프도록 내리쬐는 햇빛이 과연 어김없이 내일도 나타날까 하는 의문과 걱정이 고개를 든다. 한국에서의 옥상은 '은밀함, 불건전함, 폐쇄적'의 어쩌면 불온한 단어들이 쉽게 떠올려지는 그런 장소였다면 지금 내가 자리하고 있는 호치민의 옥상은 소통의 장소이자, 사색과 감상의 시간, 휴식과 운동의,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다. 시원하고 기분이 묘하다. 꼭 이 공간에 혼자만 갇힌 착각 마저 들게 하는 어둠이다.자전거 : 미워할 수 없는 그것 호치민에서의 삶에 자전거를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다. 울고 웃게 만드는 사고뭉치 자전거들. 자전거를 못타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태까지의 경험은 이곳에선 도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공원에서 잠깐 타는 것이 자전거와 함께한 시간이었겠다만, 이곳은 삶이며 교통수단이기에 자전거와 함께 해야만 했다. 차와 오토바이로 가득한 차도로 우리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야한다는 얘기는 처음엔 믿기어려웠고 사실 믿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렇게 몇번의 연습과 길 익히기를 끝낸 후 조심스레 호텔로 출발해본다. 맙소사. 뽀얗게 떠다니는 먼지와 빵빵 거리는 소리, 엉성한 교통체계 (지극히 한국에서 살아온 나의 관점에서)에 자동차 보다 훨씬 훨씬 많은 오토바이, 길가에 널려있는 가판들에, 과일이며 강아지며, 이차선 조금 더 되는 그 길가는 걸었을때는 몰랐던 어떤 것들이 더 있었다. 재밌게도 하나도 모르겠는 이 무질서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 그리고 바싹 긴장하면서 페달을 밟던 내가 조금은 누그러질 만큼의 소통이 그것이다. 매끄럽지 않은 자전거 실력으로 삐끗삐끗하던 나는 연신 '씬 로이(미안해요)'를 외쳐댔는데, 종종 눈이 마주쳐지는 베트남인들의 웃음을 보며, 어느 순간 즐거움을 느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덕분에 먼지 한가득) 자전거로 헤집고 다니는 경험에 있어 짜릿함과 동시에 내가 있는 이곳이 베트남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게 한달 남짓 타고 나니 순수하게 달리는 데서 오는 쾌감도 맛보고 있다. 가끔 자전거로 강을 건너 조금 먼 마트나 서점까지도 가보곤 한다. 아, 강을 건너기위해 다리를 오를땐 다리가 부서질 것 같은 - 좀 과장이지만 - 힘듦을 느끼지만 내려올때 페달에 살포시 발을 올려놓고 올라가는 속도와 뺨에 닿는 먼지 섞인 시원한 바람을 거침없이 느낄때면 진짜 즐거움의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터져나온다. 물론 앞 뒤로 상현이와 병칠오빠가 타기 수월하게 항상 도와주고 있지만 말이다:) 깜언, 안 바 엠. (고마워요)아, 그렇게 재미만 있었으면 좋았으련만.차도 한가운데서 넘어져버렸다. 정주행 하기 위해 차도를 건너다가 순식간에 다가온 작은 트럭에 지레 겁을 먹고 거의 핸들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좀 아프긴 했지만 툴툴 털고 일어났는데, 후에 상현이에게 들어보니 넘어져 있는 동안 뒤에 오토바이와 차가 정체되어 있었단다. 조금 창피하고 미안해진다. 여튼 조금 멍든 것 외엔 아무렇지 않았지만 소위 '심리적 외상'이랄까. 엄청 긴장되고 불안해지는 거다. 뭐 현재는 다시금 씽씽 즐거이 혹은 피로를 느끼며 자전거와 함께 하고 있다. 캔들 데이 : 우리들의 속 내 우리는 미리 계획 했던 대로 간혹 캔들 데이를 갖는다. 속내와 속사정을 나누기 위한 부러 만든 시간들이 우리들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든다. 가감없이 자신을 터 놓으며 서로를 알아가는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약간의 흥분이 남는다. 이런식의 묘한 설레임과 흥분은 내게 아직 -당연하게도- 유효했고, 그것은 여전히 역동적이었으며 찬란했다. 한 달 남짓의 베트남 정착기 속에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하는 물음의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내 머릿 속 : 단순하거나 혹은 우리의 현재 위치는 역시나 혼란스러웠다. 베트남은 커녕 호치민조차 어정쩡하게 발이 묶여 멋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황속에 내가 여행자가 아님을 절감한다. 여행자인가 이방인 혹은 손님인가 뭐인가 하는 그런 물음들. - 국경을 넘는 다는 것은 얼마든지 신날 수 있는 해방과 일탈의 기회, 또한 오랜 관성을 벗고 새로운 감각을 획득하는 것과 내가 속한 곳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기회이다. 그리곤 당분간 기약 없는 타지로의 삶을 아쉬워하며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을 야금야금 탐닉하고 싶다. - 온전히 편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내 자신을 노출시켜 봄으로써 진정으로 차이를 인정하고, 관대함을 연습한다. 이십여년을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던 다섯명이 생전처음 가보는 곳에서 생전처음 보는 사람들과 낯선 언어로 살아간다는 상황 자체가 스스로를 깨는 혹은 깨지는 경험일 것이다. - 결국, ‘한국’이라는 대명제는 타지에 와서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점이 한국이 우수한지 혹은 열등한지를 자연스레 계산하고 그것들을 눈으로 쫓는 나를 보며 약간의 자괴감 마저 들었다. '한국이랑 비슷하네, 혹은 한국이랑 비교하면 어떠어떠하네' 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금새 그것들은 머릿속으로 침투해온다. 정치적으로 그름을 백날 아는 것과, 부딪치면서 느껴지는 찰나의 감정과 생각들의 갭은 생각보다 컸다. 의식적으로 탈국가적이기 위해 노력하고 지구시민임을 인지하는 것. 앞으로의 4개월간 나의 과제임은 자명하다. 예상했던 대로 두서없고 정리되지 못한 거친 글이되었지만, 그 자체로 내 감정들이 녹아 내렸다 생각하련다. 그리고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그립다. 모두들 좋은 꿈 꾸세요. Chuc ngu ngon.
Yuna의 하루 중 (기상~ymca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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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어떤 공식적 행사나 활동이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베트남 속의 저의 삶을 알려드리고자 작성되고 있는 글 입니다. Reality에 초점을 두어, 읽는 이가 다소 불편 할 수 있으나, 진솔하게 이야기 하고자 노력 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기상은 8시, 아침식사는 8시. 이 말은 결국 눈 뜨자마자 바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일어나는 슬기의 인기척에 잠시 눈을 뜬다. 슬기는 오늘도 역시 침대 모퉁이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다. 무섭다.) 익숙한 광경이지만 잠시 흠칫 놀란다. 그리곤 5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애써 외면한다.- 바로 이자세. 눈은 아직도 반쯤 감겨 있고 머리는 산발을 한 체 면발을 집어 든다.(베트남의 아침은 웬만하면 국수다.) “너희 아침에 안 씻어? 으하하” 병칠 오빠가 농담 삼아 한 말..... 젠장...걸렸다.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아침 식사는 마무리 된다.-온 갖 종류의 국수다.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지금은 그닥 반갑지 않다. 화장실 못 간지 이미 일주일! 제발 오늘만은 제발...기도하고 쾌변을 위한 자세를 공들여 해도...역시,오늘도 글렀다! 이제 그만 나가자..온 다리, 심지어 팔까지 멍투성이에 잔뜩 상처를 남기고야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다. 자전거로 10분, 걸어서 30분. 다른 팀원들 보다 일찍 출발해야 하지만, 오토바이로 가득한 거리를 보며 백번 잘한 일이라고 위안한다.-상처가 잘 나오지 않아 속상한 사진이다. 팔에 박힌 선명한 자건거 핸들자국(거의 다 나았을 때). 많은 오토바이로 도로가 3시간 정도 마비된 날. 작렬하는 태양과 콧구멍을 막아버릴 듯 한 먼지를 방어하기 위해 큰 두건으로 얼굴의 4분에 3을 감싼다. 땀은 얼굴에서부터 출발해 목을 타고 내려와 등까지 적신다. 큰 숨을 내실 때 마다 두건이 코로 빨려 들어와 콧구멍을 막는다. 아,,,,, 답답하다.-나와 잠시 함께 했던 길동무 상현이 잠시 두건을 내렸는데, 이번에는 먼지가 콧구멍을 막는다. 이래저래 오늘도 제대로 숨 쉬기는 글렀군 하고 생각하는 찰라!! 길거리 개들이 짖으며 달려든다....십년감수했다...개들 때문에 아니라, 곁에서 화들짝 놀라 격하게 달려든 슬기 때문이다. (왜 같이 공포영화 보는데, 옆에 있던 사람 비명소리 때문에 더 놀라는 경험 같은) 달려든 슬기를 매몰차게 떼어버리고 걸음을 재촉한다.드디어, YMCA건물이 보인다!!! 예!!~~ 신난다!
[Xin chao VN] 베트남에 오시면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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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베트남에 오시면은요. 우리는 3월 5일, 한 달하고도 6일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베트남에 왔습니다. 추운 한국에서 입고 온 긴팔, 긴바지와 매우 따뜻한 겨울 신발을 신고 조금 당황스러운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베트남 땅을 처음 밟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더 더워지긴 했지만 그 당시 날씨가 대략 35~6도 정도 했을 거에요. 옷을 벗자기 늦잠자서 씻지도 못한 몸을 드러낼 수는 없어서 그냥 꾸~욱 참고 후다닥 공항 안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짐 무게가 40kg까지 허용 되는 베트남 항송이라서 작은 가방에 꾸욱꾸욱 짐을 눌러 담았지만 겨우 30kg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40kg 채울려고 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짐 무거우면 찾을 때 발자국 많이 남겨 준다고 해서 센스 있게 10kg 빼줬습니다. 아마도 저희 팀은 보통 25~8kg 정도 되는 짐을 꾸렸던 것 같아요. 다음 3기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40kg 꽉 채워서 발자국 남겨가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노트북이나 기계류 같은건 안에 넣어 가면 안돼구요. 저는 노트북 넣어 갔다가 고장 날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잡 얘기를 좀 하고 싶었는데 이제부터는 제가 본 베트남을 좀 보여드리고 싶어요. 베트남에 오시면은요. 첫 째로 정말이지 아름다운 하늘을 감상 하실 수가 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하늘도 물론 예쁘겠지만, 해외 경험이 없는 저로써는 식상한 한국의 먹구름 보다 자주 저녁에 하늘을 밝혀주는 번개도 볼 수 있고, 하루에 한번 씩 비가 내린 후에 우리에게 방긋 웃어주는 해가 떠 있는 하늘을 볼 수 있는 베트남의 하늘이 좀 더 예뻐보이네요. 가끔 가다가 무지개 비스무리 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사진이 화질이 안 좋아서 담지는 못 했지만, 기름을 물에 풀 때 나오는 무지개 빛이 하늘에 떠 있더라고요. 좀 많이 신기 했었어요. 하늘색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는데 중간 중간 노란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는 것이 판에 박힌 무지개가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죠. 하늘이 너무 맑아서 한 낮의 직사광선을 피부로 직접 받을 때면 가끔 살이 익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요. 그 때는 조금 베트남 하늘이 미울 때도 있어요. 그 때를 제외 한다면 베트남처럼 변화무쌍하고 하루하루가 색 다른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베트남 하늘이 참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두 번째로 베트남에 오시면은요. 저희 팀을 만날 수가 있어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저희 팀이 이곳에 와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지 않을 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저희 팀 개인 개인의 소식도 궁금해 하실 것 같고요. 그래서 한번 저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일상을 조금 담아 보고 싶었어요. 우선 베트남에 오시면은 정말이지 친절하고, 잘생기고, 키 크고, 베트남 여자 분 들에게 인기 많고, 착하고 이런 종류의 칭찬에 약한 팀장 병칠이 형을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의 강렬한 태양 빛에 점점 피부색이 변해서 정말이지 현지화를 몸으로 표현하는 중입니다. 썬크림을 발라도 빠르게 까맣게 변하는 피부색의 변화를 눈으로 감상 할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슬기에게 좀 밀리고는 있지만, 우리 팀에서 개그를 담당하시고, 언제나 팀원들 간의 큰 웃음을 선사 해주셔서 정말이지 다행입니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머리에 꽃 꽂은 여자 세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왼쪽 부터 김영지, 박윤아, 유슬기를 소개 하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원피스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 정말이지 예쁜 모습으로 만났지만, 양평 합숙 때부터 정말이지 언제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세 분이 정말 좋습니다. 한분을 막 언니의 역할을 하면서 가끔가다가 저를 발로 차려고도 하지만 언제나 뒤에서 우리를 챙겨주고 감싸줍니다. 정말이지 따뜻한 보살핌과 동시에 가끔가다가 로우킥을 맛 볼 수가 있어요. 병주고 약주는거죠. 가운데 윤아 누나는요. 언제나 먹을 것을 원하지만 정작 먹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누나에요. 누나랑 있으면 베트남 음식 먹지는 못하고 소개만 엄청 받을 수가 있어요. 요즘 운동도 해서인지 얼굴이 많이 핼쑥해져서 좀 먹이고 싶은데 여전히 잘 먹지는 않네요. 먹는 것도 없는데 아픈 곳 없이 잘 지내는 걸 보면 정말 건강한 몸을 갖고 태어난 것 같아요. 테이핑을 달고 살던 슬기는 최근에 테이핑을 뗐어요. 테이핑을 뗀 기념으로 베트남에서는 센스 있게 그 부분만 하얀 피부를 유지 하도록 남겨 주더라고요. (물론 최근에는 다 탔지만) 최근 들어서 병칠이 형을 압도하는 개그를 보여줘서 병칠이 형이 약간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요. 정말이지 슬기랑 있으면 엔돌핀이 무한정 생성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끔가다가 미쳐버리는 저를 만날 수가 있어요. 특별히 잘 난 것을 없지만 제가 이곳에서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은요. 수 많은 오토바이를 자전거 하나로 미친 듯이 추월하는 광란의 질주와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특이한 웃음 소리 "냐하~?" "이히?" 마치 베트남 성조와도 같은 웃음 소리를 보여 드릴 수는 있을 거 같아요. 정말 딱히 보여 줄게 없는 게 좀 슬프네요? 그래도... 정말 저 자전거는 잘타요... 세 번째로 이곳에 오신다면 베트남 YMCA를 보실 수가 있어요. 저희 호텔과 불과 자전거로 10분 밖에 안 걸리는 곳인데요. 처음에 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이지 재밌는 곳 인 것 같아요. 직원분들에게 언제나 손님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약간의 부담을 느끼고 있기는 한데요. 솔직히 편하고 아무런 불편함도 없이 저희가 아무런 사고 없이 돌아가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요. 언제나 조심스럽게 저희를 대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요. 개인적으로 그러한 태도가 조금 불편한 것은 너무 저희가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죠. 공짜로 밥 다나오고 공짜로 자고 아무런 불편 없이 하는 것도 없이 한 달을 보내고 나니까 죄책감이 조금 들기 시작했어요. 다른 팀들은 어떤 활동인지는 모르지만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저희는 아무런 활동도 시작 하지 않았거든요. 사실 베트남어도 저희들 스스로 배운 것이 2/3나 되기 때문에 교육도 교육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공부하라고 어느 방에 있으라고 하기보다는 봉제 친구들 옆에 가서 봉제 하는 것을 보거나 기술을 조금 배우거나 잡일이라도 하면서 베트남 친구들과 부딪히면서 생활을 한다면 뭐라도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베트남어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하기는 해요. 그 생각이 너무 제 시각에만 맞추어져서 봉제 친구들이 불편해하거나 저희가 사실 짐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너무 짐스러워질 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이러한 편안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는 거지만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남의 돈 먹고 해외봉사를 하러 왔으면 적어도 짐은 되지 말자고 다짐 했는데 그다지 우리가 베트남에 오면서부터 이미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할까요? 하지만 좋게 받아 들인다면 우리는 베트남 YMCA에서 엄청엄청엄청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반증이 되겠죠. 이분은 꼬남입니다. 정말이지 1기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저희들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 처럼 보이는 분이에요. 저희가 와서 인사하면 언제나 웃으면서 "캬하하하하하" 웃어주시는데요 그 웃음이 어찌나 통쾌한지 저희들도 같이 웃게 만들어 주세요. 병칠이 형이 꼬남 성대모사를 시작하면서 꼬남이 병칠이 형을 대놓고 때리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요. 꼬남이 그 만큼 병칠이 형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요. 윤아 누나도 많이 맞는데요. "Toi muon 두리안(나는 두리안을 원해요) Toi khong muon Chui(?)(바나나는 원하지않아요)" 바나나가 자주 나올 때 이말 하나로 맞는 일상이 시작 된 것 같아요. 굳이 두리안을 원한 것은 아닌데 꼬남이 살 수 없는 것들을 자주 원해했거든요. 월남쌈이라던가 분짜우(?) 베트남에서도 보기 힘든 음식을 Toi muon Toi muon 자주 말했던 것 같아요. 윤아누나를 상당히 재밌어 하시는 것 같아요. 그 표현이 손찌검이라서 조금 살벌하긴 하지만 윤아누나도 그렇게 아파하지 않고 가끔가다가 즐기는 거 같기도 해요. 아직은 봉제 친구들을 찍은 사진이 없어요. 그래서 보일 수 있는 사진은 없지만 그래도 몇 명 꼬집어서 말하고 싶어요. 최근 병칠이 형과 말도 안돼는 스캔들이 일고 있는 엠이(?) 이름이 맞나 모르겠어요. 저희 팀에서 보스라고 통하는데요. 포스가 상당합니다. 장난으로 시작된 "Em 2 yeu anh tai(엠이는 병칠이형을 사랑한다)"는 말을 통해서 스캔들이 시작 되었어요. 여자들이 많은 봉제 공장이라서 아마 소문은 쫘~악 퍼졌을 거 같고요. 그래서인지 병칠이 형이 YMCA에서는 그렇게 인기가 있는거 같지는 않아요... 그리고 화라는 친구가 있어요. 키가 정말이지 작지만 언제나 유쾌한 웃음으로 꺄르르 웃어주곤 해요.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장난도 조금씩 치고는 하는데 자기가 나이가 많다면서 Chi Hoa (화누나)라고 부르라고 하곤 해요. 마지막으로 베트남에 오시면은요. 저희가 묵은 호텔을 보실 수 있어요. 약간은 한국의 모텔과도 같은 크기지만 명칭은 khac san(호텔)입니다. 아마도 모텔이라던가 여관이라는 개념이 없는거 같아요. 방을 빌릴 수 있는 곳은 대부분 khac san을 달고 있더라고요. 이 곳은 이미 저희가 접수한 상태입니다. 보통 손님 보다 가족이 더 많은 방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여기서 본 손님은 한... 5커플 정도? 가족이 각자 방을 한 개씩 차지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방이 많이 없는 것이죠. 10개 정도의방이 있다면 4개가 가족들이 사용하고 2개는 저희 사용하고 2개는 언제나 2개는 언제나 비어있고 딱 2개 만 사용하는 것 같아요. 매일 아침이면 꼬화(주인아주머니)가 국수를 사다주시고요. 언제나 더러운 저희 방을 청소해주십니다. 언제는 개고기 파티에도 초대를 해주셨는데, 개고기 하나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저희 팀은 다 같이 운동을 합니다. 처음에는 다이어트로 시작된 운동인데요. 이제는 습관을 들여서 인지 저 빼고 다들 잘하는 거 같아요. 이미 윤아 누나는 효과를 보고 있고요. 영지 누나는 근육이 점점 증가하고 있어요. 병칠이 형은 아직 뱃살을 빼지는 못했지만 제일 열심히 운동을 하고요. 슬기도 최근에 줄넘기를 시작했습니다. 1기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안킴이라는 호텔 사촌을 통해서 베트남의 밤 문화를 좀 섭렵한 상태이고요. 웬만한 호치민의 명소는 다 가본 것 같습니다. 이 분이 베트남의 다양한 음식도 사다 주시는데요. 가끔 오리고기와 함께 오리머리가 같이 온다거나 닭고기와 함께 닭 머리가 올 때 빼고는 대부분 맛있는 음식을 사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다름입니다. 개고기에 개 다리고 있는데 머리쯤이야 양호하죠? 저희 들이 이 곳에 와서 한일은 정말이지 먹고 자고 싼일 밖에 없습니다. YMCA에 가면 저희들 끼리 공부도 하기는 하지만 보통 공부한 시간보다 놀러가는 시간이 아직은 더 많고요. 이제는 호치민 시내는 질려갈 정도로 놀기는 정말이지 엄청 놀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일을 시작한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팀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다른 팀이 보신다면 정말 배불렀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놀아서 부담이 된다는 것은 이곳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서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합니다. 여하튼 월화수목금 변함없는 일상을 살고 있어요. 8시에 밥 먹고 9시가지 YMCA가서 6시에 저녁 먹고 퇴근. 호텔에서 운동하고 씻고 빨래하고 바로 자유롭게 놀러 다닙니다. 주말이면 오히려 뭘 하고 놀지 몰라서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요. 엥간치 놀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못 놀아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며 베트남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는 중이에요. 호치민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서 인지 웬만한 길은 거의 다 알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데리고 호치민에 온다면 제대로 된 가이드를 시켜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놀아서 부담이 된다는 한심한 소리를 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놀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다른 면들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게만 바라본다면 다양한 베트남 사람들이 생활방식을 몸으로 느낀다고 할까요? 그래서 자신감 넘치는 베트남 대학생을 만날 수 있었고 술을 좋아하는 베트남 남자들과 흔들리는 사이공강 다리 위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는 베트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호텔에만 있었다면 볼 수 없을 다양한 모습을 봐서 기쁘기도 하고 너무 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고민도 좀 하지만 역시나 저희는 오늘도 놀다왔고 아마도 다음에도 또 놀거에요. 더욱더 놀면서 좀 더 보고 좀 더알고 싶은 것이 베트남이니까요. 다음에는 저희가 놀러 같 곳을 소개해 드릴께요. 이번엔 글이 길었지만 다음에는 짧게 짧게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
베트남 두번째 이야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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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팀 입니다.^^ 저희 숙소에 인터넷 여건이 다른팀들보다는 한결 수월해서 또 소식을 전합니다!!ㅋㅋㅋ지난 일요일은 베트남 박물관을 방문해서 베트남의 아픈 과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고, 저녁은 우리의 차차차 선생님인 유슬기양의 생일(3월 8일)을 맞이하여 숙소에서 호텔 가족들과 작은 파티를 즐겼습니다. 호텔가족분들 정말 술 좋아합니다.^^ 이 곳 베트남은 정말 덥습니다. 덥고, 뜨거운 날씨 탓에 12시~2시까지 호치민 YMCA에서 전원 오침을 하고 있구요, 월요일엔 사전을 구입하기 위해 숙소 근처에 있는 서점&마켓에 가서 되도 않는 베트남어로다들 나름 만족할만한 쇼핑을 했습니다.ㅋㅋ 다른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당분간 베트남어를 마스터 하는데 집중할 예정입니다.ㅎㅎ 지금 막 동경(말레이시아),지훈(캄보디아), 훈,(태국)이를 클럽&네이트에서 만났는데 넘 반갑네요~!!^^ 서현이도 잠시 인사만..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다들 뜨거운 날씨 몸 조심하시고, 자주 소식 주고 받아요~!!ㅋㅋ 그림은 유슬기가 그렸음 ㅋㅋ(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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