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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 . 그리고 1/5 과 1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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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큰 관련은 없지만, 1월 3일 우리에게도 두 분의 간사님이 방문하셨다.자랑하려고.]1. 1월 4일부터 1월 10일.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일주일의 휴가를 베트남 와이에게 제안했고, 각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따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는데, 의외로 베트남 와이는 의연하게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도와주었다. 갈등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조금은 어려운 시기를 지났다. 갈등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아마 각자 조금은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다섯명이 함께 지내는 5개월에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갈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이것을 자유 여행이라고 불렀는데, 아마 그것은 굉장히 1박 2일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여행일 수도 있고, 마무리 여행일 수도 있고, 여행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 무궁무진한 긍정적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그냥 여행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것 같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계속 다섯이 같이 있었다. 1월 쯤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베트남에서의 욕심이 부딪힐 때가 되었다. 게다가 아주 자연스럽게도 1월의 우리의 스케쥴은 우리의 몫이었기에, 부딪힐 수도 있었다. 고백하지만, 이렇게 따로 떠나는 여행에 가장 부정적인 것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안전과 같은 문제는 둘째 문제였고, 뭔가 다섯이 함께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던 나의 기대와 욕심이 첫째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위와 같은 생각을 겪었다. 150일 중의 7일이라면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다섯이 7일간 충분히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은 여행이잖아,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정당화라기 보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연습의 과정이라고 지금은 진심으로 이 기회에 고마워 하고 있다. 하노이로, 냐짱으로, 메콩으로, 앙코르와트로. 잘 다녀왔다. 모두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고 출발했지만, 다들 5개월을 정리하고, 충전했다.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2. 1월 11일부터 1월 20일. "만나는 사람, YMCA 사람들, 자전거를 고쳐준 오토바이 수리집의 청년들, 수연이가 교통사고를 낸 구멍가게 아줌마들, 호텔 주인가족. 그들의 친절만으로도 열심히 해야 겠다고 불탔다. (2008년 8월 21일의 일기)"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하는 시기가 되었다. 고마움의 마음은 그 때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하게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 애정이 담긴 물건은 언제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줄 준비가 되어있다. (유치원에서의 작별을 준비하던 2008년 11월 27일의 일기)" 5개월의 생활 중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우리는 정말 많이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장애인 클럽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우리는 늘 도움을 받았다. 어디에서도 우리가 가장 빨리 지치고, 자주 아펐다. 그것이 자괴감(자신이 괴로운 감정)이 될 때도 있었다. 우리가 도와주고, 우리가 없으면 안되고, 우리가 주체적인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호의와 친절을 그대로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받은 고마움으로 따뜻함이 넘쳐 나는 사람이 되서 나도 그런 호의와 친절을 어디서나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되겠구나. 꼭 Give and Take 가 아니어도 되는거겠구나. 이제 정말 그 고마움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표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 이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의 따뜻함, 약속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희망 직업학교를 다녀왔다. 우리가 베트남어를 처음 공부하던 9월에 우리는 그 곳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연습을 했었다. 레포트를 쓰던 12월에 우리는 그곳의 학생들로부터 설문지를 받고 선생님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런 인연이 있는 곳인데, 사실 제일 겁났다.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기관들 중에 제일 우리와 안 친한 기관이었다. 그 이상의 친분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이 위대한 것은 역시, 우리는 여기서 따뜻함을 충분히 받아왔다. 사실 교실로 들어가서 학생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시간에는 무척 부끄러웠지만,(9월달과 학생들이 바뀌어 있어서, 처음 봤는데 작별했다.) 그래도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던 선생님들과 그 선생님들과의 식사, 커피, 그리고 차 선물. (우리가 선생님들이 끓여준 차에 대해 관심을 표했더니, 경비 할아버지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사와주셨다. ) 이 모든 것이 따뜻해서 소중했다. 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선생님이 언젠가 다시 베트남에 와서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겠니 하고 물어서 우리는 돈이 없어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헤어질 때 선생님이 한국 가면 공부 열심히 하고 돈 잘 벌어서 다시 베트남 오면 희망 직업학교에도 오라고 하셨다. 물론 메일을 교환하고, 그런 인사말들이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늘 모르는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역시 모르는 문제이다. 그래도 늘 그 순간은 참 소중하다. 설령 그것이 미래에는 빈말이 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도 참 소중한 순간들이다. 내일은 장애인 클럽, 그 다음날은 유치원, 그 다음날은 봉제학원이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만날까 고민한다. 오늘은 장애인 클럽에 줄 편지를 썼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은 "정말 고맙습니다." 라는 것이 아쉽다. "정말"을 아주 강조하는 것이 그나마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온 얼굴로 모든 몸짓으로 이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겠다. 3. 1월 20일부터. 억지로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5개월의 생활 중에 우리에게 붙은 실력이 개개인의 생활공간에서 발휘될 수도 있고, 여기와 관련된 일감을 계획할 수도 있고, 사람을 모을 수도 있겠다. 확실한 것은 이제 베트남은 내게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나라를 주변에서 들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고, 베트남 사람을 만난다면 이것 역시 미국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감흥을 주는 만남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작하고, 제안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도전도 하고. 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episode 13 . 4/5의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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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 것은 어느나라사람들이나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멋진 곳을 찾아서 사진을 찍는 것도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참 좋아하는 것 같고,하나, 둘, 셋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 것도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어느새 만 4개월을 채워가고 있는 우리의 생활에 대한 간단한 감상문.도. 시. 자. 원. 활. 동 한 달간 언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두 달간은 시내버스로 한시간 반씩 이동을 해서 유치원에 출퇴근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유치원에 출퇴근 할 당시에는 아침 여섯시에 아침식사, 출근, 활동, 저녁 7시 숙소 도착의 연속이었고, 유치원을 다니지 않을 때는 9시까지 YMCA 사무실, 그리고 6시에 숙소 도착. 여기는 호치민시이다. 인구가 500만명이 넘고, 외국인도 많고, 정전이 잦긴 하지만 전기 시설은 잘 갖춰져 있다. 시내버스가 잘 돌아다니고, 학교는 나름대로 모양새가 다 갖춰져 있다. 도시의 생활리듬. 낮잠 시간이 있는 것과 하루가 참 일찍 시작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의 생활리듬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평균적인 매연과 소음은 한국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에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자면 검은 물이 나오고, 내 여드름은 한창 심해졌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크다. 이 사람들 잘 살아가고 있다. 어디를 가도 결국 가장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였다. 도시자원활동. 관계 맺기. 친구 되기. 유치원 선생님들은 우리가 너무 고생했다고 이야기 하며 고마워했다. 우리도 유치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너무 좋고, 정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유치원에서 우리는 오줌을 치우기도 하고 밥을 먹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유치원은 잘 돌아간다. 처음 몇일간은 우리는 유치원 아이들만큼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했나 보다. 우리가 없으면 안되는 상황. 친구가 되었다. 얼마전에는 유치원 선생님들이 우리가 보고 싶어서 한시간 거리를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왔다가 길을 못찾고 다시 돌아갔다고 전해들었다. 우리는 그런 베트남 친구들이 생겼다. 아마 그 선생님들도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이들도 기억을 할 것이다. 자신들이 4살 때, 5살 때 만났었던 한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잘 기억 안나는 5명의 외국인. 확실한 것은 너무 즐거운 기억이어서 그 덕에 힘이 났다는 것인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면, 소극적인가. 만나서 힘을 주고 받는 경험을 했다면, 충분히 멋진 경험이 아니려나. 이거 자기 정당화라고 생각하시는가. 무엇을 하고 있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건 어떨까? 도.시.자.원.활.동.국. 제. 도. 시. 호. 치. 민 이야기 했다시피, 여기는 호치민시이다. 인구가 500만명이 넘고, 상주 한국인도 5만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시의 중심지역인 1군에는 외국인이 더 눈에 많이 띈다. 이것에 마냥 부정적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좋아보이지만 사실은 이 단면에는 결국은 불쌍한 베트남 국민들이 있다. 이 화려함의 수혜자는 결국 외국 자본과 베트남 부자들일 것이다. 무분별한 개방과 신자유주의가 이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얼마전에 우리는 Bobby Brewer 라는 카페 겸 식당을 찾아갔다. 신문에서 광고를 봤는데, 글을 쓰러 왔던 한 호주사람이 호치민의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해 가게를 만들었고, 그 가게의 수익금은 호치민시의 아이들을 위해 쓰인단다. 매주 화요일의 에스프레소는 그 판매액 중 일정금액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데 쓴단다. 좋은 느낌의 카페였다. 아. 이제 우리차례려나. 아직 이전이 비판을 접지는 않았다. 아마 사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세계의 젊음이 모이는 도시는 그것만으로도 참 매력적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대신, 이제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충만한 상상력으로 들어올 차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들어올 차례다. 매력적인 이 도시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올 차례가 되었다. 만. 들. 기. 우리는 12월 초에 유치원 생활을 멋지게 마무리 하고, 새로운 일정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우리가 일정을 제안했다. 우리는 12월의 2주를 우리가 스스로 운영하면서 레포트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주제에 대해 논의 했다. 우리는 무엇이 가장 궁금할까,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이 가장 즐거울까. 이주 노동자에 대한 레포트에 합의 했다. 이 주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오기 전부터 우리에게 이야기 되던 테마였다. 베트남 YMCA도 이 테마를 늘 이야기 해오곤 했다. 우리가 일을 하던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들이 모두 그 대상이란다. 이 주제가 크고 어렵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는 테마라고 베트남 YMCA의 사무총장님이 응원했다. 우리는 우리의 제안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찾아갔고, 노동청도 찾아가 보고, 한인회에도 가 봤다. 통계청에도 가 봤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많이 겁 먹었었고, 사실 현지인들도 자료를 접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걱정했지만, 부딪혀 보면 늘 친절한 사람들 뿐이었다. 노동청에 가면 통계청을 소개해주면서 하지만 너희의 신분 소개나 증명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막상 통계청을 가면 너무도 친절히 우리를 자료로 안내해준다. 우리보다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청을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이주'의 정의와 범위가 너무 어렵다. 해외 이주가 아니다. 학자들도 그 정의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우리가 이 테마가 왜 하고 싶었지부터 시작했다. 진짜 이게 우리 궁금했던 것일까 생각해봤다. 그 궁금증의 시작. YMCA 봉제학원 아이들. 베트남 YMCA 건물 2층에는 봉제공장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15세에서 24세의 여성들. 아, 우리는 이것이 참 궁금했었다. 여기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조금 범위가 적어지고 우리가 대상을 설정하고 정의하기로 했다. '청소년 이주 노동자'. 아직 그 대상에 대한 정의와 범위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래도 우리는 몇 개의 사례연구와 통계 연구, 그리고 토론과 이야기, 분석을 통해 우리의 레포트를 완성하기로 했다. 개요도 만들었다. YMCA 에도 영문으로 개요를 보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과정을 그들과 공유하고 싶다. 가까운 곳에서 중요한 테마를 찾았다고 자축했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으로 하는 만들기이다. 도시 자원 활동은 상상과는 많이 달라서 많은 상상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상상력이 한국에서부터 차오지 않아서 처음부터 발휘하지 못했지만, 4개월간 상상력을 충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친구를 만들었고, 힘을 모았고, 상상력을 충전했으니,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한달간, 그리고 그 이후에 계속 한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또 다른 아시아에서도 혹은 유럽에서도. 만들자. 지금까지는 일단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조금의 상상력과 관계를 맺어가는 힘을 만들었다. 그렇게 실력을 만들고, 동지를 만들고, 그래서 우리 차례 멋지게 놀아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소극적이려나. 난 소심한 사람이어서 이런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 정도. 이것은 최고로 다이나믹 하다.
episode 12 : 에이즈 예방 상징이 뭔지 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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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원봉사자의 날 12월 6일에 한 공원에서 열린 국제자원봉사자의 날. 많은 단체들이 작은 텐트와 책상과 나무에 장심 꾸임으로 행사를 알려주었다. 우리 팀원들은 YMCA 소속으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공원에는 많은 베트남 자원봉사자들과 외국인 (서양인, 한국인)이 있었다. 에이즈 예방, 구개파열 수술, 집 지어주기, 장애아동, street kids 등 다양한 자선단체들 여러 단체들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 1, 에이즈 예방의 상징은 빨간 리본 YMCA를 비록 하여 에이즈 예방을 말하는 단체들은 많았다. 동남아시아하면 성매매와 성교육의 부족(?)으로 해서 콘돔이나 에이즈 예방에 대한 생각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동안 이렇게 생각해왔지만 역시 이 많은 단체들과 사람들을 보니 나의 생각은 바로 바뀌었다. YMCA 부스에 도착하자마자 달아준 빨간 리본.. 아무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이쁘기만 하였는데 옆 단체의 한 사람이 나에게 또 다른 빨간 리본을 주고 콘돔을 주기까지 하여서 에이즈 예방 상징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뒤돌아 한국에서 나와 내 주위를 생각해보았다. 성교육 시간에 콘돔을 꺼내어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남학생이나 여학생들의 반응은 .. 썩 ...... 나름 어른이 되어서도 조금 꺼려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에서는 콘돔을 나눠주고, 설명해주고, 상징의 풍선을 달기까지 하기도 하고,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고, 적극적인 참여 모습까지 보여진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단체들이 오면 사람들은 똑같은 반응(아무렇지 않고, 개방적인 사고인 듯한 모습)이겠지만 에이즈예방과 성교육에 대한 것은 개발도상국이어도 성교육에 대한 수준은 떨어지지 않고 비슷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전의 한국에서 나 보다.. 이 공원에서 나는 에이즈에 대해서 더 배워간다. 생각 2, 'operation smile' , 구개파열(언청이)에 대한 단체 장애인체육대회에서 만난 anh huy(huy오빠)의 소속 단체여서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사실 가족 중에 한명이 구개파열이었다. 내가 이 단체에 관심을 갖고선 보게 된 것은 물론 가족 중에 이 수술을 한 사람으로 관심을 갖은 것도 있지만 .. 이런 자선단체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수업시간에 배우기로는 어렸을 때 구개가 단단해지기 전에 수술을 해야 하고, 여러 차례 해야 한다고 배웠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수술 전까지 갈라진 입술과 새는 발음으로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해야 하고, 수술대에 오른다고 해도 여러 차례의 수술... 사실 나에게는 베트남식 마스크가 많아서 마스크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마스크 하나를 구입하게 되었다. 웃는 입모양이 그려진 마스크.. 작은 돈 하나하나 모아서 이 단체의 장기목표같이 모든 아이들이 수술하여 웃는 모습이 되길 바랬다. 나의 발걸음을 계속 이곳으로 돌리게 하고, 마음을 멈추게 한 이곳.. <사진설명 : 아람이의 생일이라서 베트남 친구들과 팀원들이 손을 엮어서 파도타기로 아람이를 이동시켰다.>생각 3. 활기찬 베트남, 활기찬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활기차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둥글게 모여서 게임을 한다. 너와 나는 다른 팀이고, 모르는 사람이어서 거부감 같은 것 없이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부끄러워하면서도 재밌게 웃는 친구들이 많다. 누가 한명이 계속 게임을 진행하는 지루함도 없이, 돌아가면서 자진하면서 게임을 이끌어낸다. 모르는 사람이 게임을 하여도 어찌나 다들 잘 따라하는지.. 내가 아는 게임을 많이 하여서 나도 즐겁게 참여. 팀원들이 말만 하지 않으면 누구나 베트남 현지인으로 바라볼듯 하였다. 베트남 안에, 이 공간 안에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다는 건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다. 뜨거운 햇살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늘 따듯하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지요." -무탄트 메시지 - 난 오늘도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사진 설명 : 우리는 YMCA 소속인데도 habitat가서 티셔츠를 구입하고 방긋. 눈 감고, 옆에 사람 설명으로 집 그리는 행사도 참여하였다. >
베트남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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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 3일. 이 3일은 내 안의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은 날이다. 베트남에는 장애인이 많다. 하루에 10명 이상은 볼 수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보다 선천적 장애인 기형아들이 많다. 한쪽 혹은 양쪽 팔다리가 없거나, 뼈가 뒤틀려서 태어나는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지적장애인이든, 신체장애인이든 이들은 다른 일반인들처럼 일상 생활을 즐긴다. 어쩔 땐, 일반인들보다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이 3일동안 체육대회를한다는 사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행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이들이 어떤 종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체육대회는 2개의 장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수영장을 중심으로 한 곳과, 육상 트랙을 중심으로 한 곳. 달리기, 창 던지기, 투포환 던지기, 원반 던지기, 멀리 뛰기 등의 종목으로 나위어 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경기 도중 포기하거나 불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기위해, 자신을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일반인들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내는 그들을 보면서 지금의 저 모습 뒤에 있었을 남들보다 몇 배 노력했을 모습, 그런 인고의 과정을 생각해보니 자연스레 경외감이 들 정도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이 자리에 섰을 텐데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던 중 예상치 못한 부상을 당해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각장애인 높이뛰기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박수 소리를 신호로 높이뛰기를 한다. 한 선수가 달리던 중 방향을 잘못 잡아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머리가 깨져서 피가나고 경기가 중단되었다. 치료를 하고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시도했지만 그 분은 다시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뭐라 말로 표현 못할 느낌이 든다. 안타깝다, 불쌍하다, 아프겠다 등의 한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베트남의 장애인들이 나에게 인간적인 감동과 나의 편견을 바로 잡았다면 함께 자원활동을 한 베트남 친구들은 즐거움, 추억을 안겨주었다.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우리들은 어느 새 서로 장난을 치고, 서로 챙겨주고 특히 xuan이라는 친구는 함께 밥 먹고 버스를 타고 정이 너무도 많이 들었다. 마지막 날, 체육대회가 끝난 후, 우리는 베트남 게임을 하면서 서로 엉키고 설키고 뒤섞이며 놀았다. 어느새 주위에 우리가 노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이 모일 정도로 우린 신나게 놀았다. 저녁이되어 선수들과 관계자들을 위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경기장에서 보았던 선수들을 여기서 다시 보니깐 너무 반가웠다. 그 분들도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듯 가는 곳마다 술을 권하고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그렇게 나를 좋게 봐주시고 이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장애인들이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를 때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올라가 춤을 추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지만 내가 한국에서는 이런 활동을 접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일까. 이 체육대회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일정이 명확하지 않고, 처음 접한에 유치원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울린 3일. 이런 3일이 다시 올까
Episode 10 : 처음, 그리고 마지막, 하지만 마지막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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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생님들과 다함께 식사하기 전에 찍은 단체 사진) 베트남에 와서 가장 길게 활동한 것은 바로 베트남 동나이성에 있는 Hong An 유치원에서의 활동이다. 5개월 중 두 달간 활동을 했으니 오래도 했다. 처음에 유치원에 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접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도, 모든게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친근하다. 유치원에는 4개의 반이 있다. 18개월-2살(럽 냐째), 2살-3살(럽 맘), 3-4살(럽 쪼이), 4-5살(럽 라), 난 그 중에서 제일 어린반인 18개월-2살인 Nha Tre반을 맡았다. 너무나 어려서 수업도 불가능한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이 싼 오줌과 똥을 치우고, 서로 치고 박고 때리고 우는 것을 달래주면서 어느새 2개월이 지났다. 처음 만난 것이 엊그저께 같은데, 어느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이제는 꿈에도 나타나고, 하루라도 안보면 보고 싶고, 생각이 난다. 하지만 만남과 동시에 헤어짐도 있듯이, 우리는 오늘(12/3) 두달 간의 만남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다. 우리는 선생님들과의 헤어짐을 일주일동안 준비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 중에 선생님들만의 특색이 담긴 이쁜 사진들을 골라 사진을 고르고, 그것을 꾸며, 그 뒤에 편지를 썼다. 마치 엽서처럼, 우표도 붙여서,,, 그리고 지금까지 찍은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되짚어보면서. 지금까지 만든 추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11월 20일 "선생님의 날"이다.(우리나라의 스승의 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11월 19일! 선생님의 날을 위해 2주간의 연습을 거쳐 유치원 아이들이 재롱잔치를 벌였고, 우리 다섯명도 무언가를 준비해 발표를 했다. (숫자송을 태권도와 결합시켜 짧게 재롱을 떨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선생님들과 함께 모두 붕따우로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유치원에서 잠을 자고(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잔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유치원에서 잠을 자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바다에 들어가서 함께 파도를 타고 놀면서 유치원 선생님들과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12/3), 선생님들과 유치원 아이들과 마지막 날이 되었다. 하루종일 선생님들은 이제 안 오는거냐, 잊지 말아라, 건강해라,,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해주었다. 오늘의 점심은 특별히 교장선생님이 만들어서 모든 선생님들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서로가 준비한 선물을 교환을 했다. 우리는 선생님들을 위해 만든 엽서를 주고, 선생님들은 우리와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이쁘게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오후에 집에 돌아갈 때도 선생님들에게 포옹을 하면서 선생님들과 이별을 했다. 참 고맙고, 따뜻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우리에게 계속 고맙다고 말해주는 선생님들, 우리가 별로 도움 된 것도 없을텐데, 감사하다. 나는 아니지만, 3층에 있는 럽 쪼이와 럽 냐째의 아이들과의 이별은 남달랐다. 가운데에 선생님(송지환팀원:D)을 눈감고 앉혀놓고, 모든 아이들이 순서대로 나와 포옹을 하고, 뽀뽀를 해주며 이별을 한 선생님도 있고, 이태영 팀원은 눈감고 앉아서 아이들이 귓속말을 하고, 포옹을 해주며 이별을 한 선생님도 있다. 나는 너무 어린 아이들이라 그러지는 못했지만 듣기만 해도 따뜻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제일 이쁘다.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돌아다녀도 너무나 이쁜 아이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 곳의 생활도 한 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새삼스럽기만 하다. 남은 기간 동안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본다.
Episode 9: 물살을 가르는 천하무적 빨간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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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11월 17일 베트남 시각으로 정오의 문턱을 막 넘고 있다.원래 이 시간이면 난 우리의 스케쥴에 따라 동나이라는 곳에 위치한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왜 여기 있냐구?농땡이라 하면 농땡이이지만 굳이 이유를 대라면 댈 수 있다. 부끄러운 이유.이건 마지막에 말하기로 하고요태영오빠가 저번 주말에 에세이를 썼었기에 쓰지 말까 망설였지만이렇게 계속 혼자 있으려니 무료해서 안되겠다.이 사진을 보면 이 남자 둘이 어디 위를 달리고 있는지 파악이 바로 되시나요?비가 오지 않아도 자기 마음대로 넘쳐버리는 강물로 인해 동네의 왠만한 골목들은 물에 다 잠겨버린다.다행히도 우리가 숙소에서 YMCA까지 밥을 먹으러 자전거를 씽씽 달리는 길은 이렇게 잠긴 적이 없었기에 행복해하고 있었으나..어느날, 큰 도로가 그 날 따라 많은 물에 잠겨 있었다. 어? 뭐지? 하고 YMCA로 접어드는 더 작은 길로 커브를 도는 순간, 긴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몇 몇 사람과 함께 물에 다 잠겨버린 길이 보였다. 그래봤자 비 많이 왔을 때 비가 길 위에 좀 있는 그 정도겠거니 하고 쭉 내달렸지만앞바퀴가 음푹 들어가며 물속을 달리고 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앞바퀴 높이의 1/3 정도가 잠겨버리는 이 물을 자전거로 달릴 줄이야꿈에도 몰랐으니. 그리고 난 발가락에 있는 힘을 다 주어야만 했다. 열심히 패달을 돌리고 있는 내 발이 신은 쪼리를 떨어뜨렸다간, 이 흙탕물 속에선 못 찾을 것만 같았다. 걸어가면 더욱 가관이다.그래야 종아리에 조금 차는 물도 그 속이 보이지가 않아 걸어가다 발가락에 야들야들한길쭉한 무언가가 걸리면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길가에 오토바이에 깔려 죽어 있는 무지막지하게 큰 들쥐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쓰레기들, 고양이와 개의 배설물 등등.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내 발 위를 춤 추듯이 지나가고 있겠지만 기꺼이 받아들여야걷기가 편하다 하지만, 자전거로 물살을 가를 때에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앞바퀴가 물과 부딪히면서 굉장히 맑고 신나는 소리가 난다.마치 슈퍼마리오 카트게임에서 해안가코스를 달릴 때 모래사장이 아닌 바닷물로 달릴 때나는, 그런 물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정말 그 게임에서 물로 달리면 속도가 늦춰지기 때문에 물로 달리고 있다 싶으면육지를 찾아서 달리듯이, 조금이라도 물이 빠지거나 들 찬 땅이 보이면 냅다 그리로 달려간다.처음으로 물살을 가르는 신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속으로 말했다. 당신이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사드린다고.내가 이렇게 베트남에 오질 않았더라면, 이처럼 신나게 물 찬 도로를 자전거로 씽씽 달려보지 못했을 거라고. 그리고 +내가 오늘 숙소에 혼자 남은 이유는 아파서이다.만약 부모님이 이 홈피를 알고 계신다면 쓰지 않겠지만, 다행히도 내가 안 가르쳐드렸다^^참 일일평가서에 '아픈 팀원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최다빈도는 조수연, 나일 것이다.이젠 다들 재미가 붙어서 내가 열이나면 이런 저런 병명이 다 나오다 홍역, 수두도 나온다.베트남에 처음 와서 배탈이 났다면 물갈이로 생각했겠지만 이제 와서 고열과 복통, 배탈이 5일째 가니 이유도 알지 못 한채, 안그래도 없는 볼살을 더 축내야만 했다.다행히도 팀원들, 그리고 YMCA의 우리의 밥을 해주시는 꼬남, 스텝들 덕분에 병원에 다녀왔다. 설마 내가 라온아띠 중에 SOS를 처음으로 부른건 아니겠지.. 솔직히 부끄럽다.한국이었으면 그냥 나 혼자서도 병원에 잘 가서 진찰 받고 약 받아 약 먹고 하는게 어렵지 않지만, 여기에서 아프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해야만 했다.내가 계속 구급함에 있는 약을 먹어서 나을 수 있을 것 같은지, 꼭 병원을 가야 하는 것인지,병원을 가도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을 갈 것인지, SOS로 갈 것인지, 말은 잘 통할 것인지,병원을 간다면 일이 정말 커지는 건 아닌지 등등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울컥했다.복통이 심해지면서 든 생각이 있다.아 그냥 돌아가고 싶다.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더 있지 못한 그 시간에 대한 미련보다이런 걸로 그만둬버린 나약한 내 자신에게 두고두고 화가 날 게 뻔하다. 그리고 이렇게 몸이 안 좋으니 정말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맙고무엇보다 친딸처럼 아껴주시고 나만 따로 죽도 끓여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꼬남에게 참 고맙다. 아파서 우는 날 보고 같이 울어주던 꼬남. 일요일 휴일도 반납하고 함께 SOS로 가주고 4시간을 기다려준 찌쑤언. 다들 정말 고마울 뿐이다.그리고 이제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p.s. 지혜 간사님, 메일 보내드릴게요~ 어제 태영오빠한테 주소를 물어본다는게 제가 그냥 자버려서^^ 놀라셨을텐데 정말 죄송해요ㅜㅜ
Episode 8 : 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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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텔 cao son lam (높다, 아들이름, 주인이름) 호치민 시 투둑군에 위치해 있다. 그 인근에서 가장 높은 4층짜리 건물이며, 각 방에는 kbs 월드 채널이 나오는 유선방송과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고, 아침밥을 제공한다. 투숙객보다 많은 가족이 살고 있으며, 파티와 가라오케를 좋아한다. 한 때는 투숙객의 세 배에 달하는 가족이 거주하여 파문. 호텔 가족.Co Hoa : 호텔의 주인아주머니. 호텔 로비에는 그녀의 커다란 사진이 푸른 조명과 함께 걸려 있어, 저녁에는 호텔 밖에서도 그 사진이 보여 제법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국제성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으며, 가끔 한국식 라면을 아침밥으로 제공한다. Chu Lam : 호텔의 사장.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의 소유자. 우리를 만날 때 마다 아주 신나는 목소리로 "밥은 먹었니?" 라고 물어본다.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의자에 걸치는 모습이 마치 마피아를 연상케한다. 얼마 전 60대 일본인 할아버지와의 물담배 피기에서 크게 승리했다. Chi Huong : 호텔의 첫째 딸. 사실은 양딸로 Co Hoa 는 그녀의 작은 이모이다. 그녀의 친모는 하노이 근처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인 투숙객들의 교주같은 존재로 호치민의 놀이문화와 밤문화 술문화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9살 자녀가 있고, 돈을 모아서 60살이 되면 남편은 병원으로 보내고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 자신은 호주에서 사는 것이 꿈이다. 한국계 회사에 10년 째 다니고 있고, 그녀의 사장 이름은 김흥수 씨이다. 10년 째 한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녀의 콤플렉스. Anh Khiem : Chi Huong의 남편, 호텔의 사위. 초급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여행회사에 다니고 있고, 이후에 자신의 여행회사를 갖는 것이 꿈이다. 한국어 능력시험에 대비하여 한국인 투숙객들로부터 듣기 연습을 했으나, 시험에는 실패했다. 베트남 YMCA의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며, 맥주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는 "조금 오해", "사양하지 마요", "한베의 우호를 위하여".Chi Hoa : 호텔의 둘째 딸. 직업은 베일에 쌓여있고, 남자친구와 곧 결혼할 예정. Lam 씨의 후계자로 지목받아 최근에 인수인계에 들어가고 있는 듯. Son : 호텔의 막내 아들. 아직 군대를 다녀 오지 않았고, 여자 친구가 있다. 훈남. 한국인 투숙객 중 한명은 그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으나, 최근 정리. 4층 콧털 아저씨. : 이름은 Nam. 호치민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 호텔 가족의 사촌. 그의 명함에는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변호사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베트남어를 굉장히 잘하는 베트남 변호사. 2. YMCA Viet Nam.1층에는 식당과 기숙사, 2층에는 미싱공장, 3층에는 사무실이 있다. 2층의 미싱공장은 15세에서 24세의 젊은이들이 1층에서 기숙하면서 미싱을 배우며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 YMCA는 아직 그 정체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지 않다. Chu Loc : 베트남 YMCA 사무총장. 흰색 눈썹과 화려한 베트남식 영어발음이 매력적인 교수님 느낌의 아저씨. 그의 방에는 알 수 없는 오오라가 풍겨서 우리는 그의 방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 Chi Xuan : 현지 스탭. 한국인 학생들에게 베트남어를 전투적으로 가르친다. 특기는 한국인 대상으로 베트남어 시험보기, 벌세우기, 노래시키기, 표정굳기 등이 있다. 필살기는 역시 정색으로 그녀의 정색은 주변 사람을 얼게 한다. 공동체 놀이를 굉장히 좋아하고, 반칙도 굉장히 좋아한다. 반칙은 그녀의 삶의 원동력.Chi Dung : 현지 스탭. 굉장히 바쁘다. 조그만 목소리와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경제관념이 철저하고, 첫인상이 서늘하여, 초반 한국인 학생들은 그녀를 공안으로 의심. 현재 메콩으로 출장중에 있다. Co Nam : 베트남 YMCA의 엄마. 밥을 빨리 만들 수 있고, 그녀의 커다란 웃음소리는 모두의 기분을 좋게 하는 능력이 있다. 특기는 20000동(1300원정도)에 머리깎고, 면도하고, 귀도 파주는 미용실 소개해주기. 꼬집기를 좋아하고, 때리기도 좋아하고, 놀리기도 좋아한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한국인 학생들의 희망이다. Ang Phong : 베트남 YMCA 의 기사. 베스트 드라이버다. 한손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있다. 톰과 제리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한손에는 늘 신문이 들려 있다. 낚시를 좋아하여 종종 강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Co Nam의 사위.3.Hong An 유치원동나이성에 위치한 YMCA 가 운영하는 유치원. 공단 노동자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다. 생후 18개월부터 만 5세까지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총 12명의 선생님이 있고, 최근에는 한국인 보조교사 5명이 함께 하고 있다. Co Hien : 유치원의 원장선생님. 32세. 굉장히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 YMCA 자원봉사자를 하다가 소개되어 유치원의 원장선생님이 되었다. 얼마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이마를 꼬맸다. 한국 이름은 신지. Co Lien : 새싹 반 선생님. 유치원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자랑한다. 화가 나면 의자를 차기도 하고, 공책을 던지기도 한다. 사실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22세. 그가 화를 내면 인근의 한국인 선생님들도 같이 얼어있다. 한국인 선생님들의 베트남어 선생님을 자청하고 있으며, 그의 작문 숙제 주제는 대체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가 제일 좋으냐" 등의 질문이다. 한국 이름은 남주.Co Tram : 새싹 반 선생님. 23세. 웃는 모습이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유치원 선생님이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그녀의 수업을 보고 있자면 감동하게 된다. 한국인 선생님들은 사실 이 선생님을 제일 좋아하지만, Co Lien 이 무서워서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 한국 이름은 민주. Co Kim Anh : 유치원 최단신. 22세. 씨앗반 선생님. 만화 란마 1/2의 할머니를 닮았다. Co No : 배우 장진영을 닮은 여자 선생님. 유아반을 맡고 있으며, 초 베테랑. 카리스마 넘친다. 4. 그 외 인물.Nam : 한국 이름은 지환. 긴 머리를 자랑하며, 다른 남자팀원과 같은 옷을 입어도 칭찬을 독접하는 옷맵시를 갖고 있다. Hoa : 한국 이름 유화. 얼마전 베트남 가족학을 공부하다가 최근에 간식학으로 전공변경. 베트남에서 인기가 많다. Xuan : 한국 이름은 수연. 병이 잦다. 상급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볼살이 없는 것이 콤플렉스. 하지만 계속 말라가고 있다. Lan : 한국 이름은 아람. 베트남에서 여럿 남자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이제는 다 정리한 상태. 최근 통통한 것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직설적인 발언을 들어 상처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피부미인.Thang : 한국 이름 태영. 몸무게가 많을수록 전체 생활비 지출에서 자전거 수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태영지수를 발표. 아직 학계의 반응은 없다.
번외편 : 나의 부전공 간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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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음식문화를 접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먹어본 간식들.베트남의 아주 다양한 간식들을 다 올리지 못하고, 사진도 없어서 아쉽지만 만약에 베트남에 오게 된다면 한번쯤 먹어보면 좋은 것들이다. 사진 있는 것들 1. 짜요 or 짜죠 : 한국에서는 스프링롤이라고 하는 튀김만두 같은 것이다. 짜요만 해서 소스에 찍어먹기도 하고, 짜요와 쌀국수와 야채와 함께 비벼먹기도 하다.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라고도 한다. 가격대는 아주 다양 3만동부터 2. 소이 찐 xoi chien : 찹쌀로 만든 풍선과자 같은 것인데 가운데는 뻥 뚫려있다. 어느 분이 사주셔서 먹긴 하였는데 사실 따로 사먹은 적은 없다. 과일 3. 탕롱(용과) : 한국에서는 용과라고 해서 용의 눈물이라는 뜻의 선인장과일이다. 겉의 모습은 조금 징그럽긴 한데 속은 하얗고 검은 씨(키위씨앗같다)가 많다. 차갑게 하면 더욱 맛있다. 1kg 10,000동 4. 리치 : 얇은 껍질을 까면 하얀 열매가 들어있다. 1kg 5000동 5. 쫌쫌(람부탄) : 겉은 벌레같은 모습이지만 속을 까보면 하얀색의 열매가 들어있다. 열매 안에는 큰 씨앗이 들어있는 데 알맹이를 잘못 먹다보면 씨앗의 껍질이 함께 들어와 목이 까끌거릴 수 있다. 열매의 과즙은 풍부하고, 달콤한 맛이다. 1kg 10,000동 6. 반베오, 반 똠 banh beo , banh tom : 한국의 떡같다. 새우모양의 떡도 있고, 새우 맛이 나는 것도 있어서 반 똠(새우)라고 한다. 넓은 떡은 가운데 밤고물같은 것을 무쳐서 주기도 하고 감자떡같은 것도 있다. 여러 가지 반베오 위에 액젓같은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이동하면서 파는 아줌마에게 산다면 4,000동에 먹기도 한다. 7. 반쌔오(banh xeo) : 베트남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부침개 같이 부친 것에 안에는 새우, 돼지고기, 숙주가 들어있다. 이것을 한입 크기정도로 뜯어서 월남쌈에 야채와 함께 싸서 느억맘(피쉬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길에서 파는 작은 반쌔오는 한 장에 2,000동부터하고 가게에서 큰 크기로 파는 것은 10,000동부터 한다. 8. 콰이미 (khoi my) : 삶은 고구마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코코넛 밀크에 넣어서 팔기도 하고, 소금에 찍어 먹기도 한다. 한국의 고구마와 다르게 베트남 고구마에는 가운데 줄기 같은 것이 있다. 코코넛 밀크에 담겨진 고구마는 달아서 몇 개 먹으면 질리기도 하지만 배고플 때 먹으면 일품이다. 사진 없는 것들 1. pho 퍼 (쌀국수) :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쌀국수이다. 한국보다 다양하고 국물맛이 시원하다. 퍼보는 돼지고기 넣은 쌀국수이고, 퍼가는 닭고기를 넣은 쌀국수이다. 길에서도 가게에서도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호치민시내에서 파는 것은 30,000동부터 하고, 노상으로 파는 것이나 호치민시내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서 파는 쌀국수는 20,000동부터 한다. 2. bun bo 분보 : 하얀색 면발에 햄, 선지, 소고기,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국물은 맑은 듯하면서 붉은 기름이 있다. 기호에 따라 야채를 넣어서 먹는다. 쌀국수와 같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20,000동부터 3. my quang 미광 : 노란색의 칼국수 같은 면발에 돼지고기를 살짝 걸쭉하게 우려낸 국물이다. 돼지고기가 크게 들어가고, 땅콩을 넣는 것이 특징이다. 다랏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있으나 호치민시에서는 사실 본적은 없다. 4. banh my 반미 : 바게트 빵에 반을 나눠서 오이, 칠리고추, 햄, 돼지고기, 라우텀 등 다양한 것들을 넣는다. 들고 다니면서 쉽게 먹을 수 있다. 바게트 빵만 해서는 2000동부터 하고 빵에 고기와 야채를 넣으면 5000동부터 한다.*베트남의 과자는 한국의 과자와 비슷해서 나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음료수, 우유 같은 것들은 단맛이 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입맛에 맞춰서 자라왔기에 그 입맛을 따라서 찾을라면 베트남의 정말 맛있는 것들을 놓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
Episode 7 : 버스 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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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캔들나이트 사진, 저희는 이제부터 촛불을 켜지 않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좋은 시설로 인해 촛불을 켰다가 화재경보기가 울려 호텔 안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거든요^^ 촛불을 켜지 않는 대신 옥상에 누워 별도 보고, 서로 안마도 해주고, 운동도 하는 등 즐겁게 캔들나이트를 했습니다.) 베트남 버스에는 안내원이 있다. 안내원의 역할은 돈을 받고, 표를 주며, 무거운 짐을 갖고 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버스가 사람이 타고 내리기 전에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손을 잡아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버스 안내원의 역할-버스가 오토바이로 인해 지나가지 못할 때는 직접 내려 교통정리를 한다.-승객이 오토바이 때문에 위험하다 싶으면 직접 내려서 오토바이를 막아준다.-무거운 짐을 들고 타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탈 때면 내려서 도와준다.-어린이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직접 앉아서 안전한 곳까지 옮겨준다.-노약자들이 버스에 타면 자리를 마련해준다.-참 따뜻한 버스 안내원이다. (우리가 혹시라도 내릴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앉아 있으면 우리에게 다가와서 내릴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러 다가온다.^^) 우리의 주 교통수단은 버스와 자전거다. 10월부터 동나이에 있는 Hong An 유치원에서 보조교사 활동을 하게 되어 하루에 무려 4번씩 버스를 타게 되었다. 유치원에 가기 위해서는 19번 버스를 타고, Suoi Tien(지역이 바뀌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환승역과 같은 역할을 한다.)이라는 곳에서 601번으로 갈아타서 AMATA 공업단지에서 내린다. 버스를 자주 타다보니, 버스에서 재밌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버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정한 시간대에 버스를 타다보니 봤던 안내원을 또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안내원과 눈으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 두 번정도 보고 난 후부터는 우리를 아는 척 하면서 반겨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착지가 어디인지, 몇 명이 탔는지 말하기 전에 안내원이 먼저 웃으면서 말해준다. (601번의 경우 버스 탑승 시, 거리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도착지를 말해야한다.) 내릴때가 되면 우리에게 눈짓을 보내준다. 흐흐 한달정도 버스를 타다보니, 이런 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또 한 번은 차에서 내릴 때가 되어 모두 일어서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다섯명이 다 일어났겠지 했는데, 안내원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그래서 봤더니, 팀원 중 한명이 곤히 자고 있었다! 하마터면 놓고 내릴 뻔 했는데, 안내원이 알려준 덕분에 5명 모두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다행이다. 우리가 외국인이고, 5명이 함께 움직여서. 만약 나 혼자 탔는데, 내릴 때가 되었는데도 자고 있었다면 당연히 지나쳤을 일을 5명이 함께여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움직이는 시간 때가 출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빵과 음료, 모자, 선글라스, 신문 등을 팔기 위해 한보따리 씩 짊어지고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앉아서 파는 사람들, - 언젠가는 유치원 가는 버스에 내 옆에 빵 파는 아줌마가 앉았다. 아침도 조금 먹어서 배고픈 찰나에 잘됐다 싶어서 하나 사먹었다. 아줌마가 타자마자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빵으로 갔다. 아줌마랑 눈이 마주칠까봐 눈을 돌렸는데, 알아챘는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디 가니, 베트남에는 왜 왔니,,, 이런 얘기를 하다 결국 사먹게 된 것이다. 그 후로 그 아줌마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는데, 난 볼 때마다 슬며시 웃으며 고개로 인사를 한다. 짐 보따리를 잔뜩 들고 타는 사람들,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배고픔을 참는다. 나중에 저거 꼭 사먹어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신기한 듯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어떤 아저씨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등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베트남어 속에 계속 반복하는 말이 있었는데, 처음엔 못 알아들었는데, 한국말이라고 해서 가만히 듣다보니, "짬뽕, 잘가"라는 말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종종 우리를 만날 때, 자신이 알고있는 한국말을 한다. 그럴 때보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음에 그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맙다. 버스에 있으면 참 재밌다. 한국과 다를바 없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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