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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h의 얘기>1. xe may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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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부딪침, 사람과의 부딪침.혼자, 혹은 둘이, 아니 어렷히 오토바이,, 정확히 세마이(벳남어로 오토바이)란교통수단에 몸을 맡길 때, 피할수 없는 것이 바로 "부딪침"이다.이 부딪침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물리적 부딪침일 수도 있고, 그 '외의' 다른 것일 수도 있다.넘쳐나는 거의 오토바이들,,, 그 사이로 다른 오토바이 운전자와 팔이나 다리가 스쳐가기도 하고,심지여 내 발이 다른 오토바이 안장에 걸쳐지기도 한다.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시선을 옮기면, 이내 길거리의 보행자들, 혹은 옆운전자들, 노점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과 시선이 부딪친다.함께 타는 동행자와의 살결의 부딪침 물론 피할수 없다.처음 이곳 베트남에 왔을 때, 이런 부딪침이 어색하고 부끄럽고 불편하기도 했다.하지만 이제는 이 '부딪침'이 나에게 있어 새로운 놀이거리(?)가 되었다.베트남에서의 오토바이는 나에게 있어 "즐거운 부딪침"이다. -베트남=오토바이 (베트남과 오토바이는 서로 떨어질수 없는,,)
단상 Ⅱ : 물 위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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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엄청난 양의 비를 내리 붓곤,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또 작열하는 태양, 그러곤 또 다시 변덕스럽게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해지는 호치민의 하늘은, 우리네 기분 혹은 생각처럼 예측 혹은 정형화하기 어렵다. 방금전에도,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속을 자전거로 달리며 돌아왔다. 온몸을 적시는 비, 발아래서도 고여있는 물 덕에 위 아래 모든 공간에서 물의 촉감을 느끼며,그리고 확보되지 않는 시야에 약간의 불안을 느끼며 연신 빗물을 얼굴에서 훔쳐낸다. 가끔 즐거움의 탄성도 내뱉고 콧노래도 살짝 흥얼거리면서.금방 그칠 것을 아는 비지만, 그렇기에 부러 한참을 빗속을 달리는 것은 일종의 오락 같기도 하다.내가 지금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는 지, 물위를 달리는지, 여느 노래처럼 하늘을 달리는지 모를. 두둥실 떠있는 듯한 묘한 희열.찰나이기에, 혹은 비로 인해 기존의 것들이 차단되고 새로운 자극들이 내 몸을 덮어 주어 그것들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아마 자전거이기에, 사뿐히 놓여 진 페달위의 발의 감각은 땅을 걸을 때완 다르기에 더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게 흠뻑 젖고, 따스한 물로 몸을 씻으며, 정리되지 않고 부유하는 많은 감상과 생각의 조각을 하나라도 부여 잡아보고자, 긴장을 풀고 따스한 물에 몸을 맡겨 본다. (낮잠 시간에 아직 안자고 있는 마이린과 티쩜, 똑똑한 녀석들. 키키.) 그래, 사실 어쩌면 내게 있는 불안함과 두려움의 실체는 스스로에 대한 '깊이에의 강요' 일런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즐겁게, 그만큼 진심으로 살아가고, 진심으로 타인들을 대한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동시에, 내 얕은 고민들에 부끄러워지고 내가 이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내 초심은 어떠했는지 다시금 짚어봐야 하고 내 목적과 그에 대한 내 나름의 평가도 필요한 것이다. 현지에서 부딪침으로써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감정의 에너지를 좀 더 그들에게 필요한 행동 에너지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단순히 나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고, 제대로 온전히 소통하고 있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내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심각하게’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너무나 잘 영위하고 있고, 오히려 그들을 보며 내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 다는 것들, 그런 의미다. 내가 현재 이들과 즐거이 지내고 즐거이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일단의 최선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소소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 간단한 청소라던가 함께 소풍을 가던가,운동을 함께 하던가,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것들, 그러면서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것들. 그리고 이곳에서의 삶이 내게 준 변화들을 차분히 정리해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동력이 되게끔 하고 싶다.그래, 내게 참으로 큰 변화라고 하면, 내가 돌보는 -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함께 노는 - 이곳의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말 그대로 예뻐서 죽겠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아이들이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전혀 동하지 않던 내가, 2주 정도 이곳에서의 활동이 남은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마도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고, 그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사실이 참으로 슬프다. 그렇게 내가 너무나 예뻐하는 아이들, 정말 장난 삼아 던지듯, 한국으로 데리고 가버리고만 싶을 정도다. 하하. 생각건대 언제나 사람에 답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기운을 얻으면 안정이 되고 치유되기도 하고, 귀여운 아기들과 씨름하면서 고되게 일해도 ‘꼬 마이! 꼬 마이!(마이 선생님, 즉 나를 부르는)’라 부르며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나 감사하고 행복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우리반 '미나' 벌써 부터 눈에 밟혀 걱정이다) 그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그런 문이 될거라고 생각한 이 라온아띠의 생활, 물론 종종 놓치고 흔들리기도 했겠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따뜻한 사람들이 이곳에, 그리고 함께 있다.
# 06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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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원들의 의견과 상관 없는 저의 개인적인 추측이자 감상임을 밝힙니다. 얼마전 우리가 일하던 유치원이 1주일 방학을 하는 바람에 하루 동안 천주교 성당서 운영하는 청각장애인 아이들 교육 시설을 방문한 적 있다. 단 하루 방문이었지만 선생님과 아이들과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선생님과 아이들이 친절히게 잘해주셨지만 따지고 보면 Y 에서 소개해준 몇 안 되는 기관 방문 중 처음으로 우릴 순수하게 베트남어를 어설프게 할 줄 아는, 한국에서 자원봉사 온 학생들로 봐주셨다. 선생님들도 순수하게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대해주시는게 느껴졌다. 1기랑 비교해서 우릴 보는게 아니라...사실 그 기관이 Y에서 관련해서 방문한 얼마 안 되는 곳 중 처음으로 1기가 방문하지 않은 곳이었다. 천주교 장애아동 학교서 아이들, 선생님과 함께 굳이 덧붙이자면 어떤 기관을 방문하든 Y랑 관련 있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1기를 아냐고 묻고 그들이 남긴 사진과 편지를 발견할 수 있다.사실 라온아띠 베트남 2기는 1기와 거의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1기와 같은 호텔에 묵고, 똑같이 호치민 YMCA로 출근하며 방문하는 기관과 일하는 곳도 같다.단 2기는 메디컬 센터에서 2주간 봉사하는 프로그램과 라온아띠 쥬니어와 함께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1기와 똑같이 진행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1기의 활발한 활동으로 그런지 여기 저기서 얘기가 들려오는건 괜찮지만 심지어 비교까지 당하고 있다. 어떤 문제점이 발생되는지 중간전검의 한 일면으로 살펴보았다. & Y 와의 관계얼마전 우린 호치민 y 사무총장님과 식사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1기보다 우리가 소심하단 평가를 들었다. 즉 그들보다 호치민 y에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단 소리다. 우리도 y 사람들과 알고 지내고 있긴 하지만 1기 사람들처럼 우리가 떠날 때 그들이 펑펑 울면서 슬퍼할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얘기하자면 이것에 대해서는 변명거리가 하나 있다.1기가 왔을 때 처음 오는 한국인을 위해 다들 관심을 가졌고 y에 있는 직원들 전부가 달려들다 시피해서 베트남어를 가르쳤다.2층의 봉제아이들도 우리들한테 보이는 관심보다 훨씬 더 그들한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호기심과 호감이 훨씬 컸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우린 처음 호치민 y에 갔을 때부터 직원들이 썩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베트남어도 총장님과 담당간사, 대학생 봉사자가 며칠씩 가르쳤지만 우리끼리 공부하는 시간이 꽤 많았다. (방치라는 느낌이 강했다. 예를 들면 낮잠을 쪼금 더 자던가 약간 지각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물론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능동적이지 못한 점은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개인적인 감상은 처음부터 손님이자 애물단지로 온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에 우리가 프로그램에 대해 불평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y가 1기보다 우리에게 관심을 덜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이런 상황에서 남은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안에서 한 가지 강렬한 의문이 솟고 있다.2기인 우리가 이 정도인데 3기가 오면 어떨까? 내게는 이런 비교가 감정적으로 큰 아쉬움과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1기나 2기인 우리들한텐 베트남이 처음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이 곳에서 계속 살고 있다.그들한테 3기는 세 번째로 보는 한구인들일테고 또다시 비교 당할 것이다. 물론 이 문제가 2기인 우리들한테 달려있듯 3기한테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과연 똑같은 일정과 프로그램으로 계속 한국인 대학생들을 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한 번 묻고 싶다... 2009년 5월 30일에 쓴 글천주교 장애아동 관련방문 기관 글만 덧붙임..ps. 이런 상황에서도 잘 지내고 있고 사람들과 관계도 맺고 있지만개인적으로 가장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라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 05 한국어를 배우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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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팀은 가끔 YMCA 자원봉사자로 만난 대학생들과 놀기도 하고 그들이 또 친구를 소개시켜주기도 한다. 물론 봉사자 친구들 중에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친구도 있지만 한국어과 학생이라 한국어로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와중에 우린 베트남어 배웠다고 그들에게 간단한 의사소통은 베트남어로 말 걸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드는 생각을 간단히 적어보았다. * 동방문화 축제 관람 지난 5월 첫 주말에 우리는 Y 봉사자로 만난 친구 한을 통해 호치민 인문대 동방문화축제에 초대받았다. 한은 호치민 인문대 한국학과 4학년으로 꽤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친구이다. 동방문화축제는 호치민 인문대의 한국학과, 일본학과, 중국학과, 인도네시아학과, 인도학과, 태국학과 등이 함께 부스도 열고 음식도 팔고 공연도 펼치는 축제이다. 가보니까 생각보다 정말 잘되있어서 놀랬다. 한국학과 학생들은 사물놀이와 칼춤을 선보였고 다른 학과 학생들의 공연도 관람했다. 부스도 각 나라 양식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각 학과 학생들은 그 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음식을 팔거나 흥보하고 있었다. 호치민 인문대 한국학과 부스 내부와 학생들 한국학과 학생들 공연 아쉽게도 한은 4학년이라서 학생들 대부분이 저학년이고 잘 모르다 보니 얘기는 많이 못 나눠보았지만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능숙한 한국말을 하는 걸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느낌이 새로웠다. 그 외에 이 전에도 다른 자원봉사자 친구의 소개로 한국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과 소풍 간 적 있는데 그 친구들 역시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고 속어까지 알아듣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게 느껴진 건 아마도 난 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친구들이 한국말로 이건 뭐냐고 물을 때 가끔 대답하기 난감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You're welcome 베트남어로는 khong co chi (컨 꺼 치) 이다.이 말이 한국어로 뭐냐면 천만에요 지만 정작 난 정석대로 대답하지 않을때가 많으니 대답하기가 곤란했다.한국말은 표현이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정작 난 국어보다 영어가 중요시되는 환경에서 살다 보니외국에서 한국말 배우는 사람 덕분에 내 한국어를 돌아보게도 된 것 같다. 진짜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은 우리들 아니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학과 부스 앞에서 한과 함께
#04 반쯤 채워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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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으로 쓴 감상임을 밝힙니다. 아직 반 밖에 지내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 저것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개인적인 감상은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필자는 현재까지 대학생 신분으로서 몇 개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뿌듯함과 자부심도 느껴보았고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있고 지원해서 떨어지는 쓴 맛도 보았다. 이렇듯 내가 겪은 경험도 약간 빗대어서그리고 이른 감은 있지만 라온아띠 내에 직접 참여해서 지금까지 2달 반 지내본 결과에 대한 감상을 끄적어보았다. 1. 능동적인 면 일단 라온아띠는 보통 해외봉사 프로그램과 다르다. 아예 목적자체가 다르다. 나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리지만 보통 해외봉사(단기)프로그램은 정말 빡빡하다. 나 역시 몇 주 간의 짧은 기간 동안 한국 공연 보여주랴, 교육 노동 봉사 하랴, 마지막에 현지 문화 공연 습득하랴..그 와중에 주말엔 관광 가랴 눈 코 뜰새가 없었다. 한 마디로 보여주는 "쇼"가 많고 우리가 볼 "쇼"도 많다. 지금까지 짜여진 틀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했지만 라온아띠는 그 틀조차도 헐겁고 또 직접 만들기까지 해야 한다. 이 곳 라온아띠 베트남 팀으로서 지내는 나는 좀 여유롭다. 국내 교육때 듣긴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첫달은 여유로운 환경이 오히려 답답하고, YMCA에서 왜 우릴 써주지 않는지 속상한 기분까지 들었다. 2달 반이 되는 지금 난 어떻게든 활동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현지 NGO 단체를 알게 되어서 메일을 보내 보고, Y 관련 기관을 한 번 더 방문해보고, 이 곳 대학생들과 친분 유지에 더 신경쓰고.... 솔직히 아직까지 스스로 활동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하지만 라온아띠의 목적이 여기서 하는 활동보다 내가 활동을 만들고 또 활동을 만들기 위해 이 곳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즉 능동적으로 바꿔가는 프로그램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정의해 보고 싶다. * 2009 3월달에 팀원과 통일궁 관람한 날 2. 봉사자라는 신분?! 보통 봉사활동을 나가서 환대를 받으면 받았지 푸대접을 받거나 불편한 위치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곳 YMCA 에서 우린 인턴쉽도 아니고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정말 손님이었다.말이 좋아서 손님이지 그분들에게 짐이 될 때도 있었다. 우릴 위해서 신경 써주시는게 감사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우리의 위치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심지어 Y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축제에 참여했을 때도 놀러온 손님이자 외국인이었다. 국내 훈련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너희가 도움 줄 생각을 버려라-너희가 오히려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봉사활동에서도 결국은 그분들한테 준 건 별거 아니고 오히려 내가 그 활동과 사람들을 통해서 배울 때가 많았다고 인정하는 바이다.물론 손님 신분에서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처음에 이런 위치에 대해 의문이 솟아난건 사실이다.아무리 그래도 우리도 일 하면 할 수는 있는데 왜 써주지 않는걸까? 이럴 거면 나를 왜 뽑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지어 유치원에서 일하는 첫 2주는 실습생도 아닌 봉사자도 아닌 정말 일하는 사람이었다.유치원 겸 보육원이라 워낙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엄격하게 다루다 보니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기도 하다. 나를 정말 일하는 사람 취급을 하고 별다른 호감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가 섭섭했다.어떻게 보면 나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청소든 뭐든 잡일을 해서 선생님이 하실 일이 줄어들었는데호감까진 아니어도 동료 대접은 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안 그래도 베트남어를 잘하는 건 아닌데 순간내가 외국인 노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다.알고 보니 선생님도 일에 힘들게 치이다보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으셔서 처음에 그런 태도를 보이신 것 같다.지금은 잠깐씩 틈을 내서 간간히 얘기도 나누고 간식도 나눠주신다. 쉽지는 않지만 항상 봉사활동 하러 오기 전에 배우러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라온아띠에서 던져주는 본질적인 고민의 시간인 것 같다.관광객인지 유학생인지 봉사자인지 이런 나의 위치에서 나온 고민이 나란 존재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다. * 2009 4월 매주 금요일마다 베트남어를 가르쳐주던 대학생 친구 유이와 호치민 YMCA에서 3. 5명이라는 인원의 팀 난 지금까지 단체 생활 속에서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왔고 나름 즐겁게 보냈었다. 30명 , 20명 이 정도의 인원과 또 라온아띠 45명 속에서 그런데 많은 인원이나 혼자 지내는 것보다 5명과 함께 하는 것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체 속에서 나와 맞물리거나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최악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나와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곳은 5명이다. 시간도 5개월이다. 우린 팀으로 왔기 때문에 5명이서 맞춰서 일을 해나가야 한다. 팀원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 - 라온아띠와 단체, 활동, 관심사가 다 다를 때도 있다. 아직까지 다양한 사람, 아니 그보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한 나로서는 적응해 나가기 힘들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나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얘기하는 면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가볍게 얘기하는 면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항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날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시아를 이해하기 전에 내게 던져진 숙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린 팀으로 왔기 때문에 팀을 위해서 약간은 개개인 자신을 다듬어서 맞출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서로 나, 너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팀이라는 테두리에 어느 정도 묶여 있고 팀원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의 이미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팀으로 왔기 때문에 혼자 왔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보고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하다. 오히려 팀원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거나 활동에 더 욕심날 때도 있다. 우리들 서로가 약간만 다듬고 보듬고 팀에게 맞춘다면 우리 팀이 더 잘 굴러갈 수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들 개개인도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호치민 장애인 클럽 앞에서 라온아띠 2기 베트남팀 ps 삼켰어야 하는 생각을 너무 뱉어놓은 건 아닐까 .. 하는 생각도 듭니다.제가 워낙 솔직하다 보니..;이른 감은 있지만 제가 라온아띠 자체에서 느끼는바와 고민을다른 팀원들을 물론 아띠에 관심 갖는 대학생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한 번 올려보았습니다.
Toi co nghi nh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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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o nay Toi co nghi nhieu (요즘 생각이 많아요.) 한국에 있을 때 부터 많이 듣던 소리가 있습니다. 주관이 강하다는 말과 쌍벽을 이루던 소리가 생각이 많다는 것인데요.다니면 복지관 국장님께서도 조언을 해주시기를 그만 생각하고 좀 즐기다 오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그걸 저도 느끼고는 있지만, 살아온게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그냥 지나쳐도 될만 한 것을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진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그 덕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낸 것 같아요. 뭐 현실 가능성은 좀 많이 낮더라도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요. 첫번째 생각. 라온아띠를 통해 교육을 받고 나서야 환경이라는 주제를 갖고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한다. 뭐 이런 식의 교육의 현재 우리 지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들도 많이 봐오긴 했지만, 제 관심에서 떠나있었는 지 별로 눈에 들어오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교육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되니까 제 새로운 관심사로 자리 매김하게 되더라고요. 호치민 YMCA로 가는 길에 작은 강을 지나갑니다. 마을을 관통하는 물줄기 중에 하나인데요. 한창 더울 때 이곳을 지나가면 썪은 내가 진동을 합니다. 물 색은 새까맣고 쓰레기 또한 둥둥 떠다닐 정도로 육안으로도 정말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강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이 물을 저 처럼 옆에 가기도 꺼려 할 만큼 더럽다고는 생각 안하는 것 같아요. 아직 까지 물 속에서 물고기가 살고 있고,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잡아 먹습니다. 아무리 더럽고 냄새가 진동을 해도 이 사람들은 저랑 다르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베트남 또한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 읽은 글 중의 하나가 물 정화하는 것을 통해서 수질 관리 개선을 하겠다는 글을 본적이있어요. 하지만 그 글과는 다르게 수질 개선을 하긴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물. 정말 더럽거든요. 뭐 이 곳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혹시라도 면역력이 낮은 아이가 그 물에 사는 물고기를 먹고 자란다면, 혹은 임산부가 그 물고기를 먹는다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거든요. 물론 제가 이 문제를 공론화 하거나 제가 직접 거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는 사고 싶지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말을 하기 전에 베트남 사람들이 먼저 이 물 더럽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이게 그 강줄기입니다. 이 물이 어디서 흘러 들어오고 어디로 흘러가는 지는 모르지만, 물 흐름을 볼때 사이공강이 아닌 마을 안쪽으로 하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마을 안 깊숙이 더러운물이 흐른다는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고요.)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진을 공모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했습니다. 환경오염이라는 주제를 갖고 베트남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공모하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진을 갖고 전시를 기획합니다. 마을 한가운데 도로가 엄청 넓은 곳이 많기 때문에 그 곳에다가 전시를 하고, 일반 사람들은 환경오염이라는 주제를 갖고 공모 된 사진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가질지 커다란 판에 글을 남기는것도 하면 좋을 것 같고요. 그리고 사진 공모를 했으면 우승 한 사람도 뽑으면 좋겠죠. 그 우승 사진도 시민들이 직접 뽑아 주었으면 좋겠고요. 자연스럽게 환경오염에 대한 생각을 가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금 합니다. 뭐 지극히 제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 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베트남 사람들이 사진을 공모한다고 해서 공모 할지도 의문이고요. 두번째 생각 놀이터.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는 쓰레기통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깨끗한 도로를 보며 사람들 습관이 우리랑 다르게 아무대나 쓰레기는 버리지 않는 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쓰레기 통의 모양이 우리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여하튼 사람들은 길가에도 쓰레기를 잘 버리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쓰레기장이나 쓰레기 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가 많이쌓여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란 생각에서 그쳤지만, 어느날 지나가다 우연히 본 유치원 옆에 쓰레기가 엄청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옆이라는 것에서 일단 하나가 걸렸고요. 그 곳 바로 앞에 주상복합 아파트와 같은 건물이 있어서 그 곳의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놀진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한 이유는 제가 이 곳에 와서 놀이터라고 불릴 만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놀이터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다면, 쓰레기 더미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최상의 놀이터가 될 수도 있거든요. 문제는 너무 더럽기 때문에 아이들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죠. 처음에는 왜 놀이터가 없을까란 생각을 하다가 이 곳에서는 굳이 놀이터가 필요 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쓰레기 더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어? 놀이터 필요 할지도 모르겠는데란 생각으로 이어졌죠. 또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텔 근처에 사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헬로우 하면 인사를 건내는 꼬마들인데요. 좁은 골목, 하루에도 수백대가 넘는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그 골목에서 덤블링을 하고 노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점점 놀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힘들 실어주게 되더라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놀이터가 좀 안좋게 비춰 지고는 있지만, 사실 놀이터는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 되고, 유아의 경우 신체를 이용함으로써 대근육 운동을 발달시키고 놀이터 내에서 다양한 놀이를 통해 창의적인 놀이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특히 흙같은 경우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있어서 최고의 놀잇감이 되거든요. 뭐 지금까지 굳이 놀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놀이터라는 것이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좀더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세번째 생각 작은도서관. 책이라는 것이 좋은 이유야 여러가지로 많이 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책의 좋은점을 나열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들 알거고 지금 이거에 관해서는 프로포절을 작성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 보고 있거든요. 이곳에 와서 공부하려고 책을 좀 사러 서점을 여러번 드나들게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서점 내에서 책을 읽는 베트남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보면 책을 좋아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호치민 이 넓은 곳에(거의 경기도 크기 만한거 같아요.) 도서관이 하나 밖에 없을까요? 그것도 시내에 달랑 하나? 우리나라도 책 값이 비싸기로 유명하잖아요. 이 곳도 책값이 좀 비싼 것 같아요. 저의 밥 한끼 값이랑 맞먹으니까요. 저소득 층의 경우 월급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살 능력은 더 떨어 질지도 모르겠네요. 도서관이 좋은 이유는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고 많은 종류의 책을 쉽고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고, 대출을 통해 바쁜 시간을 짬짬활 활용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도시가 크다면 이러한 도서관이 굳이 하나일 필요 없이 더 있으면 있을 수록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천안에 있는 미래를여는아이들이 원성동작은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안 원성동이 저소득층이 몰려 있는 곳인데요. 원성동 아이들을 위해 좀더 책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작은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본것이 있어서 이 곳에서도 이러한 운영형태가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베트남 사람들이 책을 원하지는지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만들었는데 이용안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하지만 만약에 원한다면, 직접 길거리 후원금도 걷고 다른 기관의 후원도 받으면서 만들어 졌으면 좋겠네요. 이거 생각하면서 동시에 생각 한 것이 자조모임도 생각을 했어요. 이거에 관해서는 계속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라 정리가 아직 덜됬어요. 일단 도서관이 생긴다면 동아리 방 처럼 자유롭게 자조모임을 갖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길 바라고 있고요. 또 다른 여러가지 문화복지를 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빌어요.그 외에 아직 못다한 얘기가 몇개 있어요. 축제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축제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라면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갈지 모르네요. 1기는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가졌다면, 저는 한국에서 부터 이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어요. 지금 가까운 곳에 봉제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봉제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이 끝나면 뭘 하고 있을 지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천안에서 부터 동아리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려 왔어요. 아이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서 스스로 취미에 맞는 활동을 한다면, 충분히 여가 시간을 활용 할 수도 있고 아이들 스스로도 일 끝난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보다 의미 있거나 재미있는 시간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아이들은 일 끝나도 무료하지 않고 재미난 생활을 한다면 물론 이 생각은 자연스레 묻을 생각이었고요. 그렇지 않다면 한번 시도해 보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 전 했으면 좋겠고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갖고 생활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머리속이 언제나 복잡하다보니까 베트남어가 뒷전인건 어쩔 수 없네요. 이것저것 보기 바쁘거든요 -_- (핑계인가?) 다음 주가 되면 우리가 7월에 뭘 할지 결정하는 시간을 갖을 생각이에요. 그 시간에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생각의 보따리를 풀생각이고요. 다른 팀원들도 각자의 생각이 있다면 그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팀원들을 통해서 다른 많은 생각을 더 듣고 싶은데요. 뭐 다음주가 되면 알겠죠. -오타나 문장이 이상해도 이해해 주세요. 제가 한글을 덜배워서....
# 03 편견없이 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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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인 클럽 방문4월 한 주(19일 - 24일) 동안 오후 시간에 우린 호치민 YMCA와도 연결되어 있는 장애인 클럽을 방문했다.호치민 YMCA에서는 장애인 클럽 방문 목적을 언어 공부와도 연결시켜 놓았지만 가서 뭘 할지는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팀원들은 가서 뭘 도와드려야 되나 우리가 뭘 보여줘야 하나 막연히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막상 가 보니 우린 손님이었다. 첫 날 장애인 클럽의 총장이신 안쭘과 비서 찌풍이 우릴 맞아주시며 음료수 대접도 해주시고주로 거실에서 지금까지 공부한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교실에서 수를 놓고 계시거나 영어 수업을 받고 계시는 분들에게 우릴 소개해주셨다. 생각보다 다들 우리를 반겨주시고 호감을 보여주셨다. 그 다음날부터는 일정이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번에는 장애인클럽 분들이 자진해서 우리에게 베트남 노래까지 가르쳐주셨다. 베트남의 애국가나 가곡으로 추정되는 노래를 3개 배웠다. 또 우리가 와도 이분들이 하는 수업이나 일(수공예, 컴퓨터와 영어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자 흩어져서 여기 저기서 구경하거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장애를 보고 내가 뭘 돕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도 앉아서 일 하고,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며 잘 생활하는 그들을 보면서 장애인을 꼭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내 편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고마웠다. 어쩌면 Y에서 우릴 보낸 것도 장애인과 봉사자로서 만난게 아니라 정말 사람들과 만나서 베트남어로 이야기하는게 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 장애인 클럽 사람들과 함께 한 1박 2일 장애인 클럽 방문 후 주말인 일요일과 월요일 (4월 26-27일) 우린 호치민과 붕따우 장애인 클럽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붕따우는 호치민서 3~4시간 걸리고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호치민 장애인 클럽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추측으로) 장애인 클럽 학교 등 굉장히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주로 외상 장애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불편하신 분들과 몇 명 청각 장애나 가벼운 정신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정말 봉사자의 신분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버스에 올라타보니 이미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어찌나 들떠있는지 출발할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들 놀러갈 생각에 신나있었다. 장애인 클럽 방문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다들 우리에게 말 걸고 같이 사진 찍고 신나게 돌아다녔다.단체로 티까지 맞춰입고 기념사진 찍다보니 학창시절 수학여행 온 기분이었다. 붕따우에 도착한 저녁에 장애인 클럽 사람들이 준비한 장기자랑?을 관람하게 되었다.우리도 노래를 준비했다. 지금까지 배운 베트남 노래 한 곡과 한국 노래도 한 곡 준비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드라마 풀하우스가 굉장히 유명해서 풀하우스 주제가를 준비했다. 우리끼리 노래 연습하랴 그 와중에 장애인 클럽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거 구경하고,기념촬영하고 무대 올라와있는 사람들한테 꽃 전달하랴 정신없이 보냈다. 정말 장기자랑 같은 시간이어서 심사의원이 채점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례에 먼저 베트남의 애국가 같은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웬걸 노래가 갑자기 댄스버전으로 나오고 다들 무대로 나와서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도 어울려서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캬바레 버전으로 반주가 나온 풀하우스의 주제가를 부르고 마무리했다. 붕따우에서 우린 정말 봉사자가 아니라 같이 놀러간 한국인이었다. 장애인 클럽 사람들 덕분에 우리까지 정말 신나게 놀았던 1박 2일이이었다.그리고 정말 신기한 건 우리가 그들의 장애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정말 베트남 사람들과 어울린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나와 언니들은 붕따우에서 청각장애인인 힌과 방을 같이 썼다. 힌은 듣지는 못해도 손짓과 표정으로 못하는 말이 없었다. 힌과 나만 방에 있었을 때 화장실 불이 제대로 안 들어오는 걸 보고 힌한테 보여줬더니 일하는 아줌마한테 따지러 갔다. 알고 보니 내 잘못이어서 힌이 너 왜 그랬냐고 손짓으로 막 따졌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가서 따졌어야 되는데 말 못하는 힌이 따지러 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 심지어 둘째 날에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는 수영이 서툰 나와 윤아언니를 사람들이 도와주기까지 했다. 오히려 팔이나 다리가 불편해도 해변에서 축구를 하고, 듣지 못했도 수다스러운 그들을 보면서 어쩜 나도 장애가 생겨도 이렇게 잘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든 생각은 내가 한국이었으면 그렇게 편견 없이 대했을지 의문이 들었다.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건 아닐까? 우릴 정말 친구로 대해줬던 분들과 함께 했던 1박 2일앞으로 남은 건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아무래도 갔다와서 또 정신없다 보니 먼저 연락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나부터 정신 차려서 먼저 연락해줘야지Cam on Cac ban! ( 고마워요 친구들)
#1 에세이 편리함에서 오는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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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리함에서 오는 불편함 라온아띠 2기 베트남팀으로서 보낸 첫 한 달 우린 한 달 남짓 호치민 YMCA 로 왔다 갔다 하면서 베트남어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거의 우리끼리 하는 공부였다. 숙소도 좋고 인터넷도 잘 된다. 게다가 호치민은 대도시라 웬만하면 원하는 걸 다 구할 수도 있고, 시내 나가면 외국인도 많고 한국 사람들도 많다. 난 베트남에서도 싸이월드를 하고 한국에서 쓰던 샴푸나 로션을 사서 쓰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 YMCA에서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여가 시간이 많았다. 가끔 주말에는 호치민 YMCA 봉사활동 하는 학생들과 시내 명소를 방문하거나 놀러가는 정도였다. 분명 라온아띠를 통해 배운건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배웠는데 불편한게 거의 없었다. 1기를 통해 전반적인 생활을 듣긴 했지만 이만큼 편하고 여유있을 줄을 몰랐다. 라온아띠 어떤 팀보다도 편하게 생활했었지만 속으로는 혼란스럽고 불편했다.다른 팀이 시골이나 고산 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진과 글을 보면서 부럽기까지 했다. 분명 대도시에서 편리하게 생활하는데 고립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팀원들과 대화를 통해 그리고 내가 여기서 큰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왔으니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노력했다.지금 난 봉사활동 하러 오기 전에 반은 유학생, 반은 관광객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주말엔 따로 나가서 시내를 보기도 했고 기계적으로 공부 하던 베트남어에도 사람들한테 말 걸면서 재미를 붙였다. 언어 배우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물론 내가 조금 더 능동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매일 같이 가던 호치민 YMCA 2층에는 봉제 공장을 운영해서 15 - 24 세 정도의 여자애들이 일도 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내가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었는데 3월 달 동안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우리들 스스로도 이 점을 반성하고 지금은 일과 끝나고 Y 앞에서 같이 놀거나 수다 떨기도 한다. 아무리 대도시에서 지내더라도 의사소통을 하면서 하면서 새롭게 느끼는 점도 있으니까 2) 한국대표가 아닌 한국인 4월에 3일 정도 희망학교인 직업 훈련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담당자 분과 얘기하다가 한국에서는 월급이 평균 얼마 정도 되냐는 평균 차 값은 얼마 정도 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질문을 받고 당황하다가 대충 우리끼리 어림 잡아 대답했다.그 후에 캔들데이를 하면서 우리 끼리 이 얘기가 다시 나왔다. 한국 평균 월급이나 차 값은 각자 생각하는게 다 달랐다. 중요한 건 다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거나 불편함을 느꼈다. 예를 들면 날씨가 어떻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네 가지 계절이 있고 지금 기온은 대충 얼마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월급이나 차 값은 각자 생각하거나 처한 상황이 달랐고 아무래도 돈 문제이다 보니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돈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나 경제 관련 질문을 받을 때 대답하기 곤란할 때가 많았다.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국은 어떻다고 대답하기가 곤란하고 불편한지.사실 평균 차 값을 어떠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나의 가장 정직한 대답은 이거다. 내가 사는 지역은 차타는 것보다 대중 교통이 더 편하다. 그래서 차 면허도 없고 앞으로도 면허 딸 생각이 없어서 차 값을 잘 모른다. 물론 팀원들 각자의 솔직한 대답이 다 다를 거고 그 이유는 우리 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대화하면서 영지 언니가 라온아띠 국내 훈련 때 받은 교육 중에 배운 것을 다시 짚어주었다.한국을 대표하지 말라고. 대표하는 범위를 좁히라는 얘기였다. 한국은 이렇다고 얘기하기 보다는 서울은 이렇다. 우리 동네는 이렇다. 나는 이렇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기도 쉽지 않다. 기껏 한 달 반 동안 배운 베트남어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실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베트남도 상황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나중에 알아보니 베트남에선 차에 매기는 세금이 꽤 많아서 한국 보다 차 값이 비쌌다. 이 후에는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베트남은 어떻다기 보단 호치민은 어떠냐 너는 어떠냐..한국이 어떻다기 보단 서울은 이렇다. 나는 이렇다.. 정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질문을 할 때면 각자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난 한국인이지만 한국 대표로 베트남에 온 건 아니니까 2009년 4월 중순 기점으로 쓴 글 from HCM VN
생활 - 적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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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보낸 한 달 3월달 중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1. 베트남어 3월 달 우리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자 유일한 활동은 베트남어 배우기였다. 매일 같이 호치민 YMCA로 출근해서 때로는 누군가 선생님이 돼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 스스로 공부했다.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에게 선생님이 되준 사람은 바로 호치민 YMCA 총장이신 미스터롭, 쭈롭이었다. 우리들은 쭈롭에게 약 1주일 넘게 자음, 모음 그리고 성조의 기초 발음을 배웠다. 쭈롭은 명색히 YMCA 총장이시지만 외국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각종 바디 랭기지와 상황극?까지 연출해주신다. 열정적인 쭈롭의 수업 덕분에 서툴게나마 베트남어 발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발음을 배우고 한국에서 가져간 책으로 공부해도 성조가 6개인 베트남어 발음하기가 절대 쉽지 않았다. 쭈롭은 수업 시간에 연신 very easy 를 외쳐대셨지만 어쩌랴 우리에겐 절대 easy 하지 않은 발음이었다. 책을 통해 배운 베트남어를 현지 사람들에게 사용해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상황1 핸드폰 가게에서 가장 싼 걸 보여달라고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베트남어로) 직원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가고 베트남어가 통한 걸 기뻐하는 찰나, 직원이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온다. 상황2 서점에서 어린이 베트남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직원에게 더 쉬운거 없냐며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직원이 우리 말을 못 알아들어 너무 갑갑한 나머지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갑갑할 때가 있었고 선생님이 없는 날이 더 많아서 우리끼리 공부하기가 무료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 가끔 일기도 써서 사람들에게 검사도 받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사진 첨부 3월달에 쓴 일기와 4월달에 쓴 일기) 아직도 부족하지만 4월달이 넘은 지금 5명 모두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 또 사람들에게 하루 하루 배우는 말도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베트남어 배우기는 아직도 현재진행2. 내겐 너무 버거운 자전거 우린 매일 같이 YMCA로 자전거 타고 출퇴근한다. 자전거로 단 10분 걸리는 길이지만 한국에서 자전거 타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 엄청난 오토바이와 쏟아지는 매연과 먼지 가끔씩 뒤에서 빵빵대는 차와 버스 등등 장애물이 엄청나다. 한국에서도 겨우 겨우 자전거를 타던 난 처음 2~3일간 거의 공포에 질린 상태로 출퇴근했다. 갑자기 나타나는 오토바이에 혼자 깜짝 놀라 동네방네 비명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알고 보니 이런 장애물을 피해 다니는 건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순발력을 발휘하고 팀원들 도움을 받아 겨우 다닐 만할 때 하필이면 내 꼬리뼈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리 안장이 딱딱해도 그렇지 5명 다 타고 다니는데 나만 왜 이리 꼬리뼈가 아픈건지 요즘엔 윤아언니와 함께 걸어서 YMCA로 가고 있다. 걸으면 걸을 수 있는 거리지만 강렬한 햇살과 더위 속에 30분씩 걷긴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아침부터 더워서 베트남 사람들도 안 걷는다.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더위 속에 걸어다니는 우릴 운동하는 줄 안다. 지금도 난 걸어다니는 중이고 정 날씨가 더울 때만 타는 중 추신 팀원들의 자전거 타는 유형 김상현(베트남 이름 : 떰) Tam : 자유인 자유자재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가장 잘 다룬다. 심지어 자전거 타고 오토바이도 추월가능. 길 가던 중에 자전거 체인이 빠질 때마다 고쳐주며 평소에는 가이드 역할까지 겸하고 있음. 자전거 탈 때만큼은 가장 믿음직한 멤버 정병칠 (따이) Tai: 보호자형 상현이와 함께 오토바이도 추월할 정도로 속력을 낼 수 있다. 항상 본의 아니게 자전거를 못 타는 팀원들을 자주 태우고 다니며 뒤에 태운채로 다리 하나도 거뜬히 넘는다. 김영지 (마이) Mai : 무난형 별다른 무리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잘 타는 편에 속함. 유슬기 (번) Van : 불안형 항상 급하게 방향전환을 구사해 보는 사람 불안하게 만든다. 그럭 저럭 탈 수준은 되나 안타깝게도 꼬리뼈를 자주 삐어서 자전거 타기를 자제하는 중 박윤아 (안) Anh : 부상형 자전거를 가장 적게 타나 탈 때마다 팔뚝, 다리에 멍이 든다. 심지어 최근에는 병칠 오빠 뒤에 탄 상태에서 넘어져서 무릎 부상 중 슬기와 함께 걸어갈 때가 많으며 주로 뒤에 타는 유형자전거가 자주 고장나서 힘들 때도 있지만 베트남팀의 필수 교통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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