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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카뉴스 4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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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전에 올릴줄 알았던 4월호가.. 여러분의 성원....................흠..뭐 ....어찌되었건 발간되었습니다.많은 애독 부탁드리고독자기고란 좀 살려주세요. ㅜㅜ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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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한 마음으로 저녁에 집을 나섰다.물론 저녁외출은 금지 받았고 팀원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이기적이게 이렇게 자주 나가서 바람을 쐰다.울적한 마음으로 길을 걷는데. 저 앞에 한 아주머니가 보인다. 물론 그 아주머니 앞에는 4-5살 정도의 아이가 안겨 있다.많이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무뚝뚝하게 동전을 드린 적이 있다. 이 모자는 우리 집 근처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많은 분중 하나다. 왜 그렇게 되셨는지 알수는 없다. 쓰나미인지 아니면 어떤 사고인지.. 아버지는 없이 이렇게 모자는 하루하루 정처 없이 떠돈다. 예전에 주말 CHILDREN'S 클럽을 하다가 짝피구를 할 마음에 배구공에 바람을 넣으러 간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이 모자를 보고 마침 돈이 있는데 주기는 민망하여 같이 가는 YMCA댁 아이에게 돈을 전해주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나에게 이런 것은 백인이 줘야한다고 나보고 주라고 한다. 사실 돈이 중요하지 내가 주든 지가 주든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돈을 줬더니 아이가 날보고 배구공을 달라한다. 한참 당황스러워하다가 우울해 하는 아이의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매정하고 YMCA로 향했다. 이튿날인가? 그날 나는 그 모자를 보았는데 그 아이 손에는 공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그 아쉬운 소리해가며 받은 돈으로 아이를 위해 공을 사주셨나보다. 그런 모자였기에 나는 간혹 만나면 동전을 드리고 했다. 아니다 어쩌면 거만하게 주곤 했던것 같다. 뭐 여튼 어제 밤에 나가다가 그 모자를 보게 되었다. 뒤에서 그들을 보고 아.. 좀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눈이 마주쳤다. 뻘줌한 상황을 맞이한 나는 얼어버렸고. 그 아주머니는 뭔가가 아쉬운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나의 뻘쭘함인지..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표정 때문인지 왜인지모를 기분에 손에 돈을 꽉 쥔 채 모른 척 지나쳤다. 지나치는 동시에 아 돌아서 드릴까.. 돌아가서 드릴까.. 고민을 했지만.. 나의 그 상황과 나의 우울한 기분을 핑계 삼아 뒤도 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 모자..... 지금 어디서 굶고 있는 건 아닌지. 어디서 자고 있는지 ...... 문득 이렇게 생각이 든다. 내가 무슨짓을 한거지. 나는 그들에게 나쁜짓을 한것 같았다. 아니 했다. 차라리 단 한번도 주지 말 것을.. 그런데 그것보다 나는 나 스스로를 너무 잘못된 나쁜 길로 인도한 것같다. 나 좋을 때는 착한일. 나 기분 나쁠 때는 나쁜 일. ..후 정말 지랄을 하는구나. 싶다. 문득 나 스스로가 수치스럽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러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이런 마음으로 뭘 하겠나 싶다. 아 걱정이다. 내일 만약 그 모자를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다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까.
#04 반쯤 채워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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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으로 쓴 감상임을 밝힙니다. 아직 반 밖에 지내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 저것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개인적인 감상은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필자는 현재까지 대학생 신분으로서 몇 개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뿌듯함과 자부심도 느껴보았고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있고 지원해서 떨어지는 쓴 맛도 보았다. 이렇듯 내가 겪은 경험도 약간 빗대어서그리고 이른 감은 있지만 라온아띠 내에 직접 참여해서 지금까지 2달 반 지내본 결과에 대한 감상을 끄적어보았다. 1. 능동적인 면 일단 라온아띠는 보통 해외봉사 프로그램과 다르다. 아예 목적자체가 다르다. 나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리지만 보통 해외봉사(단기)프로그램은 정말 빡빡하다. 나 역시 몇 주 간의 짧은 기간 동안 한국 공연 보여주랴, 교육 노동 봉사 하랴, 마지막에 현지 문화 공연 습득하랴..그 와중에 주말엔 관광 가랴 눈 코 뜰새가 없었다. 한 마디로 보여주는 "쇼"가 많고 우리가 볼 "쇼"도 많다. 지금까지 짜여진 틀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했지만 라온아띠는 그 틀조차도 헐겁고 또 직접 만들기까지 해야 한다. 이 곳 라온아띠 베트남 팀으로서 지내는 나는 좀 여유롭다. 국내 교육때 듣긴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첫달은 여유로운 환경이 오히려 답답하고, YMCA에서 왜 우릴 써주지 않는지 속상한 기분까지 들었다. 2달 반이 되는 지금 난 어떻게든 활동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현지 NGO 단체를 알게 되어서 메일을 보내 보고, Y 관련 기관을 한 번 더 방문해보고, 이 곳 대학생들과 친분 유지에 더 신경쓰고.... 솔직히 아직까지 스스로 활동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하지만 라온아띠의 목적이 여기서 하는 활동보다 내가 활동을 만들고 또 활동을 만들기 위해 이 곳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즉 능동적으로 바꿔가는 프로그램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정의해 보고 싶다. * 2009 3월달에 팀원과 통일궁 관람한 날 2. 봉사자라는 신분?! 보통 봉사활동을 나가서 환대를 받으면 받았지 푸대접을 받거나 불편한 위치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곳 YMCA 에서 우린 인턴쉽도 아니고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정말 손님이었다.말이 좋아서 손님이지 그분들에게 짐이 될 때도 있었다. 우릴 위해서 신경 써주시는게 감사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우리의 위치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심지어 Y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축제에 참여했을 때도 놀러온 손님이자 외국인이었다. 국내 훈련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너희가 도움 줄 생각을 버려라-너희가 오히려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봉사활동에서도 결국은 그분들한테 준 건 별거 아니고 오히려 내가 그 활동과 사람들을 통해서 배울 때가 많았다고 인정하는 바이다.물론 손님 신분에서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처음에 이런 위치에 대해 의문이 솟아난건 사실이다.아무리 그래도 우리도 일 하면 할 수는 있는데 왜 써주지 않는걸까? 이럴 거면 나를 왜 뽑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지어 유치원에서 일하는 첫 2주는 실습생도 아닌 봉사자도 아닌 정말 일하는 사람이었다.유치원 겸 보육원이라 워낙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엄격하게 다루다 보니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기도 하다. 나를 정말 일하는 사람 취급을 하고 별다른 호감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가 섭섭했다.어떻게 보면 나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청소든 뭐든 잡일을 해서 선생님이 하실 일이 줄어들었는데호감까진 아니어도 동료 대접은 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안 그래도 베트남어를 잘하는 건 아닌데 순간내가 외국인 노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다.알고 보니 선생님도 일에 힘들게 치이다보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으셔서 처음에 그런 태도를 보이신 것 같다.지금은 잠깐씩 틈을 내서 간간히 얘기도 나누고 간식도 나눠주신다. 쉽지는 않지만 항상 봉사활동 하러 오기 전에 배우러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라온아띠에서 던져주는 본질적인 고민의 시간인 것 같다.관광객인지 유학생인지 봉사자인지 이런 나의 위치에서 나온 고민이 나란 존재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다. * 2009 4월 매주 금요일마다 베트남어를 가르쳐주던 대학생 친구 유이와 호치민 YMCA에서 3. 5명이라는 인원의 팀 난 지금까지 단체 생활 속에서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왔고 나름 즐겁게 보냈었다. 30명 , 20명 이 정도의 인원과 또 라온아띠 45명 속에서 그런데 많은 인원이나 혼자 지내는 것보다 5명과 함께 하는 것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체 속에서 나와 맞물리거나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최악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나와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곳은 5명이다. 시간도 5개월이다. 우린 팀으로 왔기 때문에 5명이서 맞춰서 일을 해나가야 한다. 팀원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 - 라온아띠와 단체, 활동, 관심사가 다 다를 때도 있다. 아직까지 다양한 사람, 아니 그보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한 나로서는 적응해 나가기 힘들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나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얘기하는 면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가볍게 얘기하는 면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항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날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시아를 이해하기 전에 내게 던져진 숙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린 팀으로 왔기 때문에 팀을 위해서 약간은 개개인 자신을 다듬어서 맞출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서로 나, 너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팀이라는 테두리에 어느 정도 묶여 있고 팀원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의 이미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팀으로 왔기 때문에 혼자 왔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보고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하다. 오히려 팀원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거나 활동에 더 욕심날 때도 있다. 우리들 서로가 약간만 다듬고 보듬고 팀에게 맞춘다면 우리 팀이 더 잘 굴러갈 수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들 개개인도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호치민 장애인 클럽 앞에서 라온아띠 2기 베트남팀 ps 삼켰어야 하는 생각을 너무 뱉어놓은 건 아닐까 .. 하는 생각도 듭니다.제가 워낙 솔직하다 보니..;이른 감은 있지만 제가 라온아띠 자체에서 느끼는바와 고민을다른 팀원들을 물론 아띠에 관심 갖는 대학생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한 번 올려보았습니다.
Berita malaysia 4호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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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ita malaysia 4호가 나왔습니다. ^^ 4호에는 활동사진을 좀 더 많으니까~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ㅋㅋ 그럼 다음주에 나올 5호를 기대해주시고~ 오늘 하루 즐겁운 하루되세요 ^^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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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왓디카/캅"이 곳 태국에 오면 가장 처음 접하는 인삿말이다. 안녕하세요~ 라는 이 인삿말은 말하는 사람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 쓰왓디카, 혹은 쓰왓디캅으로 나뉜다. 카/캅은 존대어로 말하는 이가 여성이면 말 끝에 카.를 말하는 이가 남성이면 말 끝에캅.을 붙힌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또 사용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닌 사람' 들은 이 선택지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이 곳 태국에서도 여성과 남성으로만은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한다. 이 곳 태국에서 라온아띠로 활동하면서 우리는 이 두 정체성(여성,남성)의모호한 경계성에 서있는 사람들-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레이디보이), 톰보이, 게이라고 부르는- 을 만났다. 우리와 자주 활동하고, 잠깐 이 곳 삼강펭 Y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그/녀는 흔히 인사나 대화 도중에 '캅'이라는 남성용 존칭어를 사용한다.그/녀는 여자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여자샤워실에서 샤워를 한다.그/녀는 짧은 머리, 흔히 남성들이 하는 머리를 하지만 여성용 언더웨어를 착용한다.그/녀는 사회가 규정짓는 '여성스러움'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한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바지를 입지만 가끔 치마를 입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이 그/녀를 '까터이' 라고 불리게끔 한 것일까.어쨌거나 그/녀는 여자/남자로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젠더정체성의 어느 경계선에 서 있고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눈초리나 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감수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가끔 외롭기도 할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들을 '신기해하며' 그들을 '소외하고있는지도' 모른다.만일 '까터이'가 물리학적으로 남성이면서 사회학적인 여성을 담습하는 자. 라고 정의된다면우리 중 누구도 까터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톰보이'를 물리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학적으로 규정된 남성을 체화하는 자. 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톰보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때로, 규정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많은 사회적 규정 속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밀어넣을 때, 우리는 비로서안정감을 얻게 되는 것일까?이 곳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인데,태국 사람들은 대게 얼굴이 하얀 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태국 유스리더중 한 친구가 말한다.자기는 피부가 검어서 마이수와이(예쁘지 않다)고.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는 거의 듣지 못하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얼굴이 하얀 것이 미의 기준으로 규정되어, 검게 그을린 피부는 아름다움의 저 편으로밀려난다면, 그래서 그런 규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을까?만일 이 세상의 미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정의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미의 기준은 없다. 는 규정을 내리고 싶다. 누가 어떤 줏대에 의해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으며또 어떤 규정에 의해서 한 개인이 가진 젠더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여자, 또는 남자로만구분 지울 수 있단 말인가.태국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그/녀들이 살아간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사회적 규정들속에 소외 받고 상처받는, 혹은 이런 모호한 경계선상에 서 있는(이 경계선상에 서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소수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간에 우리 모두는 정당하다.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이 땅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면.그렇다면 세상은 좀 더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을까?
Toi co nghi nh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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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o nay Toi co nghi nhieu (요즘 생각이 많아요.) 한국에 있을 때 부터 많이 듣던 소리가 있습니다. 주관이 강하다는 말과 쌍벽을 이루던 소리가 생각이 많다는 것인데요.다니면 복지관 국장님께서도 조언을 해주시기를 그만 생각하고 좀 즐기다 오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그걸 저도 느끼고는 있지만, 살아온게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그냥 지나쳐도 될만 한 것을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진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그 덕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낸 것 같아요. 뭐 현실 가능성은 좀 많이 낮더라도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요. 첫번째 생각. 라온아띠를 통해 교육을 받고 나서야 환경이라는 주제를 갖고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한다. 뭐 이런 식의 교육의 현재 우리 지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들도 많이 봐오긴 했지만, 제 관심에서 떠나있었는 지 별로 눈에 들어오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교육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되니까 제 새로운 관심사로 자리 매김하게 되더라고요. 호치민 YMCA로 가는 길에 작은 강을 지나갑니다. 마을을 관통하는 물줄기 중에 하나인데요. 한창 더울 때 이곳을 지나가면 썪은 내가 진동을 합니다. 물 색은 새까맣고 쓰레기 또한 둥둥 떠다닐 정도로 육안으로도 정말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강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이 물을 저 처럼 옆에 가기도 꺼려 할 만큼 더럽다고는 생각 안하는 것 같아요. 아직 까지 물 속에서 물고기가 살고 있고,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잡아 먹습니다. 아무리 더럽고 냄새가 진동을 해도 이 사람들은 저랑 다르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베트남 또한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 읽은 글 중의 하나가 물 정화하는 것을 통해서 수질 관리 개선을 하겠다는 글을 본적이있어요. 하지만 그 글과는 다르게 수질 개선을 하긴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물. 정말 더럽거든요. 뭐 이 곳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혹시라도 면역력이 낮은 아이가 그 물에 사는 물고기를 먹고 자란다면, 혹은 임산부가 그 물고기를 먹는다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거든요. 물론 제가 이 문제를 공론화 하거나 제가 직접 거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는 사고 싶지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말을 하기 전에 베트남 사람들이 먼저 이 물 더럽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이게 그 강줄기입니다. 이 물이 어디서 흘러 들어오고 어디로 흘러가는 지는 모르지만, 물 흐름을 볼때 사이공강이 아닌 마을 안쪽으로 하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마을 안 깊숙이 더러운물이 흐른다는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고요.)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진을 공모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했습니다. 환경오염이라는 주제를 갖고 베트남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공모하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진을 갖고 전시를 기획합니다. 마을 한가운데 도로가 엄청 넓은 곳이 많기 때문에 그 곳에다가 전시를 하고, 일반 사람들은 환경오염이라는 주제를 갖고 공모 된 사진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가질지 커다란 판에 글을 남기는것도 하면 좋을 것 같고요. 그리고 사진 공모를 했으면 우승 한 사람도 뽑으면 좋겠죠. 그 우승 사진도 시민들이 직접 뽑아 주었으면 좋겠고요. 자연스럽게 환경오염에 대한 생각을 가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금 합니다. 뭐 지극히 제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 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베트남 사람들이 사진을 공모한다고 해서 공모 할지도 의문이고요. 두번째 생각 놀이터.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는 쓰레기통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깨끗한 도로를 보며 사람들 습관이 우리랑 다르게 아무대나 쓰레기는 버리지 않는 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쓰레기 통의 모양이 우리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여하튼 사람들은 길가에도 쓰레기를 잘 버리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쓰레기장이나 쓰레기 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가 많이쌓여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란 생각에서 그쳤지만, 어느날 지나가다 우연히 본 유치원 옆에 쓰레기가 엄청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옆이라는 것에서 일단 하나가 걸렸고요. 그 곳 바로 앞에 주상복합 아파트와 같은 건물이 있어서 그 곳의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놀진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한 이유는 제가 이 곳에 와서 놀이터라고 불릴 만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놀이터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다면, 쓰레기 더미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최상의 놀이터가 될 수도 있거든요. 문제는 너무 더럽기 때문에 아이들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죠. 처음에는 왜 놀이터가 없을까란 생각을 하다가 이 곳에서는 굳이 놀이터가 필요 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쓰레기 더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어? 놀이터 필요 할지도 모르겠는데란 생각으로 이어졌죠. 또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텔 근처에 사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헬로우 하면 인사를 건내는 꼬마들인데요. 좁은 골목, 하루에도 수백대가 넘는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그 골목에서 덤블링을 하고 노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점점 놀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힘들 실어주게 되더라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놀이터가 좀 안좋게 비춰 지고는 있지만, 사실 놀이터는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 되고, 유아의 경우 신체를 이용함으로써 대근육 운동을 발달시키고 놀이터 내에서 다양한 놀이를 통해 창의적인 놀이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특히 흙같은 경우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있어서 최고의 놀잇감이 되거든요. 뭐 지금까지 굳이 놀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놀이터라는 것이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좀더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세번째 생각 작은도서관. 책이라는 것이 좋은 이유야 여러가지로 많이 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책의 좋은점을 나열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들 알거고 지금 이거에 관해서는 프로포절을 작성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 보고 있거든요. 이곳에 와서 공부하려고 책을 좀 사러 서점을 여러번 드나들게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서점 내에서 책을 읽는 베트남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보면 책을 좋아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호치민 이 넓은 곳에(거의 경기도 크기 만한거 같아요.) 도서관이 하나 밖에 없을까요? 그것도 시내에 달랑 하나? 우리나라도 책 값이 비싸기로 유명하잖아요. 이 곳도 책값이 좀 비싼 것 같아요. 저의 밥 한끼 값이랑 맞먹으니까요. 저소득 층의 경우 월급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살 능력은 더 떨어 질지도 모르겠네요. 도서관이 좋은 이유는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고 많은 종류의 책을 쉽고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고, 대출을 통해 바쁜 시간을 짬짬활 활용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도시가 크다면 이러한 도서관이 굳이 하나일 필요 없이 더 있으면 있을 수록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천안에 있는 미래를여는아이들이 원성동작은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안 원성동이 저소득층이 몰려 있는 곳인데요. 원성동 아이들을 위해 좀더 책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작은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본것이 있어서 이 곳에서도 이러한 운영형태가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베트남 사람들이 책을 원하지는지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만들었는데 이용안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하지만 만약에 원한다면, 직접 길거리 후원금도 걷고 다른 기관의 후원도 받으면서 만들어 졌으면 좋겠네요. 이거 생각하면서 동시에 생각 한 것이 자조모임도 생각을 했어요. 이거에 관해서는 계속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라 정리가 아직 덜됬어요. 일단 도서관이 생긴다면 동아리 방 처럼 자유롭게 자조모임을 갖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길 바라고 있고요. 또 다른 여러가지 문화복지를 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빌어요.그 외에 아직 못다한 얘기가 몇개 있어요. 축제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축제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라면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갈지 모르네요. 1기는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가졌다면, 저는 한국에서 부터 이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어요. 지금 가까운 곳에 봉제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봉제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이 끝나면 뭘 하고 있을 지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천안에서 부터 동아리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려 왔어요. 아이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서 스스로 취미에 맞는 활동을 한다면, 충분히 여가 시간을 활용 할 수도 있고 아이들 스스로도 일 끝난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보다 의미 있거나 재미있는 시간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아이들은 일 끝나도 무료하지 않고 재미난 생활을 한다면 물론 이 생각은 자연스레 묻을 생각이었고요. 그렇지 않다면 한번 시도해 보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 전 했으면 좋겠고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갖고 생활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머리속이 언제나 복잡하다보니까 베트남어가 뒷전인건 어쩔 수 없네요. 이것저것 보기 바쁘거든요 -_- (핑계인가?) 다음 주가 되면 우리가 7월에 뭘 할지 결정하는 시간을 갖을 생각이에요. 그 시간에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생각의 보따리를 풀생각이고요. 다른 팀원들도 각자의 생각이 있다면 그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팀원들을 통해서 다른 많은 생각을 더 듣고 싶은데요. 뭐 다음주가 되면 알겠죠. -오타나 문장이 이상해도 이해해 주세요. 제가 한글을 덜배워서....
# 03 편견없이 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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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인 클럽 방문4월 한 주(19일 - 24일) 동안 오후 시간에 우린 호치민 YMCA와도 연결되어 있는 장애인 클럽을 방문했다.호치민 YMCA에서는 장애인 클럽 방문 목적을 언어 공부와도 연결시켜 놓았지만 가서 뭘 할지는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팀원들은 가서 뭘 도와드려야 되나 우리가 뭘 보여줘야 하나 막연히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막상 가 보니 우린 손님이었다. 첫 날 장애인 클럽의 총장이신 안쭘과 비서 찌풍이 우릴 맞아주시며 음료수 대접도 해주시고주로 거실에서 지금까지 공부한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교실에서 수를 놓고 계시거나 영어 수업을 받고 계시는 분들에게 우릴 소개해주셨다. 생각보다 다들 우리를 반겨주시고 호감을 보여주셨다. 그 다음날부터는 일정이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번에는 장애인클럽 분들이 자진해서 우리에게 베트남 노래까지 가르쳐주셨다. 베트남의 애국가나 가곡으로 추정되는 노래를 3개 배웠다. 또 우리가 와도 이분들이 하는 수업이나 일(수공예, 컴퓨터와 영어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자 흩어져서 여기 저기서 구경하거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장애를 보고 내가 뭘 돕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도 앉아서 일 하고,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며 잘 생활하는 그들을 보면서 장애인을 꼭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내 편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고마웠다. 어쩌면 Y에서 우릴 보낸 것도 장애인과 봉사자로서 만난게 아니라 정말 사람들과 만나서 베트남어로 이야기하는게 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 장애인 클럽 사람들과 함께 한 1박 2일 장애인 클럽 방문 후 주말인 일요일과 월요일 (4월 26-27일) 우린 호치민과 붕따우 장애인 클럽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붕따우는 호치민서 3~4시간 걸리고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호치민 장애인 클럽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추측으로) 장애인 클럽 학교 등 굉장히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주로 외상 장애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불편하신 분들과 몇 명 청각 장애나 가벼운 정신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정말 봉사자의 신분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버스에 올라타보니 이미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어찌나 들떠있는지 출발할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들 놀러갈 생각에 신나있었다. 장애인 클럽 방문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다들 우리에게 말 걸고 같이 사진 찍고 신나게 돌아다녔다.단체로 티까지 맞춰입고 기념사진 찍다보니 학창시절 수학여행 온 기분이었다. 붕따우에 도착한 저녁에 장애인 클럽 사람들이 준비한 장기자랑?을 관람하게 되었다.우리도 노래를 준비했다. 지금까지 배운 베트남 노래 한 곡과 한국 노래도 한 곡 준비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드라마 풀하우스가 굉장히 유명해서 풀하우스 주제가를 준비했다. 우리끼리 노래 연습하랴 그 와중에 장애인 클럽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거 구경하고,기념촬영하고 무대 올라와있는 사람들한테 꽃 전달하랴 정신없이 보냈다. 정말 장기자랑 같은 시간이어서 심사의원이 채점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례에 먼저 베트남의 애국가 같은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웬걸 노래가 갑자기 댄스버전으로 나오고 다들 무대로 나와서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도 어울려서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캬바레 버전으로 반주가 나온 풀하우스의 주제가를 부르고 마무리했다. 붕따우에서 우린 정말 봉사자가 아니라 같이 놀러간 한국인이었다. 장애인 클럽 사람들 덕분에 우리까지 정말 신나게 놀았던 1박 2일이이었다.그리고 정말 신기한 건 우리가 그들의 장애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정말 베트남 사람들과 어울린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나와 언니들은 붕따우에서 청각장애인인 힌과 방을 같이 썼다. 힌은 듣지는 못해도 손짓과 표정으로 못하는 말이 없었다. 힌과 나만 방에 있었을 때 화장실 불이 제대로 안 들어오는 걸 보고 힌한테 보여줬더니 일하는 아줌마한테 따지러 갔다. 알고 보니 내 잘못이어서 힌이 너 왜 그랬냐고 손짓으로 막 따졌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가서 따졌어야 되는데 말 못하는 힌이 따지러 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 심지어 둘째 날에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는 수영이 서툰 나와 윤아언니를 사람들이 도와주기까지 했다. 오히려 팔이나 다리가 불편해도 해변에서 축구를 하고, 듣지 못했도 수다스러운 그들을 보면서 어쩜 나도 장애가 생겨도 이렇게 잘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든 생각은 내가 한국이었으면 그렇게 편견 없이 대했을지 의문이 들었다.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건 아닐까? 우릴 정말 친구로 대해줬던 분들과 함께 했던 1박 2일앞으로 남은 건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아무래도 갔다와서 또 정신없다 보니 먼저 연락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나부터 정신 차려서 먼저 연락해줘야지Cam on Cac ban! ( 고마워요 친구들)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4(영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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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4 09년 5월 15일 제목 : 영어 교실 지난편지에 이야기 했던 “오이쿠시”지역으로 오가는 배는 아직도 요지부동으로 오이쿠시에서 진행하려던 모든 교육봉사 프로그램은 취소되었습니다. 하지만 5월달 부터 수도 딜리에 위치한 “테라산타”마을의 YMCA교육센터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 후 영어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월 수 금요일 하루에 한 시간씩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의 첫 OT시간은 제가 진행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떨리던지........ 전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원래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잘하는 편인데도 처음 만나는 낯선 땅의 어린이들과의 만남이 저를 많이 긴장하게 한 것 같습니다. 6살에서 12살 나이의 20여명의 아이들이 와 주었습니다. 다행히 현지 언어도 미숙하고 영어도 미숙한 저에게 어린이들이 집중도 잘 해주고 의도한 대로 잘 따라와 주어서 순조롭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순전히 아이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방과 후 교육은 이곳 아이들이 영어교육에 대한 요구를 채우며 학습에 대한 자세에 대하여 익히는 시간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3개월 동안 지속하려고 하는 저희 계획이 단순히 저희 욕심이 아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작은 변화의 한 흐름이기를 소원합니다.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3(‘오이쿠시’가는 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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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3 09년 4월 17일 제목 : ‘오이쿠시’가는 배 이야기 오늘 다니던 학교에서 가져온 달력을 보니 벌써 대학교는 중간고사 기간이더라고요. 요즘이야 말로 학교시험에서부터 자유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알게 된 대학생들도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라고 이번 주는 모두 휴강이라고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시험 가운데 지혜롭게 나아가시길..... 첨부한 사진 속 티모르 지도와 같이 동티모르라는 국가는 지리적으로 12개의 주(州)로 구성 되어있는데 그중 1개 주(州)인 오이쿠시는 완전히 분리되어 인도네시아 속에 들어 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것(해로(海路))과 인도네시아 비자를 발급받아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육로(陸路)) 두 가지입니다. 하지만 육로의 경우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고 국경을 통과하는 부담감과 차량 비용 문제로 사실상 현지인들에게는 기피하는 길입니다. 그마저 배를 이용하는 경우 일주일에 두 번 (월,목)뿐이고 이동시간도 거리에 비하여 상당히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12시간) - 참고로 티모르의 나라 크기는 한국의 강원도 면적 정도입니다. - 사실 이런 이동의 문제가 이상하고 답답한 것을 떠나서 나라의 국토 개념에서 어떻게 저렇게 분리된 형태가 가능할까? 독립(02년 5월)을 하면서 차라리 오이쿠시지역을 포기하게 되거나 인도네시아가 지역적 유리함으로 계속 지배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의문이 들어서 주위 분들과 책을 찾아보니 사실 그 속에는 동티모르가 가지고 있는 식민역사의 아픈 잔재가 있었습니다. *** 티모르 섬의 서쪽지역에 ‘오이꾸시’ 라고 불리는 동티모르의 땅이 일부가 있다. 1515년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상륙했던 곳으로서 포르투갈 시대의 영광을 기념하는 곳이다. 리스본 조약 (1859)에 의해 네덜란드에게 양도되었고 1904년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조약에 의해 동과서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두 번의 조약을 거치면서도 포르투갈이 포기하지 않았던 곳이 바로 오이꾸시이다. 그리고 이 지방의 영주가 포르투갈인 혼혈이어서 더욱 네덜란드령에 편입되는 것을 반대했다. 티모르 섬 원주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의 마음대로 국경이 정해진 것이다. 유럽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할 수 있고 인위적인 국경이다 **** 사실 제가 갑자기 티모르의 지리를 이야기하면서 역사까지 말한 이유는 동티모르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형편이 어려운 편에 속하는 “오이쿠시”라는 지역으로 한국NGO 단체인 “개척자”를 도와 평화학교를 2주간 진행하는 것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이쿠시에 가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배가 수리를 위하여 다른 지역에 간다고 운행을 중단하였습니다. 다른 배로 수송의 대체할 것이라는 우리의 순수한? 예상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생각해 보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물론 컸지만 그 보다는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가는 유일한 배를 그저 한없이 항구주위나 목적 없이 외지에서 계속 기다리는 이곳 분들을 보며, 그리고 긴급한 일이나 위급한 사고 앞에서도 그저 좌절해야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시간의 단축으로 비유되는 우리의 교통 시스템의 발전을 바라보며, 부(富)편중과 몇몇 나라가 구가하고 있는 윤택함이 가지고 있는 불평등한 구조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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