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9-2008 , Sunday , timor Leste Dili , ANJU
민족의 대 명절, 추석. 오전시간에 산따끄루스 답사가 있던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시바시 간사님께서 일정을 잡았을때부터 막연한 기대를 하였다. 왠 크리스마스 마을인가 하고 괜한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답사 전 약간의 오리엔테이션과 동영상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산따끄루스 대학살’사건은 1991년 10월 28일 인도네시아 군인과 경찰이 ‘고메즈’라는 청년을 붙잡아 저항세력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40여명의 청년을 연행한 사건이다. 11월 2일, 무덤에 꽃을 놓는 동티모르 관습에 따라 수 천 명의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고메스의 유해가 안장된 산따끄루스 묘지를 향해 행진했다. 그때 인도네시아군의 무차별 발포로 273명이 사망했고, 250여명이 실종됐으며, 37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건으로 동티모르가 단번에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동티모르의 참혹한 인권상황이 국제문제로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그럴수록 인도네시아 정부는 강압적인 통치로 침공 1년 동안 동티모르 저항군과 주민 10만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영상속의 총을 맞고 쓰러져있는 아저씨와 가족인냥 보이는 남자가 그를 안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안고 있는 모습에서 나도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한국전쟁이 생각 났다. 겪어보지 않은 일인데도 그렇게 마음이 아픈데 이 사람들을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 사건이 100년전 50년전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들의 유족들이 아직 이 사건을 기억 하고 있고 가슴속에 묻었을 것이다. 라온아띠에 선발되고 동티모르로 확정이 되고 집에서 보는 올림픽 개막식에는 동티모르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었다. 해설자는 동티모르.. 참 슬픈 나라라며 소개를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슬픈나라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그 전에 많은 지식을 쌓지 못한 봉사단원으로써의 내 마음가짐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묘지로 가는길.. 산따끄루즈 바로 앞에서는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묘지가 있었다. 이 무슨 기묘한 현실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죽인자와 죽은자들의 무덤이 쌍방을 향하여 있고 인도네시아 군들의 묘지는 정갈하게.. 산따끄루즈 묘지는 한자리가 비좁다 하고 틈을 두지 않고 묘지가 빽빽히 있었다. 이시바시 간사님은 “결국은 모두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고 어쨌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산타 끄루스 묘지에는 한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무자비 하게 죽은 자들의 묘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나라 였다면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화장을 했을텐데 라는 생각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군의 묘지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에서 이런 동티모르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시바시 간사님께서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총 하나로 목숨을 잃었을 생각을 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가슴이 아팠다. 나는 오늘부터 ‘띠모르레스떼 탄생’책을 열심히 읽어 보아야 겠다. 다른 친구들에게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친구들이 바로 이해 할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