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에 웃다
라온아띠 1기, 동티모르 사메팀
1.
오늘은 2008년 11월 28일 금요일이다. 지금은 오전 8시 27분, 나는 조금 들뜬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로부터 티모르 레스떼가 독립한 기념일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오늘을 기념하려는 티모르 사람들은 대단했다.
우리 숙소 바로 앞에 사는 마을의 유지(有志)는 소(牛)를 잡았다. 기쁜 마음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싱싱한 생고기를 우리에게도 가져다주었다. 여담이지만, 안주(양은정)와 나는 그 고기를 아픈 두보 오빠를 위해 힘겹게 구해온 거라고 거짓 영웅담을 지어내 자랑했지만, 거짓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짭쪼롬하게 양념한 소고기를 먹으며 우리는 앞집에다 대고 ‘Obrigada(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2.
간밤에 ‘기념 의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밤새 이어졌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누누(두호오빠)만이 참석했다. 나는 어두운 야외에서 모여 있을 많은 사람들과 취객들이 두려워 숙소에 남아 아르만두, 아띠와 함께 <City of God> 영화를보고 있었다. 누누의 외출은 생각보다 길었다. 총격전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금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무사히 돌아올까? 별 일 없겠지? 그리고 별 일 없이 돌아온 누누. 다녀온 이야길 간단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가브라키 초등학교의 꼬맹이들도 부모님과 함께 그 자릴 찾았다고 했는데, 여자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모두 남자 아이들만 왔더란다. 티모르 전통 술도 한 잔 얻어 마셨다는데, 영 맛이 별로였나 보다. “비추야, 비추!”하며 고갤 흔든다. 마을 청년들도 모두 모인 그 자리, 사람들 소리가 숙소까지 들렸다.
의식 속의 노래와 춤은 디스코텍 같은 시끌벅쩍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가만히 앉아 듣기에도, 의식이 치러지는 동안 들리는 노래는 노래라기 보다는 주술을 읊는 소리 같기도 하고 염불 소리 같기도 했다. 낮은 소리지만 강하게 공중을 떠돌아다니는 소리가 계속 되었다. 누누 오빠의 설명도 그랬다. 춤 역시 화려한 춤이 아니라, 정말로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약간의 몸놀림 정도가 오랫동안 계속 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자리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그리고 잠이 든 후에도 그 노래와 춤은 계속되었다. 나는 문득문득 잠에서 깨곤 했는데, 잠이 든 새 꾸었던 꿈과 집 밖에서 들려오는 그 노랫소리가 섞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몇 시까지 계속된 걸까. 6시 반, 아침 빵을 사러 나간 아띠(효정이)가 들어와 키득키득 웃으며 말한다. “빵 굽는 아줌마들도 다 밤 새셨나 봐. 다들 눈이 퉁퉁 부어있어.”
3.
전기(電氣). 3일에 한 번씩 완전한 정전의 날이 있고, 나머지 날에는 저녁 6~7시 무렵부터 12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오는(사정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다.) 사메에서, 어제는 6시 즈음부터 약 12시간 동안 내내 전기가 들어왔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화장실이며 사무실 방 안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니, 들어온 게 아니라, 들어온 불이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미 충전이 완료된 노트북과 카메라는 여전히 코드를 꽂은 채 벽에 달라붙어 있었고, 여전히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말라리아 양성 반응 판정을 받고 무조건적인 휴식 상태에 강제 소환된 두보 오빠는 자다가 깨서 전기가 나가지 않은 걸 보고 ‘아직 자정이 안 됐구나.’ 했단다. 깨고, 깨고, 또 깨도 ‘자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 잠결에 당황스러웠다며, 아침에 일어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웃었다.
아침 빵을 먹으며 꺼내는 이야기도 모두 이 신기한 ‘12시간 들어온 전기’ 이야기였다. 만약에 우리나라에도 ‘3.1절 전야제’라 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 날을 기뻐하며 음식을 나눠 먹고 노래하고 잔치를 즐긴다면? 그리고, “‘특별한 날’이라고, 오전에도 전기가 들어온다면?” 이라는 대목에서 모두 쓰러졌다. (완전 깜빡했다. 우리나라는 24시간 전기와 만나는 구나.)
아침, 무심결에 충전기를 콘센트에 연결하던 아띠가 ‘아차!(전기 안 들어오지.)’하는 순간, 놀랍게도 전기가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 경건하게 앉아 랜턴 불빛으로 책을 보고 있었는데,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왔다! 정말로 전기가 들어온 거다! 커다란 오디오를 돌려 노래를 크게 틀었다. 티모르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는 신나게 듣는다. 녹음을 해서 트는 건지, 매일매일 생방송인지 모를 티모르의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신나는 티모르 음악도 한 곡 흘러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하며, 노트북에 전기 밥을 줘가며, 수필 하나를 쓴다.
오늘은 동티모르의,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 기념일. Loron-bo'ot tebe-tebes(정말정말 큰 기념일)다.
*이 날 결국은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전기가 나갔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6시 무렵,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는 사실!
사메가 최고다.
2008. 11. 28 금요일
홍연지(Aban)
iamheyp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