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바다. 푸른 빛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파도의 리듬에 맞춰 나무는 나뭇잎을 떨며 호흡을 한다. 몇 체의 작은 배들도 뒤뚱거리며 바다의 호흡을 느끼고 있다. 저 멀리 예수상은 양팔을 벌려 바다를 향한다. 아이들은 난간 위에 쪼로로 앉아 다리를 떤다. 이토록 아름다운 남쪽 바다를 보며 나는 코를 벌렁거린다. 킁킁. 아 남쪽바다의 향.
아마 지금쯤 지로의 아버지는 이러한 바다의 호흡을 즐기고 있을테다. 어쩌면 지로와 모모코도 함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로의 아버지는 이상을 쫓아 남쪽으로 튀었다. 과거에는 과격 운동파였으나 이제는 자급자족하는 스로우 라이프를 찾아 떠났다. 남쪽 섬으로 튀는 지로의 아버지를 남쪽 섬 티모르에 앉아 읽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남쪽으로 튀었을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나는 무엇을 하러 왔을까, 그렇게 끝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보다가 돌아왔다.
그 날 저녁, 저 멀리 북쪽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니? 날씨는? 여긴 벌써 드럽게 추워진다야~’ 아, 거긴 추워지는구나. 거리만큼이나, 현실과 이상의 차이만큼이나, 엄마의 북쪽 소리를 듣는데는 3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조금 과장해서. ‘잘 지내. 하나도 안 바뻐. 맨날 딩기적 딩기적 그래’하며 3초 뒤에 웃었다. ‘야~ 남는 시간에 영어 공부도 좀 하고 그래라, 나중에 취직은 할 수 있겄냐, 판아? 잘 하고 댕기는건지 먼지 엄마는 잘 모르겄다.’ 3초 너머의 거리를 두고, 현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걱정마, 굶어죽진 않겄지 뭐. 아빠 돈 열심히 벌어놓으라고 전해줘~’ 장난스레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한국으로 돌아가면, 현실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에라 모르겠다~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그렇게 누워, 엄마의 걱정을 음미하다가, 문뜩. 우리 가족을 동티모르로 놀러오라고 하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 시험에 지친 아빠와 동생 학원비를 버는 엄마와, 대학 입시에 지쳐있을 동생이 떠올랐다, 모두의 지친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곤 나 홀로 평안히 잠들었다.
또 다시 바다에 왔다. 바다에 앉아 청년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발전을 원하고 있다. 딜리 외의 지역은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자리를 원하나, 일자리가 없단다. 이 곳 역시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물어보니, 그 청년 또한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일자리 찾으라고 한단다. 그래서 바다로 나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하단다.
이렇게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현실에 3초 뒤쳐있진 않을까 걱정이 든다.
남쪽으로 튄 죄값을 달게 받겠다. 남쪽은 그만큼 튀어볼만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