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0
슈퍼맨은 머리와 가슴에 힘을 가득 주고 날았다. 그는 그의 존재로 많은 것을 변화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눈을 감았다. 그의 존재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감동적인 슈퍼맨의 스토리.
2008. 9. 4.
슈퍼맨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슈퍼맨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슈퍼맨은 모두가 자기를 반기는 곳에 있어야 했지만, 사실 와보니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얹혀있는 듯한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 찝찝함이란. 슈퍼맨은 슬펐다. 할 일이 없었기에. 슈퍼맨은 힘든 사람들을 도우는 것을 그의 업으로 삼기에, 힘든 사람을 찾아야 했다, 고통 속의 신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리듬으로 즐겁게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통은 슈퍼맨의 행복이고, 사람들의 행복은 슈퍼맨의 고통이었다. 혹시 슈퍼맨은 변태인가?
2008.10.7
슈퍼맨은 한달 전 머리와 가슴에 가득 주고 온 힘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었어야 했다. 신나게. 감동적으로.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슈퍼맨은 방안에서 에어컨을 쐬고 있었다. 슈퍼맨은 마음이 불편해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무기력.
2008.10.26
슈퍼맨은 간만에 뜨거워졌다. 이 계획만 잘 짠다면 남은 기간을 신나게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아니, 기대라기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그 두려움. 남은 기간의 무기력에 대한 두려움.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자 슈퍼맨은 간만에 머리를 돌렸다. 뜨겁게.
2008.11.7.
슈퍼맨 간만에 힘 좀 썼다. 그 동안 농축된 분노의 에너지가 커피포대를 통해 분출되었다. 쉼 없이 날랐다. 밤늦게까지. 새벽부터.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몸은 피곤했다. 그런데 슈퍼맨은 그게 그렇게 좋았다. 밤늦은 작업을 마친 뒤 샤워를 한 슈퍼맨은 알베긴 팔뚝에 근융통 로션을 발랐다. 약을 발라 후끈거리는 것은 팔뚝이었는데, 그의 눈이 더욱 후끈거렸다. 간만에 슈퍼맨으로써의 본업을 했다는 뿌듯함이었을까? 알 수 없는 쾌감이었다. 역시 슈퍼맨은 변태인가보다.
2008.11.19
슈퍼맨은 지금가지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했다. 슈퍼맨 스스로도 뭔가를 느껴나 보다. 슈퍼맨은 3달 동안 쩔면서 힘이 어느 정도 빠진 듯 했다. 그는 이 곳이 자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슈퍼맨은 자신이 머리에, 가슴에, 어깨에 힘을 가득 주고 쑤시고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왕에 쑤신 거, 기왕에 판 벌려논 거. 조심스레, 잘 해보자고 다짐했다.
2008. 12. 3
저번에 슈퍼맨이 뜨겁게 계획했던 일이 성공했나 보다. 얼굴엔 쩖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게 그렇게 기뻤나보다. 조금 바빠졌나 보다. 나는 이러다 슈퍼맨에게 또 다시 힘이 들어 갈까봐 걱정이 조금은 든다.
오늘은 슈퍼맨이 길에서 5살 정도 되보이는 스파이더맨 옷을 입은 아이를 만났다. 슈퍼맨이 말했다. “안녕,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은 잠시 머뭇거리다 “안녕,,, 슈퍼맨” 이라 말했다. 슈퍼맨은 스스로가 슈퍼맨임을 잊었는지 멀뚱꺼리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손가락으로 슈퍼맨의 옷을 가리켰다. 슈퍼맨은 자신의 옷을 보고, 그제서야 씨익 웃었다. 그는 슈퍼맨이라 적힌 티셔츠를 한 장 사가지고 왔었나보다. 그러더니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다 폈다. 손바닥을 뒤로 젖히고 “치익- 치익- ”손목에 힘을 준다. 스파이더맨 거미줄 흉내인가 보다. 스파이더맨 또한 거미줄로 응수했다. 그렇게 가볍게 장난을 친 슈퍼맨이 돌아서서 가자, 스파이더맨이 인사한다. “잘가~ 슈퍼맨”
슈퍼맨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의 만남에서, 슈퍼맨은 마음이 참 편했다. 굳히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만났을 뿐이다. 그리곤 집으로 날아가지 않고, 걸어 갔을 뿐이다. 좌우로 고개를 살펴 차를 확인하며. 귀여운 슈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