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오늘의 운세 : 그대, 오늘 물을 피할지어다..








 

  오늘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말 물을 정말 조심했어야 하는 날인가 보다.

아마 나의 오늘의 운세를 보면 물을 피해야 하는 날이라고 나와 있을 것 같다.

아침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일진이 괜찮았던 것 같다. 아침에 아주머니가 생각지도

않게 아침식사를 가져다 주셔서 조금 더 늦장을 부릴 수 있었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대충 마치고 어제 새로 산 옷과 구두로 갈아 신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저씨도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고 오셨다. 나는 오늘의 원래

스케줄인 양로원에 방문하는 것이 취소된 줄 알고 있었는데,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라고 하셨다. 그래도 기분 좋게 오늘 하루를 시작 하였다.




  양로원은 따굼시티에 있었다. 사실 필리핀에서의 양로원이니 완전히 허름한 시설과

방치되어 있는 노인들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정말 다르게 양로원의

시설은 생각보다 훨씬 쾌적하고 좋았다. 규모도 상상 이상으로 컸고, 그곳에 있는

어르신들도 생각보다 활달하고 밝아 보였다.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강당 같은 곳에 앉아 있는 노인들은 꾸니스꾸니스라고 해서 천조각의 실밥을

뜯는 소 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이러한 시설을 갖추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이

필리핀 전체를 통틀어서 세군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라의 크기도

우리나라의 1.5배 정도 되고, 인구도 우리나라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은 필리핀에서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시설이 고작 3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그리고 이곳의 스텝들 중에서 정식 직원은 3명 뿐이고, 나머지는 다 자원봉사자들에 의

해서 운영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원봉사자들도,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 복지사의 코스를 수료하는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2주간 봉사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2주의 기간이
 
끝나버리면 다른 시설로 가버리고 만다. 쾌적해 보이는 시설 뒤에는 그런 어두운

면들도 숨어 있었다.



 



  오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레크레이션 코너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소개를 하고, 전에 YMCA축제 기간에 준비했던 비사야 노래와 한국 노래인

짠짜라도 부르면서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 드렸다. 어르신들이 한분씩 한분씩

돌아가면서 나와서 노래도 하시고 장기 자랑도 하시는데, 정말 즐거워 보였다.


 




  저녁에는 따굼 시티의 부 시장 아저씨와 비디오키라는 노래방에 가기로 약속을 해서

그 시간까지 아저씨를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면서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뒷동산에도

올라가보고, 골드 시티라는 나름의 유흥가와, 특히 수동으로 작동되는 볼링장이

인상적이었던 곳에도 가보았다.









그리고 고아원에 잠깐 들렀다. 사실 그때는 날이 거의 완전히 어두워 져서

고아원을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잠깐 본 것으로는 귀여운 아이들 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쪽 눈이

불편한 남자아이가 내 옷에 실례를 하기도 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이를

안아봤을 때,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옷에서 좋은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

같은 것이 나서 아이들이 잘 관리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자, 오늘의 가장 큰 시련이 닥쳤다. 집에 아침에 씽크대의 수도꼭지

물을 틀어 놓고 가서 그 물이 넘쳐서 집에 홍수가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내 방에만 홍수가 났다. 내 방만 1층에 있고, 내 방이 지대가 낮아서 물이 다 이쪽으로

흘러온 것 같았다.




  방안에 물이 잔뜩 고여 있는데, 정말 뭐부터 손대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홍수 피해를 당한 수재민들이 기분이 과연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은

방에 고인 물들을 빗자루로 쓸어서 바깥으로 빼내고,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다

바깥으로 빼내서 말렸다. 그런데 하필 바닥에 놓아두었던 충전기들이 몽땅 다 젖어

버렸다. 그래도 중요한 물건들이 물에 젖은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노트북 충전기, 핸드폰 충전기, 디카 충전기들이 다 젖어 버려서 충전기들을

고치거나 새로 살 때까지 한동안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물을 쓸어내고도 물기가 많이 남아 있어서 남은 물기는 바닥에 달력 종이 같은

얇은 종이를 깔아서 물기를 흡수하도록 했다. 정말 방안이 전쟁터라도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외출했던 낮에 비까지 내렸는지 밖에 널어놨던 옷들도 모두 비에 맞아서

축축하게 젖어 버려서 다 다시 빨아야 할 것 같았다.ㅠ_ㅜ





  고아원에서 아이가 내 옷에 실례를 하고,

방에는 홍수가 나고, 빨래는 다 젖어서 다시 해야 하다니....

아마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대, 오늘 물을 피할지어다.

 

체리 힘내요 ㅋㅋㅋ
2008.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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