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나는 그 때를 꽤 “재밌었다” 고 회상한다.
요즘 우리의 하루 생활 중 많은 부분들을 함께 하는 스탭은 바로 ‘아순시온의 아이들’이다.
세상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아기냄새가 아직도 강하게 배여나오는 두 살배기 꼬꼬마들부터우리 YMCA Pre- school 유치원에 다니는 연령 다양한 아이들, 그리고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놀자고 부르는 동네 골목대장 패거리 아이들까지.
원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도 같이 지냈었는데 11월부터 영어 수업이 끝나면서 아쉽게도 작별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가는 유치원이 병설 유치원이라 초등학교 아이들과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같이 영어 수업을 받은 첫 날, 그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필기도구를 꺼내 바르게 앉아 있던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뒤를 돌아봤다,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을 왔다 갔다 난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책과 공책 필기도구를 가방에서 꺼내놓지도 않는 아이들도 수두룩 했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라지만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절대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러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아주 특별한 상황에만 가능했고 화장실은 손을 들어 선생님께 허락을 맡아야 했고(쉬는 시간에 안가고 뭐했냐는 약간의 눈치를 받으며) 발표를 할 때는 입은 다물고 조용히 손을 들어 선생님이 지명을 하면 일어나 바른 자세로 발표를 했다. 담임 선생님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것들은 비슷했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어김없이 일명 ‘사랑의 매’ 로 손바닥을 맞곤 했었는데, 이건 뭐 한국 가면 손 바닥에 불날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을 하고 계시는 데도 자꾸 말을 거는 옆 짝꿍에게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쯤,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내고 풀어볼 사람? 하자 바로 방금 전 나한테 말을 걸던 앞뒤좌우 아이들이 " Ako! Ako!(저요 저요!) “ 왁왁 소리를 지르며 푸쳐 핸썹을 하는 게 아닌가. 얘네들, 칠판에 써진 문제는 제대로 본걸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내 걱정이 아주 빗나갔던 건 아니었는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들었던 아이들 중 절반은 정답, 절반은 오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답을 틀린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이 그저 씨익- 하고 웃고 만다. 내가 소심했던 건가. 난 내가 발표한 답이 정확히 정답을 빗겨갔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 외에도 칠판 앞에 나가 풀이 설명을 한다던지의 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망설임이나 부끄러움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우리들에게 아이들이 손을 억지로 들어올리거나, 발표 후 얼굴이 빨개진 나에게 "Don't be shy." 라며 토닥토닥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매를 들지 않는 필리핀 선생님과 자유롭게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있는 필리핀 교실과 내가 자란 한국 교실은 아주 많이 달랐다.
선생님이라는 위치가 요즘 아무리 무시당한다 해도 유교 문화권 테두리 안에 있는 스승은 여전히 높고 어렵다. 그리고 엄격하리만치 학생들의 바른 태도를 중시하는 것도 그런 영향권 안에 있는 국가들의 당연한 모습이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존재하는 교실과 어른과 아이, 상하 위계질서가 각 잡혀있는 예의바른 교실.
처음엔 -필리핀의 모든 것이 우리보다 좋아보이던 그 시절-엔 이 아이들을 보며 한국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랐으면 그 똑똑한 아이들이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무대체질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3개월 동안 관찰해보니 그렇게 했더라면 절대 우리나라가 이 만큼 성장할 수 없었겠더라. 비록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질문하고 자기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시간은 이 곳 아이들보다 훨씬 더 적게 누렸겠지만, 가나다를 배우건, 영어 알파벳을 배우건, 분수와 소수를 배우건 성실히 노력하고 빠르게 습득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결코 작은 게 아니더라. 한 국가의 자라나는 꿈나무로서, 우리가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지녔던 사명감과 학업에 대한 착한 의무감을 단지 불쌍하다고 가볍게 표현할 게 아니더라.
대학은 고등 교육이니까 어려운 게 맞다.
10년 동안 지겹도록 학교를 다녀놓고도 더 공부하겠다고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이 대견하다. 내가 말한 것처럼 한국 교육이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지만 오늘은 복잡한 다른 문제들은 일단 다 제쳐두고 열심히 사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가 이 곳에 와서 직접 보니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학생들이 모두 너희처럼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지만, 도망가지 않고 그 치열한 곳에 남아서 하루는 웃으며 또 하루는 울기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멋지지 않니. 추운 수능장에서 몸과 마음을 덜덜 떨던 것 까지도 이 곳 아이들은 평생 겪지 못할 우리들만의 특별한 기억이지 않니. 그러니까 혹여나 억울해 하지 마렴. 나중에는 그 모든 게 참 “ 재밌었다” 고 회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수능을 보는 지혜 셋째 남동생도, 어제 걱정했다던 물리 시험 꼭 대박나길!
(니네 누나는 며칠전부터 초긴장 상태야! )
< Sonlon high school 학생들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