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욥8:7)”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세시, 아순시온 YMCA 에선 'YMCA Raonatti PRE-SCHOOL'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원래 이 프로그램의 시작 날짜는 10월 14일 이었으나,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충격적인 실패를 한번 겪고, 그 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13명의 아이들로 조촐히 시작할 수 있었다. 때 마침 한국에서 KOREA STAFF이 와있어서 함께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 날은, 풋풋 프로젝트 이외에 라온아띠 다바오 팀이 아순시온에서 추진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된 날이라 할 수 있어 그들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듯 하다.
PRE-SCHOOL의 주 대상은 라온아띠 다바오 팀이 담당하고 있는 풋풋 프로젝트의 풋풋 드라이버들의 3-6세 자녀들 이다. 물론 아순시온에도 초등학교에 딸려 있는 병설 유치원과 몇 개의 사립유치원이 있긴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YMCA에서 교재, 학용품, 간식 등 모든 준비물을 제공한다. 물론 비용은 무료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세시부터 다섯 시 까지, 총 두 시간 동안 수업을 받게 되며 과목은 국어인 따갈로 어와 영어, 수학, 음악, 체육, 미술 총 여섯 과목이다. 한 과목당 수업시간은 30분이며,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번갈아가면서 수업하게 된다.
10월 20일, 처음 문을 활짝 연 'YMCA Raonatti PRE-SCHOOL' 은 처음 한달여 동안은 영어, 수학, 아트 수업만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영어는 Cho (박초영,22) 선생님이, 수학은 Isabela(강지혜,21) 선생님이, 음악 · 미술 · 체육을 포함한 아트는 Cherry(김지은,21) 선생님이 맡았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아이들 양쪽 다 서로에게 낯설어 하고 어색해 했지만, 곧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가까워졌다.
나이부터 수준까지 아이들의 개인차가 커서 어느 레벨로 수업을 진행할까 고민하던 다바오팀은 비록 잘못하다 하향 평준화가 될지라도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아이에게 맞추자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영어는 알파벳부터, 수학은 숫자 1,2,3부터 시작해 기초를 쌓는 데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아트 수업은 이 곳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감수성을 기르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선 그리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있다.
길버트의 아버지는 오늘도 풋풋으로 길버트를 태우고 유치원에 직접 오셔서
'YMCA Raonatti PRE-SCHOOL' 프로그램에 대한 부모님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 매 시간마다 아이들과 같이 YMCA 오피스에 오셔서 아이들이 교육받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시고 참여한다. 한 달이 지난 현재, 13명으로 시작되었던 아이들이 금새 스무 명이 되고 어느 덧 서른 명에 육박하게 되면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엔 YMCA 오피스가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가득 찬다. 넉넉하게 샀던 교재와 색연필, 책상, 의자 등이 어느 덧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고, 들쑥날쑥 하던 아이들도 이제 고정적으로 자리 잡혀서 각각의 사진을 붙인 아이들의 이름표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과목도 함께 늘렸다. 현지 YMCA 스탭 중 아이린(21)이 국어인 따갈로어를 가르치고, 앨빈(20)은 음악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비사야어 노래를 율동과 함께 가르친다. 다양해진 과목들만큼 아이들의 마음도 풍성해질 것이다.
월요일과 목요일이면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북적이는 YMCA OFFICE.
처음 13명으로 시작했던 'YMCA Raon atti PRE-SCHOOL'이 한 달만에 26명의 아이들로 정확히 두 배로 늘어났고 매일 새로운 친구들이 오고 있다. 비록 무료 유치원이지만 내용과 질만큼은 사립 유치원을 뛰어넘자는 각오로 똘똘 뭉쳐있는 다바오 팀.
“ 각 과목당 할당 된 시간은 30분인데 수업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 덧 30분을 훌쩍 넘겨 저도 모르게 한 시간 동안 수업을 해버린 적도 있어요. 한국에선 고등학생도 50분 수업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데 지루한 기색 없이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기특할 뿐이죠.”
-영어를 담당하고 있는 Cho(박초영,22) 선생님.
“ 처음에는 숫자 1도 잘 못쓰던 아이들이 어느 새 10까지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선생님의 뿌듯함이란 이런 거구나 하구요. 비가 쏟아져도 꼬박꼬박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 더 힘을 얻어요. 어쩔 땐, 1시간이나 일찍 와서 미리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
“ 저는 사실 미술을 못해요. 그런데 아트 선생님을 맡았으니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 중요한 건 미술 실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같은 시선을 가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 아트를 담당하고 있는 Cherry(김지은,21) 선생님.
지금은 비록 작은 아순시온 YMCA 오피스에서 열악한 환경 안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아순시온의 소중한 꿈나무들이 되길, 아순시온의 모든 아이들이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