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순시온의 가옥 구조
예전에 신문에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주거 형태 중 차지하는 비율이 해마다 점점 높아져 50%이상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우리 집 근처만 보더라도 새로운 주거 단지를 만든다고 시에서 계획이 발표된 후, 무섭게 아파트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우리 집도 아파트 이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요즘은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파트들과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어느 지역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일반 주택을 지을 때 사용하는 재료들도 요즘에는 시멘트, 벽돌, 철근 등으로 거의 표준화 되어서 어느 곳이나 비슷한 모습이다.
지금은 전통 마을이나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의 우리나라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가옥형태들을 가지고 있었다. 겨울이 길고 추운 북부지방에서는 부엌과 방 사이에 정주간이라는 공간을 두어서 부엌에서 나오는 열들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울릉도 지역에서는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는 까닭에 일종의 방설벽과 같은 ‘우데기’를 울타리처럼 가옥의 바로 외곽에 둘러 쳤다. 그리고 여름철이 무더운 남부 지방에서는 보통 ㅡ자형 가옥 구조를 띄고 있으며, 바람이 잘 통하는 대청마루를 두어 여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설계 하였다. 이는 모두 주어진 자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냉난방 시설과 여러 가지 편의 기구들의 발달로 인하여 이러한 환경의 차이를 대부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옥이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전국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우리의 가옥 구조 들은 그만큼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자연 환경의 영향을 극복했다는 인간의 자신감의 표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있는 이곳 아순시온 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필리핀 전통 가옥의 형태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아직도 수입의 대부분을 바나나 농장과 벼농사에서 얻는 농촌지역이고, 필리핀 평균 소득 수준보다 아래의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인 것 같다.
아순시온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전통 가옥
필리핀을 상징하는 건물을 하나 뽑자 하면 바하이 쿠보 또는 니파 헛을 댈 수 있다. 바하기 쿠보는 일반 목재, 대나무, 억새 풀 또는 갈대 따위의 풀을 주재료로 하여 짓는 필리핀의 전통 가옥으로서 주로 재료를 얻기 쉬운 저지(低地)에 자리 잡으며, 얕은 수면 위에 세워지기도 한다. 니파 헛은 주로 2미터 정도 되는 각주 위에 세워지는데, 이는 집 아래 만들어지는 빈 공간을 돼지우리, 수확물 저장소, 부엌, 목공 작업소 등 다용도로 쓰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구조는 홍수나 파충류, 곤충 따위로부터 보호해 주는 효과도 있다. 지붕은 말린 잎을 사용하고, 바닥은 반으로 나뉜 대나무를 연결하여 만든다. 연결 시 대나무의 불규칙하게 잘린 부분은 바닥에 작은 공간들을 남기게 되는데, 이는 원활한 환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 현대의 필리핀 가옥들은 보다 튼튼한 재료인 시멘트와 석재를 이용하여 세워지기 때문에 이러한 전통 가옥들은 시골이나 도시를 벗어난 곳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필리핀 사람들의 실용성과 검소함을 나타내는 국가적 상징물로 남아 있다.
아순시온 지역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전통 가옥은 나파 헛의 형태이다. 각주를 이용하여 지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집을 짓는다. 이는 우기의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서 이다. 11월과 12월의 우기 기간에는 거의 매년 홍수가 일어나기 때문에, 물이 차오르더라도 집이 침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때에는 현관과 연결된 사다리나 나무 계단을 이용하여 집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집은 2층으로 된 가옥으로, 필리핀의 전통 가옥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국과는 다른, 필리핀만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서양권의 집들은 집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입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동양권에서는 집안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바닥에 앉아서 생활을 하는 좌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집. 1층은 입식구조, 2층은 좌식구조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형태가 혼재되어서 나타난다. 예전 스페인 시절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기본적인 형태는 입식 구조를 띄고 있다. 2층으로 된 집이라면, 집에 들어가는 입구인 현관과 1층에서는 대부분 신발을 신고 생활을 한다. 식당이나 거실 등의 공간이 주로 1층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침실과 같은 생활공간은 2층에 위치해 있는데, 2층에 올라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는 신발을 밖에서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아무래도 흙 묻은 발로 집안에 들어가면 집을 더럽히기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 1층에서는 신발을 신고 생활을 하지만, 때로는 1층에서도 신발을 벗고 생활을 하기도 해서 사실 필리핀의 가정에 갔을 때는 어디에서 신발을 신고 벗어야 하는지 난처할 때가 많다. 나는 신발을 신고 있는데, 집 주인은 신발을 벗고 있어서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2층의 방.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는 좌식 구조 이다.
1층과 2층의 바닥을 마감한 마감재도 다르다. 1층은 주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기 때문인지 대리석이나 타일 같은 매끄러운, 청소하기 쉬운 마감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2층은 주로 나무 마루바닥인 경우가 많다. 이는 또한 11월부터 12월 사이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잦은 이곳의 특색을 고려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1층에는 물이 차는 집이 많기 때문에 1층에는 물에 닿아도 잘 부식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2층의 창문. 우리집은 나무로 되어 있지만, 최근 지은 것들은 유리로 되어 있다.
양 옆은 닫혀 있는 상태이고, 가운데 창은 열려 있는 상태 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옥과 크게 다른 점은 창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름철은 더워서 창문을 열고 지내지만, 겨울철에는 찬 바람을 막고, 보온을 위하여 창문을 닫고 생활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러한 계절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창문 같은 샤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나 유리로 된 블라인드 형태의 창문을 이용한다. 또한 보온의 필요성이 없어서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벽이 얇아서 방음이 잘 안되는 것도 특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친근한 도마뱀 군이다. 보통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요즘 생산의 시기라서 인지 손톱만한 새끼들도 많이 보인다.
그리고 집안에는 ‘뚝뚝’이라고 불리는 도마뱀에 항상 공존한다. 이 도마뱀은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 같지는 않고, 주로 저녁 때 전구 주변 같은, 밝은 곳에서 벌레가 모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잡아먹는 역할을 한다. 어느 집의 어느 방을 가더라도 벽이나 천장 한 구석에 도마뱀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도마뱀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자다가 내 얼굴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친근해져서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분명 최근에 필리핀의 도시 지역에서 새로 지어지는 집들은 이러한 형식들과는 다른, 서구식의 구조일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아순시온 지역의 가옥들처럼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지어진 전통 가옥들이 효율성 측면에서는 훨씬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곳을 가나 비슷비슷하게 생긴 서구식 가옥들이 들어서 있는 모습은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마저도 세계화의 영향을 받아서 원래의 그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살리지 못한 채 획일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서구식 현대 가옥의 편리함과 깔끔함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전통 가옥의 뛰어남과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서구식의 가옥의 편리함이 불필요 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통 가옥의 효율성과 자연과의 조화로움, 서구식 가옥의 편리함을 모두 조화시킬 수 있는 주거 공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 할 것 같다.
참고 :
http://cafe.naver.com/sndnjsch63.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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