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나의 화두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도, 남들이 딱히 관심갖지 않는 NGO활동에 그리 마음의 자리를 내줬던것도 나와 함께했던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태국에서도 마찬가지. 길과 하늘, 야자수, 수없이 예쁜것이 많지만 가장 예쁜것은 사람이다. 가장 아름다운것은 우리의 인연이다.
그 사람- 중에서도. 오늘은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비비적대고있는 이곳 쌈캉펭 YMCA는 여름에 슈퍼키드 캠프등의 데이캠프를 진행하거나 주말에 정규 수업, 평일 태권도수업 등을 진행해서 아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나는 항상 "정신연령이 똑같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놀고있다. 그런데, 공부방 봉사를 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단체로 만난것이 처음이어서, 정말, 아이들이 나를 가르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내가 미워했던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다시한 번 떠올리게 된다.
자질이 부족해서일까, 아무래도 예쁜 아이 있고 놀아주기 힘든 아이가 있다.
특히 가장 힘든 아이들은 질투심이 많은 아이. 자기에게서 눈이 조금이라도 돌아가면 바로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아이. 옆에 내 손을 잡은 약한 친구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는 아이. 아이가 미워지는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도이따오에서도, 람푼에서도, 쌈캉펭에서도, 가는곳마다 그런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 마음이란것이- 그런 아이들보다는 그 아이들에게 밀려나는 작은 아이들에게, 그러면서도 수줍은 미소로 곁에서 맴도는 '착한'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이는것이 사실이다.
쌈캉펭 YMCA의 대표적인 '나의' 골칫덩이였던 눅.
나는 자주 카운터쪽으로 놀러나가서 거기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들고, 돌리고, 집어던지고, 신발벗기고, 소리지르고 하면서 놀았다. - 그러다 혼도 많이났다 - 항상 나와 함께하는 대표적인 아이들은 빅, 리우, 눅 삼총사. 참 신기한 삼총사였다.
빅은 거칠고 시끄럽고 꽥꽥거리고 두 다리를 쉬지않고 움직이는 전형적인 남자아이
(이 사진에서 마지막이 '빅')
그리고 사진은 안찍었나보다.
리우는 빅보다 덩치도 작고, 더 여자아이처럼 부드럽고, 수줍게 웃는 남자아이.
눅은 이 셋 중에서 대장 역할을 하는 기 세고, 고집 세고, 욕심 많은 여자아이.
역시 처음 셋이 놀때는 가장 약한 리우에게 마음이 갔다.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됬다. 리우보다 힘이 센 빅이, 거칠게 장난치는 것 같지만 항상 리우를 챙겨준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질투심에 친구를 밀어낸 아이들을 많이 봐서, 주로 그럴거라 생각했던 나에게 잔잔한 감동이었다. 슈퍼키드 캠프에는 눅과 빅만 있어서, 계속 리우가 아픈줄알고 리우를 찾는 나에게 리우가 주말에 오자마자 손을 끌고 와서 내 품에 안겨주던 아이, 장난치다가 리우가 속도가 떨어지면 살며시 와서 리우도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던 착한 빅!
그리고 빅과의 심한 장난에 빨개진 내 손등을 가져가 입으로 후후 불어주던 사랑스러운 리우는 정말 나에게 자식같은 (?) 완소남들이 되었다.
문제는 눅. 이 세명이 어찌 친구인가 싶을 정도로 눅은 욕심이 많았다. 내 한쪽 손은 자기가 나와 떨어져 있을때도 자기 전담 자리로 비워놓아야 하고, 다른아이와 놀아주고 있을때도 마구 끼어들어 놀아달라며 손을 내밀고, 내 옆을 차지한 아이를 밀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눅을 어떻게 해야할까 참 많이 고민하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섭섭해할까봐, 눅이 내미는 손을 조금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일을, 눅보다 다른 약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더니, 드디어 눅이 삐졌다.
나를 봐도 아는척도 안하고, 혼자 쀼루퉁한 얼굴을 하고 멀찌감찌 앉아있었다.
언제는 내가 인사를 하니, "이제 삐 쳠푸랑은 안놀아!" 로 추정되는 말을 뱉고 뒤돌아갔다.
옆에서 바라보던 피 멈이 그저 웃었다.
사실은 눅은 상대하기가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고, 눅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다른 아이들을 많이 봐 온 터라, 눅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차라리 편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자질이 참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러기를 며칠째, 눅이 표정이 심통에서 점점 가끔 슬퍼보이는 것이 신경쓰일 무렵.
빅과 리우가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확실히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가서 눅과 놀아주라는 말 같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눅에게 다가가고, 그리고 눅이 삐져서 지나가니 자기들도 어쩔 줄 모르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그 진지한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참 멋있기 까지 했다! 그 후로 자기들끼리 온 힘을 다해 나와 눅이 화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 때 생각했다.
나는, 무슨 기준으로 - 나의 편협한 눈으로 - 그 아이들의 관계를 규정짓고,
눅의 욕심많은 성격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리우, 상대적으로 마음 넓은 빅이 마음아플꺼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그것은 그냥 나의 귀찮음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심이 많고 욕심이 많다해도 결국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을. 내가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은 그렇다. 공부방을 나갔을 때도, 아이들 사이의 룰은 어쩌면 어른의 그것보다 현명하고 평등하고, 엄격하다는 것을 깨닫고 감탄하곤 했었다.
간단하다, 그저 누군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관계를 맺어가는것.
나는 그 아이들을, 어른의 눈으로 보며- 힘 센 아이가 권력관계를 가지고 작은 아이를 밀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 사이에는 분명 우정이 있고 그나름의 평화로운 관계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 아마 귀찮음과 당황스러움이란 것에 두 눈이 가려 - 못 본, 아니 '안 본' 것이었다.
그 후, 빅과 리우마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느날 빅과 리우와 같이 신발뺏고, 코알라 놀이를 하며 소리지르다가 그걸 바라보고만 있는 눅에게 자연스럽게 장난을 걸었다. 며칠 나를 무시하던 눅이 기다렸다는듯이, 처음보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장난에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빅과 리우의 표정도 한층 빛이났다. 신나게 웃었다.
그렇게, 눅은 다시 나의 친구가 되기로 한 것 같다. 왠지 나는, 내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작은 아이가 나의 좁은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해 준 것 같았다.
그 날 눅이 내밀었던 시큼한 맛의 과일은 진짜 맛있었다.
명절 1주일간 사랑스러운 슈퍼키드들과 그 삼총사를 못봤다.
내일 아침, 아이들을 만나면 꼭 안아줘야지.
어느때보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설렌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여기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가르친다.
우리 팀원,
스탭- 피 낭, 피 멈, 피 매, 피 푸, 피 프레, 피 페차린, 피 툰, 피 똔, 피 샤, 요 옹*
꽃보다 남자 홀릭 닝, 너무너무 귀여운 바이!
유스리더 - 여자 3총사 "똥먹어!" 에 이어 "똥구* 먹어"까지 내게 가르친 빳,넌,웨
제발 팬츠업, 뿌이. 코는 파지만 순정사나이 윌리엄. 볼때마다 새로운 위.
1+2 3종세트 고딩이들 스낵홀릭 겜, 변태손금 북, 맨날 나랑 싸우는 뱅,
독특한 펀, 못본지 오래된 땡,모,위, 등등,
쏭끄란때 너무 이쁜모습으로 나타나 여자팀원들이 서로 쳐다보며 "각성하라!" 라고 소리치게 만든 까터이(레이디보이) 핌,
한번씩 스치는 미소짓는 사람들,
집 앞 아이스크림가게 쏘쿨한 아저씨,
집 옆 슈퍼 항상 볼때마다 강아지 앞발들고 싸왓디쨔오 라고 인사시키는 아주머니,
벌써 보고픈 우리 서양동생 볼수록 귀여운 왕국이-
로빈슨 지하 1층에 있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언니와 이승기닮은 훈남청년
람푼의 내새끼 폿!
떠이 하우스의 그들 ㅋㅋㅋ
보고픈 범이, 아짠 아리, 크루 게, 애, 닝 등등 작년 한국방문멤버!
워킹스트릿 사이즈 맞추는 아줌마, 똥아저씨와 친구들!
음...그리고..쨈....그래 쨈도...쨈..쨈도 좋은아이입니다...하하......
지금 당장은 생각나지 않아서 까먹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게하고, 시간이 가는걸 아깝게하고, 가르친다. :)
내가 '감히' 돕는다고 나서거나 알린다고 나설것이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겸허히, 열심히 배우고 오는것도 좋은 봉사.
열심히,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즐기고, 열심히 대화하고, 열심히 웃고.
그 눈동자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으면 :)
마지막은
람푼으로 어제 떠난 보고픈 왕국이를 추억하며 ㅠㅠ
작캄 하이스쿨은 왕국이를 돌려내라 돌려내라!!
왕국이의 솔로콘서트, 맨발, 춈푸 굿모닝? 하는 인사, 맥북, 스투피드! 러브신 헌터 등등을
매일처럼 봤는데 이제 한참 기다려야 다시 본다니.ㅠㅠ
완전한 이별은 아니지만, 타지에서의 안녕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다음에 또 만나! 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게. 누구와의 이별이라도.
오늘 다음에봐- 라고 인사하고 돌아선 이가 우리의 일정과 얽힌다면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