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엄청난 양의 비를 내리 붓곤,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또 작열하는 태양,
그러곤 또 다시 변덕스럽게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해지는 호치민의 하늘은,
우리네 기분 혹은 생각처럼 예측 혹은 정형화하기 어렵다.
방금전에도,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속을 자전거로 달리며 돌아왔다.
온몸을 적시는 비, 발아래서도 고여있는 물 덕에 위 아래 모든 공간에서 물의 촉감을 느끼며,
그리고 확보되지 않는 시야에 약간의 불안을 느끼며 연신 빗물을 얼굴에서 훔쳐낸다.
가끔 즐거움의 탄성도 내뱉고 콧노래도 살짝 흥얼거리면서.
금방 그칠 것을 아는 비지만, 그렇기에 부러 한참을 빗속을 달리는 것은 일종의 오락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는 지, 물위를 달리는지,
여느 노래처럼 하늘을 달리는지 모를. 두둥실 떠있는 듯한 묘한 희열.
찰나이기에, 혹은 비로 인해 기존의 것들이 차단되고 새로운 자극들이 내 몸을 덮어 주어
그것들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자전거이기에, 사뿐히 놓여 진 페달위의 발의 감각은 땅을 걸을 때완 다르기에 더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게 흠뻑 젖고, 따스한 물로 몸을 씻으며, 정리되지 않고 부유하는 많은 감상과 생각의
조각을 하나라도 부여 잡아보고자, 긴장을 풀고 따스한 물에 몸을 맡겨 본다.
(낮잠 시간에 아직 안자고 있는 마이린과 티쩜, 똑똑한 녀석들. 키키.)
그래, 사실 어쩌면 내게 있는 불안함과 두려움의 실체는 스스로에 대한 '깊이에의 강요' 일런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즐겁게, 그만큼 진심으로 살아가고, 진심으로 타인들을 대한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동시에,
내 얕은 고민들에 부끄러워지고 내가 이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내 초심은 어떠했는지 다시금 짚어봐야 하고 내 목적과 그에 대한 내 나름의 평가도 필요한 것이다.
현지에서 부딪침으로써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감정의 에너지를
좀 더 그들에게 필요한 행동 에너지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단순히 나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고, 제대로 온전히 소통하고 있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내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심각하게’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너무나 잘 영위하고 있고, 오히려 그들을 보며 내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 다는 것들, 그런 의미다.
내가 현재 이들과 즐거이 지내고 즐거이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일단의 최선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소소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 간단한 청소라던가 함께 소풍을 가던가,운동을 함께 하던가,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것들, 그러면서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것들.
그리고 이곳에서의 삶이 내게 준 변화들을 차분히 정리해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동력이 되게끔 하고 싶다.
그래, 내게 참으로 큰 변화라고 하면, 내가 돌보는 -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함께 노는 -
이곳의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말 그대로 예뻐서 죽겠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아이들이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전혀 동하지 않던 내가,
2주 정도 이곳에서의 활동이 남은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마도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고, 그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사실이 참으로 슬프다.
그렇게 내가 너무나 예뻐하는 아이들, 정말 장난 삼아 던지듯, 한국으로 데리고 가버리고만 싶을 정도다. 하하.
생각건대 언제나 사람에 답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기운을 얻으면 안정이 되고 치유되기도 하고,
귀여운 아기들과 씨름하면서 고되게 일해도 ‘꼬 마이! 꼬 마이!(마이 선생님, 즉 나를 부르는)’라
부르며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나 감사하고 행복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우리반 '미나' 벌써 부터 눈에 밟혀 걱정이다)
그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그런 문이 될거라고 생각한 이 라온아띠의 생활,
물론 종종 놓치고 흔들리기도 했겠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따뜻한 사람들이 이곳에, 그리고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