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뜨거운 여름날
갑자기 에세이 한 편씩을 보내 달라는 간사님의 메일을 받고 저는 좀 막막했어요. 써야 할 말이 너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죠. 와서 식중독 걸려 고생한 얘기를 쓸까, 영어 때문에 조금 우울했었던 얘기를 쓸까, 여기 분들한테 받았던 고마움에 대해서 쓸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은 그냥 제가 이제껏 한 3개월 지내면서 느꼈던 솔직한 느낌을 쓸까 해요.
처음에 베트남에 오기 전에 제 마음은 많이 불안했어요. 처음 타보는 비행기, 처음 나가는 해외, 처음 해보는 단체생활 그 모든 것이 다 저에겐 처음이었거든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고 조금 걱정했었어요. 뭐 지금은 결과적으로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원래 처음이라는 게 설레지만 두렵잖아요.
그러한 복잡 미묘한 마음을 가지고 베트남의 공항에 내렸을 때 제가 느낀 베트남은 한 마디로 “우와!”였어요. 저희를 마중 나오신 베트남 YMCA 스텝 분들의 차를 타고 우리가 지내게 될 호텔로 가는 내내 바라본 베트남의 시내의 풍경은 그야말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좋았어요. 그리고 오토바이가 정말 엄청 많았죠. (이건 정말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베트남과 진짜 와서 본 베트남은 너무 달랐었어요. 사실 베트남 하면 전부다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제 인식 역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저는 정말 놀랐어요. 화려한 네온사인들, 높은 빌딩, 좋은 차들 그야말로 발전한 도시 같았어요. 그러면서 베트남이 엄청 잘 산다고 생각했었죠.
베트남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제가 여기에 3개월을 머물며 다시 바라보게 된 베트남은 또 달랐어요. 엄청 크고 예뻤던 집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던 작은 천막 집, 내 하루 병원비를 한 달 월급으로 받던 아이들, 화려하고 큰 시내에 관광 온 내국인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빵 하나라도 팔기 위해 노력하던 할머니, 한창 연필을 손에 쥐고 공부할 때에 빨간 바가지를 쥐고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처음 느꼈던 인식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결정적으로 제 인식을 바뀌게 해준 계기는 워크캠프였죠. 워크캠프는 이 곳 호치민이 아닌 “벤체”라는 또 다른 지역의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학교의 담장을 지으며 일주일을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 곳에 간 저는 정말 또 한번 깜짝 놀랐어요. 호치민 과는 정말 완전 달랐거든요. 온통 숲이고 잘 닦이지 않은 도로, 솔직한(?) 화장실, 간소한 집, 낡은 건물들. 이 때까지 내가 생활 했던 곳, 내가 봐왔던 곳은 호치민 이었는데 이 곳이 베트남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던 저는 혼란이 왔어요. 어느 게 베트남이지, 어느 게 베트남의 진짜 모습이지 라는 생각이 가득 찼었죠. 긴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여기의 이 소박한 모습도 베트남의 모습이고 호치민의 그 화려한 모습도 베트남 모습이다. 그렇지만 ‘호치민’만을 보고 베트남을 다 봤다고는 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정말 워크캠프는 베트남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보게 해준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아시아의 친구
이 곳에 지내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은 “Asia”. 바로 아시아 인데요. 사실 저는 솔직히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거든요. 일본이나 미국 이런 곳에는 관심이 많았는데 뭐 아시아? 이런 것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 제가 “아시아의 친구”라. 뭐가 아시아인이고 아시아의 친구인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아시아의 친구”라는 문구를 등뒤에 달고 있는 라온아띠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이곳에 지내면서 “우리는 아시아인이니까”, “우리는 같은 아시아잖아.” 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속에도 “아시아” 라는 그런 무언가가 생겨 나기 시작했어요. 홍안유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베트남의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은 그들은 ‘베트남’아이들이 아닌 거에요. 그냥 3살의 아이들 인거죠. (물론 그 아이들이 베트남어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올 때,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 없을 때 그때 조금 아주 조금 느낍니다.) 워크캠프를 갔을 때만 해도 싱가폴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버리니까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구분 짓기도 힘들뿐더러 구분 짓는 것도 이상하더라구요. 그냥 “아시아인”이니까요.
솔직히 아직까진 “나는 아시아인이다.” 라고 막 마음속에서 확실하게 우러나오는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니지만 라온아띠 프로그램을 통해 이 곳에 지내면서 분명 무언가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느낄 수 있었어요.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저는 정말 말뿐이 아닌 진짜 “아시아인”이 되어 있으리라 믿어요.
베트남의 김은빈
이 곳 베트남에 와서 성장을 하게 된 것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우선 전 편식을 이제 하지 않고요. (제 팀원들은 압니다.) 예전에 늦잠 잤던 저도 없어졌고요. 한국에서의 “김은빈”이 아닌 정말 베트남에서의 라온아띠로서의 “김은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아직은 조금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분명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확실하게 다르다는 건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남은 2개월 동안 또 만들어 나갈 것이고요.
얼른 2011년이 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기대가 되요. 다녀온 라온아띠로서의 후속활동도 기대되고 제가 여기서 배운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쓸 수 있는 또 다른 활동도 기대가 되네요. 느낀 점 얘기하다보니 또 말이 길어졌네요. 이만 말을 줄이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2개월 잘 보내다가 한국으로 가고 싶구요.
2010년 비록 제게 하얀 겨울은 없지만 이 베트남에서의 5개월이 내 생애 가장 찬란하고 뜨거운 여름날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