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조각을 연결하는 시간
대학 졸업은 1년 앞두고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던 내게 라온아띠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주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턴 지원에 있었다. 유학생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에는 나만의 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인턴을 지원하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발 맞추어가는 인재라고 하기에는, 인턴 인터뷰에서 당당해질 용기가 없었다. 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프레임으로 당당히 지구시민 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는 이유였다. 사회에 발을 딛기 전,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찾고 싶어서 라온아띠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라온아띠를 통해 나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유학 생활이 나 스스로를 깨뜨리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라온아띠는 그 조각조각들이 하나가 연결 지어 더 유연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프레임을 많이 깨뜨리고 더 크고 넓은 범주의 프레임이 완성되는 과정을 거쳐가면서 더욱 더 좋은 아시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조금 더 갈망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시아의 친구” or 아시아의 날라리
라온아띠 활동을 하는 주중이나, 개인적인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주말이나, 늘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보게 된다. 처음 이 낯선 곳에 와서 약간 혹은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사소한 부분들이 어느덧 나의 삶에 묻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기분은 기쁨 그 이상이었다. 예를 들면, 새벽 5시가 되면 분주히 깨어 동네 길거리를 누비는 오토바이 소리와 이른 아침부터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정 사진 앞에서 기도를 하는 소리가 더 이상 껄끄럽게 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오히려 그 소리에 맞추어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내 자신이 만족스러웠다.
수 많은 프레임을 깨는 과정에 있어서 아주 손쉬웠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이다. 프레임을 깨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유치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다시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라온아띠의 본질에서 비롯된 회의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더 성장하라고 라온아띠로 선발된 것 보다, 그 전에 많은 고민들과 씨름하기를 기대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고민의 밀물과 썰물의 연속이었다. 주어진 답을 찾던 중,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 들어왔고 그 속에 스르르 녹아져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고민이 해결되었다. 그 동안 내 자신 스스로 만들어온 시계를 그들에 맞추어 조절하고 함께 일하고 놀고 어울리면서 나는 한국에서 온 손님이 아닌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베트남, 아픔을 나누는 친구가 될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나의 아픔마저도 감싸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비루한 모습마저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얼마나 행복한지. 베트남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 동안 보던 베트남의 아픔들을 사랑하기 까지, 같이 울어줄 수 있을 만큼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까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픔을 솔직히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는가?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는가? 지난 일을 돌이켜보니, 개인적으로는 남들에게 나의 아픔을 말하는 것에 대해 거리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동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에 온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행자의 시선으로 보다 보니, 베트남의 아픔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삐까뻔쩍한 베트남의 모습이 아닌, 조금 부족하고 서투른 베트남의 모습과 아픔을 보면서 같이 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갈망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내가 재놓은 기준에 있어서 최대한으로 탈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편하다고 해서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시선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는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했다.
다른 것을 이해한다는 것
낯선 환경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다른 점들도 수용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가끔은 불편 하다 못해 불평을 하게 된다. 하지만 라온아띠 생활을 하면서 감사했던 것은 이로 하여금 다른 환경에서 배우는 자세로 겸허해지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어느 환경이든 새로운 곳에 들어서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의 상태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 와중에 다름 속에서의 내면의 균열도 있었고 몇 차례 염증도 있었지만, 그러한 어긋남이 있었기에 더욱 내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지 않고 조절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싸우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사람이다. (심지어 사소한 다툼까지도)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니라, 귀차니즘의 일환이다. 언제나 늘 간단명료하게 생각하려 하고 나름 내 자신을 ‘쿨’하다는 성격으로 단정지어 왔는데, 다툼 없이는 돌파구를 못 찾는 때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몸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그걸 즉시 알려주는 병에게 감사해야 할 부분이 있듯이, 다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맨 밑바닥에 마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다른 부분을 알 수 있고 그 차이점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이해 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속적인 애증의 라온아띠
나는 앞으로도 라온아띠를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아마 평생 해야 할 듯싶다. 라온아띠를 통해 내가 배운 것들, 배우고 있는 모든 과정은 내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해외자원활동이라고 하는데 어떨 때보면 인생교육 프로그램 같기도 하다. 언뜻 스무 살 중반에 다다르면 그 동안 만들어진 개념들이 굳혀져 더 이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라온아띠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린 시선과 자세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그 개념 하나하나가 건설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과 고민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물론, 라온아띠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펼쳐졌으면 좋겠다. “학생” 신분에서 경험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경험해보고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