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폴 발레리
이솝 우화 이야기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서로의 집에 초대해놓고 자신만 먹을 수 있는 그릇으로 음식을 대접하던 그 이야기. 어렸을 적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였던 그 이야기를 저의 베트남 이야기를 통해 들려드리겠습니다.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 차이, 날씨 차이, 환경 차이, 음식 차이 등등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차이와 다름이 저를 덮쳐왔습니다.
한번은 제가 한국음식을 베트남 분들께 대접했는데, 감자전이 맛있다고 생각해서 요리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였습니다. 반대로 베트남 분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대접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별로 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밥을 먹는데 다 먹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배부르더라도 한 톨도 안 남기고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밥이 더 늘어나있고, 그래서 또 겨우 다 먹었는데, 다음날에는 더 늘어나있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남부에서는 밥을 다 먹으면 배가 덜 배부르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주신다는 겁니다. 다름과 차이로 인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다르다는 것 만으로도 힘들 수 있구나, 많은 생각들이 저를 스쳐갔습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만약에 여우와 두루미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서로 자신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먹지는 않을까요? 제가 이해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의 마지막이 조금 맘에 안 듭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각자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 베트남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시죠.
베트남사람들은 코를 파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더럽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살다 보니 이제 저도 꽤나 코를 많이 팝니다. 베트남은 더운 편인데 긴 팔을 입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나 건기가 되면 더욱 많아집니다. ‘이 더운 날씨에 왜 긴 팔을 입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지금 긴 팔을 2벌이나 샀답니다. (베트남 남부 사람들에게 베트남의 12월, 1월은 추운 기간이랍니다.) 베트남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무단횡단은 엄두도 못 냈지만 이제는 능숙합니다.
저는 이솝 우화를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두루미에게는 스푼을 주고, 여우에게는 빨대를 줍니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에게 동화되는 것, 그것이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베트남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냥 그저 제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서 그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 삶이 되는 것. 저는 그것이 라온아띠로서 제가 생각하는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이 그리 쉽지 많은 않습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은 한국사람들인 팀원들과의 차이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되겠죠? 여우와 두루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신의 상상력에 그 이야기의 끝을 맡기겠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살고 있는 분들도, 또는 확고한 목표나 신념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생각은 있으되, 사는 대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 보듯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부정적인 의미라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삶이란 수많은 편견과 오해, 의심이 가득한 것이라고.. 아마도 제가 살고 있는 삶이 이토록 슬프기 때문에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왜 갑자기 궁상맞게 삶에 대한 이야기일까’, ‘뭐 저런 개똥철학이 있나’ 하시는 분들도 있고, ‘내 삶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한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뉴스기사들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지, 잔혹한 범죄들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그런 일들. 이러한 현상이 단지 개인의 성격의 문제나 몇몇 정신이상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또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현실들, ‘같이’나 ‘함께’가 아닌 오로지 ‘나’만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가끔 마주치진 않는지, 자신이 그렇지는 않은지.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을 위한 기술이 아닌 돈을 위한, 기술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론 지금 제가 하는 말들도 하나의 편견이나 오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의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진지했나요? 그래도 세상은 참 살만한데 말이죠? 제가 살고 있는 베트남도 아직은 참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베트남이 한국보다 훨씬 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거나 살기 편한 곳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좀 더 사람냄새 나고 좀 더 순수함이 느껴지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특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리고 5개월을 살아가면서(지금은 4개월 째) 보았던 베트남이 저에게는 베트남의 모든 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고, 조건 없이 다정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그런 사람들이 저에게는 베트남이라는 곳의 기억 모두입니다. 아직도 누군가 잘해주지 않으면 똑같이 잘해주지 않고, 누군가 다가오지 않으면 다가가지 않고, 경쟁과 질투만이 익숙한 저에게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끔은 이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잘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 가끔은 받는 것에 익숙해져 더 많은 것을 원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게 저에게는 오히려 익숙했으니까요.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베트남에서 라온아띠로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들었습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말입니다. 내가 사는 삶 자체가 내 생각보다 아름답다면 뭐 하러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야 할까요? 물론 베트남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들이 제가 말한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났던 돈보다는 마음이 풍요롭고, 머리보다는 가슴이 따뜻했던 그 분들이 있었기에 저의 베트남 생활은 정말 따뜻하고 풍요로웠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세상이기보다 사는 대로 생각해도 좋은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