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Part. 2
2011년 3월 3일, 우리는 콜롬보 국제공항을 통해 스리랑카라는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지금은 7월 19일. 이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정확히 12일 후에 타게 되는 시점이다.
글쎄, 뭐랄까,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좀 웃기긴 한 것 같다. 아직 이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국내훈련 할 때 시시콜콜 들어왔던, ‘귀국한다고 해서 라온아띠 활동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라온아띠는 평생 가는 활동이자, 이름입니다.’ 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나는, 적어도 여기에서의 경험들은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에 하고 싶었다. 좀 횡설수설 한 것 같긴 한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이 느낌이 절대 내가 비행기를 탈 때의 느낌과 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12일 동안, 또 어떤 것들이 나를 변화시킬지 모를 일이니까.
5월에 썼던 중간 에세이에서, ‘앞으로 남은 두 달 반 동안, 조급하지 않게,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여기 있는 그들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라고 썼던 것이 기억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은 정말로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따로 그들을 사랑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사랑이 필요한 존재’로 낙인을 찍어 놓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 속해 있는 사회 속에서 자신들과 관계되어있는 사람들과 ‘충분히 사랑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들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어달라고 구걸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좀 거칠긴 했지만, 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나나를 팔면서도, 하루에 슈퍼마켓에서 12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하며, 그 중에 외국에서 온 누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게 ‘안녕, 잘 지내니?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라고 따뜻한 인사 한 마디를 건넨다. 한국이라면, 참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 아닌가?
누군가 나에게 ‘스리랑카에서 5달을 살면서 뭘 배웠니?’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사람들과 사는 법을 배웠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여기 사람들과의 친밀한 삶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서로 다른 한국인 5명과의 삶에서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고, 또한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방식들이 눈앞에서 부정되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그 당시에는 인간적인 자괴감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고귀한 순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싶다. 현지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나면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새로운 친구들을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나를 괴롭게 했던 그 치열했던 고민의 순간들, 그것들을 정말 그리워할 것 같다.
스리랑카 모라투와에서
라온아띠 5기 전경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