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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리핑] 인종전시장 말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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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번화가 부킷빈탕은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히잡을 쓴 말레이 여성, 검은 차도르로 온몸을 가린 중동 여성, 터번을 두른 인도 남성, 중국인, 유럽인 등 온갖 인종을 만난다. 현지인들은 이런 풍경에 익숙해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멜팅 포트의 중심지’로 불린다. 실제 말레이시아 인구분포는 말레이계 56%, 중국계 24%, 인도계 8%, 유럽계 등 기타 12% 등으로 복잡하다. 매년 5% 이상의 견고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말레이시아의 원동력을 민족 화합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갈등 요소가 다양함의 활력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복잡한 사정도 있다. 말레이시아 민족통합 정책의 핵심은 경제적 약자인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미푸트라’다. 자윰 자완 푸트라말레이시아대 교수는 “1969년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유혈폭동 이후 부미푸트라가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며 “중국계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말레이계의 불만을 줄이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기업체에는 말레이계 소유 지분을 30% 이상 보장해야 한다. 반면 정치권 및 공직에는 말레이계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수 말레이계의 불만이 잦아들면서 민족 간에 안정된 관계가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말레이계 우대가 계속되면서 소수민족인 중국 인도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겼던 부모 세대들은 차별을 평화와 안정의 대가로 받아들였지만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도계인 대학생 아마르지트 싱(25) 씨는 “여기서 태어난 엄연한 시민인데 왜 2류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함께 어울려 살고 있지만 결혼을 통한 민족 간 결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도 중국계는 중국 학교에, 말레이계는 이슬람 학교에 다녀 아직은 서로 고립돼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이에 따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족 간의 ‘사회 협약’을 새로 작성해야 한다는 논의도 거세다. 출처:데일리 메일
episode 13 . 4/5의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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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 것은 어느나라사람들이나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멋진 곳을 찾아서 사진을 찍는 것도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참 좋아하는 것 같고,하나, 둘, 셋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 것도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어느새 만 4개월을 채워가고 있는 우리의 생활에 대한 간단한 감상문.도. 시. 자. 원. 활. 동 한 달간 언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두 달간은 시내버스로 한시간 반씩 이동을 해서 유치원에 출퇴근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유치원에 출퇴근 할 당시에는 아침 여섯시에 아침식사, 출근, 활동, 저녁 7시 숙소 도착의 연속이었고, 유치원을 다니지 않을 때는 9시까지 YMCA 사무실, 그리고 6시에 숙소 도착. 여기는 호치민시이다. 인구가 500만명이 넘고, 외국인도 많고, 정전이 잦긴 하지만 전기 시설은 잘 갖춰져 있다. 시내버스가 잘 돌아다니고, 학교는 나름대로 모양새가 다 갖춰져 있다. 도시의 생활리듬. 낮잠 시간이 있는 것과 하루가 참 일찍 시작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의 생활리듬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평균적인 매연과 소음은 한국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에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자면 검은 물이 나오고, 내 여드름은 한창 심해졌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크다. 이 사람들 잘 살아가고 있다. 어디를 가도 결국 가장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였다. 도시자원활동. 관계 맺기. 친구 되기. 유치원 선생님들은 우리가 너무 고생했다고 이야기 하며 고마워했다. 우리도 유치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너무 좋고, 정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유치원에서 우리는 오줌을 치우기도 하고 밥을 먹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유치원은 잘 돌아간다. 처음 몇일간은 우리는 유치원 아이들만큼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했나 보다. 우리가 없으면 안되는 상황. 친구가 되었다. 얼마전에는 유치원 선생님들이 우리가 보고 싶어서 한시간 거리를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왔다가 길을 못찾고 다시 돌아갔다고 전해들었다. 우리는 그런 베트남 친구들이 생겼다. 아마 그 선생님들도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이들도 기억을 할 것이다. 자신들이 4살 때, 5살 때 만났었던 한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잘 기억 안나는 5명의 외국인. 확실한 것은 너무 즐거운 기억이어서 그 덕에 힘이 났다는 것인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면, 소극적인가. 만나서 힘을 주고 받는 경험을 했다면, 충분히 멋진 경험이 아니려나. 이거 자기 정당화라고 생각하시는가. 무엇을 하고 있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건 어떨까? 도.시.자.원.활.동.국. 제. 도. 시. 호. 치. 민 이야기 했다시피, 여기는 호치민시이다. 인구가 500만명이 넘고, 상주 한국인도 5만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시의 중심지역인 1군에는 외국인이 더 눈에 많이 띈다. 이것에 마냥 부정적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좋아보이지만 사실은 이 단면에는 결국은 불쌍한 베트남 국민들이 있다. 이 화려함의 수혜자는 결국 외국 자본과 베트남 부자들일 것이다. 무분별한 개방과 신자유주의가 이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얼마전에 우리는 Bobby Brewer 라는 카페 겸 식당을 찾아갔다. 신문에서 광고를 봤는데, 글을 쓰러 왔던 한 호주사람이 호치민의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해 가게를 만들었고, 그 가게의 수익금은 호치민시의 아이들을 위해 쓰인단다. 매주 화요일의 에스프레소는 그 판매액 중 일정금액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데 쓴단다. 좋은 느낌의 카페였다. 아. 이제 우리차례려나. 아직 이전이 비판을 접지는 않았다. 아마 사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세계의 젊음이 모이는 도시는 그것만으로도 참 매력적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대신, 이제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충만한 상상력으로 들어올 차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들어올 차례다. 매력적인 이 도시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올 차례가 되었다. 만. 들. 기. 우리는 12월 초에 유치원 생활을 멋지게 마무리 하고, 새로운 일정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우리가 일정을 제안했다. 우리는 12월의 2주를 우리가 스스로 운영하면서 레포트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주제에 대해 논의 했다. 우리는 무엇이 가장 궁금할까,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이 가장 즐거울까. 이주 노동자에 대한 레포트에 합의 했다. 이 주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오기 전부터 우리에게 이야기 되던 테마였다. 베트남 YMCA도 이 테마를 늘 이야기 해오곤 했다. 우리가 일을 하던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들이 모두 그 대상이란다. 이 주제가 크고 어렵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는 테마라고 베트남 YMCA의 사무총장님이 응원했다. 우리는 우리의 제안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찾아갔고, 노동청도 찾아가 보고, 한인회에도 가 봤다. 통계청에도 가 봤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많이 겁 먹었었고, 사실 현지인들도 자료를 접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걱정했지만, 부딪혀 보면 늘 친절한 사람들 뿐이었다. 노동청에 가면 통계청을 소개해주면서 하지만 너희의 신분 소개나 증명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막상 통계청을 가면 너무도 친절히 우리를 자료로 안내해준다. 우리보다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청을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이주'의 정의와 범위가 너무 어렵다. 해외 이주가 아니다. 학자들도 그 정의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우리가 이 테마가 왜 하고 싶었지부터 시작했다. 진짜 이게 우리 궁금했던 것일까 생각해봤다. 그 궁금증의 시작. YMCA 봉제학원 아이들. 베트남 YMCA 건물 2층에는 봉제공장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15세에서 24세의 여성들. 아, 우리는 이것이 참 궁금했었다. 여기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조금 범위가 적어지고 우리가 대상을 설정하고 정의하기로 했다. '청소년 이주 노동자'. 아직 그 대상에 대한 정의와 범위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래도 우리는 몇 개의 사례연구와 통계 연구, 그리고 토론과 이야기, 분석을 통해 우리의 레포트를 완성하기로 했다. 개요도 만들었다. YMCA 에도 영문으로 개요를 보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과정을 그들과 공유하고 싶다. 가까운 곳에서 중요한 테마를 찾았다고 자축했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으로 하는 만들기이다. 도시 자원 활동은 상상과는 많이 달라서 많은 상상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상상력이 한국에서부터 차오지 않아서 처음부터 발휘하지 못했지만, 4개월간 상상력을 충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친구를 만들었고, 힘을 모았고, 상상력을 충전했으니,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한달간, 그리고 그 이후에 계속 한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또 다른 아시아에서도 혹은 유럽에서도. 만들자. 지금까지는 일단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조금의 상상력과 관계를 맺어가는 힘을 만들었다. 그렇게 실력을 만들고, 동지를 만들고, 그래서 우리 차례 멋지게 놀아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소극적이려나. 난 소심한 사람이어서 이런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 정도. 이것은 최고로 다이나믹 하다.
[뉴스 클리핑] #7. Raonatti Concert in Asuncion YMCA C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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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아순시온 YMCA에서는 지난 1년간의 YMCA의 활동을 보고하고, 1년을 정리하는 행사인 Corporate Meeting이 있었다. "Movement Strengthening in Fulfillment of the YMCA Misson"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미팅은 YMCA의 스텝들, 보드 멤버들, Raonatti 단원들, YMCA의 활동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이루어 졌다. 보드 멤버 미팅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현 이사단 이날 행사에서는 오전에는 올해 YMCA의 활동 성과 보고와,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고, 재정 보고를 하고 정화 의식을 하였으며, 오후에는 내년의 새로운 YMCA 이사진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특별히 라온아띠 단원들의 기타 공연이 있었다. 현지 동요인 'Bahay Kubo'에서 부터 팝송 'Blowing in the wind', 캐롤 'Rudolph TheRed Nosed Reindeer', 한국 가요 ‘바위섬’까지 이어지는 라온아띠 단원들의 특별 공연은 현지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점심시간, 라온아띠 팀의 특별 공연!! 사실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잡아보았다는 단원들은 이날 공연직전 초조함을 드러내며 걱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짧은 연습기간과 전문적인 연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연은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이사회의 선출이 이루어 지고 있다. Mrs. Monteroso 여사가 이날의 개표 위원을 맡아 주셨다. 이날 선거에서는 전년도의 왕성한 활동으로 다수의 이사진이 재선 되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YMCA스텝 Toto의 부친인 Manuel Puyong Sr.이였다. 그는 거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그의 왕성한 활동과 푸근한 인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당선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Toto 내년도 이사회 회장님의 소견 발표 언제나 온갖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릿촌!!!
[SUN 의 에세이] 우리집 호스트 패밀리 “매닌 할머니와 나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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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호스트 패밀리 “매닌 할머니와 나윈” 태국팀은 알려진바와 같이 람푼과 프레 두팀이 한팀이 되어 활동중이다. 11월부터는 다섯명씩 북부 시골마을인 람푼과 프레로 나뉘어져 두달여 정도를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람푼팀은 세집으로 나뉘어져 호스트 가족들과 지내게 되었는데, 나와 수진이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집에서 호스트 가족과 지내게 되었다. 우리집 호스트 가족은 매닌 할머니와 네살배기 어린 손자 나윈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나와 동갑이고, 아빠가 2년전에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 태국에선 군대모집을 제비뽑기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뽑기에서 검은색이 나오면 군대복무를 해야하고, 빨간색이 나오면 군대 면제가 된다고한다.) 그 기간에 맞추어 아이의 엄마는 돈을 벌기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일을하러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외할머니와 아이만이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는 서른의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의시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오셨다고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옷을 매우 잘만드시는데, 미싱으로 생계를 이어오셨고, 지금도 여전히 일을하고 계신다. 할머니가 만드신 옷을 봐도 알 수 있고, 여타의 도움 없이 미싱만으로 여태껏 홀로 생활을 유지하신 것만봐도 할머니의 미싱 솜씨는 가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나뵈었을 때 사연을 듣고 봐서 그런지 어딘가 외로워보이셨다. 긴긴 세월을 라오빠꺼이 마을에서 보내신 할머니에게 마을은 어쩌면 고향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너무 어렸을 적에 엄마와 떨어져서 그런지 아무래도 엄마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에게 가끔 전화가 올때마다, 엄마 전화를 피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우리 할머니는 또한 요리를 매우 잘하신다. 태국에 와서 한동안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무척 고생했었는데이곳에 와서 할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고 지내면서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할머니와 나윈과 친해지기 위해 조금 알고있는 태국어를 총 동원해 대화도 시도하고,안마도 해드리고, 함께 둘러앉아 티비를 보기도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서로 무척이나 가까워 짐을 느낀다.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하시는 걸 좋아한다. " 이 아이들은 한국의 내 딸들이야 " 할머니는 별로 잘나지도 않는 우리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시곤 한다. 할머니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며 이곳저곳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셨던 마을사람들이 이제 조금은 친숙해짐을 느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시곤 한다. 가끔은 마을사람들이 물어보신다. " 한국가면 또 언제 올꺼냐고 " 그럼 나는 장난스럽게 "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꼭 다시 오겠노라고" 말씀드리곤 하지만 우리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함이 어쩐지 먹먹하다. 우리는 곧 이별을 맞이해야한다.(12월 말까지 마을에 거주) 호스트 가족들과 라오빳꺼이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물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우리에게 맺어진 관계의 끈은 삶 속에서 계속 묻어나고 이어질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우리에게 이별이란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헤어짐의 시간을 떠올릴 때 마다 코 끝이 시립고, 먹먹해진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두터운 정이 쌓여가고, 깊은 애정이 녹아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별을 미리 준비해 두고 싶다. 어쩐지 슬프지만은 않은 새로운 이별을 맞이해보고 싶은 생각이든다. 아름다운 이별, 행복한 이별을 이들과 함께 만들어보고싶다. 아직은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맞이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물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우리가 서로 함께 성장하게 하고 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들이삶에 묻어나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에겐 영원한 단절의 이별이 아닌 영원히 지속가능한 만남을 이어가지 않을 까 생각한다. 서로 함께 함을 통해 얻은 행복, 더불어 삶을 통해 얻은 벅찬 감동들을 우리가 사는동안 기억하고, 만나고, 이어가리라 희망한다. - 라오빠꺼이에서 선구 -
[에세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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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0 슈퍼맨은 머리와 가슴에 힘을 가득 주고 날았다. 그는 그의 존재로 많은 것을 변화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눈을 감았다. 그의 존재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감동적인 슈퍼맨의 스토리. 2008. 9. 4. 슈퍼맨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슈퍼맨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슈퍼맨은 모두가 자기를 반기는 곳에 있어야 했지만, 사실 와보니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얹혀있는 듯한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 찝찝함이란. 슈퍼맨은 슬펐다. 할 일이 없었기에. 슈퍼맨은 힘든 사람들을 도우는 것을 그의 업으로 삼기에, 힘든 사람을 찾아야 했다, 고통 속의 신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리듬으로 즐겁게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통은 슈퍼맨의 행복이고, 사람들의 행복은 슈퍼맨의 고통이었다. 혹시 슈퍼맨은 변태인가? 2008.10.7 슈퍼맨은 한달 전 머리와 가슴에 가득 주고 온 힘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었어야 했다. 신나게. 감동적으로.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슈퍼맨은 방안에서 에어컨을 쐬고 있었다. 슈퍼맨은 마음이 불편해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무기력. 2008.10.26 슈퍼맨은 간만에 뜨거워졌다. 이 계획만 잘 짠다면 남은 기간을 신나게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아니, 기대라기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그 두려움. 남은 기간의 무기력에 대한 두려움.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자 슈퍼맨은 간만에 머리를 돌렸다. 뜨겁게. 2008.11.7. 슈퍼맨 간만에 힘 좀 썼다. 그 동안 농축된 분노의 에너지가 커피포대를 통해 분출되었다. 쉼 없이 날랐다. 밤늦게까지. 새벽부터.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몸은 피곤했다. 그런데 슈퍼맨은 그게 그렇게 좋았다. 밤늦은 작업을 마친 뒤 샤워를 한 슈퍼맨은 알베긴 팔뚝에 근융통 로션을 발랐다. 약을 발라 후끈거리는 것은 팔뚝이었는데, 그의 눈이 더욱 후끈거렸다. 간만에 슈퍼맨으로써의 본업을 했다는 뿌듯함이었을까? 알 수 없는 쾌감이었다. 역시 슈퍼맨은 변태인가보다. 2008.11.19 슈퍼맨은 지금가지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했다. 슈퍼맨 스스로도 뭔가를 느껴나 보다. 슈퍼맨은 3달 동안 쩔면서 힘이 어느 정도 빠진 듯 했다. 그는 이 곳이 자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슈퍼맨은 자신이 머리에, 가슴에, 어깨에 힘을 가득 주고 쑤시고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왕에 쑤신 거, 기왕에 판 벌려논 거. 조심스레, 잘 해보자고 다짐했다. 2008. 12. 3 저번에 슈퍼맨이 뜨겁게 계획했던 일이 성공했나 보다. 얼굴엔 쩖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게 그렇게 기뻤나보다. 조금 바빠졌나 보다. 나는 이러다 슈퍼맨에게 또 다시 힘이 들어 갈까봐 걱정이 조금은 든다. 오늘은 슈퍼맨이 길에서 5살 정도 되보이는 스파이더맨 옷을 입은 아이를 만났다. 슈퍼맨이 말했다. “안녕,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은 잠시 머뭇거리다 “안녕,,, 슈퍼맨” 이라 말했다. 슈퍼맨은 스스로가 슈퍼맨임을 잊었는지 멀뚱꺼리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손가락으로 슈퍼맨의 옷을 가리켰다. 슈퍼맨은 자신의 옷을 보고, 그제서야 씨익 웃었다. 그는 슈퍼맨이라 적힌 티셔츠를 한 장 사가지고 왔었나보다. 그러더니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다 폈다. 손바닥을 뒤로 젖히고 “치익- 치익- ”손목에 힘을 준다. 스파이더맨 거미줄 흉내인가 보다. 스파이더맨 또한 거미줄로 응수했다. 그렇게 가볍게 장난을 친 슈퍼맨이 돌아서서 가자, 스파이더맨이 인사한다. “잘가~ 슈퍼맨” 슈퍼맨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의 만남에서, 슈퍼맨은 마음이 참 편했다. 굳히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만났을 뿐이다. 그리곤 집으로 날아가지 않고, 걸어 갔을 뿐이다. 좌우로 고개를 살펴 차를 확인하며. 귀여운 슈퍼맨.
[에세이] 남쪽으로 튀어 ‘남쪽으로 튀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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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바다. 푸른 빛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파도의 리듬에 맞춰 나무는 나뭇잎을 떨며 호흡을 한다. 몇 체의 작은 배들도 뒤뚱거리며 바다의 호흡을 느끼고 있다. 저 멀리 예수상은 양팔을 벌려 바다를 향한다. 아이들은 난간 위에 쪼로로 앉아 다리를 떤다. 이토록 아름다운 남쪽 바다를 보며 나는 코를 벌렁거린다. 킁킁. 아 남쪽바다의 향. 아마 지금쯤 지로의 아버지는 이러한 바다의 호흡을 즐기고 있을테다. 어쩌면 지로와 모모코도 함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로의 아버지는 이상을 쫓아 남쪽으로 튀었다. 과거에는 과격 운동파였으나 이제는 자급자족하는 스로우 라이프를 찾아 떠났다. 남쪽 섬으로 튀는 지로의 아버지를 남쪽 섬 티모르에 앉아 읽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남쪽으로 튀었을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나는 무엇을 하러 왔을까, 그렇게 끝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보다가 돌아왔다. 그 날 저녁, 저 멀리 북쪽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니? 날씨는? 여긴 벌써 드럽게 추워진다야~’ 아, 거긴 추워지는구나. 거리만큼이나, 현실과 이상의 차이만큼이나, 엄마의 북쪽 소리를 듣는데는 3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조금 과장해서. ‘잘 지내. 하나도 안 바뻐. 맨날 딩기적 딩기적 그래’하며 3초 뒤에 웃었다. ‘야~ 남는 시간에 영어 공부도 좀 하고 그래라, 나중에 취직은 할 수 있겄냐, 판아? 잘 하고 댕기는건지 먼지 엄마는 잘 모르겄다.’ 3초 너머의 거리를 두고, 현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걱정마, 굶어죽진 않겄지 뭐. 아빠 돈 열심히 벌어놓으라고 전해줘~’ 장난스레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한국으로 돌아가면, 현실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에라 모르겠다~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그렇게 누워, 엄마의 걱정을 음미하다가, 문뜩. 우리 가족을 동티모르로 놀러오라고 하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 시험에 지친 아빠와 동생 학원비를 버는 엄마와, 대학 입시에 지쳐있을 동생이 떠올랐다, 모두의 지친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곤 나 홀로 평안히 잠들었다. 또 다시 바다에 왔다. 바다에 앉아 청년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발전을 원하고 있다. 딜리 외의 지역은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자리를 원하나, 일자리가 없단다. 이 곳 역시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물어보니, 그 청년 또한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일자리 찾으라고 한단다. 그래서 바다로 나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하단다. 이렇게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현실에 3초 뒤쳐있진 않을까 걱정이 든다. 남쪽으로 튄 죄값을 달게 받겠다. 남쪽은 그만큼 튀어볼만하니까.
8번째 에세이 - 다시 새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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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guio YMCA 창립 67주년 기념일 :) 29일 거리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3일동안 여러가지 행사가 있었다.Baguio YMCA앞에는 Baguio City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Session Rd가 있는데, Admin office 직원들을 선두로 바기오 YMCA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유치원 선생님들과 아이들, 학부모님들, 체육관 사람들 그리고 대학 YMCA 친구들까지. :) 우리 팀은 소자본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Bua마을 어머니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거리 퍼레이드를 자주 보았는데, 이렇게 직접 거리를 거닐면서 참여해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2.Home Stay 필리핀의 현지 생활을 체험하고, 26명으로 조직된 Raonatti 프로젝트 그룹 어머니들과 더 친해지기위해서 매주 금요일마다 개별적으로 현지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계획했다. 공정성을 위해서 제비뽑기를 통해 각자 홈스테이 할 집을 정하고, 어머니들과 만나 이동했다.팀원 모두 필리핀에 온 이후로 처음 떨어져 하룻밤을 보내야 하기에 긴장감 반, 설레임 반으로 얼굴이 상기되있었다.나 역시 긴장을 많이 했는데, 내가 묵은 곳의 가족분들이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은 어색하고, 서툴지만 곧 어머니들과 찐-한 정을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 5주.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느렸다 빨랐다 하면서 나를 시험하려 든다.내가 라온아띠 1기로서 활동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처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이곳에 왔을 땐, 무엇이든 다 잘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꼭 위풍당당한 장군처럼.. 하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나의 모습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꾸만 작아지는 내 모습 사이의 거리를 실감할 수 있었다. 꼭 그만큼이 내가 좁혀야 할 과제라 여겼다.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말로만 '이해한다.'고 '이건 다름의 문제야..'라고 하면서 정작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후회는 언제나 꼭 한 발 느리게 다가와 아쉬움을 남긴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이제서야 진심으로 그 늦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은 5주안에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더 분발하려고 한다. 누구에게 5주는 너무나 짧은 시간 일수도, 또 다른 누구에게는 같은 시간이 충분하거나 혹은 길게 느껴질 것이다. 부디.. 나에게는 남은 5주가 더 큰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고도 값진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 클리핑] #6. 필리핀 국민 영웅 마니 파키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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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bantayan 교통마비 12월 7일. 10시 30분경부터 new bantayan 지역의 대중교통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순시온의 한 바랑가이인 new bantayan은 아순시온의 중심 바랑가이라고 할 수 있는 cambanogoy와 오토바이로 15분가량 떨어져 있어 cambanogoy로 가거나 따굼시티 까지 가려면 멀티캡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 그러나 이날 10시 30분쯤부터 동네에 어떤 대중교통도 지나가지 않아 주민들의 발이 꽁꽁 묶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인즉슨, 같은 시각 필리핀의 국민영웅인 ‘pacquiao(29)'의 복싱경기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경기 때는 온 국민이 TV앞에 모여 그의 복싱 경기를 보기 때문에 드라이버들 역시 생업을 중단하고 ’국가적 대사‘라 할 수 있는 그의 경기를 시청한다는 것이다. 더군다가 이번 경기는 ’골든보이‘로 유명한 미국의 ‘오스카 델라 호야(35)‘와의 경기였고 많은 전문가들은 호야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필리핀 사람들이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은 하필이면 아순시온 YMCA로 자원 활동을 온 한국인들이 new bantayan의 캡틴인 ALVIN S. ALMEDA Sr 댁에 홈스테이를 온 두 번째 날이기도 했다. 그날 따굼으로 나갈 계획이었던 그들 역시 꼼짝없이 박이 묶이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 멀티캡을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아 유난히 더웠던 그 날의 날씨 때문에 운전자들이 쉬나 싶었다고 한다. 한국인 봉사자 강지혜 씨(22)는 “이유가 파키아오의 경기때문이라는 걸 알고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그렇지만 그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GYM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구경하고, 리뷰까지 꼼꼼하게 챙겨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파키아오가 얼마나 큰 자부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또 어제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오늘의 경기 시간을 묻고 확인하는 등 이번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더라구요. 비록 스케줄에 지장이 생겼지만 그 덕에 필리핀 사람들과 그들의 영웅이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을 지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참 재미있었어요.” 이날 경기는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에서 열린 웰터급(66.68kg) 12라운드 논타이틀 경기로 파키아오의 빠른 스트레이트급 잽을 견디지 못하고 호야가 기권해 TKO패를 당했다. 승리의 챔피온 벨트가 필리핀의 복싱 영웅에게 돌아갔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필리핀 사람들의 인사말은 “오늘 피키아오 경기 봤어요?” 였다. “종종 필리핀 사람들로부터 파키아오를 아냐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어요. 솔직히 복싱에 관심도 없고 해서 당연히 몰랐죠. 그래서 단지 꽤 유명한 운동선수이겠거니 했어요. 우리나라의 박태환이나 김연아 정도 되겠지 생각했는데 이들에게 피티아오는 단순히 국위 선양하는 동포 이상의 존재인 것 같아요. 물론 워낙에 스포츠 스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이 곳 사람들의 말 그대로 ‘필리핀의 영웅’이에요.” 한국인 봉사자 김지은 씨(22)가 말했다. 파키아오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출신으로 일로카노(필리핀 민족 중 하나)이다. 현재는 마닐라와 다바오에 집이 있어 두 곳을 오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파키아오는 6월 미국의 데이비드 디아즈(32)를 9회 KO로 꺾고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아시아인 최초로 4체급을 석권했다. 호야를 꺾은 파키아오의 전적은 48승(36KO) 3패가 됐다. 호야는 이번 패배로 39승(30KO) 6패가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호야가 프로 데뷔 후 KO패를 당한 적은 한 번 있으나 기권하는 바람에 TKO패를 당하기는 처음이다. “오늘은 필리핀 모든 국민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즐기겠군요?” 하는 봉사자의 물음에 “물론이죠!”하고 바랑가이 캡틴이 술 한 잔 하시고 기분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승리를 환호하고 있는 마니 파키아오.기권하며 수건을 던지고 있는 호야필리핀 언론은 그의 승리는 대서특필 했다.'심플 리빙'을 지향하시는 멋진 new bantayan의 캡틴.두개의 하늘을 가진 평화로운 new bantayan.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열 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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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매일 비슷비슷한 생활과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소소한 갈등과 어려움은 항상 존재했다. 하물며 말도 잘 안통하는 타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현지인 뿐만 아니라 팀원들 역시 포함)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선 성장통처럼 따라오는 고통이 여전히 힘들지만, 언젠가 이 통증이 끝나면 그 전보다는 한뼘 쑤욱-더 성장해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낸다. 그렇게 성장통을 겪고 또 겪고 여러 번 겪다보면 그땐 정말 어른이 되어있겠지- PART 1. 현지인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가 이 곳에서 하는 프로젝트는 커다란 상승폭을 그리며 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아순시온 YMCA 유치원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계획해서 직접 운영하기까지 얼마나 어설픈 과정과 시행착오들을 거쳤던가. 아순시온 YMCA에 딱 4명 있는 우리 또래의 스탭들은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일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기엔 우리만큼 어리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우리 스스로가 독립심을 갖고 주체적으로 일을 해나가야 했다. 사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백팔번뇌를 거치며. 프로젝트에 대한 스탭들의 무책임함에 분노하고 겨우 가라앉히고 그러다 다시 끓어오르면 밖에 나가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치고 돌아오곤 했다. 미팅을 하면서 스탭들에게 여러 번 거듭 강조하고 마지막엔 애원하다시피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고 일하자고 말을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YMCA 유치원 준비물로 필요한 것을 말하면 3주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아이들 따갈로그 어와 음악을 담당하는 스탭은 하기 싫은 날엔 말없이 사라져버린다거나 아주 사소한 업무만 생겨도 나 오늘 바빠서 수업 못해- 하는 식으로 나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10월 말경에, 간사님들이 오셨다가 가신 후 스탭과 우리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간사님들이 사무총장님께 부탁드리고 가셨던 몇 가지 사항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매주 주말마다 있는 홈스테이 때문에 우리가 자신을 충전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아신 간사님들이 홈스테이를 줄일 것을 요청하셨는데, 홈 스테이는 2주에 한번으로 줄어들었지만 홈 스테이가 없는 날은 15KM 걷기를 한다던지, 홈 스테이는 아니지만 다른 이름으로 필리핀 가정에 가서 잠을 잔다던지 하는 다른 일정을 매번 잡으셔서 결국 우리는 아직도 이 곳 필리핀에 와서 4개월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또 하나는 미팅인데, 아이코리아에서 우리가 했던 잦은 회의들이 무색할 정도로 이 곳 스탭들은 미팅을 갖지 않는다. 아주 중요하고 큰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미팅이 열리는 데, 그것은 미팅이라기보다 단순한 공지사항을 알리는 성격이 짙다. 사무총장님이 일방적으로 공지를 하시면 스탭들은 따른다.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것을 염려하신 간사님들께서 미팅을 자주 해주실 것을 부탁하셨는데 역시 전혀 지켜지질 않았다. 우리는 미팅하자고 스탭들에게 요청을 하면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다. 큰 행사가 잡힌 것도 아닌 데 도대체 왜 미팅을 하자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스탭들 때문에 우리도 마음이 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미팅 때 스탭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역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할 말이 없다는 뜻이 된다. 미팅의 의미부터 서로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으니. 잘 될 턱이 없었다. 어쩌다 스탭들에게 바라는 점을 얘기하면 -예를 들어 자기가 맡은 수업은 책임감을 갖고 하자 혹은 사정이 생겨 수업을 못하게 되면 최소한 전날에라도 미리 말을 하자. 정도의 것들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며칠을 고민을 했다. 라온아띠 룰 중에 모든 것은 스탭이 정하는 대로, 스탭의 의견이 최우선이라고 했으니 이 곳의 방식을 따를까. 거기다 스탭과 갈등 일으키다 경고 두 번이면 우리 한국가야 하잖아 아무것도 문제제기도 하지 말고 몇 달만 더 참을까. 고름은 결국 터뜨려야 낫는다.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질러버리자! (당시 분노모드였던 나) 투명인간이라 생각하고 무시해버리자, 사무총장님께 가서 스탭들의 만행을 다 일러버리자 등등 여러 가지 해결책(?)이 나왔다. “우리가 직접 그들에게 보여주자.” 우리의 마지막 결론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아순시온 YMCA에게 손님이 아니라 스탭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곳 스탭들이 우리를 언제까지나 손님처럼 잘 대해줘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스탭들이 미팅을 원치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미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무 시간엔 사무총장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스탭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면 나한테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 하라고 빙빙 돌리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사무총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일을 추진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일도, 꾸미는 일도, 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했다. 색지에 아이들 사진으로 벽에 붙일 벽보를 만들었다.지혜가 밑그림을 그리고 나와 언니가 그라데이션을 몽글몽글 주고 있는 중.(아트 티처로서)우리가 아이들 출석표를 작성하고 색지로 개인 출석카드를 일일이 만들어 왔을 때 스탭들이 다가와 이게 뭐냐며 관심을 보였다. 이름표를 직접 만들고 회색 YMCA 사무실이 칙칙해 아이들 사진을 찍고 색지로 벽면을 꾸몄다. 얼마전부턴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스탭들이 우리보고 아티스트라며 칭찬도 해주고 우리가 무언갈 열심히 만들고 있으면 와서 도와줄 거 없냐며 먼저 묻기도 한다. 미팅도 여전히 먼저 요청하지는 않지만 예전만큼의 거부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부터 만들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트리. 아직 산타와 루돌프가 없다.트리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불일 생각이다.^^ 어제는 작은 변화 하나가 보였다.전에 우리가 벽을 꾸미려고 샀던 색지 중에 노란색 종이가 한 장 없어진 것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저쪽 책상위에 노란색이 보인다. 다가가서 봤더니 스탭들이 우리가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붙이고 주위에 색연필로 꽃을 그려 색칠을 해놨더라. 쓰려고 남겨뒀더니 말 한마디 없이 맘대로 쓴 게 아주 잠깐 괘씸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피식피식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근데 나비랑 꽃 모양도 똑같이 그려놨네. 젊은 사람들이 창의력 없기는 쯔쯔. 그 땐 별말 않더니 그래도 내심 꽤 괜찮아보였나 보지? 스탭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 건지를 너희가 직접 보여주고 실천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촉매제가 되어라- 간사님들이 말씀하셨던 그 방법이 그들에게 조금씩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우리가 말로 그들을 닦달하는 건 잔소리밖에 되지 않고 자칫 그들에게 자격지심을 불러일으켜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팝송이 볼륨 가득 빵빵 틀어져 있는 사무실 한가운데서 우리끼리 회의를 하면서도 -이거 지금 자극되고 있긴 하는 거지? 우리가 지금 회의를 하고 있다는 걸 쟤네들이 알고 있긴 해? - 참 효과가 의심되는, 속도가 더딘 방법이었지만 분명 긍정적인 자극이 된 것 같다. 아! 그리고 혹시 오해할까봐 덧붙이지만, 우리와 스탭과의 갈등은 거의 대부분 업무에 한해서였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다들 단세포들처럼 같이 노래 부르고 시시한 농담 따먹기(예를 들어 배나온 정도에 따라 임신 몇 개월인지 나눠대는, 어디 초등학생때나 했을법한.) 를 하릴없이 해대는 또래의 친구로 순식간에 다시 컴백! 초영 언니 생일파티때 우린 모두 광란의 밤을 보냈다. 옆에는 우리의 세컨 보스 "또또" 그러나 나는 그와 사진찍은 기억이 없다.....(과음에 파리해진 저 얼굴을 보라)YMCA 스탭인 앨빈과 또또.노란색 옷을 입은 앨빈은 나와 동갑인 21살인데, 여자친구와 춤에 푹 빠져YMCA는 그에게 있어 3순위 안에도 못든다. 심심치 않게 음악 수업을 안하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려 항상 우리의 속을 썩이지만다행인지 불행인지 성격이 참으로 밝아서 미워할 수가 없다.주황색 옷을 입으신 분은 우리 사무총장님.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나온 또또.그리고 그 옆에 검은 색 티셔츠는 오늘의 주인공 마리즈. 분홍색 티셔츠는 아이린. 마리즈 생일을 맞아 우리는 시티에 가서 케잌을 샀다.사무실에서 생일 파티를 조촐하게 열고, 그리고 나서 우리는 케잌을 철저히 부셔버렸다.I'll eat you up~ na na na naaa~♩ 아카데미 올림픽 때 찍은 YMCA 스탭 단체사진.빨간색 옷입은 남자분은 이름이 "바봉" 인데, 사무총장님 보디가드이다.처음엔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초영 언니에게 맨날 "바보이(돼지)" 라고 놀림받는 신세가되어버렸다. 사무총장님 보디가드인데도, 사람들 붐비는 곳에 가면 가방 크로스로 매라며챙겨주는 바봉이 있어 마음이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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