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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사무실 탄생 축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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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날씨와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인해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라온아띠 사무실 겸 교실 탄생~^^축하해주세요!!!
[4월] 활동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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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5월 8일까지 활동 보고서
#2. 어떤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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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기대하고 이 곳에 왔는가?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는가?이 곳 캄보디아 시엠립에 온 지 어느새 3개월이 다 되었지만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인 것 같다(진부한 대답을 제외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고 싶어서 왔을까. 어떤 아름다움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녹아들어 앞으로의 삶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까. 어떤 아름다움이 이 곳-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동글동글하게 남게 될까.밥퍼 센터에서의 일과는 전에 기록한 바가 있다. 그 외 주요 활동은 전부 교육인데, 하나는 센터에서 월,수,금요일에 하는 오후 교육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를 비롯, 여은이와 지훈오빠는 영어를, 가영이는 미술을, 대규오빠는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5월 18일부터 새로운 텀이 시작되어 약 한달여 간의 교육을 진행 중에 있다.어쨌거나 매일 밥퍼 센터에서도 보고 교육 때에도 보니, 센터 근처에 사는 아이들과는 엄청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가까워짐이 언제나 행복한 시간만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사람에 대해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이는 자칫 오해라도 생길 경우 보다 큰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얼마전 작은 사건이 있었다. 장황하게 설명하긴 길다. 하나는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아이들이 갑자기 배우지 않겠다고(표면적인 이유는 '엇미은 로이(돈이 없다)'라는 것이다-배우는 것에 일종의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해 한 텀에 1$(한국어,영어)를 지불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자선단체 소속으로서 돈에 대한 부분을 다루기는 참 힘들다-) 하며 내게 다소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생각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에 난 꽤 놀랐었고 그 사건은 여태까지의 캄보디아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또 한 사건은 다른 팀원의 돈이 도난된 사건이었다. 그리 큰 돈은 아니라 했지만 문제는 이 팀원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 중 한 명(또는 몇 명)의 소행이라는 것이었다. 이 팀원 또한 이 상황에 무척 힘들어 했다. 어쩌다보니 사건은 다 돈과 관련이 있지만 우리가 실망한 것은 다름아닌 '사람'에, 그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이 곳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와 맑고 높은 하늘.. 캄보디아를 처음 알았을 때 덮였던 콩깍지(?)와 같은 이런 아름다움들은 순간 아웃오브 안중이 되어버렸다. 시선은 국경이나 언어가 아닌 '사람'과 '사람'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면서도 '오. 이제야 좀 이 아이들과 친해진 것 같군. 이제야 내가 이 곳에 조금이나마 속한 것 같다.' 하는 오묘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일상에 희노애락이 있는 한, 이들과 함께일 때에도 희노애락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곳에서 서로를 뭉클하게 할 아름다움은 귀국하는 그 날까지 계속 찾고 또 찾겠지만, 너무 친근해서 혹은 편해서 느끼는 이 아름다움도 오랜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사진 이야기> △ 한국어 수업 칠판- 크마에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이해한다. 하지만가르치는 사람이 힘들어진다. 때론 괜한 것을 가르쳐 학생들에게 혼란만 자아내기도 한다(오른쪽 아래..-_-;).△ 꼬마아이들은 언제나 사진찍기를 좋아한다 :)△ 5월 22일, 프놈펜 밥퍼 센터 근처 마을- 프놈펜 밥퍼센터 근처에 위치한 언동마을은시엠립의 마을보다 훨씬 더 열악한 곳이다. 보는 나 조차 마음이 좋지 않았으나아이들의 웃음은 오히려 그런 나를 위로하는 듯 하다.
라온아띠 in CAM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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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캄보디아 팀 활동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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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5일 ~ 4월 4일까지의 활동을 캄보디아 팀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내 친한 친구 캄보디아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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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말실수로 숙소를 우리 집이라고 하고 캄보디아를 우리나라라고 할 정도로 친숙해져버린 캄보디아!!! 8월에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한국에 돌아가는 걸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나에게 정든 캄보디아!!! 네이버, 구글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캄보디아 소개를 잠깐 접어두고 지금까지 한 달 반가량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느낀 캄보디아, 내 나름의 캄보디아를 정의 내리고자 한다. 첫째, 캄보디아는 공 하나로 어린아이부터 청장년층 까지 함께 친해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공하나 들고 마을에 들어가면 어린아이부터 청장년층까지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삼삼오오 모이고 나를 환영한다. 공 하나에 이런 환영을 받을 줄이야;; 크나 큰 환영에 정말 놀랍고, 고마운 곳. 바로 캄보디아다. 또 나이차가 심하게 나는대도 불구하고 공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나라, 전혀 어색하지 않는 나라, 캄보디아다.둘째,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인정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 캄보디아다. 나는 배구를 좋아한다. 시간이 남으면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 가서 배구를 하곤 한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가면 친절히 자전거 그늘에 두라고, 좋은 장소까지 알려준다. 그리고 배구 하다가 지쳐 있으면 배구 같이 한 친구가 집이 먼데도 불구하고 뛰어가서 물 먹으라고 물도 가져다준다. 물이 많이 부족한 나라인데도 나에게 물까지 내어주는 사람들, 고마워서 눈물이 난 적이 많다. 부부싸움, 아이들 싸움이 나의 등장으로 멈춘 적도 있었다. 내가 특별한 존재도 아닌데, 이 곳 사람들은 나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센터에서 멀리 사는 아이들을 센터로 데리고 오기 위해 현지스텝분과 함께 오토바이 개조해서 아이들이 많이 탈 수 있게 만든 것을 타고 마을로 자주 간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서서 탈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내 자리를 만들어주는 아이들, "봉쁘럭, 쏨 언꼬이" (형, 여기 앉아)를 외치는 아이들. 이처럼 내가 특별해 질 수 있는 곳, 착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 바로 캄보디아다.셋째, 지금 습도 50퍼센트, 기온도 40~45도씨 정도인데도 불쾌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신기한 나라, 캄보디아다. 한국에서 만약 이 날씨가 지속된다면 짜증나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캄보디아에서는 짜증나긴 커녕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하다.(행복하다. 즐겁다)넷째, 다양성이 충만한 곳이라 지겹지 않는 곳, 바로 캄보디아다.다일에서의 밥퍼나눔활동이 반복된 생활이라 지겨울 만하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양하고 개, 소, 닭, 풀, 꽃, 과일, 나무 등 자연이 나에게 주는 것도 다양하고 하루하루가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느끼는 것이 매번 다르고 새로움이 많다. 신기하다. 일상에서의 권태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지금까지 한 달반 가량 살면서 내가 느낀 캄보디아는 위의 적어 놓은 것과 같지만 앞으로 남은 생활동안 캄보디아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채워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내가 가진 게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많다 적다를 떠나서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시간, 열정이라는 걸 마음 속 깊이 새겨 남은 캄보디아 생활이 나에게 안으로 충만한 시간이기를 바란다.
#1. 처음_ 다일센터에서의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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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 어떤 말로 시작할 지 조금 부담이 된다. 오늘은 4월 17일. 캄보디아라는 나라로 온지도 벌써 한달 하고 12일이나 지났다. 그동안 나와 우리팀은 어떻게 지냈나를 생각해보려니 아득하다. 그래서 일기의 기록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소 감상적인 이야길 하기 전에- 잠깐 현재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오늘 내용은 이것으로 할란다). 우리의 활동은 다일 센터에서 주를 이룬다. 입국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했다. OT는 하루로 족했다. 평일 오전 8시 20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면 숙소에서 약 12km(내 짐작;;) 거리에 있는 시엠립 다일비전센터로 향한다. 새벽부터 그 날 식사의 장을 봐온 현지 스텝들과 '아론 소스다이(아침인사)'로 반갑게 인사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식사 메뉴는 다양하진 않지만 무척 맛있다. 볶음밥, 고기볶음, 계란말이, 캄푸치아 커리(여기 와서 딱 두번 먹음T-T), 뜨러꾸얼(미나리같은) 볶음탕(??) 등. 봉쓰라이(언니) 두 분이 요리를 맛있게 참 잘 하신다. 요리를 하는 곳에 파견된 해외봉사단? 덕분에 난 독특한 내공이 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수박 썰기의 달인이 되었다든지, 엄청 큰 계란말이를 몇 개씩 후라이판에 만들기 시작했다든지.. 한국에 있었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일들을 하려니 원.. 처음엔 느려터지고 실수도 많이 해서 오히려 일을 망쳤지만 점차 솜씨가 좋아지고 있다. 너무 거리가 멀거나 여건이 좋지 않아 밥을 지원해줄 수 없는 곳에는 빵을 만들어 제공한다. 주로 소보루빵을 만든다. 덕분에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도 배웠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소보루빵을 먹고는 정말 맛있어서 자꾸자꾸 먹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내 옆에서 뱃속으로의 입수를 기다리고 있다. ㅎㅎ 이렇게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밥퍼 차량이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큰 트럭 한 대와 툭툭이 한 대가 사이좋게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아이들이 차량으로 달려오는 모습은 정말 정말 정말 사랑스럽다. 리읍이라는 여자아이는 지훈오빠를 좋아하는데 내가 데리러 가는 날에 날 먼저 보면 “지훈 마오?, 여은 마오?(지훈오빠 왔어요?, 여은언니 왔어요?)”하고 물어본다(여은이는 컴퓨터 작업을 하느라 몇일 센터에 안갔었다). "크뇸 엇쫄쩢 때꾸르~~(대규오빠 싫어요~)"라고도 한다. ㅋㅋㅋ 점이 커서 그렇다나;;; 귀여운 녀석이다. 센터 근처 마을 아이들을 포함, 이른바 빈민촌이라 하는 프놈끄라움 마을, 톤레삽 마을의 아이들까지 모두 센터에 집결하면, 센터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처음엔 외국인이라고 우리를 신기해하던 아이들이(이 때에는 정말 사교성 좋고 애교가 많은 특정 아이들만 다가온다, 뭐 어쩔 수 없는 것), 갈 때가 된 것 같은데도 안 가니까;;; 더 잘 다가와주기도 한다. 같이 놀아줄 아이들은 많은데 몸이 한 개니, 그야말로 한계를 느낀다. 특히 체력의 한계가 빨리 오는 내게 자꾸 “봉쓰라이 이우(업어줘요)~”하면, 하…. 귀신 같은 아이T_T. 나의 작은 목표는 그저 하루에 한 아이 이상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오늘도 인, 닛, 사우, 끼윳 네 명이나 외웠다. 아이엠그라운드;를 소개해주면서 하니 서로 써바이써바이했다(즐거웠다). 배식,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밥 배식에 크게 데인 적이 있다. 밥을 퍼나르다가 나중에 밥이 부족해서(너무 많이 배분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빵을 준 사건이 있었더랬다. 와- 몇 안되는 충격 중 하나였다. 너무 미안했다. 그 이후론 배식을 할 때 수박을 주든, 계란말이를 주든 자꾸 아이들 수를 점검하면서, 그야말로 긴장하면서 배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당히 모두에게(아이들은 적게는 400명에서 6-700명까지도 간다고 한다) 잘 배식을 했을 땐 정말 기쁘다. 내가 이렇게 단순한 일에 기뻐할 줄 몰랐다;; 아이들은 비닐봉지를 잘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밥 혹은 밥을 더 받아서 집에 들고 간다. 자기밖에 모를 것 같은 그 어린 나이에 집에 있는 가족들을 챙기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대용량의 설거지와 청소가 시작된다. 그렇게 수많은 그릇들을 한꺼번에 설거지 해본 것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플라스틱 식판이라 그리 무겁진 않다. 엄청 강한 설거지 세제는 처음에 우리의 손 껍질을 다 앗아갔다. 이젠 손이 모두 적응을 해서 문제없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간 자리도 엄청난 것은 마찬가지. 캄보디아의 쌀이 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것을 이 때 참 감사하게 된다. 우리나라 쌀처럼 찰진 쌀이었으면 다 눌러 붙어서 청소하기가 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뒷정리를 모두 마치면 밥퍼 일과는 종결이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먹는 밥은 정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맛이다. 내가 인지한 이곳 캄보디아 시엠립에서의 밥퍼 활동은 사실 단순한 매일의 반복이다. 우리는 보통 반복되는 일상을 무척이나 싫어하기에 보다 새롭고 의미 있고 멋진 일들을 찾으려 한다. 그렇지만 이 활동은, 정말 ‘밥’을 나누는 일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했던 그런 급식이 아니다. 정말 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일이 난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이 일에 동참하는 것에 감사할 때가 많다. 물론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다시 힘을 얻게 하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서로에 의해 즐거울 수 있어 좋다.
캄보디아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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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09/03/07 수상학교들 주변에 설치된 우물 및 화장실 내/외벽 페인트칠을 갑작스럽게(!) 돕게 됨 하늘이 진짜진짜 예뻐요,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우리들 얼굴 벌써 구릿빛.... ㄱ- 지훈왈: 유림아 고마워, 책. 수희왈: 몸이 근질거려. 내가 제일 안씻는 것 같아. 대규오빤 줄 알았는데... 여은왈: 3일만에 얼굴이 타버렸네요. 거참..... 가영왈: zzZ 깨우지마.. 대규왈: 태국에 전화해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람푼전화번호로 여러번 시도했으나 실패 ㅋㅋㅋ 다들 잘지내삼룡
D-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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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4.끝날것 같지 않았던 '여름'이 거진 끝나간다.올해의 여름은 내게 유난히 더웠고, 뜨거웠으며, 또한 길었다.캄보디아행 비행기에서 떠올랐던 수많은 걱정들과, 불안함들.권유하는이 없이 내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었고, 오히려 봉사는 무슨 봉사냐며, 이제 3학년인데 맘잡고 공부나 하라는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어야만했다. 왜 난 이길을 선택했을까.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5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길었고, 캄보디아는 너무나 멀었다. '라온아띠'를 지원할 시기 난 심적으로 매우 지쳐있었다. 소소한 일도 즐길 여유가 없었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정해진 길로 순서를 정하며사는데 나만 방황 하는것만 같았다. 점점 팍팍해져갔고 웃음도 잃어갔다.그때 문득 어린시절이 그리워졌다. 알록달록 경쾌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싶었다. 그때 가지고 놀던 모든 소꿉놀이와, 단짝은 '아이'시키고그저 '엄마'흉내만 내던 내 순수하던 때로 아무 미련없이, 전혀 돌아보지 않고돌아가고 싶었다. '라온아띠'를 지원하면서 난 봄을 준비하는 소녀처럼 마냥 설레었다. 1차 서류전형을 합격하고, 2차 면접을 치루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23:1의 경쟁률을 통과했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기적이고 불만만 가득했던 내가 마치 사랑을 전하는 '천사'가 된 것만 같았다.그렇게 나는 캄보디아에 왔다.막상 캄보디아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했다. 모든것이 새로웠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내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낯선 우리들에게 웃어주었고, 친구가 되길 바랐다. 사람 사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도 꽤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온지 몇일 되지 않아 어쩌면 예고 되었던,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난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빈민가에서 헐벗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내 주머니100리엘 짜리 하나라도 꺼내 건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머니에 손을 뺐다 넣었다를 여러번, 결국은 건내주지 못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야 했다. 아이코리아에서 받았던 강의 내용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고, 실제로 빈민가의 사람들이 이미 들어와있는 많은 NGO단체들의 도움을 받으며 별 노력없이 살고 있었다. 자칫 위선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그들이 구걸로 삶을 연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했다. 그 선을 지키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집짓기 사업.혜민 언니,나, 초이, 은정이 이름으로 언동마을이란 빈민가에 집을 4채 짓는 사업을 시작했다. 집을 짓는데 한 채당 드는 돈은 300불. 100리엘 짜리 하나 주는 것도 고민이었던 내게 집짓기 사업은 더 고민해보아야할 문제었다. 모두 똑같이 가난한 빈민가에서 4채만 선별한다는 것이 도토리 키재기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건 아닌것 같은데요.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촬영까지 겹쳐 그저 따라가기로 했다. 솔직히 세 채는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 삽질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봉사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고, '팔뚝 보고 뽑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체력했던 우리 넷이 드디어 제 몫을 다하고 있는것 같았다.위기이자 기회가 온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촬영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그냥 언동마을에서 삽질 몇 번하고, 벽돌 나르고, 별 고민 없이 집만 짓고 있던 우리에게 KBS측은 집을 지어주는 대상을 선정하는 것 부터 시작해 하다 못해 집을 짓는 자제를 고르는 것 까지 모두 '능동적'으로, 우리 스스로 할 것을 요구했다.다행히도 우리 넷은 모두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다. 처음엔 집짓기 사업에 부정적이었던 나도한 가정이 우리의 땀방울로 지어진 집에 행복해 하는 걸 보면서나누는 것에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고, 그저 그들의 삶을 격려하고 눈맞추고 입맞추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마음 먹게 되었다.벌써 4개월하고도 2주가 흘렀다.공항에서 엄마랑 다시는 못 볼듯 울고 불고 헤어진지가 어제 같은데몇일 전 내게 엄마는, 서울은 많이 춥다며 두꺼운 겨울 옷 챙겨 공항으로 나오시겠단다.뜨거웠던 여름은, 5시간만에 코빨개지는 시린 겨울이 될 것이다. 상상만해도 뼈 쏙까지 시려온다. 여름과 작별을 준비하는 이 순간. 이 곳에서의 추억들이 머리속에 스친다. 웃고 있던 얼굴들. 스미고간 미소들. 기분 좋게 머물다간 자리들. 함께 나눴던 이야기...12번의 종이 울리면, 변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돌아와버리는 신데렐라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고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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