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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최정훈
1
99+
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폴 발레리 이솝 우화 이야기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서로의 집에 초대해놓고 자신만 먹을 수 있는 그릇으로 음식을 대접하던 그 이야기. 어렸을 적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였던 그 이야기를 저의 베트남 이야기를 통해 들려드리겠습니다.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 차이, 날씨 차이, 환경 차이, 음식 차이 등등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차이와 다름이 저를 덮쳐왔습니다. 한번은 제가 한국음식을 베트남 분들께 대접했는데, 감자전이 맛있다고 생각해서 요리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였습니다. 반대로 베트남 분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대접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별로 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밥을 먹는데 다 먹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배부르더라도 한 톨도 안 남기고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밥이 더 늘어나있고, 그래서 또 겨우 다 먹었는데, 다음날에는 더 늘어나있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남부에서는 밥을 다 먹으면 배가 덜 배부르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주신다는 겁니다. 다름과 차이로 인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다르다는 것 만으로도 힘들 수 있구나, 많은 생각들이 저를 스쳐갔습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만약에 여우와 두루미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서로 자신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먹지는 않을까요? 제가 이해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의 마지막이 조금 맘에 안 듭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각자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 베트남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시죠. 베트남사람들은 코를 파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더럽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살다 보니 이제 저도 꽤나 코를 많이 팝니다. 베트남은 더운 편인데 긴 팔을 입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나 건기가 되면 더욱 많아집니다. ‘이 더운 날씨에 왜 긴 팔을 입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지금 긴 팔을 2벌이나 샀답니다. (베트남 남부 사람들에게 베트남의 12월, 1월은 추운 기간이랍니다.) 베트남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무단횡단은 엄두도 못 냈지만 이제는 능숙합니다. 저는 이솝 우화를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두루미에게는 스푼을 주고, 여우에게는 빨대를 줍니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에게 동화되는 것, 그것이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베트남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냥 그저 제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서 그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 삶이 되는 것. 저는 그것이 라온아띠로서 제가 생각하는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이 그리 쉽지 많은 않습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은 한국사람들인 팀원들과의 차이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되겠죠? 여우와 두루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신의 상상력에 그 이야기의 끝을 맡기겠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살고 있는 분들도, 또는 확고한 목표나 신념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생각은 있으되, 사는 대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 보듯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부정적인 의미라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삶이란 수많은 편견과 오해, 의심이 가득한 것이라고.. 아마도 제가 살고 있는 삶이 이토록 슬프기 때문에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왜 갑자기 궁상맞게 삶에 대한 이야기일까’, ‘뭐 저런 개똥철학이 있나’ 하시는 분들도 있고, ‘내 삶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한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뉴스기사들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지, 잔혹한 범죄들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그런 일들. 이러한 현상이 단지 개인의 성격의 문제나 몇몇 정신이상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또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현실들, ‘같이’나 ‘함께’가 아닌 오로지 ‘나’만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가끔 마주치진 않는지, 자신이 그렇지는 않은지.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을 위한 기술이 아닌 돈을 위한, 기술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론 지금 제가 하는 말들도 하나의 편견이나 오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의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진지했나요? 그래도 세상은 참 살만한데 말이죠? 제가 살고 있는 베트남도 아직은 참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베트남이 한국보다 훨씬 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거나 살기 편한 곳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좀 더 사람냄새 나고 좀 더 순수함이 느껴지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특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리고 5개월을 살아가면서(지금은 4개월 째) 보았던 베트남이 저에게는 베트남의 모든 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고, 조건 없이 다정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그런 사람들이 저에게는 베트남이라는 곳의 기억 모두입니다. 아직도 누군가 잘해주지 않으면 똑같이 잘해주지 않고, 누군가 다가오지 않으면 다가가지 않고, 경쟁과 질투만이 익숙한 저에게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끔은 이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잘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 가끔은 받는 것에 익숙해져 더 많은 것을 원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게 저에게는 오히려 익숙했으니까요.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베트남에서 라온아띠로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들었습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말입니다. 내가 사는 삶 자체가 내 생각보다 아름답다면 뭐 하러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야 할까요? 물론 베트남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들이 제가 말한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났던 돈보다는 마음이 풍요롭고, 머리보다는 가슴이 따뜻했던 그 분들이 있었기에 저의 베트남 생활은 정말 따뜻하고 풍요로웠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세상이기보다 사는 대로 생각해도 좋은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에세이,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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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미국의 한 재단에서 박람회를 하는데 스폰서가 필요해서 코닥이란 기업을 찾아갔지만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 재단은 경쟁업체인 코니카를 찾아가 수락을 받았죠. 재단에선 박람회 홍보 방안으로 카메라를 든 관람객들에게 필름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외국에서 행사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무료로 나눠준다는 건 당시에도 획기적인 일이었죠. 그 이벤트가 사람들 사이에 소문나자 코닥 측에서 뒤늦게 자신들도 스폰서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재단에선 그 제안을 거절했을까요? 아닙니다. 박람회 동쪽에선 코니카, 서쪽에선 코닥을 나눠주었고 박람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Never say 'No'!"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고 절대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마세요. 항상 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 2010년 10월3일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 강연회의 지휘자 금난새의 강연 내용 중)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 자신이 이미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 것처럼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고 한다. 무명인 그였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서 빈 사무실에 간판만 걸고, 당당하게 교환실에서 전화를 받았으며, 유명 영화감독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런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타이거 우즈 역시 프로선수가 되기 전 명함에 세계적인 골퍼라고 새겼고, 누구든 인사를 할 때마다 그 명함을 건넸다고 합니다. (“긍정이 만드는 세계적인 기적, 천명주 지음”의 내용 중) 긍정의 힘 위의 사례에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것뿐만 아니라 “긍정”을 실제 실행으로 전파하여 함께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행동하는 행복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인물들이 언급되었다. 긍정적인 말과 생각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기쁘고 충만하게 할 수 있는지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글을 읽고 한 명의 독자라도 긍정의 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사실 처음 에세이를 쓰란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막막했다. 어떤 주제로 어떤 내용을 채워야 할지. 결국 고민 끝에 ‘긍정의 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얘기해볼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라온아띠 단원으로서 해외에 파견되어있을 때도 당연히 좋은 일만 가득하지는 않다. 팀원간의 갈등부터 현지 스텝과의 갈등까지. 다만, 누가 그 좋지 않은 일들을 용기백배하게 맞서고 지혜롭게 극복하냐의 차이인 듯 하다. 실제로 필자 역시 언제 이런 다양한 일들과 감정변화를 경험할까 할 정도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회를 만들어준 라온아띠 사무국에 심심한 감사를 표해야겠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혹은 수많은 불평, 불만들. “덥다, 배고프다, 피곤하다, 귀찮다, 힘들다 등. (물론 필자의 팀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부정적인 말과 생각은 마치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와 같아서, 한 명이 무심코 뱉기 시작한 말이 금세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정말 그렇다고 느끼거나,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단순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만 과하게 강조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에서 주의할 점은, 오히려 지나친 긍정은, 특히 리더가 이 현상에 빠져있는 경우, 무사안일주의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파급력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일이 잘 풀리겠지’의 사고 방식으로 밑도 끝도 없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만들어낼 정도로 매우 크다. 이처럼 “긍정”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긍정”적인 결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긍정”이라는 생각의 힘만으로는 매우 위험하며,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한 실천적인 행동이 뒤따를 때 비로소 “긍정”의 힘이 발현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필자는 매일 긍정의 생각을 바탕으로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과는 물론 좋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메일을 보내도 좋다. ‘된다된다’ 해도 될지 안될지 모르는 판국에 안 된다 생각하면 될 것도 안되겠다. 입에 부정적인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 제발 그만해라.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개인에세이,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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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처음 써보는 에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말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베트남에서 생활한 지 벌써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여기에 담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넘쳐 나지만, 몇 가지 이야기들을 써내려가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베트남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솔직 담백하게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아시아의 좋은 친구’ 우선 나는 우리 팀 뿐 만아니라 라온아띠 4 단원들 모두가 고민해 봤을 만한 ‘아시아의 좋은 친구’ 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보았죠. 음, 무엇보다 이 질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다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는 외국 여행이 이번 처음입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외국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죠, 그러나 아주 좋은 기회인 라온아띠를 통해 저는 타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외여행이 처음인 만큼, 두려움이 많이 컸었습니다. 특히 나와는 아예 ‘다른 사람’ 일 것이라는 생각들로 꽉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느껴지고 멀게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많은 베트남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또 대화도 나누고 나니 그런 느낌들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느낀 내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 어느 곳에 있던지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면 누구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아시아의 좋은 친구’ 는 내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저는 주체 할 수 없는 행복한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고민을 시작되었죠, 그래서 혼자서 생각도 많이 하고, 팀원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얻은 답은, ‘마음의 문이 열렸다.’ 였습니다!!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이 곳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과 두려움으로 입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닫혀 있었던 것이죠. 지금은 이러한 편견들, 두려움이 신기하게도 말끔이 없어졌습니다. 제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의 벽이 라온아띠를 통해서 허물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때로는 다른 언어로 인해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 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건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넬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친구가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니까요.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론 당연히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겠죠? 당신의 꿈은 뭐예요? ‘꿈’이라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합니다. “대통령, 선생님, 의사 …” 누군가 나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저는 생각에 잠기거나 거창한 꿈을 말해야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꿈은 거창한 것이 전혀 아닌데, 저 또한 이런 고정관념의 틀에 박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위사람들이나 대학생들은 얼마만큼 많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간사님은 요즘 대학생들이 꿈 없이 살아간다고 안타까워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번뜩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베트남 오기 전의 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한달 계획, 하루 계획을 세우곤 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매일 마다 신문 보기, 영어 단어 10개씩 외우기 …등’ 사소하지만 작은 목표들을 잡고 저 나름대로 노력을 했었죠!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단순히 생활의 일부분으로만 생각해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베트남에서 다양한 많은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꿈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유치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희 반 선생님 중 예쁜 선생님(co hang) 한 분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봤었는데, 그 선생님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작지만 큰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거창한 꿈이 아닌 작은 꿈들을 우선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꿈들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뿌듯하고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에 오기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큰 마음의 힘이 생겼습니다. 물론, 앞으로 남은 2개월의 베트남 생활도 열심히 잘 보내야겠지요.^^ 꿈,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그만큼 자기 스스로 당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믿음,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렇듯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목표, 꿈의 중요성을 맘 속 깊이 깨닫게 해준 라온아띠가 너무 고맙습니다. 나에게 ‘진정한 꿈’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죠.예전에 나의 모습이 철 없이 당당하고 밝았다면, 이젠 내 안의 작은 꿈들과 생각, 고민들로 가득 채워진 나로 또 다른 당당함으로 성장할 이나연을 기대해 봅니다 !! 아자 ^^*
개인에세이, 나하나
1
99+
'나'라는 조각을 연결하는 시간 대학 졸업은 1년 앞두고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던 내게 라온아띠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주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턴 지원에 있었다. 유학생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에는 나만의 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인턴을 지원하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발 맞추어가는 인재라고 하기에는, 인턴 인터뷰에서 당당해질 용기가 없었다. 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프레임으로 당당히 지구시민 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는 이유였다. 사회에 발을 딛기 전,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찾고 싶어서 라온아띠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라온아띠를 통해 나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유학 생활이 나 스스로를 깨뜨리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라온아띠는 그 조각조각들이 하나가 연결 지어 더 유연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프레임을 많이 깨뜨리고 더 크고 넓은 범주의 프레임이 완성되는 과정을 거쳐가면서 더욱 더 좋은 아시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조금 더 갈망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시아의 친구” or 아시아의 날라리 라온아띠 활동을 하는 주중이나, 개인적인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주말이나, 늘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보게 된다. 처음 이 낯선 곳에 와서 약간 혹은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사소한 부분들이 어느덧 나의 삶에 묻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기분은 기쁨 그 이상이었다. 예를 들면, 새벽 5시가 되면 분주히 깨어 동네 길거리를 누비는 오토바이 소리와 이른 아침부터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정 사진 앞에서 기도를 하는 소리가 더 이상 껄끄럽게 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오히려 그 소리에 맞추어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내 자신이 만족스러웠다. 수 많은 프레임을 깨는 과정에 있어서 아주 손쉬웠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이다. 프레임을 깨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유치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다시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라온아띠의 본질에서 비롯된 회의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더 성장하라고 라온아띠로 선발된 것 보다, 그 전에 많은 고민들과 씨름하기를 기대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고민의 밀물과 썰물의 연속이었다. 주어진 답을 찾던 중,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 들어왔고 그 속에 스르르 녹아져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고민이 해결되었다. 그 동안 내 자신 스스로 만들어온 시계를 그들에 맞추어 조절하고 함께 일하고 놀고 어울리면서 나는 한국에서 온 손님이 아닌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베트남, 아픔을 나누는 친구가 될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나의 아픔마저도 감싸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비루한 모습마저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얼마나 행복한지. 베트남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 동안 보던 베트남의 아픔들을 사랑하기 까지, 같이 울어줄 수 있을 만큼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까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픔을 솔직히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는가?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는가? 지난 일을 돌이켜보니, 개인적으로는 남들에게 나의 아픔을 말하는 것에 대해 거리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동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에 온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행자의 시선으로 보다 보니, 베트남의 아픔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삐까뻔쩍한 베트남의 모습이 아닌, 조금 부족하고 서투른 베트남의 모습과 아픔을 보면서 같이 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갈망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내가 재놓은 기준에 있어서 최대한으로 탈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편하다고 해서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시선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는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했다. 다른 것을 이해한다는 것 낯선 환경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다른 점들도 수용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가끔은 불편 하다 못해 불평을 하게 된다. 하지만 라온아띠 생활을 하면서 감사했던 것은 이로 하여금 다른 환경에서 배우는 자세로 겸허해지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어느 환경이든 새로운 곳에 들어서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의 상태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 와중에 다름 속에서의 내면의 균열도 있었고 몇 차례 염증도 있었지만, 그러한 어긋남이 있었기에 더욱 내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지 않고 조절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싸우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사람이다. (심지어 사소한 다툼까지도)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니라, 귀차니즘의 일환이다. 언제나 늘 간단명료하게 생각하려 하고 나름 내 자신을 ‘쿨’하다는 성격으로 단정지어 왔는데, 다툼 없이는 돌파구를 못 찾는 때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몸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그걸 즉시 알려주는 병에게 감사해야 할 부분이 있듯이, 다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맨 밑바닥에 마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다른 부분을 알 수 있고 그 차이점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이해 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속적인 애증의 라온아띠 나는 앞으로도 라온아띠를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아마 평생 해야 할 듯싶다. 라온아띠를 통해 내가 배운 것들, 배우고 있는 모든 과정은 내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해외자원활동이라고 하는데 어떨 때보면 인생교육 프로그램 같기도 하다. 언뜻 스무 살 중반에 다다르면 그 동안 만들어진 개념들이 굳혀져 더 이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라온아띠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린 시선과 자세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그 개념 하나하나가 건설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과 고민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물론, 라온아띠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펼쳐졌으면 좋겠다. “학생” 신분에서 경험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경험해보고 싶어서 말이다.
개인에세이, 김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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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뜨거운 여름날 갑자기 에세이 한 편씩을 보내 달라는 간사님의 메일을 받고 저는 좀 막막했어요. 써야 할 말이 너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죠. 와서 식중독 걸려 고생한 얘기를 쓸까, 영어 때문에 조금 우울했었던 얘기를 쓸까, 여기 분들한테 받았던 고마움에 대해서 쓸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은 그냥 제가 이제껏 한 3개월 지내면서 느꼈던 솔직한 느낌을 쓸까 해요. 처음에 베트남에 오기 전에 제 마음은 많이 불안했어요. 처음 타보는 비행기, 처음 나가는 해외, 처음 해보는 단체생활 그 모든 것이 다 저에겐 처음이었거든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고 조금 걱정했었어요. 뭐 지금은 결과적으로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원래 처음이라는 게 설레지만 두렵잖아요. 그러한 복잡 미묘한 마음을 가지고 베트남의 공항에 내렸을 때 제가 느낀 베트남은 한 마디로 “우와!”였어요. 저희를 마중 나오신 베트남 YMCA 스텝 분들의 차를 타고 우리가 지내게 될 호텔로 가는 내내 바라본 베트남의 시내의 풍경은 그야말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좋았어요. 그리고 오토바이가 정말 엄청 많았죠. (이건 정말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베트남과 진짜 와서 본 베트남은 너무 달랐었어요. 사실 베트남 하면 전부다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제 인식 역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저는 정말 놀랐어요. 화려한 네온사인들, 높은 빌딩, 좋은 차들 그야말로 발전한 도시 같았어요. 그러면서 베트남이 엄청 잘 산다고 생각했었죠. 베트남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제가 여기에 3개월을 머물며 다시 바라보게 된 베트남은 또 달랐어요. 엄청 크고 예뻤던 집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던 작은 천막 집, 내 하루 병원비를 한 달 월급으로 받던 아이들, 화려하고 큰 시내에 관광 온 내국인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빵 하나라도 팔기 위해 노력하던 할머니, 한창 연필을 손에 쥐고 공부할 때에 빨간 바가지를 쥐고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처음 느꼈던 인식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결정적으로 제 인식을 바뀌게 해준 계기는 워크캠프였죠. 워크캠프는 이 곳 호치민이 아닌 “벤체”라는 또 다른 지역의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학교의 담장을 지으며 일주일을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 곳에 간 저는 정말 또 한번 깜짝 놀랐어요. 호치민 과는 정말 완전 달랐거든요. 온통 숲이고 잘 닦이지 않은 도로, 솔직한(?) 화장실, 간소한 집, 낡은 건물들. 이 때까지 내가 생활 했던 곳, 내가 봐왔던 곳은 호치민 이었는데 이 곳이 베트남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던 저는 혼란이 왔어요. 어느 게 베트남이지, 어느 게 베트남의 진짜 모습이지 라는 생각이 가득 찼었죠. 긴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여기의 이 소박한 모습도 베트남의 모습이고 호치민의 그 화려한 모습도 베트남 모습이다. 그렇지만 ‘호치민’만을 보고 베트남을 다 봤다고는 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정말 워크캠프는 베트남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보게 해준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아시아의 친구 이 곳에 지내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은 “Asia”. 바로 아시아 인데요. 사실 저는 솔직히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거든요. 일본이나 미국 이런 곳에는 관심이 많았는데 뭐 아시아? 이런 것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 제가 “아시아의 친구”라. 뭐가 아시아인이고 아시아의 친구인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아시아의 친구”라는 문구를 등뒤에 달고 있는 라온아띠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이곳에 지내면서 “우리는 아시아인이니까”, “우리는 같은 아시아잖아.” 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속에도 “아시아” 라는 그런 무언가가 생겨 나기 시작했어요. 홍안유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베트남의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은 그들은 ‘베트남’아이들이 아닌 거에요. 그냥 3살의 아이들 인거죠. (물론 그 아이들이 베트남어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올 때,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 없을 때 그때 조금 아주 조금 느낍니다.) 워크캠프를 갔을 때만 해도 싱가폴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버리니까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구분 짓기도 힘들뿐더러 구분 짓는 것도 이상하더라구요. 그냥 “아시아인”이니까요. 솔직히 아직까진 “나는 아시아인이다.” 라고 막 마음속에서 확실하게 우러나오는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니지만 라온아띠 프로그램을 통해 이 곳에 지내면서 분명 무언가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느낄 수 있었어요.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저는 정말 말뿐이 아닌 진짜 “아시아인”이 되어 있으리라 믿어요. 베트남의 김은빈 이 곳 베트남에 와서 성장을 하게 된 것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우선 전 편식을 이제 하지 않고요. (제 팀원들은 압니다.) 예전에 늦잠 잤던 저도 없어졌고요. 한국에서의 “김은빈”이 아닌 정말 베트남에서의 라온아띠로서의 “김은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아직은 조금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분명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확실하게 다르다는 건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남은 2개월 동안 또 만들어 나갈 것이고요. 얼른 2011년이 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기대가 되요. 다녀온 라온아띠로서의 후속활동도 기대되고 제가 여기서 배운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쓸 수 있는 또 다른 활동도 기대가 되네요. 느낀 점 얘기하다보니 또 말이 길어졌네요. 이만 말을 줄이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2개월 잘 보내다가 한국으로 가고 싶구요. 2010년 비록 제게 하얀 겨울은 없지만 이 베트남에서의 5개월이 내 생애 가장 찬란하고 뜨거운 여름날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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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꺄 베트남팀 김은빈단원입니다!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용*_*!그리고 아주 늦엇지만 2010년 크리스마스 사진을 보여드릴께용^_^유치원에 아침일찍가서 정훈오빠랑 진오빠랑 산타할아버지분장하시구용~~ +_+ 저도 옆에서 루돌프반 산타할모니 반으로 변신하고~~ 나연이는 예뿐 천사로~ 다함께 쨘! 변했답니다.아이들은 우리가 누군지 다 알고있었지만 우리는 계속산타라고 우기고.......여튼 사탕을 나눠주었지요 ! 그리고 오후에는 크리스마스 행사도 유치원에서 했었는데요.아이들이 산타랑 천사 옷 입구! ~.~ 공연도 했어요! 흐흐아이들이 다 산타 옷을 많이 입고 와서 작은 산타들 투성이었습니다!누군가에게 산타가 될수 있다는 것이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그럼 라온아띠 분들 다 새해복 많이 받으ㅅㅔ용*.*
개인에세이, 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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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물 안에서 벗어나다. 내가 라온아띠에 지원한 나 자신으로써의 이유는 편견을 버려라, 자신감을 갖자, 마지막으로 우물에서 벗어나라 라는 3가지의 목표가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어느정도의 틀과 능력을 갖고 있다. 20년 동안 삶을 살아가면서 주어진 일, 당장 닥치는 일을 해결해나가는데 급급했지만, 5개월 동안 캄보디아에서의 삶은 하고싶고, 가고싶고, 듣고싶은 또 다른 공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고,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밥을 나눠주면서 ‘어꾼 쁘레아 예수’(예수님 감사합니다. 밥퍼 활동시간에 아이들에게 진지를 나눠주면서 건네는 말이다.)를 할 때 마다 감사함과 행복함의 전율이 내 몸을 감싼다. 내가 이런 느낌과 감정을 갖고 활동하는 것을 보면 아마 부모님이 깜짝 놀라실 것이다. 그 이유는 부모님께서 “유리가 넌 우물 안 개구리야, 세상은 넓고 경험할 것은 많아. 네가 생각과 시야를 넓히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도전을 해봐”이렇게 항상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마 도전하지도 않고 지레 겁을 내고, 철없는 막내라고 생각하셨던 나를 위해 걱정과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런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이곳에서 너무 긴장을 안했는지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 쪘고 현지인 스텝, 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많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를 가르쳐주는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엄마, 아빠 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항상 사랑해요.’ 2.기억하고 싶습니다. 캄보디아에 가기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많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위해서 크메르어를 완벽히 소화해내는 것이다. 영어를 10년 넘게 배워오면서 아직도 미지의 세계라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메르어도 매 한가지다. 아이들, 스텝들과 잘 지내는 방법 중 하나는 대화이다. 여기에 온지 한 달이 다되어가도 문장으로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웃음으로 넘어가고 고개를 절래절래....흔드는 일들이 많았지만 아이들에게 더 많은걸 알려주고 싶고, 집에도 놀러가고 싶고 함께 지내는 것을 느끼고 싶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배우는 크메르어를 4개월은 일주일에 2번 늘려서 듣기로 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공부한 것을 이용하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문장을 만들어 대화하는 나를 볼 때 외우는 것은 어렵지만 아이들이 나의 발음을 귀 기울여 이해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또 기억해야하는 것은 아이들 이름이다. 처음 센터에 갔을 때 이름을 알려 주었더니 그 다음날부터 “유리”내 이름을 사랑스럽게 힘차게 불러주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느낀다. 날 불러 주는 아이들의 이름을 못 외우는 나의 기억력이다. 원장님께서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해주면 정말 좋아한다고 했지만 비슷한 이름들과 발음들의 문제로 나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은 아이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을 하며 가는 센터는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이름을 불러가면서 인사를 하고, 집에 놀러가고 또 밥을 먹여주며 안부를 묻는다. 우리 제법 친해졌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특히 쌀라아띠 우리 반 꼰티아,보타,빠으,다니 잔타,봔,헤앗등등등 우리 아이들....사랑한다. 나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는 아이들도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였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부리고 싶다. 우리아이들 성대모사 해볼까? 이제 이게 안부인사가 되어버렸다. “틍아이니 리은?”(오늘 공부해요?)그럼 나는“자!리은!!!!!!마옹 쁘람 마오 른른”(응!공부해!!!!5시에,빨리와라.) 3. 아름다운 세상 유리상자의 ‘아름다운 세상’ 노래는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국내훈련 때 기관방문을 하고 감동을 받으면서 팀원들과 같이 불렀던 노래! 중간평가 때 동영상 배경음악이 되었던 노래!내가 가르치는 중학생,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노래!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한국과 다르게 정규나이에 맞는 교육을 받지 않아 같은 학년이라도 나이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중학생인데도 나랑 한 살 차이나는 동생도 있다. 내가 말을 어눌하게 해도 눈치껏 이해해주고, 내가 캄보디아 말을 틀리게 하면 고쳐주는 센스도 있다. 고등학교 수업을 할 때는 공부하려는 열의가 높아서 질문이 많다. 영어를 정말 잘하는 고등학생들이지만 내가 유창한 영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크메르어를 쓰려고 한다. 솔직히 나의 영어실력이 들통날까봐 안 쓰는 이유도 있다. 덕분에 크메르어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실력이 향상되어 고마움을 더 느낀다.^^ 나는 캄보디아와 아이들을 사진 속에 담는다. 가끔 언니오빠들이 카메라에 내 얼굴사진 밖에 없다고 핀잔을 주지만 캄보디아, 아이들, 센터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를 5개월 동안 눈 속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 울고 웃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까지 담는다.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2달 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새롭고 반갑다. 한국에 돌아가서 기억을 들춰보면 얼마가 그리워질까? 난 그리움도 좋다. 한국으로 돌아 갈 때는 ‘즐거웠어요’ 보다는 ‘그립고 아쉬워요’라는 느낌이 더 들 것 같다. 아름다운 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직접 경험해보고 자기가하고자 하는 것이 제일 아름다운 것이다. 글을 쓰면서 현지의 삶을 안내하는 안내서를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험에서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쓰고 싶었다. 이곳 생활이 이제 2개월밖에 안남았다. 앞의 생활을 후회하기 보다는 앞으로 남은 생활을 즐겁고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내일은 또 보타의 집에 있는 닭이랑 강아지를 피해서 집에 들어가기를 성공한 다음 학교준비를 같이하고 밥을 먹으로 센터에 가야겠다.
개인에세이,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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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이라는 한국 기업에서 전 직원들이 다일센터로 봉사활동을 온 적이 있었다. 3일 동안 함께 열심히 아이들과 밥을 나누었고 마지막 밤에는 그분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다일 중창단 아이들의 공연이 있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예쁜 옷과 깨끗한 신발을 신었고, 큰 수영장이 딸린 호텔의 야외 연회장에서 멋지게 노래를 불렀고, 맛있는 음식도 배가 부르게 먹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싸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트럭을 타고 자기들 집이 있는, 우리가 똔레삽 수상 빈민촌이라고 부르는, 프놈끄라운 작은 마을로 돌아갔다. 화려했던 곳을 떠나 다시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 나라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더러운 옷을 입고 많은 식구들로 북적거리는 비좁은 수상가옥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럴 이유도 없었지만 왠지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선의 벽 다음날 센터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은 깨끗한 신발 대신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색이 다 바란 옷을 입고 밥퍼에서 주는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내가 전날 밤 안타까워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행복해했고 또 행복해 보였다. 이곳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은 낯선 외국인의 시선일 때가 많다. 정작 본인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불쌍한 눈으로 보는 나를 발견할 때 마다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나 스스로 만든 그 벽을 없앨 수 있을지, 아니 평생을 살면서 그 벽을 허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 생각은 대부분 옳고 그래도 내가 잘났다고 자만하는 나인데 이곳에서는 오죽할까. 나와 매우, 상관이 있는 나라 캄보디아 친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이곳으로 왔지만 내가 정말로 아이들과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과 스텝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내가 이곳을 떠나고 나서도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기억할지는 알 수 없다. 우선 나부터 얼마나 이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추억으로 남을 사람들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잊고 이곳에 집중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은 이곳을 떠나면 또 내 삶의 자리에서 이전에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잘 살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적어도 이곳을 까맣게 잊지는 않도록 더 많이 마음에 담으려고 안간힘 쓰며 살고 있는 듯하다. 요즘은 내가 내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떻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이런 생각들이 ‘문득’ 들 수 있는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려서 인지 소중하다는 생각이 정말 ‘문득’ 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조바심이 생긴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쉽고 내가 어떻게 지내든 결국에 한국에 돌아가서는 내가 보냈던 5개월의 시간이 아쉽고 이곳이 그리울 거란 생각들. 그래서 더 많이 아이들과 나누려 하고 하나라도 이곳을 더 마음에 담고 싶다. 나와는 상관없는 나라였던 캄보디아가 이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 한명 한명의 얼굴이 떠오르는 정말 나와 상관이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개인에세이, 양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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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엠립에서 뜨거운 12월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내 머리도 마음도 무척이나 뜨겁다. 이 곳 아시아 속 캄보디아에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상황들이 있다. 활동을 하며, 이 모든 것들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진심 어리게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들이었다. 타인들의 눈을 의식하는 나, 타인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나. 수많은 의식 거리들 중에 내가 바라본 나를 의식한 적이 있었나. 내가 가진 경험들, 내가 가진 생각들, 그로인해 갖게 되는 편견들, 그런 나를 먼저 알고 이해해야 했다. 새까만 피부에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 사랑받기보다 사랑할 줄 아는 너무나도 어여쁜 아이들. 이 천국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과 같이, 여기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같이, 점점 물들어 가는 서로를 보며 ‘참으로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뇐다. 성장통 그렇지만 사람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인지, 이렇게 즐겁게 살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배배 꼬인 마음들과 남들이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생기는 짜증과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모습을,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찾아온 말도 안 되는 것들과 싸우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 속에서 원하던 원치 않던 맞이하게 되는 사춘기 2차성징과 같이,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 라온아띠가 된 나는 이렇게 또 다른 성장통을 겪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하고 정신없어 할 나 자신과의 싸움을 지금은 좀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며 여유롭게 숨을 고른다.‘좀 더 천천히.. 좀 더 천천히..’되뇌고 또 되뇌며, 나의시선, 나의 마음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입에 늘 붙어있던 ‘빨리 빨리’ 보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기도 한 ‘천천히’를 외친다. 그동안 못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들, 행동들, 마음들.. 이제는 조금씩 볼 수 있고,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아직도 가끔 배배 꼬이는 마음들을 나도 주체하지 못 할 때, 심술궂은 내 마음들을 자주 보게 될 때, 다른 누군가와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될 때, 또 다시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어떤 것 보다가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자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은 내가 되자고 말이다. 마음껏 사랑하는 삶 모든 것들에 있는 어려움과 힘듦은,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미처 몰랐던 다른 상황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이곳에서 걱정 없이 나에 대해 맘껏 고민하고, 아시아를 맘껏 품으며, 맘껏 사랑하고 사는 나의 작은 고백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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