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호스트 패밀리 “매닌 할머니와 나윈”
태국팀은 알려진바와 같이 람푼과 프레 두팀이 한팀이 되어 활동중이다.
11월부터는 다섯명씩 북부 시골마을인 람푼과 프레로 나뉘어져 두달여 정도를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람푼팀은 세집으로 나뉘어져 호스트 가족들과 지내게 되었는데,
나와 수진이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집에서 호스트 가족과 지내게 되었다.
우리집 호스트 가족은 매닌 할머니와 네살배기 어린 손자 나윈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나와 동갑이고, 아빠가 2년전에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 태국에선 군대모집을
제비뽑기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뽑기에서 검은색이 나오면 군대복무를 해야하고, 빨간색이
나오면 군대 면제가 된다고한다.) 그 기간에 맞추어 아이의 엄마는 돈을 벌기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일을하러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외할머니와 아이만이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는 서른의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의시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오셨다고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옷을 매우 잘만드시는데, 미싱으로 생계를 이어오셨고,
지금도 여전히 일을하고 계신다. 할머니가 만드신 옷을 봐도 알 수 있고,
여타의 도움 없이 미싱만으로 여태껏 홀로 생활을 유지하신 것만봐도 할머니의 미싱 솜씨는 가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나뵈었을 때 사연을 듣고 봐서 그런지 어딘가 외로워보이셨다.
긴긴 세월을 라오빠꺼이 마을에서 보내신 할머니에게 마을은 어쩌면 고향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너무 어렸을 적에 엄마와 떨어져서 그런지 아무래도 엄마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에게 가끔 전화가 올때마다,
엄마 전화를 피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우리 할머니는 또한 요리를 매우 잘하신다.
태국에 와서 한동안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무척 고생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할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고 지내면서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할머니와 나윈과 친해지기 위해 조금 알고있는 태국어를 총 동원해 대화도 시도하고,
안마도 해드리고, 함께 둘러앉아 티비를 보기도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서로 무척이나 가까워 짐을 느낀다.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하시는 걸 좋아한다.
" 이 아이들은 한국의 내 딸들이야 "
할머니는 별로 잘나지도 않는 우리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시곤 한다.
할머니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며 이곳저곳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셨던 마을사람들이 이제 조금은 친숙해짐을 느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시곤 한다.
가끔은 마을사람들이 물어보신다.
" 한국가면 또 언제 올꺼냐고 "
그럼 나는 장난스럽게
"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꼭 다시 오겠노라고" 말씀드리곤 하지만
우리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함이 어쩐지 먹먹하다.
우리는 곧 이별을 맞이해야한다.(12월 말까지 마을에 거주)
호스트 가족들과 라오빳꺼이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물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우리에게 맺어진 관계의 끈은
삶 속에서 계속 묻어나고 이어질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우리에게 이별이란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헤어짐의 시간을 떠올릴 때 마다 코 끝이 시립고, 먹먹해진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두터운 정이 쌓여가고,
깊은 애정이 녹아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별을 미리 준비해 두고 싶다.
어쩐지 슬프지만은 않은 새로운 이별을 맞이해보고 싶은 생각이든다.
아름다운 이별, 행복한 이별을 이들과 함께 만들어보고싶다.
아직은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맞이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물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우리가 서로 함께 성장하게 하고 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들이
삶에 묻어나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에겐 영원한 단절의 이별이 아닌
영원히 지속가능한 만남을 이어가지 않을 까 생각한다.
서로 함께 함을 통해 얻은 행복,
더불어 삶을 통해 얻은 벅찬 감동들을
우리가 사는동안 기억하고, 만나고, 이어가리라 희망한다.
- 라오빠꺼이에서 선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