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빠꺼이 아이들과 알게 된지도 어느덧 반하고 한참 지났다.
처음의 낯설고 서먹서먹함은 없어진지 오래,6학년 담임선생님인 내가 12명 이름을 외워가던 때가 어제만 같은데, 아이들의 가족관계, 아이들 집에 놀러도 가고, 친분을 쌓아가는 요즘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60원짜리 과자 하나에, 2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맛있냐 묻기도 하고 웃으며 대화하는 것은 나의 행복 중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친밀함이 높아갈수록 힘이 드는건 바로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쳐다만 봐도 쥐죽은듯 조용한 아이들이지만 13살 장난꾸러기인 아이들에 있어, 수업시간 집중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오빠꺼이를 떠날 날은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의 수업은 열심을 더해갔다. 하지만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산만한 아이들에 있어, 결국 하루는 내가 무척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수업이 끝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우리 반 ‘뉴’ 라는 말썽쟁이가 오늘도 여전히 내게 장난을 걸어왔다. 피곤한 나는, ‘뉴’ 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New, 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라오빠꺼이의 선생님인지, 너희와 똑같은 친구인지 말이야.
한국어를 가르쳐줘도 아이들은 떠들기만 하고, 난 무척 피곤해.
New,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이곳 학교에서 난 누구지?
난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참 많이 화가나.”
잠시 생각하던 장난꾸러기 ‘New’가 말했다.
까올리 낙슥사 (한국인 대학생)
그랬다.
아이들 눈에는 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한국인이고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똑 같은 학생일 뿐이었다.
이곳 마을 특성상 형제간 나이차가 무척 큰 터라, 아이들의 눈에 나는 누나또래였다.
산만한 것은 당연했다.
난 결코 이곳 라오빠꺼이 선생님이 아니었고, 똑같은 6학년 친구도 아니었다.
한국인 대학생 누나였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New의 결론으로 그날 이후 난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뿌듯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곧잘 나를 ‘수진누나’ 혹은 ‘수진언니’라고 불렀고,
난 그저 수업시간 땍땍 거리고 드드드 하기를 잘하는 대학생 누나였다.
가끔씩 혼내기도 하고,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도 시키고,
축구 하다 다치면 반창고 하나쯤 붙여도주고, 우는 애들 달래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집에를 놀러 오면 간식도 주는,
가끔 4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주는 그런 수진누나 말이다.
나의 이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 감사하다.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렇게 행복한 라오빠꺼이에서의 2개월을 보낸 후
한국인 누나도 1월 5일을 끝으로 아이들과 이별을 맞이하고서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수진누나~, 수진언니~하고 부르던 그 모습이 내 눈에 선하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의 아이들의 모습이 여전히 내 눈에 밟힌다.
고마워. 라오빠꺼이
안녕. 내사랑 라오빠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