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종교 관용? 동티모르 속 이슬람


 2008년 6월 26일자 Dili Weekly에 관심 가는 기사가 보였다. 이슬람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언뜻 이해가지 않은 부분이었다. 동티모르 인구의 98%가 자신을 가톨릭이라 부른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영향이다. 이런 이유로 서쪽으로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 이전까지 이슬람과는 동떨어진 땅이었다. 이런 면에 비추어보았을 때 주간지에 한 면을 차지한 기사는 의외였다.

 기사에 의하면, 과거 적지 않은 무슬림이 있었다. 하지만 1999년 자치-독립 선거 당시의 사태, 2006년 유혈 사태 등을 거치며 많은 무슬림이 떠나갔다. 떠나간 무슬림은 인도네시아 인이거나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동티모르인 중에는 사실상 무슬림은 적었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동티모르의 어두웠던 시절에 호국 종교와 비슷한 존재였던 듯하다.

 이제 남은 무슬림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딜리 Markoni에 모스크가 있지만, 외국인을 위한 면이 많다. 모스크의 상황도 좋지 않다. 창유리 안쪽이 부서져 있고, 천장은 썩어있으며, 바닥 타일은 깨져있다. 딜리의 유일한 모스크는 재정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이며 존재 자체가 가장 큰 의미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는 무슬림에게 학교이며, 집이고, 연대의 장소이다. 또, 불안정한 정국에는 피난의 장소가 된다. 교육 방식은 동티모르의 방식과 현격히 다르다. 동티모르 학교의 경우,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레자'가 조례와 종례에 행해진다. 상세한 교육 내용도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기사 중 가장 염두 하여 읽은 부분은 종교관용에 관한 부분이다.

[ 2006년의 불안한 시기 동안, 딜리에서 몇 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근처의 수 십 채의 오두막집은 불탔지만 모스크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모스크의 직원은 어떠한 박해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티모르는 이러한 종교적 관용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rifulloh는 "우리는 모두 티모르인이다. 우리는 가톨릭과 무슬림 사이에 사실상 차이가 없음의 예시를 세계에 보여주길 원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스크가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직접적인 침입과 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투석과 같은 간접적인 피해는 받았다. 이러한 점을 차치하면 2006년 사태에 무슬림이 희생자 그룹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할 일이다. 하지만 이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적 관용, '나는 너의 종교를 인정하고, 너는 나의 종교를 인정한다.'라는 명제에 부합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항상 통계 이면엔 또 다른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티모르의 98%가 가톨릭이고, 1%가 프로테스탄트, 1%보다 적은 무슬림이 있지만,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100%가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

 가톨릭 신자라 할지라도 전통을 넘어서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집에 조상을 모신다. 전통은 종교를 뛰어넘어 동티모르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전통이란 더 강한 종교 아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무슬림이 존재하는 듯하다. 티모르 문화에는 Uma Adat(Spirit House)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조상을 모신다. 무슬림은 개, 돼지 등을 먹지 않지만 전통은 지킨다. 혹은 집에 조상을 모시는 곳이 있지만 전통적 의례를 행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코 전통에서 동떨어져 나가진 않는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일요일에 성당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가톨릭 속에서 살아왔던 탓일까. 이곳 사람에게는 신념과 절박함, 혹은 신성함으로써의 종교라기보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관용을 떠나, 종교로 집단이 나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일 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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