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쓰왓디카/캅"
이 곳 태국에 오면 가장 처음 접하는 인삿말이다.
안녕하세요~ 라는 이 인삿말은 말하는 사람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
쓰왓디카, 혹은 쓰왓디캅으로 나뉜다.
카/캅은 존대어로 말하는 이가 여성이면 말 끝에 카.를 말하는 이가 남성이면 말 끝에
캅.을 붙힌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또 사용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닌 사람' 들은 이 선택지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이 곳 태국에서도 여성과 남성으로만은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한다.
이 곳 태국에서 라온아띠로 활동하면서 우리는 이 두 정체성(여성,남성)의
모호한 경계성에 서있는 사람들-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레이디보이), 톰보이, 게이라고 부르는- 을 만났다.
우리와 자주 활동하고, 잠깐 이 곳 삼강펭 Y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그/녀는 흔히 인사나 대화 도중에 '캅'이라는 남성용 존칭어를 사용한다.
그/녀는 여자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여자샤워실에서 샤워를 한다.
그/녀는 짧은 머리, 흔히 남성들이 하는 머리를 하지만 여성용 언더웨어를 착용한다.
그/녀는 사회가 규정짓는 '여성스러움'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한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바지를 입지만 가끔 치마를 입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이 그/녀를 '까터이' 라고 불리게끔 한 것일까.
어쨌거나 그/녀는 여자/남자로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젠더정체성의 어느 경계선에 서 있고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눈초리나 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가끔 외롭기도 할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들을 '신기해하며' 그들을 '소외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까터이'가 물리학적으로 남성이면서 사회학적인 여성을 담습하는 자. 라고 정의된다면
우리 중 누구도 까터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톰보이'를 물리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학적으로 규정된 남성을 체화하는 자. 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톰보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 규정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많은 사회적 규정 속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밀어넣을 때, 우리는 비로서
안정감을 얻게 되는 것일까?
이 곳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인데,
태국 사람들은 대게 얼굴이 하얀 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태국 유스리더중 한 친구가 말한다.
자기는 피부가 검어서 마이수와이(예쁘지 않다)고.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는 거의 듣지 못하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얼굴이 하얀 것이 미의 기준으로 규정되어, 검게 그을린 피부는 아름다움의 저 편으로
밀려난다면, 그래서 그런 규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을까?
만일 이 세상의 미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정의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미의 기준은 없다. 는 규정을 내리고 싶다. 누가 어떤 줏대에 의해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으며
또 어떤 규정에 의해서 한 개인이 가진 젠더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여자, 또는 남자로만
구분 지울 수 있단 말인가.
태국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그/녀들이 살아간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사회적 규정들속에 소외 받고 상처받는, 혹은 이런 모호한 경계선상에 서 있는(이 경계선상에 서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소수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간에 우리 모두는 정당하다.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이 땅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좀 더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