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은 지난 일요일 유림이 언니의 제안으로 이런 재미있는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우리는 3차 시도 끝에 에세이 쓸 사람을 정했다. 난 유림이언니가 뽑혔다.
필리핀의 여름. 이사온 후로는 밤에도 덥다. 그래서 우린 늘 선풍기를 켜놓고 잔다. 왜냐하면 방 구조상 침대를 다 붙이지 않으면 바람을 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침대를 붙여서 지내고 있다. 그 덕분에 나의 잠버릇도 빛을 발하고 있다. 언니는 아침마다 내 잠버릇을 얘기해 주곤 하는데 (아마 이건 나에 대해 쓰는 사람이 쓸 것 같다) 언니도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을 돌돌 싸맨 채로 애벌레처럼 자고 있어 날 놀래키곤 한다. 사진을 너무 찍고 싶지만 목숨이 두 개가 아니기에 못 찍었다. 저번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로 너무 눈앞에 있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아, 또 한번은 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피식 피식 웃더니 꿈 얘기를 해주었다. 꿈에서 미래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었는데 일어나보니 언니가 내 손을 잡고 자고 있었다고 했다. 요 몇 일 그런 꿈을 꿨다고 했는데 어쩐지 요즘 들어 자면서 내 옆으로 다가오곤 한다.
언니는 커피를 좋아해서 아침에 종종 커피를 마신다. 언니는 블랙커피를 좋아하는데 특히나 내가 탄 커피를 좋아한다. 분명 언니는 내가 탄 커피를 좋아한다고 한 적은 없고 잘 탄다고만 했는데 우린 듣고 싶은 대로 듣기 때문에 난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언니 커피 마실래요?” 라고 물으면 언니는 “왜이래?”라고 말하고 그럼 난 “아마추어라서요”라고 맞받아치면서 웃는다. 속이 약한 편인 언니는 여기 와서 제일 많이 체한 팀원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 한 번씩 헛구역질도 하는데 우리는 그걸 보면서 태기가 있는 게 아니냐며 놀리곤 한다. 마닐라에 도착하고 언니가 체해서 모든 팀원들이 등 두드려주고, 팔 잡아주고, 따주고 그 모습을 동영상도 찍는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됐었다. 또 한번은 음식점에서 체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못했었다. 솔직히 이 날은 체한 건지 뭔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아파서 먼저 숙소로 돌아갔었다. 어쨌든 그 후로도 언니는 한번씩 속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따주겠다고 하면 언니는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세민오빠, 민하언니, 나는 우리의 일터인 ‘Anislag’로 떠나고 유림언니는 우리의 현지스텝인 틴과 집에서 사무를 보면서 바쁜 하루를 보낸다. (희곤오빠는 4시부터 10시까지 부스에서 일하기 때문에 같이 안 나간다.) 왜냐하면 우리 팀은 필리핀에 도착하고 리더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무보조가 리더나 마찬가지인 영광스러운 자리를 유림언니가 맡게 되었고, 그 덕분에 언니는 늘 리포트와 미팅, 우리의 프로포잘들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즘은 틴의 미팅이 많아서 언니는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언니는 ‘Anislag’에 자주 가고 싶어 하지만 못 간다.
우리는 일하러 갈 때 트라이시클을 타고 올라가는데 오토바이 뒤쪽은 제일 불편해서 우리 다 선호하지 않는다. 근데 그 자리를 언니는 재미있다고 트라이시클이 너무 좋다고 한다. 덕분에 민하언니랑 나는 편하게 앉아서 올라간다. 하지만 매일 탄다면 언니도 싫어할 것 같다. 그런데 언니는 가고 싶은 ‘Anislag’에 갈 수 있는 날에도 가끔 잠에 취해서 가자고 졸라도 안 갈 때도 있다. 언니가 일 때문에 늦게 자서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꼭 이 일 때문에 늦게 자는 건 아니다. 언니는 어느 라디오드라마 작가라서 대본도 쓰는데, 우리가 레가스피에 도착하고 한창 정신이 없을 3월 말에 대본을 보내야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몇 일 동안 늦게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있었다. 언니는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다른 대본을 보냈는데, 외계인에서도 다른 대본에서도 주인공 이름에 내 이름을 써주었다. 다른 대본은 내 성격을 100% 반영한 거라 대본을 쓰기 쉬웠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읽으면서 뜨끔했다. 나는 언니가 외계인 대본을 쓸 때도 영감이 떠오르게 도와줬다. 특히 내가 샤워하고 나올 때 언니는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모습이 진짜 외계인 같다고 그래도 난 언니의 글을 좋아한다. 저번에 언니가 썼던 대본을 봤는데 끝난 이야기인데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뒷이야기를 물어봐 언니를 당황하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글을 쓰고 있으면 다 쓰기도 전에 읽고 싶다고 보챈다. 이번 에세이도 너무 궁금하지만 일요일까지 참기로 했다. 지금 다른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했는데 빨리 쓰라고 졸라야겠다.
언니는 책도 좋아하고, 기자로 일한 적이 있어서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언니는 여러 활동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언니의 그런 경험담을 듣는 건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나를 여러 활동에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언니는 영어도 잘한다. 국내훈련 기간 중 아이코리아에서 필리핀 YMCA사무총장인 앨씨를 만났을 때에도 언니랑 민하언니가 통역을 해주었었다. 우리의 천사친구 다이앤도 언니의 리포트를 보면서 잘 썼다고 했다. 그래서 3월에 희곤 오빠랑 언니랑 스터디를 하자고 했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일을 시작하고 모두가 바빠서 저녁에도 일하는 날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니는 어떻게 공부를 했었는지 친절히 일러주곤 한다. 언니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팀원 모두가 파티나 미팅 등에 가면 언니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저번에 앨씨가 레가스피에 왔을 때에도 언니랑 앨씨와 농담도 하고 많은 얘기를 했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언니는 지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이 시간에는 언니의 눈치를 살짝 보게 된다. 언니의 하루를 표정에서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는 다양한 표정으로 우리를 웃겨주곤 하는데, (분명 언니는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 일이 너무 많은 날에는 다양한 표정 중 정말 지친 표정을 하고 있다. 이 때는 조심해야 한다. 낮에는 인터넷이 간간히 잡히는데 인터넷을 했을 때는 기분이 좋아서 우리에게 누구 만났다고 어떻게 지낸다고 얘기해주고 저장해 놓은 사진이나 에세이들을 보여준다.
요즘 레가스피는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우기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특히나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서인지 천장에서 비가 새는데 하필 언니 자리다. 그래서 언니는 지금 급하게 매트릭스를 바닥에 내리고 우리의 스케줄을 검토하고 있다. 언니는 종종 말한다.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한 거야?”, “너 왜이래?”, “한 번에 가자.” 이 말을 할 때 언니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웃기다. 조금 전에도 난 인터넷이 잡혀서 잘 쓰다가 언니에게 넘겨줬는데 바로 끊겼다. 이럴 때면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엊그저껜 너무 느려서 희곤오빠하라고 줬는데 희곤오빠가 인터넷 할 땐 엄청 빨랐다.
우리는 주말마다 우리가 저녁을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맨 처음엔 김치전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후라이팬이 자꾸 눌러 붙어서 언니랑 땀으로 샤워를 했었다. 하지만 맛은 정말 맛있었다. 아 또 먹고 싶다. 그리고 어젠 감자전과 된장찌개를 만들었는데 언니는 맛 없다고 실패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맛있었다. 뭐 어쨌든 요리 잘하는 언니 덕에 가끔 한국의 맛을 느끼곤 한다.
언니는 필리핀에 구두를 가지고 왔으나 내 기억으론 한번인가 신었다. 그래서 저번엔 밤에 구두가 너무 신고 싶다며 추리닝이 구두를 신고 집안을 돌아다녀서 우리모두 한바탕 웃었다. 이런 작은 일에 언니의 시크한 말 한마디가 더 웃기게 한다. 저번에는 누가 “옥구슬이 은쟁반 굴러가는 목소리”라고 했는데 언니가 “옥구슬 재주도 좋아?”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민하언니랑 셋이서 배꼽잡고 웃었다. 이상하게 우리는 밤만 되면 빵빵 터진다. 또 언니는 언니의 어머니에 대해서 많이 얘기해 주는데 언니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말을 너무 재미있게 해서 어머니를 실제로 만나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언니네 집에 가자고 나 혼자 약속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하려고 하니깐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매일매일 웃음의 연속이다.
안산에서 우리가 서로 싫어하는 것과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언니는 냄새와 소리에 민감하고 가끔은 밤에 노래 듣다가 울 수도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냄새는 안산에 있을 때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안산숙소에서 이불에 이상한 냄새가 났는데 언니는 못 느꼈었다. 그래서 언니는 냄새에 그닥 민감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직 노래 듣다가 우는 것도 못 봤지만 하이킥 보다가 우는 것은 봤다. 하이킥을 보고 울다니 민하언니랑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그 편은 서민정과 최민용이 헤어지는 편이었는데 나중에 다같이 그 편을 봤지만 민하언니는 왜 울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민하언니는 종종 유림이언니에게 “우쭈쭈쭈”하면서 애기처럼 언니를 대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언니는 무표정이거나 매우 도도하게 “왜이래?” 라고 말한다. 아무리 언니가 이렇게 도도하게 대해도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원래 겉으로는 툴툴대는 사람이 속은 따뜻하니깐.
아직 2달 밖에 지나지 않아서 언니에 대해 뭐라고 쓸 수는 없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와 지금 언니 이미지는 완전 다르다. 처음엔 내가 관심이 없던 인류학을 전공하는 언니가 마냥 신기했고, 무척이나 도도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뭐 일을 할 때나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땐 도도해 보이지만 평상시엔 너무 재미있다. 아무래도 언니의 거침없는 입담 때문인 것 같다. 참, 생각해보니 아직 언니와 호주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언니 호주에서 여행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호주여행을 했는데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자꾸 연기됐다. 생각난 김에 오늘은 호주여행하자고 해야겠다. 언니덕분에 난 호주에 더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팀탐도 먹고 싶어졌다. 너무 비싸서 못 사먹는 팀탐T.T 호주하니 언니가 캄보디아 못 가서 울었다는 얘기도 생각난다. 이번에 언니가 잘하는 것이 많은 걸 알았다. 배워야 할 점들도 … 아직 3개월이 남아 있으니 많이 배워야겠다. 옆 침대니깐 쏙쏙 다 뽑아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