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사랑하고 있습니다
9월 7일. 라온아띠 4기의 발대식을 하는 날, 모두들 돌아가면서 짧게 한마디씩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 순간 참 많은 말들이 머리속을 스쳐가더라. 언제가 책에서 읽었던 말, 누군가에게서 흘려 들었던 말 등등.. 그러다가 평소에 내가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이 말이 딱 떠올랐다. ‘순간순간 마음껏 사랑하기.’ 자주 하던 말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갑자기 생각이 났기에 좀 의아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전까지는 그냥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었을뿐, 확실히 피부에 와 닿지는 못했던 말이었나보다. 어쨋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의 간단한 프로필이 소개되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크게 외쳤다. ‘ 마음껏 사랑하다 오겠습니다!’.
9월 9일 00시 20분. 드디어 콜롬보에 도착했다. 6팀중 가장 먼 여정을 떠난 우리 스리랑카 팀은 두번의 비행기 경유를 하고 한국을 떠난 지 14시간 만이었다. 라온아띠 4기 스리랑카팀의 리더이신 Mr. Nihal과 Mr. Godfrey 그리고 우리의 코디네이터 Sampath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심야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스리랑카 생활은 시작되었다.
3기에게서 집에 대한 많은 정보를 들었기에 내심 걱정했지만 우리의 집은 아주 넓고 쾌적한 그야말로 궁전이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매일 버스를 타고 5분정도 거리에 있는 YMCA로 출근을 한다. 처음엔 낯선 곳이라 참 멀고 위험하게만 느껴졌는데, 날씨가 좋은 날엔 가끔 다이어트를 핑계 삼아 걸어가기도 한다. 걷고 뛰기에 아주 적당한 거리라는 것을 근래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많이 익숙해졌기에…)
스리랑카 속으로 녹아들기
여기 모라투와에서 우리는 이제 그리 특별하지가 않다. 처음엔 사람들이 아주 이상한 눈으로 우릴 쳐다봤다. 모라투와는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외국인이 아주 드물다. 거의 없다. 단지 우리뿐. 그래서 우리 다섯명이 함께 걸어가면 으레 사람들이 물러서거나 놀라기 일쑤였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으며 열심히 웃고 인사를 하며 다녔다. 이제는 우리의 동선에 있는 가게 사람들이나 안면이 사람들과는 매일 같이 안부를 주고 받으며 손뼉을 맞추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매일 똑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왠만한 100번 101번 버스의 운전사와도 안면이 있어서 지나가던 버스도 우릴 알아보고 ‘빵빵’을 울리거나 세워서 인사를 해주고 가신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시장에 가면 처음에는 외국인 디스카운트 서비스(?)를 받곤 했지만, 이제는 현지인 가격 그대로 받는다. 약간 속상하지만 사실 기분은 더 좋다.
어느 날, 식당에서 손으로 열심히 밥을 퍼먹고 있었다. (손으로 먹는게 익숙하긴 하지만 능숙하지는 않아 퍼먹는 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런데 금발에 파란눈동자를 가진 서양 사람이 들어오더라. 우리 다섯명을 밥을 먹다가 ‘어, 외국인이다.’ 이러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정확히 10초 뒤,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외국인이면서 외국인 보고 외국인이란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스리랑카와 우리는 같은 아시안이니깐 서양사람 보고 외국인(굳이 따진다면, 다른 대륙 사람)이라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천천히 스리랑카 속에서 특별함, 다름이 아닌 평범함, 같음을 느끼며 녹아들고 있다.
우리가 행복합니다 !
우리 스리랑카 팀은 매 주마다 고정적인 프로젝트들이 있고, 사이사이에 1회성 프로젝트 들이나 우리 스스로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한다. 월요일에는 강가에 있는 빈곤층의 마을에 가서 어린이들과 함께 뒤엉켜 영어, 수학, 예체능 수업 들을 한다. 처음엔 많은 것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와야지 했던 우리가, 지금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온다. 수요일엔 아침 일찍 일어나 ‘Herbal drink’를 만들어 지역 내에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나눠드린다. 많은 환자 분들이 아파서 병원에 오심에 불구하고 항상 웃어주시며 고맙다고 말씀을 해주신다. 그럼 나는 엉성한 현지어로 ‘우리가 행복합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만들고, 나눠드리는 일들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일상에서의 행복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금요일에는 Children Club, 한국어 수업이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과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날. 어린이부터 성인들 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하는 날이다. 금요일 밤만 되면, 스리랑카에 그리고 공통 분모인 아시아에 제대로 녹아 든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생김새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전혀 문제 없이 소통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태권도 수업. 발차기 한번 더하고 뛰어 놀기 위해서 오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태권도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태권도의 정신인 예의, 인내 등 꼭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꼭 지녀야 할 기본적인 정신들을 강조하며, ‘체력은 국력’이라는 명제 아래 열심히 태권도를 가르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실력이 한 주 한 주가 다르게 늘어난다. 그런 모습을 보면 태권도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참 뿌듯하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리랑카라는 나라를 처음 만나게 된 날부터 나는 행복하기만 하다. 물론 더운 날씨와 힘든 노동, 현지 스태프들과의 의견 충돌, 팀원들 간의 내부 문제 등등 어렵고 힘들고 지칠 일들도 많다. 솔직히 이런 문제들은 여태껏 한번도 부딪혀 본적 없는 문제들이고 더욱이 타지에서 겪는 일들이라 참 힘들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큰 도움이 될 경험들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나하나 풀릴 때 마다 그 어떤 행복보다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런 것들 까지도 행복해져 버리니 ‘처음부터 행복하기만 하다’라는 말이 절대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마음껏, 순간 순간, 사랑하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렇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이렇게 값진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해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가 이런 큰 기쁨들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이미 이렇게 느끼고 즐기고 받아 버렸는데 어떡하겠나. 이제 돌려줘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환원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내 능력 안에서 어떻게 돌려 줘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해봤다. 답은 출발하기 전 발대식에서 했던 그 말에 있었다.
마음껏 사랑하기. 순간 순간, 마음껏 사랑하기. 이젠 말 뿐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앞으로 마음껏 사랑하자.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