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아띠?
태국에 오기 전, 가족이나 친구들이 태국에 왜 가느냐고 물었을 때, 늘 “해외봉사”하러 간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사실 이런 자원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해외봉사, 특히 대학생 해외봉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었던 장면들은 기업이름이나 대한민국이 두드러지는 “봉사”팀이 철저히 시혜적인 봉사를 마치고 태권도쇼나 노바디를 선보이는 장면, 혹은 문화교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지만 결국 공연 교류로 그치고 마는 장면들이다. 물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순수하게 우리문화를 알리고픈 사람들이 현장에서 노력하는 동안 책상머리에 앉아서 한 생각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라온아띠를 알게 되었다. 약간(?)의 도피성 이유도 있었지만 앞의 이런 생각들이 다른 자원활동 프로그램이 아닌, 라온아띠에 지원하게끔 하는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곳의 고민
그렇게 태국에 온지 3개월이 지났다. 3개월 동안, 태국에서의 주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을 소개하는 활동들이었다. 9월, 람푼과 싼캄팽의 고등학교를 찾아가 30분정도의 한국소개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활동의 목표자체가 “한국소개”였고, 짧은 수업을 계기로 학생들이 비단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활동들을 끝내고 나서 예전 국내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 한국홍보를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런 식의 문화교류보다, 혹은 단편적인 1-2회의 한국어수업보다 환경캠페인이나 빈곤가정의 교육문제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들이 10월 내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10월에는 빈곤지역 환자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면서, 역시 문화교류보다 이런 활동들이 그들의 삶에도, 우리의 성장에도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 고민이 더 심해지기도 했다.
한국에 계신 간사님과 이런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런 한국 알리기 활동에서 한계점이 느껴진다고. 단순한 문화교류를 넘어서, 그를 통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또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 다름 속에서도 공유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교류하고 싶다고. 한복이나 원더걸스로 먼저 친해지겠지만, 후에는 빈곤에 대한 고민들, 북한이나 버마사람들에 대한 고민들, 환경에 대한 고민들부터, 소소한 일상,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들까지 교류해 내야하지 않는지. 그래야만 서로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알 수 있고, 그 배움을 다시 실천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지. 투정에 가까운 이 고민 상담에 간사님은,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현장에 있는 자원활동가들이 그런 시도를 통해서 점점 현지의 스텝들과 마을 사람들의 인식의 전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란다. 기관 대 기관, 국가 대 국가가 움직이는 것은 늘 상처를 입히기 쉽고, 더디기 마련이거든!”이라고 답해주셨다.
이런 답변을 받고 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실, 태국활동에서 이런 고민을 할 때, 나는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작 현지YMCA가 우리에게 그런 식의 다소 단편적인 문화교류활동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활동 초반에, 한복을 가져오지 않은 문제로 팀원들이 꽤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문화교류에 대한 기대가 있긴 했지만) 간사님의 답처럼, 내가 혹은 우리 팀이 주체적으로 그런 시도를 해야 하는데, 그저 “고민”만 잔뜩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를 이야기 하다
마침 11월, 람팡에서 20여명의 대학생들과 라온아띠를 소개하는 활동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라온아띠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고민하는 주제인 아시아에 대해서 같은 아시안인 대학생들과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3시간여 진행된 활동 동안, 우선 태국대학생들과 함께 아시아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에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에 대해 표현해보는 활동을 가졌다. 그리고 12월, 치앙마이의 메조대학에서 또 한 번, 관광학 전공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다. 학교 측에서 관광학 전공이니 만큼, 관광위주로 한국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우리는 이에 단순히 한국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태국사람들이 영화나 TV에서 본 피상적이고 소비지향적인 한국이 아닌, 정말 한국인이 태국인과 공유하고 싶은 한국관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더불어 태국학생들이 생각하는, 외국인과 공유하고 싶은 진짜 태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단순히 푸켓, 타이마사지, 방콕거리 이런 것들이 아닌)
이 두 활동의 결과가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다. 활동 자체는 정말 활기차고 재미있게 진행됐지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에 가기에는 몇 가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짧은 시간동안 진행했기 때문에 시간적인 제약이 있었고, 우리는 태국어가, 학생들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언어의 제약도 분명 있었다. 또한, 현지스텝에게 미리 우리 목표에 대해 의논하지 않았고, 이에 진행을 하던 스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흥미 위주로 해야 하다 보니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게 되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9,10월 내내 고민하던, 특히 내가 실천하려고 하진 않고 이 곳 시스템에 대해서 투정부리던 날들에 비하면 분명 한 걸음 더 나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화교류활동에서보다 홈스테이에서 고민의 답에 더 다가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홈스테이 마을에 있으면, 학교를 마치고 자기 전 까지 가족과 함께 있기 때문에 상상외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매일 하게 된다. 탁신이나 김정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왜 태국엔 떨어져 사는 가족이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소소하게 저녁메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우리 엄마는 락매니아다...)아무튼,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서로를 알아가고 교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추억+7kg
5개월은 긴 시간이 아니고, 특히 태국팀의 스케쥴은 엄청나게 다양한 활동들을 병행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이뤄내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장기간 활동하는 자원활동가나 단체에서도 분명 이 고민들이 쉬운 고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고민들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5개월이 다 지나고 나서도 쉽게 해결될 고민은 아니겠지만.
두서없이 써 내려 갔는데, 실제로 지금 머릿속이 두서가 없다. 사실, 이 고민들 말고도, 일상이야기, 가족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등등도 잔뜩 써놨다가 지나치게 두서가 없길래 지워버렸다. 물론 이렇게 고민들만 던져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추억과, 사진과, 친구들과, 몸무게+7kg정도도 던져주는 게 라온아띠, 특히 태국팀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