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사랑하는 내 꼬마친구, 피읍에게.


안녕, 피읍!

우리가 만난지도 이제 다섯달이 다 되어 가는구나.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문득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그 동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니까, 너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내 다섯달은 꽉 차서 든든하거든.

3월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 도서관 2층에서 한창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 넌 그런 우리가 신기한 듯 늘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지. 우리말의 ‘ㅍ’ 발음과 똑같은 네 이름은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어. 우리 둘이 친해지게 된 건 니가 알려준 ‘미은 엇미은(있다 없다)’ 놀이를 같이 하면서부터였을거야. 그 당시 가장 자신있게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이름이 뭐니?”, “몇 살이니?”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내게, 나뭇잎을 양 손에 쥐고 어느 손에 있는지 맞추는 그 놀이는 다른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었지.

내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면접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만약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있겠나?’였어. 물론 에이즈가 그런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그 때 난 안아줄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 상황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은 없어서 실제로는 어떨지 잘 알지 못했었어.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아동결연 관련 서류를 보다가 니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이미 너와 음식을 많이 나눠 먹었고 너를 많이 안았지만, 그게 전혀 더럽다거나 걱정된다거나 하진 않더라. 아마 여덟살인 니가 보균자라는건 모자 감염일 가능성이 크겠지. 어찌됐건 너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편견도 깰 수 있었어.

한번은 유치원 수업을 가는데 너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잖아. 이 곳 유치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어려운 형편이고, 때문에 이들 역시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고 해서 교육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어. 하지만 너처럼 생계가 급급해 그런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걸 그제서야 알았어. 매일 너와 몇몇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색칠공부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시작하게 된거야.

피읍! 넌 내가 캄보디아에 있던 다섯 달 동안, 나를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해준 ‘수호천사’였다는거, 알지 모르겠다. 어느 날 센터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을 잡아끌고는 가방 안에서 선물상자를 꺼내줬었잖아.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 안에는 니가 그림공부한 종이들과 연필, 과자, 어디서 났는지 예쁜 머리핀까지 들어있었지. 그 날은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더 싱글벙글이었어. 오죽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자랑하고 다녔다니까! 또 5월이었나? 유독 그 날따라 지치고 힘들어서 혼자 의자에 앉아있는데, 니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늘이 예쁘다고 좀 보라고 했었잖아. 맑은 하늘엔 아주 크고 동그란 모양의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고, 그걸 보는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기분이 좋아졌어. 내가 여태껏 본 무지개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였거든. 얼마 전에 니가 접어준 별과 하트를 받고는 하나하나 접었을 생각에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 나에게 무언가를 주어서가 아니라, 너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참 고마워.

피읍. 너를 통해 캄보디아를 알았고, 이해했고, 더 사랑할 수 있었어.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자꾸만 아쉬워지는 이유도 아마 너를 비롯해 다섯달동안 아낌없이 사랑했던, 많은 꼬마친구들 때문일거야. 내 삶의 모토도 그렇고 이 곳 캄보디아에 오기 전 했던 다짐도 마찬가지인데, 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단 한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지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니가 나를 만나 행복했다면, 그럼 그것만으로 내 다섯달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해.

춤을 좋아해서 음악이 나오면 몇 시간이고 힘든줄 모르고 춤추는 너. 댄서가 되고 싶다는 꿈이 꼭 이뤄지길 응원할게. 다음에 니가 커서, 지금 타고 다니는 큰 자전거가 꼭 맞을 나이가 되면, 나 뒤에 태워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러려면 건강하게 쑥쑥 잘 커야한다!

안녕.


이혜리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도 피읍이 가장 생각나는 아이야! 새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한국에서봐 유정:)
201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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