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충실함도 내일의 나 자신의 안락한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었다. 하지만, 내가 라온아띠가 되고, 현재, 이곳 캄보디아에 있는 5개월 동안 라온아띠는 내게, 인생에 있어서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게 만들고., 이곳에서 다른 이들과 “어떻게” 살지에 집중하며, 다같이 잘사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살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야 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다양성의 일치”
모든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가족간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같은 것이라고는 아시아 사람이란 것 외에 다양성의 극치인 이곳 캄보디아에 와서 캄보디아사람들과 그리고 한국스텝들과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사교성이 좋다고 해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잘 살기위해선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국외활동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에서 나는 한가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었다. 같은게 없다면? 닮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닮아가는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다. 향수병을 싼 종이에 향기가 배이듯이 말이다. 물론, 처음엔 내가 그들의 다름을 잘 알지 못해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때론, 그 다름이 너무도 커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있었고, 감정이 상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들과 나의 다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내 다름을 그들의 다름에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그들과 닮아져 가고 있었다.
타인을 내식대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다양성! 삶의 모든 형태의 가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부분은 그 사람과 닮아가고 그 사람도 나에게 닮아 가면 되는 것이었다. 다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다르기 때문에 나와 그들이 어울릴 수가 있었다.
이곳 캄보디아에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부딪혀 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고, 또한 다른 이들을 같은 문제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요즈음, 새끼손가락부터 피며 숫자를 세고, 빨리빨리 보단 천천히를 외치는 내 자신을 문득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또한, 내 주변의 아이들이 나에게 한국말로 말하면 나는 캄보디아말로 대답하는 상황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느새 나도 그들도 서로 닮아져 있음을 실감한다.
싫지 않다.
오히려 이 닮음을 오래토록 간직하며 나와 다름을 공유한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