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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 귀국보고 캄보디아팀
99+
개인에세이, 한상우
99+
캄보디아에 온지 5개월째가 되던 날. 문득 3월의 내 모습이 궁금해 서랍을 뒤적거려 사진 한 장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찍은 사진인데 지금과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지인처럼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어색한 미소가 아닌 밝게 웃는 내 모습, 이 2가지 변화가 3월과 7월 현재의 내 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뜨거운 햇볕아래에 있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이 뜨거운 햇볕아래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내 자신이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곳 현실에 동화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낯설고 거리감이 있었다면 5개월이 지난 현 시점의 나 자신은 프놈끄라움 마을에 살고 있는 마을주민이 아닐까 싶다. 아침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아이들. 이 사람들이 있기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출국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매주 수업하러 다녔던 학교도 방학하게 되어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금까지도 강하게 받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벌써 그리워서 그러는 지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느낌들이 아이들을 더 못 잊게 만드는 게 아닐까? 라고 혼자 다짐하고 생각해본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날 행복하게 해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뭐라고 자세히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여기서 겪어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캄보디아에 왔건만 내가 더 좋은 친구들을 얻었기에 뭔가 반대로 되어 버렸다. 현지 스텝, 유치원, 중학교 아이들과 나이는 다르지만 함께 지내오면서 주고받았던 마음들을 통해 우리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자신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렇게 허둥지둥하다 소중한 것을 놓칠까봐 겁도 나지만, 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있기에 두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 시간이 흘러 몇 바퀴 돌고 돌아 다시 여기서 보낸 추억들을 만난다면 캄보디아가 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뒤늦은 고백을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에세이, 이정석
99+
이전의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충실함도 내일의 나 자신의 안락한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었다. 하지만, 내가 라온아띠가 되고, 현재, 이곳 캄보디아에 있는 5개월 동안 라온아띠는 내게, 인생에 있어서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게 만들고., 이곳에서 다른 이들과 “어떻게” 살지에 집중하며, 다같이 잘사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살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야 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다양성의 일치” 모든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가족간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같은 것이라고는 아시아 사람이란 것 외에 다양성의 극치인 이곳 캄보디아에 와서 캄보디아사람들과 그리고 한국스텝들과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사교성이 좋다고 해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잘 살기위해선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국외활동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에서 나는 한가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었다. 같은게 없다면? 닮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닮아가는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다. 향수병을 싼 종이에 향기가 배이듯이 말이다. 물론, 처음엔 내가 그들의 다름을 잘 알지 못해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때론, 그 다름이 너무도 커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있었고, 감정이 상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들과 나의 다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내 다름을 그들의 다름에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그들과 닮아져 가고 있었다. 타인을 내식대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다양성! 삶의 모든 형태의 가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부분은 그 사람과 닮아가고 그 사람도 나에게 닮아 가면 되는 것이었다. 다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다르기 때문에 나와 그들이 어울릴 수가 있었다. 이곳 캄보디아에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부딪혀 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고, 또한 다른 이들을 같은 문제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요즈음, 새끼손가락부터 피며 숫자를 세고, 빨리빨리 보단 천천히를 외치는 내 자신을 문득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또한, 내 주변의 아이들이 나에게 한국말로 말하면 나는 캄보디아말로 대답하는 상황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느새 나도 그들도 서로 닮아져 있음을 실감한다. 싫지 않다. 오히려 이 닮음을 오래토록 간직하며 나와 다름을 공유한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개인에세이, 이유정
1
99+
사랑하는 내 꼬마친구, 피읍에게. 안녕, 피읍! 우리가 만난지도 이제 다섯달이 다 되어 가는구나.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문득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그 동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니까, 너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내 다섯달은 꽉 차서 든든하거든. 3월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 도서관 2층에서 한창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 넌 그런 우리가 신기한 듯 늘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지. 우리말의 ‘ㅍ’ 발음과 똑같은 네 이름은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어. 우리 둘이 친해지게 된 건 니가 알려준 ‘미은 엇미은(있다 없다)’ 놀이를 같이 하면서부터였을거야. 그 당시 가장 자신있게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이름이 뭐니?”, “몇 살이니?”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내게, 나뭇잎을 양 손에 쥐고 어느 손에 있는지 맞추는 그 놀이는 다른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었지. 내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면접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만약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있겠나?’였어. 물론 에이즈가 그런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그 때 난 안아줄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 상황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은 없어서 실제로는 어떨지 잘 알지 못했었어.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아동결연 관련 서류를 보다가 니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이미 너와 음식을 많이 나눠 먹었고 너를 많이 안았지만, 그게 전혀 더럽다거나 걱정된다거나 하진 않더라. 아마 여덟살인 니가 보균자라는건 모자 감염일 가능성이 크겠지. 어찌됐건 너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편견도 깰 수 있었어. 한번은 유치원 수업을 가는데 너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잖아. 이 곳 유치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어려운 형편이고, 때문에 이들 역시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고 해서 교육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어. 하지만 너처럼 생계가 급급해 그런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걸 그제서야 알았어. 매일 너와 몇몇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색칠공부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시작하게 된거야. 피읍! 넌 내가 캄보디아에 있던 다섯 달 동안, 나를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해준 ‘수호천사’였다는거, 알지 모르겠다. 어느 날 센터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을 잡아끌고는 가방 안에서 선물상자를 꺼내줬었잖아.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 안에는 니가 그림공부한 종이들과 연필, 과자, 어디서 났는지 예쁜 머리핀까지 들어있었지. 그 날은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더 싱글벙글이었어. 오죽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자랑하고 다녔다니까! 또 5월이었나? 유독 그 날따라 지치고 힘들어서 혼자 의자에 앉아있는데, 니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늘이 예쁘다고 좀 보라고 했었잖아. 맑은 하늘엔 아주 크고 동그란 모양의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고, 그걸 보는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기분이 좋아졌어. 내가 여태껏 본 무지개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였거든. 얼마 전에 니가 접어준 별과 하트를 받고는 하나하나 접었을 생각에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 나에게 무언가를 주어서가 아니라, 너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참 고마워. 피읍. 너를 통해 캄보디아를 알았고, 이해했고, 더 사랑할 수 있었어.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자꾸만 아쉬워지는 이유도 아마 너를 비롯해 다섯달동안 아낌없이 사랑했던, 많은 꼬마친구들 때문일거야. 내 삶의 모토도 그렇고 이 곳 캄보디아에 오기 전 했던 다짐도 마찬가지인데, 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단 한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지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니가 나를 만나 행복했다면, 그럼 그것만으로 내 다섯달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해. 춤을 좋아해서 음악이 나오면 몇 시간이고 힘든줄 모르고 춤추는 너. 댄서가 되고 싶다는 꿈이 꼭 이뤄지길 응원할게. 다음에 니가 커서, 지금 타고 다니는 큰 자전거가 꼭 맞을 나이가 되면, 나 뒤에 태워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러려면 건강하게 쑥쑥 잘 커야한다! 안녕.
개인에세이, 여세린
99+
캄보디아에서의 151일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꿈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참 많이 웃고 뛰어다니며 정말 말 그대로 내 생애 가장 뜨거운 날들을 보냈다. 나는 원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편이다. 날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날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항상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만드느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신경쓰지 않고 내 생애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날 보면 항상 웃어주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태도나 겉모습보다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 역시도 나에게 웃어주는 사람들이 내 친구처럼 느껴졌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경계하지 않으며 가깝게 다가오는 이 사람들 덕분에 항상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꽉 차 있던 나도 더 자유롭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처음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때, 지원동기에 대한 물음에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할 때에는 내 현실을 떠나서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웃어주고 힘이 되어주면 그들도 나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나는 분명 행복하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이유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반겨주고 내게 웃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행복해졌다. 내가 해준 것이 없는데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해주고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함께 뛰어다니고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아이들은 내가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준다는 말을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써왔지만 이곳에서는 마음으로 그 말에 절절히 공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에서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많이도 안아주고 업어주고 함께 뛰어다녔다. 많이 뛰어다니고 많이 안아줄수록 내 몸이 곧 쓰러지겠구나, 곧 죽겠구나 싶었지만 의외로 나는 굉장히 튼튼했고 아프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꽉 차게 되었다. 이런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 이곳에서 떠난다는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내가 며칠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5개월은 정말 작은 기간이지만 이 5개월이 앞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런 5개월을 보내고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여기에서처럼 꿈과 같이 행복함으로 가득차서 살아가는 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5개월의 끝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돌아가서의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에서 배우고 느낀 부분들을 바탕으로 이전보다는 나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엄청 많이 변해서 책에서 나오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된다거나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부분 부분에서 이전보다는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오면서 인정하기 싫었던 부분, 몰랐던 부분들을 이곳에서 느끼고 알게 되면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내가 기대된다.
개인에세이, 문희진
99+
발등에 선명한 신발라인이 생기고 몸과 팔의 색이 확연하게 다르지만 난 지금의 얼룩덜룩 까만 내 피부가 참 맘에 든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현지인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인데, 캄보디아 사람들과 피부를 대보면 살색이 똑같거나 내가 오히려 더 까맣다. 태닝한 것처럼 골고루 예쁘게 탄 것도 아니고, 옷을 입고 다녔던 그대로 제멋대로 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쏙 든다. 한국에서 이렇게 탔다면 과연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센터에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들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살이 타지 않게 하려고 선크림을 수없이 바르는 모습을 많이 본다. 즐거운 여행이지만 부분부분 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일 것이다. 나 역시 캄보디아에 온 처음에는 한 달 동안 선크림 4통을 바를 정도로 열심히 바르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에까지 왔다면 그것도 5개월을 살았다면 까맣게 타지 않고 하얗게 있다 가는 건 참 이상하다.’ 무엇을 해주러 왔다기보다는 적어도 그들과 같이 살아 보려고 마음먹었다면 뜨거운 햇볕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그걸 막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직 캄보디아에 활짝 마음을 열고 다가서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든 후로는 선크림에 매이지 않게 되었다.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무 때나 자다가 눈뜨고도 바로 땡볕인 밖으로 거리낌 없이 나갈 수 있게 말이다. 나의 이런 변화가 순간적인 생각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고, 시간이 지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들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처음보다는 크메르어도 늘어서 현지 스텝들이나 애기들, 주변 사람들과 말이 통하게 되었다. 말이 통하게 되니까 이런저런 얘기들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장난도 더 많이 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다보니 캄보디아 음식, 간식들도 더 다양하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게 부족하던 붙임성도 늘게 되었다.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멈춰있는 사람이나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마구마구 말을 걸고 싶어졌다면 붙임성을 넘어선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내 모든 상황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이 행복하고 즐겁다면 다 좋은 변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캄보디아에 익숙해지니까 어느새 5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익숙해진 생활이라고 해서 혹시나 내가 상황에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행동한 적은 없는지, 조금 더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들과 조금 더 신나게 놀아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나의 5개월을 돌아보게 된다.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을 기분 좋게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되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남은 시간을 더욱 더 열심히, 신나고 행복하게, 마음껏 뛰어놀다 가야겠다. 캄보디아에서의 뜨거웠던 5개월. 나는 지금 참 행복하다.
★캄보디아팀의 6월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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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5기 캄보디아팀의 6월 이야기입니다 ! 여기를 클릭하세요 :D
★캄보디아팀의 5월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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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5기, 캄보디아팀의 5월 이야기입니다 ! 첨부파일을 확인해주세요 :D
밥통기가 고장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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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스팀으로 아이들에게 따듯한 밥을 지어주던 ↑요 밥통기가 고장났어요 ㅜ.ㅜ그래서 요즘은 불에다가 밥을 짓고 있지요!요로코롬 말이죠밥 짓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조절에 실패하면 밥이 까맣게 타버려서못 먹게 될 수도 있어서 요즘 우리친구 쏘톤이 애를 먹고 있답니다. ㅎㅎ하지만!그 덕분에 저희는 요즘 보슬보슬한 스팀밥대신 진밥을 먹고 있어서 한국의 밥을 먹는듯 해서 좋을때도 있답니다. ㅎㅎ이밥이 바로 땔감으로 지은 밥이지요 그래도 어서빨리 밥통기가 다시 되어서(새로 사야하는 상황이라서 좀 걸린다네요ㅠ)많은 아이들에게 밥을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음.. 다음으로 김치소식을 전해봅니다.한국에서 늘상 먹는게 김치인데 왠 김치소식이냐구요?그게 말이죠! 캄보디아에도 김치가 있기 때문이죠!자- 이게바로 캄보디아 김치랍니다.ㅋㅋ어떤가요? 맛있겠죠?우리나라 약간 절인김치 비슷한 느낌으로 비록 고춧가루와 고추장으로 맛깔나게 버무린 우리의 빨간 김치는 아니지만 아삭하니 동치미 같은 식감을 가지고 있어서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답니다.아이들에게 나눠줄 요리를 하기 위해 김치를 썰고 있는 상우의 모습도 보이네요 ㅎㅎ가끔 근처 식당에서 기본 메뉴로 나오기도 하는데 맥주와 함께 곁들이면 그맛은?? ㅋㅋㅋ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맛이죠 뭐- ㅎㅎ캄보디아에 오시면 꼭 먹어보시길-!!ㅎㅎ자- 그 다음 마지막 소식으로 저번에 이어서 탁구부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황학성목사님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탁구부 중에서 출석을 한번도 안빠지고 개근한 아이에게 자전거도 선물해 주셨답니다. ^^아이들에게 짦은 시간 많은걸 가르쳐 주시면서더 많은걸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면서이 아이들이 잘 커서 캄보디아의 탁구 국가대표가 되었으면 한다는 그분의 소원을 아띠캄팀 모두가 응원해봅니다. ㅎㅎ 아- 요즘은 우기로 본격 접어들어서비가 많이오네요- 매일매일!그래서 늦은 소식들이 될지 모르지만 열심히 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리어- 하어이-! (초 시크한 메이님이 협찬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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