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YMCA
가 함께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
로그인
회원가입
라온아띠
프로그램
국내교육
국제자원활동
아시아 소식
모집
공지사항
모집안내
FAQ
Q&A
캠페인
350PPM 캠페인
End Poverty 캠페인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자료실
국내훈련 보고서
국제자원활동 보고서
CI 및 모집 포스터
기타 관련 자료
단원 놀이터
아띠, 서로를 소개하다
아띠, 이야기 나누다
아띠, 시간을 공유하다
아띠, 사진을 기록하다
아띠, 마음맞아 모이다
아띠, 작업실을 열다
자료실
국내훈련 보고서
국제자원활동 보고서
CI 및 모집 포스터
기타 관련 자료
국제자원활동 보고서
All categories
All categories
대한민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2기
All groups
23기
22기
21기
19기
18기
17기
16기
15기
14기
13기
12기
11기
10기
9기
8기
7기
6기
5기
4기
3기
2기
1기
[Last scene]듸비아 에서 엄윤아로 돌아오기 까지
1
99+
5개월이 걸렸습니다.인도에서의 이름. 'DIVYA'로 5개월간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을때 나에 대해 실망하며, 라온아띠를 후회하며, 다른 사람을 탓했습니다온전히 인도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으나 나는 '한국피를 가진 인도인'이었나 봅니다.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현지옷을 입고, 현지식대로 밥을 먹으며, 현지어를 하는 제가 신기한 외국인 정도로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언제 또 올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아례일랴(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어쩌면 이게 진짜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너무 매정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만약에 잠깐 왔다 가는 것이었다면 그냥 또 오겠다며 거짓아닌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겠지요.난 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진짜 제가 올때까지 기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미안합니다.외국인 몇명이 허락도 없이 삶을 헤집어 놓고 갑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헤어짐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당신네들이,말이 아닌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것이.인도에서 나는 듸비아 였지만한국에서의 나는 엄윤아 입니다.또다시 이렇게 제 생활로 돌아왔지만듸비아로 살아갔던 5개월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조언과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이말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윈둠까남" (또 봐요)
[인도를 떠나며] 꼭 다시 만나요. 윈둠까남!
99+
마지막 한달간 Ayiramthengu YMCA에서 요가, 스트레칭,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였다.1) 최유진 단원의 한국어 수업2) 강은지 단원의 요가 수업 7월 18-19일 이틀간 인도 케랄라 지역 Uni-Y 멤버들과 함께Indo-Korean Youth Camp를 진행하였다.1) 유세근 단원의 단소 공연2) 한국 전통의상 및 관련 자료를 전시1) Ayiramthengu YMCA 전경2) 옆 동네 Alappad 지역의 해변3) 접니다. 하하하 살이 좀 쪘죠?마지막 활동 지역인 아이람땡구에서 다섯명 모두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고현지 코디와의 갈등도 최고조에 이르렀고일이 없다며 송실장님과 윤간사님께 SOS를 외쳐대고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반대하던 홈스테이를 두번씩이나 했다. 모기한테 50방도 넘게 물려 잠못자던 밤, 우리 숙소가 얼마나 편한건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인도의 보통 사람들 속에 묻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정작 내몸은 편한것만 추구했던 게으른 내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소중한 친구들, 또 그들의 가족들, 이웃들과 소통하면서 '참' 인도를 만난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헤어질 때 눈물 한방울 안보인 나에게,그렇게 많은 정을 주지 않았던 모진 나에게,뜨거운 눈물과 함께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준 모든이들에게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난니. 윈둠까남!"(고맙습니다. 또 봐요!)
준호와 세근이.
1
99+
인도에 오기 전 몇몇 라온아띠 단원들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세근이랑 준호 어떤애들이야? 둘 다 되게 괜찮은 애들 같은데 국내 훈련기간 동안 둘 다 너무 조용해서 얘기를 많이 못했어."세근이 같은 경우에는 팬클럽도 결성 됐었다.회장에 희곤이, 부회장에 은지였나?아직도 이 둘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사진 한 장에 간단한 소개 올립니다. 우리팀에 딱 둘밖에 없는 남자 팀원들,준호와 세근이는 86년생으로 동갑내기이다.준호는 대구에 살고 사진을 전공하고 있고,세근이는 서울에 살고 전공은 보건행정이다. 아무튼 이 둘은 나이도 같고남자가 둘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그러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어색했다. (그 둘은 아니라고 우겼지만 여자 셋이 볼 땐, 인도 와서도 한동안 어색함 그자체였다)세근이는 DISC진단으로 극C형이다. 내성적이면서 꼼꼼하고 매사에 신중하다. 겉모습도 그렇듯 매우 어른스럽다. 준호는 I형으로 매사에 설렁설렁 넘어가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면서 때로는 소녀같은 감수성을 보일때도 있다. 또 한가지 특징은 놀러가거나 다른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조증'을 보인다는 것? 참! 술도 못마신다. 생긴건 제일 잘 마시게 생겼는데 한잔도 잘 못마신다.이 둘은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많이 달라서친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둘의 유일한 공통점 '먹을걸 좋아한다는거' 때문에 그나마 친해질 수 있었다. 여자 단원들보다 입맛도 까다롭고 먹는양도 더 적지만먹을게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갈만큼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아무튼 그 둘은 그렇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친해졌다.맨날 팀에 오빠 없다고 툴툴대는 나에게 때로는 친구같기도, 때로는 아들같기도 했던 둘이다. Photo by 여준호
Good bye..INDIA
99+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5개월의 기간.. 그 기간동안 이곳 케랄라에서 참 많이 웃고 즐거웠던기억도 많지만, 활동기간이 3개월,4개월로 넘어가면서 현지인들의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이 화나다 못해 분노하고 욕하기도 하고 라온아띠를 내던지고 싶을때도 있었다.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왜 라온아띠에 지원했을까? 라온아띠를 위해서 내가 버리고 포기해야 했던 크고 작은것들...이 생각나 더욱 감정을 격분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떠나고 싶던 케랄라 였는데, 막상 이렇게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가 라온아띠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5개월동안 생활하면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얼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아쉽게만 느껴진다. 가족과 떨어져서 매끼 카레만(현지인들은 다르다지만 우리가 느끼기엔 카레) 먹으며 함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던 유진누나,세근,윤아,은지...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를 망설임 없이 친구로 받아준 마을식구들...그리고 우연히 버스 옆자리에 앉아 우리가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이곳에서 스타라며 우리가 5명이고 YMCA에 지내고 있고 한국인이고 매일 어디서 어디로 이동한다는것을 알고 있던 이름모를 사람들... 그들이 이곳에 주인공인데 내가 주인 마냥 행동하고 그들에게 바라고 그들의 삶에 허락없이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이룬일 아니 한일 하나 없는데 이렇게 떠난다니...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지만 살면서 한번도 못올수도 있지만 확실한건 우리가 서로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수있을거라 믿고, 마음과 웃음을 나누고 눈물을 나눴던 눈이 크고 아름답던 친구들...오랫동안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것같다.. 우리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친구들...난니..나마스까람..보이뜨와란..
India essay_ #.뒷통수를 맞다
99+
#. 뒷통수를 맞다._ 6/2 'Tribal Colony'에서의 수업도 끝이 났다. 우리팀(인도)은 지역을 옮겨 다니기에 잦은 헤어짐은 당연한 거겠지만 역시나 허전한 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지금 있는 곳에서 마무리 정리를 하던참에 콜로니 학생 한명이 우리 숙소에 놀러왔다. 뭔가 이상하다. 콜로니의 아이가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니 현실감이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이젠 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가 보다. 그래도 이 아이가 와줘서 ‘이 아이는 끝까지 우리를 기억해 주겠구나’라는 생각에 너무도 고마웠다. 같이 이것저것 이야기 하는 중간에 충격적인 사실을 한가지 알게 되었다. 콜로니 아이들 중 몇명이 학교를 잘 안간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학교에서 공부하는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곤 가난한것도 이유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난 이제야 콜로니의 아이들 중 몇명은 자신의 이름도 쓰질 못하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우리가 처음만나 이름표를 만들던 날도, 현지어로 쓰인 카드로 스피드게임을 할때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알았더라면 자신의 이름이라도 쓸수 있게 할것을... 우리가 행했던 모든 수업들이 이들에겐 신선했을진 모르지만 정말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달동안 지내면서 했던 수업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쓸모가 있는 것들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게 만든 빈곤이란 이름의 무력함이 시간이 지나서야 나에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빈곤이, 세심히 보지 못한 것이, 그걸 끝나고서야 알게된 것이. 뒷통수를 후려친다.
톡톡인도생활정보(Kerala 주)_ 인도의 진실 혹은 거짓
99+
<네번째 이야기. 진실 혹은 거짓> ‣ 인도는 IT강국이다? -거짓 이것에 속아서 인터넷 카페에 갔다가 낭패를 본적이 꽤 있다. 인터넷도 느리고 다운로드받는데 패킷당 따로 돈을 받는곳도 많다. 여행책에 보니 IT강국이라는 말은 인도 IT전문가들이 인력비가 싸서 그렇다는 말도 나오던데... ‣ 인도는 요가와 밸리댄스의 나라이다? -거짓 이곳이 남인도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가센터는 딱 한군데에서밖에 보지 못했고 주위에도 요가나 밸리댄스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특히 밸리댄스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듯... ‣ 여자들은 전통복인 ‘사리’를 입는다? -진실 사실 결혼한 사람들이 사리를 많이 입고, 젊은 여성들은 ‘주리다’라는 옷을 많이 입는다. (하지만 사리를 입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으므로 진실로 남겨두자) ‣ 인도사람이라면 카스트 계급을 가지고 있다? -거짓 카스트는 힌두에서 나온것이다. 무슬림도 계급이 나눠지긴 하나 크리스쳔(개신교,천주교)은 카스트 계급이 나눠지지 않는다. ‣ 힌두교인은 소고기를 절대 안먹는다? -거짓 개신교인이 금주를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는것처럼 힌두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 이슬람(무슬림)은 꼭 머리를 감싸야한다? -진실 특히 여성은 흰색이나 검정색 천을 써서 머리를 감싼다. 남자의 경우는 흰색모자를 많이 쓰며 아이들은 무지개빛 모자를 쓰기도 한다 ‣ 인도의 주식은 카레이다? -진실 밥과 함께 먹는 카레도 있지만 side dish도 많다. 사실 인도사람들은 카레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 입맛에는 다같은 카레일지도 모른다.
[by 최유진] 안녕하세요! 2기 인도팀 최 유 진 입니다.^ㅁ^
1
99+
안녕하세요! 2기 인도팀 최 유 진 입니다.^ㅁ^ 어느덧 인도에 온지도 100일이 다 되어가네요. 오늘은 반 정도 지난 이 시점에서 저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개해볼까 합니다. 먼저 저희가 살고 있는 곳은 인도 남부 ‘케랄라(Kerala)’주의 ‘와이나르(Wayanad)’에 있는 ‘와이띠리(Vythiri)’라는 지역입니다. 낮에 조금 덥긴 하지만 고산지대라 그런지 다른 지역에 비해 서늘하고 저녁엔 추울 정도에요. 다음 달 중순쯤 우기가 시작 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 한달 전부터 오후나 저녁때 비가 한차례씩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지곤 한답니다. 함께 살고 있는 강은지 단원은 얼마 전 라온아띠 국내훈련 때 입었던 기모 후드티를(즉, 겨울에 입던 옷이죠)꺼내 입기 시작했어요. 잘 때도 담요는 항상 덥고 자고요. ‘-’;;; 저희는 매일 아침 9시 반에 버스를 타고 콜로니로 향합니다. 두 달 가까이 콜로니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바느질과 태권도도 가르치면서 지내고 있어요. 수업은 1시간 반인데 집에서 콜로니까지 왕복 2시간을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보내다 보면 약간 지치기도 하지만 버스 갈아타는 중간 정류장에서 10루피(300원)짜리 음료 한잔에 푹 쳐져 있다가도 힘을 내요. 아래 사진은 콜로니 아이들이에요~ 인도 버스에는 conductor가 있어요. 우리나라 예전에 ‘차장’이 있던 것처럼(차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버스마다 한 분씩 계셔서 돌아다니면서 버스비를 걷어가세요. 매일 거의 일정한 시간에 버스를 타다 보니까 친한 분들도 생겼는데 두 번째 사진은 그 중에 한분이에요. (아저씨 같지만 저랑 동갑이랍니다. 85년생이에요~^^)그리고 처음에 와서 놀랐던 점은 버스에 좌석이 남녀 나눠서 앉게 되어있는 거였어요. 가끔 같이 앉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남녀 좌석 구분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것 같아요. 원래는 콜로니 아이들 가르치는 활동만 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수업일수가 많이 늘어나서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만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다른 지역으로 가기 전 2주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대나무 수공예를 배우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이분들께 폐만 끼치는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갈 때마다 반겨주셔서 그런지 저희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 있어요. 아래 사진에 나온 세 분은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저희의 좋은 친구 분들 이랍니다.. 왼쪽부터 조쉬, 수바쉬, 바부 아저씨에요. 바부 아저씨는 버스 정류장에서 포장마차같이 빵이나 짜야를 파시는 분이에요. (인도 전통 차, 짜이라고도 합니다. 인도에는 하루에 두 번 오전11시, 오후 5시에 티타임이 있는데 이 때 마다 짜이를 먹어요.) 세 분다 정말 유쾌하시고 재미있는 분들이에요. 한 번은 저 혼자 2시간 정도 기다리는 일이 있었는데 끝까지 계속 같이 기다려주고 어둡다고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되나 싶었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에 세분이랑 가는데 어찌나 든든하던지~ 집에 가는 내내 제가 계속 미안하다고 했더니 우린 친구라고 친구끼리는 미안해 하는 거 아니라고 하시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저도 뭔가 해드리고 싶은데 바부 아저씨 딸이 5월 30일에 결혼을 해서 당분간 장사하러 못나오신다고 하셔서 가기 전에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떠날 순 없는데......ㅠ_ㅠ 아무튼 저한테는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는 아니지만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다음 사진은 저희 다섯 명이 집 근처에 나들이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찍은건데, 예쁘죠? 정말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다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쉬워요.
[by Sekeun] Essay
99+
4월 27~28일 (화,수) Hi-Y 멤버인 Sara의 집에서 Homestay. Bio-gas를 이용한 주방과 Organic food 식단이 인상 깊었다. 3000년 정도 된 Edakkal Caves를 구경하고 Wyanad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경사가 엄청 가파라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결국 정상을 찍었다. 5월 6일 바느질 수업은 잘 마무리 되었지만 태권도 수업은 아이들의 호응 부족으로 중단. 이번 주부터 미술 수업 위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나뭇잎 붙이기 수업. 5월 7일 준호가 출사 가자고 해서 집 뒤쪽 길로 산책을 나갔다. 우리들의 설정 샷. 5월 17일 우기가 오려는지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밤 하늘이 맑게 개였다. 별자리랑 은하수가 진짜 아름다웠다. 5월 20일 Bamboo Community에 나가기 시작.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만든 Self-helping group으로 대나무 공예 상품을 만들어 내다 팔고 있다. 오늘은 팔찌 만드는 것을 배웠다. -അനിഷ്- (사진은 모두 ആകാസ് )
India Essay # 22 쑨데렌 수디시[by 강은지]
99+
India Essay # 22 쑨데렌 수디시 지난 5월 29일을 끝으로 인도팀의 전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칠드런 케어센터의 아동들을 위한 교육이 마무리 됐습니다. 두 달여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이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들과 저희의 미흡함에 수업을 한 총 일수는 28일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는 하루하루 만큼은 많이 웃고, 웃겨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꽤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웠고, 매일 불렀지만 그 중에도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가는 고산마을(마니와야르)의 골목대장(라기쉬)의 절친한 친구쯤으로 보이기도하고, 그 동네를 주름잡는 개구쟁이파(라기쉬, 수디시, 샤시인드라, 아킬, 위슈누)의 한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항상 떠들썩한 개구쟁이들 사이에 있지만 시끄럽지는 않습니다. 수줍음을 타진않지만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설명하기라도하면 빠질듯한 눈망울로 어찌나 집중을 하던지 어린 아이의 진지한 눈빛에 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 미술수업 때는 색칠을 하게되면 누가 크레파스인지 모를 정도로 색칠에 집중을 하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집의 일을 돕느라 수업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누 웨루 일랴?(오늘 안오니?)’는 물음에 그냥 웃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물에서 물을 퍼나르는 아이를 만나서는 ‘수디시. 날레 웨루. 에니끼 수디시 이브레 와 웨남(수디시, 내일은 와. 나는 수디시가 왔으면 좋겠어)’라고 했더니 그새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윈둠까남, 날레까남(또 봐요. 내일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워요!!!! 어느 날에는 옆집 꼬마가 제게 판박이를 해주었습니다. (꼬마들이 가지고 놀기엔 좀 무시무시하지만) 핏자국으로 칼에 베인 모양의 판박이였습니다. 막상 붙이고나니 그럴듯해보이길래 그 다음날 센터에 가서 아이들을 속였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업에 지각한 수디시가 문밖에서 교실을 들여다 보길래 창문에 다가가 팔목에 붙인 판박이를 보여주며 ‘수디시, 에니끼 이누 수까멜라(수디시, 나 오늘 아파)’라고 했더니 원래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싸! 제대로 속였다’라고 통쾌해 하며 수디시에게 ‘호~’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팔목을 두손으로 고이 들고는 ‘호~’하더군요. 그것도 매우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말입니다. 아, 이런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나요. 가끔 대뜸 그 아이에게 다가가 ‘닌네끄 엔네 이시타마요?(너 나 좋아하니?)’라고 물으면 ‘왈레르 왈레르 이시타마이!(정말 정말 좋아해요!)’라고 대답합니다. 아 정말 너무 사랑스러워 미치겠습니다. 지난 마지막 수업 때 저희 팀원들의 조그마한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그간 수업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영상으로 편집하고, 요술풍선을 만들어주고, 전날 팀원들과 함께 만들어간 달고나를 나눠주면서 이별의 아픔을 달랬지요. 거창할 것없는 파티였지만 파티를 끝내고 유난히 긴 인사를 하던 중에 저는 슬며시 그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뜬금없이 ‘윈둠까남. 아르타 틴칼 이브레와?(또 봐요. 다음 주 월요일에 와요?)’라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 아이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걸 몰랐나 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뜬금없이 요술풍선을 선물이라며 나눠주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박수를 치는 상황이 이해가 안갔을텐데 분위기따라 박수치고 웃었나 봅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장난감 북으로 장단까지 맞춰가며 우리에게 노래를 선물해주었는데, 그냥 불르라기에 불렀나봅니다.(이것도 너무 사랑스럽죠?) 어쨌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고나서 마을을 내려오는 길에 아이와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아이가 자꾸 ‘뽄다뽄다(가지마요.가지마요)’하는데도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냥 아이의 볼만 쓰다듬었습니다. 나도 ‘뽄다’하고싶습니다. 살면서 이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만나기 힘들겠지요. 저는 야속하게 거짓말로라도 ‘윈둠 까남’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그 아이가 기다릴까해서 말입니다. 이 아이가 지금처럼만 잘 웃고, 지금처럼만 건강하고 착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림 1) 고산마을 개구쟁이들(라기쉬, 샤시인드라, 수디시)그림 2) 사랑스런 수디시
1
2
3
Title
All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6-11 | 02-754-7892 |
asiaraonatti@gmail.com
| 2024 한국 YMCA 전국연맹
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