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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두번째 -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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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두번째2008.09.23written by - 함보람‘ 찌나 찌나~ ‘ 처음 이 곳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찌나 찌나~” 길거리에 지나다니거나 이동할 때 트럭 뒤에 타고 있는 우리를 보고 현지인들이 던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알고 보니 중국인들을 부르는 테툼어였다. 화교들이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딜리 시내에서 동양인들을 보면 의례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별 생각 없이 흘려 들었지만 오후에 외출하거나 밖에 나갈 때 마다 우리를 놀리는 듯한 어투로 ‘찌나’ 라고 외치는 현지인들을 마주 치는 것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간사님께서 그냥 무시하고 대꾸하지 말고 지나가라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을 그냥 흘려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길에 지나다니다가 이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난다. 일부러 MP3 음악 소리 볼륨을 귀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키우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이, 어렸을 때 파란 눈의 외국인이 지나가면 괜한 호기심에 “Hi” “Hello” 같은 인사말을 건네면서 친구들끼리 키득키득 웃었던 경험이 있으리라. 낯선 생김새의 외국인에 대한 큰 의미 없는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동티모르에서 내가 그런 ‘외국인’의 입장인 셈이다. 호기심 섞인 장난 조차 웃음으로 받을 수 없는 내 자신이 왠지 작아 보였다. 여전히 나는 닫혀있는 것만 같은 생각에 거리를 걸을 때 마다 발걸음이 무겁다. ‘ 무료함과 여유 사이 에서 ’ 여기 도착해서 처음으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료함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5시에 테툼어 수업 시작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책도 계속 읽다 보니 지루하고 날씨도 더운 곳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해야 할 고민과 끝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 무료함이란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던 무료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비슷한 어려움을 팀원들이 대부분 겪고 있었다. 이대로 쭉 가다 보면 이 무료함에 지쳐 무기력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무언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무료함을 어떻게 체득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꼭 해야 할 일’ 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긴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나름의 답을 얻었다. 그것은‘ 비어있는 시간 ‘을 ‘ 할 일 없는 따분함 ‘ 이 아니라 여유로움으로 머리 속으로 끊임 없이 되뇌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일들에 치여 미처 생각하고 고민하지 못했던 것을 되돌아보고 그리고 사치라고만 여겨졌던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쉬면서도 불안한 이 느낌. 양치질 하고 제대로 헹구지 못한 것 마냥 찝찝했다. 하지만 하루 하루 나도 모르게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익숙해 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 그 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을 한 번 뒤집어 보고 그 것에 나를 맞추어 본다는 것. 현지 적응의 가장 첫 걸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동티모르 생활 한달 차 풋내기의 동티모르 생활 팁’ 1. 물건을 살 때에는 우선 반 값으로 깎고 본다. 외국인은 무조건 돈이 많은 줄 알고 값을 높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2. 유제품은 되도록 사먹지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유제품들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것들인데, 냉장보관을 제대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모조리 한 달 이상인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방부제가 들어갔길래 유제품의 유통기한이 그리 길 수 있다는 말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빙성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어서 선택은 개인에게 달렸다. 그러나, 나는 사먹지 않는다. 3. 택시를 탈 때에는 흥정을 먼저 한다. 딜리 시내가 좁아서 웬만한 거리는 택시로 2 달러 정도면 모두 갈 수 있다. 하지만 타기 전에 미리 흥정을 하고 타는 것이 좋다. 내릴 때 값을 비싸게 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흥정을 해도 도통 먹히지 않을 떄가 있다. 그럴 떄는 과감하게 보내버린다. 왜냐고?! 택시는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미터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전 기사의 판단에 따라 값을 부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합당한 값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더운 볕에서 택시를 잡고 흥정하는 수고는 감수해야한다. 4. 길을 건널 때에는 무조건 오른쪽을 먼저 살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랑 교통 방향이 모조리 반대이기 때문이다. 운전석도 반대다. 5. 점심시간에 상점을 방문하는 것은 헛탕 칠 가능성이 많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상점들이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다. 큰 마켓조차 점심시간이라고 문을 닫아놔서 땡볕에서 말 없이 되돌아 왔던 경험이 있다. + 사진 (첨부파일 참고해주세요) - 구아바 사진 - 구아바 구아바~ 여기 사람들은 너무 흔한 구아바를 왜 먹는지 이해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맛있는 구아바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아름의 구아바를 안고 며칠이나 행복했다 - 3달러 사진 -열 명이 넘는 입들의 아침을 행복하게 해주는 3$ .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빵사러 가는 길, 빵 사진 - 하지만, 여기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 안개 자욱한 길을 걸어가면 큰 시장이 나타나는데 그 곳에서 이렇게 생긴 빵들을 많이 판다. 흡사 바게트마냥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것이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아 크게 질리지 않는다.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오래 받은 동티모르이기 때문에 아침을 빵과 커피로 한다고 한다. 사진에 나온 빵이 가장 기본적이고 다른 모양의 빵들이 두어가지 더 있지만 맛은 사실 비슷비슷하다.
(09.23) 판이의 뉴스 클리핑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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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 Thursday, 28 August 2008] Little hands should carry schoolbooks 아이들의 손은 교과서를 들어야 한다 When I moved abroad, and more specifically when I moved to Dili from the districts, I thought my politics on consumerism - my belief that countries that refuse to allow unions or protect the rights of their workers should not benefit from my money - would be in the majority or at least enjoy some comfortable numbers. I assumed that aid workers, many of whom come from first world countries and are well aware of the politics of child labour, would be vigorously opposed to child labour. But I was wrong. I have written briefly once before about the wrongness of supporting child phone card sellers, but of course it is more than that. Every weekend, armies of school aged children wander along the beach selling fruit and peanuts. All along the boulevards of Dili, children sell water, snacks, beer and cigarettes, all of which foreigners buy. Indeed, on the cover of the Report on Human Rights Development in Timor -Leste released this month by UNMIT, there is a large colour photo of a child selling fruit. Apparently the UN could find no clearer image of a human rights abuse than a working child. It is true there are almost no factories in Timor and Nike isn't coming anytime soon. But the principle is the same - child labour in wrong, for a number of reasons, some ethical and others logical. If a foreigner who works on a livelihoods project buys a bottle of water from a school aged child, she has just contributed to the problem she's trying to eradicate. As that child sells water, his older brother or sister is (if they are lucky) sitting in a skills training program or at home, unemployed. Timorese need money and all of us should support micro-economies by buying from local produce vendors down the street or from neighbourhood kiosks whenever possible, but children should be in school. Every time a child is rewarded for selling a phone card, the more the child is encouraged to sell instead of attend school. Can it possibly be that children only work on holidays or after school? Riiight. And even if they did, what kind of a callous adult would wish upon a child a day of school lessons followed by a day of work, instead of a childhood of games and fun? Jobs statistics gathered by a survey of employed adults paint an inaccurate picture of Timor, since they ignore a majority of the real workforce. Until there are no more unemployed adults, there is no reason to have even a single child at work in Dili. So what can we do about this? To start with, don't buy anything from small children, ever. And don't simply refuse to buy anything, tell them why. Because most small children don't know English (or math or Portuguese or science or the alphabet or much of anything else because they're too busy selling you oranges to attend class), here's how to make the piont in Tetun, "O nia tinan la to'o, entaun hau lakohi hola buat nee. Hau la hola sasan husi labarik kiik oan." Imagine a Dili where every foreigner did this. The kids would go home and say, "Mom, people aren't buying anything from me. They said I should go to school!" Just imagine! Within a month or two the beaches would be full of teenaged brothers and sisters carrying a stick heavy with fruit. Livelihoods classes would empty. This should be enough to fix the problem, but of course, it isn't. Non governmental organisations and aid agencies themselves have to make this problem a priority. The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amongst others, must have fairly strict anti-child policies, but to date I've seen nothing done about the problem. We need posters ("Little hands should carry schoolbooks!"), we need classroom curricula, we need law enforcement to get on board and we need to get on the radio, television and newspapers and scream from the rooftops : Child labour is always wrong. We need to change some minds at the local level. Foreigners mostly come here to try to make life a little better for the people here and the Timorese welcome them because they hope they can help develop their country. Turning a nation's children into robot waiters while depriving them of an deucation isn't going to do either one of those things. We can't afford to forget that. 2008년 8월 28일 사설 아이들의 손은 교과서를 들어야 한다 내가 밖에 나갈 때, 특히 지방에서 딜리로 이동할 때, 나는 나의 소비 옹호론이-내 신조는 노동조합 결성이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를 거부하는 나라들은 내 돈으로부터 이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거나 적어도 납득할만한 수의 의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부분은 1세계 국가들에서 왔고 아동 노동에 대해 잘 아는 국제 구호자들이 아동 노동에 대해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이전에 간단히 전화카드를 파는 아이들을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한 지적을 한 적이 있지만, 물론 상황은 그보다 더하다. 매주 취학 연령의 어린이들의 떼가 과일과 땅콩들을 팔며 해변가를 떠돈다. 딜리의 가로수길가에서 아이들은 물, 과자, 맥주, 담배를 파는데 대부분 외국인들이 산다. 정말로, UNMIT에서 이번달에 발행한 동티모르의 인권 성장(개발)에 관한 보고서에는, 과일을 팔고 있는 아이의 커다란 칼라 사진이 있다. 분명히 UN은 일하는 아동보다 인권 학대에 대한 확실한 그림을 찾을 수 없다. 티모르에는 거의 공장이 없고, 나이키 같은 회사가 바로 들어 올 것도 아니다. 그러나 원칙은 같다. 아동 노동은 윤리적이거나 논리적인 여러의 이유로 잘못된 것이다. 만약 한 외국인이 취학 연령의 아동에게 물을 산다면, 그녀는 곧 그녀가 해결하려는 문제에 기여하는 꼴이다. 그 어린이가 물을 팔고 있기에, 운이 좋다면 그의 형이나 누나는 기술 교육 프로그램에 앉아 있거나, 무직인 상태로 집에 있을 것이다. 티모르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고, 우리는 가능하다면, 길가의 지역 상품 상인이나 이웃의 가판대에서 구매를 함으로써 지역경제(또는 마을 단위의 작은 경제규모?)를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전화 카드를 팔아서 보상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은 더더욱 학교에 가기 보다는 물건을 팔려고만 할 것이다. 과연 아이들이 오직 휴일이나 방과 후에만 일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으~렇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무감각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루의 일을 마치고 어린시절의 놀이와 즐거움 대신, 그날 그날의 학교 교과에 대해 공부하기를 바랄까? 고용에 대한 조사에서의 직업 통계는 티모르의 상황을 잘못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다수의 실제 노동력을 모른체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실업상태의 어른들이 없을 때가 돼서야, 딜리에서 단 한명의 어린이라도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로, 어린 아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사지 마라. 그리고 단지 구매를 거절하지만 말고, 그들에게 이유를 말해라.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에게 오렌지를 파느라 매우 바빠서 수업에 참가할 시간이 없었기에 수학, 포르투갈어, 과학, 알파벳 등을 모른다) 여기에 테튬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적어둔다. “ 너의 나이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사고 싶지 않다.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물건들을 사지 않는다.” 딜리의 모든 외국인들이 이렇게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 아이는 집에 가서 말할 것이다. “엄마, 사람들이 저한테서 물건을 안사요. 저는 학교에 가야 된데요!” 상상해보라! 한달이나 두달 안에 해안가는 과일로 가득한 막대를 든 십대인 형 누나들로 가득 찰 것이다. 동네 교실을 비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치 않다. 비정부기구와 국제 구호단체들은 이 문제를 우선 사항으로 정해야 한다. 다른 단체들 중에 국제 노동 기구는 공정하고 엄격한 아동 노동 반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이 문제와 관련되어 아무 것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포스터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손은 교과서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교실이 필요하다, 우리는 안내판(아동 노동에 대한?)을 걸어야할 법적 강제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신문에 연락할 필요가 있고, 지붕위에서 외쳐야한다. 아동 노동을 언제나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는 지역적 수준에서 마음의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현지의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이곳에 왔고, 티모르 사람들은 외국인들이 티모르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에 외국인들을 반긴다. 나라의 아이들을 교육으로부터 떼어놓는 동시에 로봇 웨이터로 변하게 하는 것은 나라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안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잊을 여유가 없다. * 본 해석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밑줄 친 부분은 해석이 심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09.23) 판이의 뉴스 클리핑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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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동티모르] [Editorial - Thursday, 7 February 2008 Jobs, not rations, key to independence This week is a week of mixed progress in Timor-Leste. Monday the Untied Nations Police handed over three neighborhood police posts to the National Police of Timor-Leste as a sign of trust and faith in our local police. If PNTL can manage this without a spike in criminal activity, this may be taken as a positivefirst step in a long goodbye to foreign peace keepers. If this move proves successful, no one will regret it. Another step toward normalcy-though this one much more dubious-is the reduction of rations for the internally displaced people(IDPs). Three years ago only widows, veterans and victims of natural disasters got regular government handouts. Then, in th last two years tens of thousands of people suddenly demanded the government's aid. And surely there are many tens of thousands of these people who are truly needy and there are few among us so callous as to deny a genuinely needy person his rations. However many registered names, possibly up to a third, are fraudulent. That is to say, tens of thousands of people who should not be getting rice, oil, beans and tents. And there are few among us who would accept this. But can the government really slash food rations by half? Who here is so well off as to not need some extra beans or rice? The price of rice is rising in Dili as well as in Oecusse (where locals say it's already reached $40 a bag) following flooding in Thailand and Vietnam. And now, after our own recent spate of natural disasters in the west, it seems likely times will get worse before they get better. It seems clear that, even if one is not a legitimate IDP, one could still use the government's handouts. But of course, a handout based economy is a fraudulent economy. Moreover, there is a certain shame to constant dependence that we cannot tolerate. If we do not produce, if we do not create or strive to progress and move forward then we will become a begging bowl society. We struggled for decades against colonialist oppressors and high odds to determine our own path and that path must be one of self reliance. Work and sweat in Timor are hot, hard, bitter things, but the fruits of one's labor are still sweeter than free handouts from foreigners. Much like PNTL with UNPol, we can take lessons from the foreigners but we cannot depend on them. What the government should do then is offer greater work opportunities to everyone-not just the IDPs. The government should take the money it spends on rice, oil, etc and spend it on work programs across the nation. Anyone who needs work should be able to find it. There is a vast potential for work here. Until every last piece of litter is picked up, until the seafront sparkles from sand rather than Aqua bottles, until every last hole is patched and all the roads paved and until all the public buildings are painted and the parks maintained only then will we believe that there is no more work to be had in Timor. We will be independent only when most able bodied people have means to support themselves and their families. So we ask the government to remember, jobs are the key, After the rations have been taken away and the food prices go up and the bellies get hungry, what then? If there are no jobs to be had, what then? 2008.2.7 사설 배급이 아닌 일자리가 독립의 관건이다. 이번 주는 동티모르에 복합적인 발전의 한주이다. 월요일에는, UN경찰이 3개 지역의 경찰서를 동티모를 경찰에게 우리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표시로 양도했다. 만약 동티모르 경찰이 특별한 범죄행위 없이 잘 운영한다면, 이것은 외국의 평화지킴이들에 대한 긴 이별의 긍정적인 첫 걸음으로 여겨질 것이다. 만약 이런 움직임이 성공적으로 입증된다면, 아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향한 다른 한 걸음은-비록 이것은 더 의심스럽긴 하지만- 국내의 난민들에 대한 배급의 감소이다. 3년 전에는 오직 미망인, 퇴역 군인, 자연 재해의 피해자들만이 정부의 보조(금)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지난 2년간, 수만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정부의 원조를 요구했다. 그리고 분명히 정말로 빈곤한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 중에는 정말로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배급을 반대할 만큼 냉정한 사람들이 없다. 그러나 등록된 사람들 중의 많게는 1/3정도까지가 거짓이다. 즉, 쌀과 기름과 콩과 천막을 받지 말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쌀과 기름과 콩과 천막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과연 식량배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까? 여기의 누가 약간의 콩과 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부유할까? 태국과 베트남의 홍수 때문에 오이쿠시 지역(한 가마니에 이미 $40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딜리도 쌀 값이 오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서부(?)에서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그들이 회복되기 전에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어느 사람이 합법적인 난민이 아닐지라도, 그가 정부의 원조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경제에 기반을 둔 원조는 허울 경제일 뿐이다. 더욱이, 지속되는 의존에 대한 참을수 없는 수치심이 있다. 만약 우리가 생산하지 않거나, 발전하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걸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수십년간 식민 통치자들과 우리의 독립의 길에 대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저항했다. 티모르에서의 일과 땀은 덥고, 힘들고, 쓰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결실은 여전히 외국의 무상 원조보다 달다. 동티모르 경찰과 유엔 경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외국인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일자리를 단지 난민들이 아닌 모든이들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는 쌀, 기름 등등에 쓰이는 돈을 거두어서 전국에 걸친 일자리 프로그램에 써야 한다. 일자리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는 거대한 노동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쓰레기 한 조각이 주워 질 때까지, 해안이 아쿠아 물병(*현지 생수 브랜드)보다는 모래에서 빛날 때까지, 모든 구멍을 메꾸어 모든 도로가 포장될 때까지, 모든 공공 건물이 페인트칠 되고 모든 공원이 유지될 때까지. 그제서야 우리는 티모르에 더 이상의 할 일이 없다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유능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을 지원할 수단을 갖게 될 때가 돼서야 독립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에게 일자리가 관건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배급이 끝나고, 식량값이 오르고, 배가 고파지면, 그 다음엔? 만약 일자리가 없다면, 그러면? * 본 해석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밑줄 친 부분은 해석이 심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에세이-3]산타끄루즈 묘지를 다녀와서 by 양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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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008 , Sunday , timor Leste Dili , ANJU 민족의 대 명절, 추석. 오전시간에 산따끄루스 답사가 있던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시바시 간사님께서 일정을 잡았을때부터 막연한 기대를 하였다. 왠 크리스마스 마을인가 하고 괜한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답사 전 약간의 오리엔테이션과 동영상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산따끄루스 대학살’사건은 1991년 10월 28일 인도네시아 군인과 경찰이 ‘고메즈’라는 청년을 붙잡아 저항세력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40여명의 청년을 연행한 사건이다. 11월 2일, 무덤에 꽃을 놓는 동티모르 관습에 따라 수 천 명의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고메스의 유해가 안장된 산따끄루스 묘지를 향해 행진했다. 그때 인도네시아군의 무차별 발포로 273명이 사망했고, 250여명이 실종됐으며, 37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건으로 동티모르가 단번에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동티모르의 참혹한 인권상황이 국제문제로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그럴수록 인도네시아 정부는 강압적인 통치로 침공 1년 동안 동티모르 저항군과 주민 10만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영상속의 총을 맞고 쓰러져있는 아저씨와 가족인냥 보이는 남자가 그를 안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안고 있는 모습에서 나도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한국전쟁이 생각 났다. 겪어보지 않은 일인데도 그렇게 마음이 아픈데 이 사람들을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 사건이 100년전 50년전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들의 유족들이 아직 이 사건을 기억 하고 있고 가슴속에 묻었을 것이다. 라온아띠에 선발되고 동티모르로 확정이 되고 집에서 보는 올림픽 개막식에는 동티모르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었다. 해설자는 동티모르.. 참 슬픈 나라라며 소개를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슬픈나라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그 전에 많은 지식을 쌓지 못한 봉사단원으로써의 내 마음가짐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묘지로 가는길.. 산따끄루즈 바로 앞에서는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묘지가 있었다. 이 무슨 기묘한 현실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죽인자와 죽은자들의 무덤이 쌍방을 향하여 있고 인도네시아 군들의 묘지는 정갈하게.. 산따끄루즈 묘지는 한자리가 비좁다 하고 틈을 두지 않고 묘지가 빽빽히 있었다. 이시바시 간사님은 “결국은 모두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고 어쨌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산타 끄루스 묘지에는 한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무자비 하게 죽은 자들의 묘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나라 였다면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화장을 했을텐데 라는 생각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군의 묘지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에서 이런 동티모르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시바시 간사님께서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총 하나로 목숨을 잃었을 생각을 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가슴이 아팠다. 나는 오늘부터 ‘띠모르레스떼 탄생’책을 열심히 읽어 보아야 겠다. 다른 친구들에게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친구들이 바로 이해 할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겠다.
episode 3 : 왜 베트남에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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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저희 팀은 YMCA에서 운영하는 disabled club을 방문하였습니다. 정확히 저희의 일정에는 '베트남 랭귀지 프랙티스 앤 익스체인지'라고 쓰여진 기간이었지요. 아직 저희의 베트남어 실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론 한달 전과 비교하자면 일취월장 하였지만 그래도 이곳의 스탭들은 우리들이 많은 것을 이곳에서 얻어가기 위해서는 베트남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YMCA스탭을 제외하고는 영어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어쨌든, 그래서 저희가 그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참으로 한정되어있습니다. 가족이 몇명인지, 고향이 어딘지에서 부터 시작하는 부가질문들. 사실 더 어려운 것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분명 이해했지만 그것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어로 대답하라고 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을 법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베트남에 왔어요?" 사실 이 질문 꽤 받습니다. YMCA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잘 모릅니다. 게다가 보통 우리가 그들을 만나는 가장 큰 목적에는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 얘들은 왜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건지. 궁금할 법도 합니다. "volunteer!" 처음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서 자원봉사자를 뜻하는 베트남어를 익히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이제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 클럽 안에서 가장 돌봄을 받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 다섯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만큼 쉽게 질리고 쉽게 거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려고 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들과 친구가 되기 어려운 길을 가는 방법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들과 이야기 했고, 같은 방에 일자로 누워서 낮잠을 잤고, 같이 밥을 먹었고,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분명 서로 즐거웠습니다. 그게 다였고, 그냥 그걸로 충분했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되는 과정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고 분명 느끼고 있었습니다. "hoc tieng viet (베트남어 공부)" 그래서 실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에 가장 민감한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결코 베트남어를 공부하러 오지는 않았으니까요. 왜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있냐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대답하지요. 참 잘한 대답 같습니다. "hoc viet nam (베트남 공부)" 그래서 요즘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은 이것입니다. 이 대답을 할 경우 우리의 발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시 베트남어 공부로 오해(?) 받습니다. 그러면 그 앞에 사회라던지, 문화라던지 하는 단어를 붙이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웃습니다. 사실 참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재미있습니다. 이를테면 중추절의 베트남에서 느꼈던 이것저것, 호치민의 GDP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내 전경, 돈이 있으면 나는 당연히 미국의 가전제품, 미국의 자동차를 사겠다고 하는 직업학교 교장선생님, 우리 앞에서 갑자기 한국말을 하면서 백마부대의 사단가를 불러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할아버지, 오토바이와 어지러운 전기줄로 말해지는 지금의 호치민, 그리고 호치민을 조금만 벗어나도 또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베트남과 53개의 소수민족, 투숙객보다 호텔가족이 약 3배가량 많은 우리 홈스테인지 호텔인지 모르겠는 이곳. 하나하나 큰 질문 덩어리들입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베트남을 만나러 왔다.' 라던지 '이 지역과 함께하러 왔다'라던지, 조금 거창하게 '우리는 아시아의 친구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친구, 만나다 등의 단어가 갖고 있는 뉘앙스나 의미가 한국의 그것과 같은지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달 있으면서 베트남어 'hoc(배우다, 공부하다)'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의미를 조금은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일단 지금은 베트남 공부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안까뇨메(생선을 먹다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이건 지금까지의 글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냥 최근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이야기 거리를 하나 소개하려구요. 어느날 우리는 생선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YMCA 에서 늘 밥을 해주시는 꼬남이라는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정말 유쾌한 분이셔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분이지요. 그 꼬남(꼬남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존칭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이건 건방진 표현이 아닙니다.)이 그날 그 생선을 발라주었습니다. 그 광경에 문득 집의 어머니가 생각난 우리 팀원 중 한명이 눈물을 흘렸지요. 그리고 꼬남도 같이 눈물을 흘렸구요. 여기까지는 참 훈훈하고 가슴 따뜻하고 슬픈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는데, 같이 눈물을 흘리던 꼬남은 그 이야기를 그 건물의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 호탕하게 웃으면서요. 그래서 아마 지금쯤 베트남의 약 100명정도가 수연이가 생선 먹다가 운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 이름이 나왔다.) 어쨌든, 참 웃기게도 '안(먹다)까(생선)뇨(그리워하다)메(어머니)'는 지금 우리에게는 가장 즐거운 이야기 거리입니다.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고, 재미들이 있습니다. 어려움도 있구요.( 한달 만에 이렇게 많은 일과 부딪히고 있다는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사람 마음이 다르고 읽는 사람 마음이 또 다름을 알아서 그냥 이번에는 이정도로 하렵니다. 하하. 어쨌든 지금 우리 다섯명은 베트남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정확히는 호치민의 투둑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호치민과 호치민을 벗어난 지역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베트남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 질문에 계속 답해가는 5개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10개 팀 모두 그렇게 지금의 아시아와 만나고 있겠네요. 진심으로 기대됩니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이. 우리는 마치 다른 시대를 지나고 있는 듯한 2008년 아시아를 한번에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덥네요. 한국은 좀 쌀쌀한가요?
지역뉴스 in 모라투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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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저희 스리랑카 팀은 다들 잘~지내고 있답니다..가슴 아픈 얘기도 들려오고,,마음이 펺치만은 않네요ㅜㅜ다들 건강하고,,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두 번째 지역뉴스 올립니다.늦게 올리네요^^;;ㅎ
두번째 뉴스클리핑입니다.(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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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주입니다ㅅ< 회원가입을하려했는데 저는왜 14세 미만이라고뜨는거죠 ㅋㅋㅋㅋ ㅠ혜썽이 아이디를 빌려서 뉴스올려요.1) Baguio day program and activities Baguio celebrates its 99th charter day anniversary tomorrow, Monday. September1 and at the same time launches the year-long schedule of activities for the centennial anniversary next year.... 매 년 9월 1일 , 바기오에서는 바기오의 탄생을 기념하여 바기오 데이를 만들어 공휴일로 지정 했습니다. 이번이 벌써 99번째라니, 내년이면 100주년. 와우!!! 내년까지 못 있어서 아쉬워요ㅠ(내년 2월엔 아주 큰 플라워페스티벌도있는데ㅠㅠㅠ) 이날은 일단 쉬는 날 이니 좋았고 ^^각 종 퍼레이드와 행사를 진행하니 볼거리도 있어서 좋고. 날씨도 좋았고.타이밍을 놓쳐서 퍼레이드를 보지 못했는데 한국 꼬꼬마들이 한복을 입고 동참하기도 했다고 해요 . 필리핀은 축제가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지역의 탄생한 날도 정해서 기념하는 게 신기했어요. 2) YMCA-KB FRIENDS OF ASIAN PEACE Volunteer korean college students affillated with Ansan YMCA. from left:Joo, Eun, Lucy ,Hesty and Lily, last week visited The Baguio Repoter office at the YMCA building. The Korean students are in Baguio to promote peace and global citizenship. Also, to later on assist women's group in Tuding, Itogon, Benguet on Women Empowerment and development program... THE BAGUIO REPORTER 라는 신문에 저희 사진과 기사가 실렸답니다 !(물론 아는사람들만 아는 YMCA신문이지만요 ㅋㅋ) 여기서의 의견이라면 왜 우리는 명찰과 신문에 졸지에 안산 YMCA소속이 되었으며 주목적이되어야 할 여성역량강화보다 글로벌시티즌 쉽이 더 강하게 어필되고있는지가^^.... 커뮤니티에 빠른 시일 내에 가고싶어요 .
[에세이_1] 람푼에서의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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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푼에서의 에세이_ 0908 캠프의 첫째 날은 언제나 제게 피곤함을 안겨줍니다. ^^ 지난번 프레지역처럼 이곳 람푼지역에서의 첫째 날도 여전히 제게 피곤함을 안겨주네요. 하지만 제 피곤함을 이기는 것은 새로움과 감사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 람푼지역의 라오빳꺼이 스쿨에서 만난 친절한 선생님들과 지역사회 주민 분들, 그리고 학생들이 한 마음이 되어 11명의 우리팀원들을 반겨줌에 어찌나 감사한지요. ^^ 사실, 아직은 프레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조금은 그립지만 3개월 후 이곳에서 활동하게 될 저인지라 이곳 아이들 역시도 제게 수많은 배움을 안겨다 줄 것이기에 후회 없는 시간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랑을 배풀어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있어 드디어 홈스테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닌 할머니와 3살 박이 손자 나윈이 살고있는 집인데요, 부모님은 도시에서 살고 계시더라구요. 적적한 집에 저랑 선구언니, 유정언니, 화진언니 이렇게 4명이 이곳 가정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고팀장님 말로는 이번 주 홈스테이를 통해 두달 후 어떤 방식으로 홈스테이를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던데, 첫째 날인 지금 당장은 이곳 현지 가정생활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자상한 할머니와 귀여운 손자가 있는 이곳 집이 은근히 매력적이거든요 :) 첫째날의 밤이 어느덧 저물어 가네요. 4일간의 짧지만 긴 활동이 기대되는 이곳 람푼지역. ^^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람푼에서의 에세이_0909 창밖에는 천둥번개가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 태국은 시시때때로 비가 내리지만 실내생활을 하는 덕에 사실 큰 불편함은 없어요 :) 오늘 드디어 람푼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여전히 제게행복한 시간들입니다. ^^ 수업을 진행할 때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제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니깐요 ^^ 너무나 행복한 수업시간입니다. :) 이와 더불어 이곳 라오빳꺼이의 선생님들은 저를 무척이나 잘 챙겨주십니다. 어느 선생님의 딸이 저랑 똑같이 생겼다나요? ^^ 선생님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덕에 감사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수업은 6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교생85명인 이곳 초등학교에 6학년은 12명, 제가 맡은 아이들은 4명이었습니다. 매번 아이들과 함께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곳 아이들과 한국어 수업도 진행하고, 쉬는 시간도 보내고, 다양한 게임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에요 :)똑똑한 이곳 아이들 덕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사실 어제의 피곤함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닌 할머니의 배려 덕분에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현지 음식들은 제게있어 작은 활력소가 되어주네요 ^^ 어느덧 람푼에서의 둘쨋날의 밤에 저물어 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 람푼에서의 에세이 _0910 아침일찍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 이곳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는데요. 태국은 한국인(까오리)에 대한 관심이 참 대단합니다. 그 덕분에 저의 작은 행실 하나하나에 더욱 조심하게 되는 이곳 활동입니다. 단상 위에서 제가 인사를 할 때에 꺄악! 소리를 질러주시던 고마운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ㅋㅋ 오전에는 중학교에서의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조금 힘든 수업이었어요. 머리가 굵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수업시간에 잘 따라하지 않아 조금 힘들었지만, 수업진행방식에 있어 한번 더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난 후 학교식당에서 800원짜리 만찬이 날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오후에는 이곳 아이들과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저녁에는 태국 팀이 함께하는 우리들의 캔들 나이트를 처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 11명이서 함께한지 어느덧 3주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던 우리들. 캔들나이트를 통해 11명 모두가 작지만 큰 나눔을 할 수 있었던,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 수있었던 작지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이곳 태국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11명 모두가 하나되어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 혼자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이기에 이곳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네요. 모두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은 제게 있어 다시는 오지 않을 무척이나 귀중한 시간입니다. :) 람푼에서의 에세이_0911 여지껏 한 클래스에 5명이 한팀이 되어 진행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저 스스로 4학년 13명의 아이들과 2시간 동안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해보았습니다. 수업에서는 늘 그렇듯이 말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진행했던 수업은 풀과 꽃을 이용한 합동 작품 만들기와 간단한 한국어 교육, 그리고 동요 배우기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곳의 4학년 아이들이 제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표현해줌에 있어서 어찌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시작과 동시에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무렵에는 이곳 지역사회의 축제를 방문했습니다 ^^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곳 축제에서 한국인 대표로 인사도 했구요. 돼지잡기, 소싸움, local market등 도 구경하였습니다. 이곳이 그저 농촌사회라고만 생각했던 제 생각과는 달리, 이곳 사회가 무척 흥미로운 곳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87.5 이곳 지역사회의 라디오방송에도 출연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해외봉사단이 이곳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10여분의 짧은 출연시간이었지만 무척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방금 전 누군가 넌 popularity한 사람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만큼 이곳 람푼에서 너무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입니다. 그 사랑 덕분에 저 역시도 더 멋진 미소와 좋은 이미지로 보답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곳에서의 관심과 사랑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마지막날인 오늘밤도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프레에서의 이별이 다음의 사랑에 충실해야 함을 느끼게 해 준 덕분일까요. 이곳 람푼에서의 이별은 제게 많은 기쁨을 안겨다 주네요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간의 사랑이 있었기에 헤어짐에 마음 아파하고,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순수한 이들의 마음 덕분에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내가만난 이곳의 아이들이 같은 하늘아래.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다시는 내 인생에 오지 않을 지금 이시간 이순간 그리고 과거의 그순간 순간 순간에 충실해야 함을 또 다시 느끼게 합니다.행복합니다. 첫 에세이라 그런지 많은 떨립니다. 자아성립이 제대로 되지 못한 기존의 제 모습에 있어 이곳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기에, 수많은 이들에게 저의 나눔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곳에서의 삶을 짧은 글로 표현하기엔 느낀점이 너무 큰 귀하고 소중한 시간과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에세이를 읽어주신것에 대해 감사해요 ^^ 다들 너무 많이 보고싶어요 :)활동중에 있어 많이 힘들겠지만 다들 힘내서 잘 생활하길 바래요 ^^ 파이팅!! > < - 수진 :) -
(09.12) 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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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딜리팀 에세이 (2008.08.21~2008.09.10) - 서영주 - 전통가옥 구조로 신을 모시는 사당 - 예전에는 사람도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그냥 신만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가축 축사 - 동물들이(특히 닭) 계단을 통해서 넘어간다. 정보도 없었던 만큼 기대도 되었던 동티모르에서의 합숙이 시작되었다. 다들 걱정이 많았던 우리 동티모르팀!!! 처음에 공항에 왔을 때 이곳은 다른 곳과 달랐다. 공항 건물부터 시작해서 일일이 손으로 수작업하는 공항직원들.. 요즘 정보화 시대에 보기 힘든 모습이라 색다른 모습이었다. “korea time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무감각한 시간개념” 처음 간사님들께서 우리를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온다고 했나?’ 라고 긴가민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들을 기다리셨다고 하셨다. 그 말씀 중에 '안 오면 담에 오려나?' 하는 느긋한 모습이 보여 의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바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는 느긋함.. 동티모르는 시간개념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한 예로 출근시간이 9시라면 9시까지 출근하는 사람은 갓 출근하는 외국인뿐.. 10시나 11쯤이 되어야 모두다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출근을 제때하지 않아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점점 이곳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이해가 되어간다. 나또한 그들처럼 느긋해진다. 이처럼 동티모르는 시간 속에 얽매여 매일 짜여진 각본에 의해 차근차근 움직였던 이제까지의 우리의 생활 관념을 무너뜨렸다. 하루의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움직이는.. 게을러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동티모르는 애매하다?” 딜리는 특별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동티모르만의, 딜리만의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애매하다. 완전 숲과 어우러져 있는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나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집이 듬성듬성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길거리에 쓰레기는 이곳저곳 아무데나 버려져있고 먼지마저 너무 많다. 건축양식도 일정하지 않고 다들 각기 제각각의 모습형태를 띄고 있다. 이것은 독립한 지 몇 년이 흐르지 않아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딜리만의 동티모르만의 특색이라고 한다. 티모르에 와서 이시바시 간사님과 티모르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그 도중에 ‘동티모르는 아시아 속의 라틴이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아무래도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 지배를 받아서인지 여러 가지 특색이 뒤섞여 애매한 것을 만든 듯싶다. 그래서 그것이 지금의 동티모르의 특색으로 띄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언어만큼이나 이곳 문화도 다양한 것 같았다. 나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은 수도가 띄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수도 딜리의 모습 특색이 곧 동티모르의 특색이 아닐까?!! 이 시점 나는 궁금한 게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이곳은 이 애매한 특성이 자리를 잡아 애매한 특색으로 비췰지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한 보지 못한 동티모르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췰지 말이다. 언젠가는 동티모르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 동티모르만의 동티모르를 대표할 수 있는 특색이 보일 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바다” 이곳 바다는 정말 예쁘다!! 한 바다에서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도 바닷가 쪽에서 태어나 바다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동티모르의 바다는 오염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고나 할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바다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낀 동티모르는 ‘애매하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그래서 여기서의 프로젝트도 우리가 생각하고 만들어 가야하는 것인가? 지금 내 인생도 ‘애매하다’라는 말이 어울렸다면 이곳에서 팀원들과 함께 작지만 하나하나씩 만들어서 이루어 나가 나의 정체성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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