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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이혜리
99+
지금은 이 순간을 기억하세요라온아띠를 지원할 때 난 여섯 나라 중 처음부터 베트남에 매력을 느꼈고, 그 이유는 5개월 간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활동에 있었다. 첫 달, 베트남어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둘째달부터 홍안유치원, 워크캠프, Hope school, Disabled youth club 그리고 그 외 우리의 자발적으로 참여한 붕따우 캠프, 베트남 장애인 체육대회, vinh son school 활동 등 5개월간의 활동은 숨가쁘게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다채로운 활동에 만족만 할 수는 없었다. 국내훈련 동안 꿈꿔 온 베트남과 다르게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첫번 째 부딪힌 문제는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외국인인 우리가 베트남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정부의 허락이 필요한 복잡한 절차가 요구되었다. 350ppm캠페인을 준비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었다. 그 중 350ppm 캠페인의 대상자를 정할 때도 일반 대중에게 하면 안된다는 점을 알았을 때 이곳에서의 활동은 처음부터 많은 제약이 따른 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여러 기관을 다니다보니 활동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기관활동에 빠져 들 때쯤 되면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니 기관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기관을 파악하기 전 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상황에 속상했고 우리의 활동에 이전만큼 집중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라온아띠를 지원할 때 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처음 라온아띠를 지원한 가장 큰 계기를 생각해 보았다. 지원서에서 "왜 라온아띠가 되려고 했나요?"라는 질문에 "있는 힘껏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말했던 내를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활동에 ‘있는 힘껏’ 임하지 않고 있었다. 베트남은 베트남 만의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우선 다른 지역보다 다채로운 활동 덕분에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 만큼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친구들은 각자 자신만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므로 그들의 다양한 삶을 접하며 외국인이지만 베트남의 이곳 저곳의 생활을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색다른 매력을 가진 베트남에서 내가 놓칠 뻔 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우선 이곳이 베트남임을 인식하기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부터 모든 활동에 내가 베트남에 가진 모든 기대를 채우게 되었 던 것 같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내가 참여한 활동들은 베트남에서만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고 내 삶을 통틀어 평생동안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지 모르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유치원의 수많은 아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려 노력하는 일, 내 몸이 힘들더라도 일주일간의 목표를 위해 전진했던 일, 장애라는 특수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2주일을 지낸 일, 베트남 시골의 순수한 청년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가진 일...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내가 가는 곳,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본 베트남의 저녁 놀 마저도 나의 삶에서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더이상 다름을 탓하기 보다 나에게 이리도 애틋한 시간을 있는 힘껏 행복하게 만들고자 했다. 라온아띠 베트남을 지원하는 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 베트남, 그 공간에 집중하기 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세요:)”흐르는 시간만큼 나도 흘러간다이곳에서 5개월을 지내다 보면 베트남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흐르는 시간만큼 변해갔던 것 같다. 처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베트남의 공기, 호텔로 가면서 바라본 베트남의 모습은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어느덧 나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처음 한국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베트남에서 한국과 같은 점도 찾고 한국과 다른점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이해했다기 보다 살아보니 같은 점이건 다른 점이건 모두가 ‘그냥’ 베트남이었다. 수많은 오토바이들, 길고 좁다란 집, 아침에 5시면 일어나는 사람들, 국수를 즐겨먹는 사람들… 쌀국수만 베트남이 아닌 내가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베트남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베트남에서 한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을 ‘한국보다 발전이 늦은 나라’라고 말했었다. 내가 살면서 본 베트남은 발전이 늦은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속도로 살고 있는 나라였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으로 베트남을 판단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를 그들이 생각한 한국인을 바라보기 보다 나, 이혜리를 보고 한국인을 생각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말, 한국의 과일, 한국의 음식, 한국의 옷, 한국의 가수까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한국에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 만났을 때, 특히 아시아인을 만났을 때 그들이 나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조금은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라온아띠로서 이자리에서 깨닫게 됨을 감사했다. 그래서 일까. 5개월간 베트남에 관련된 잡지, 서적을 스스로 찾아 읽고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스스로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나는 베트남에 해외봉사단원으로 왔다. 5개월, 베트남이라는 아시아의 한 나라를 이해하고 가기에는 길지 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베트남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느낀 많은 생각들이 한국에서 다른 수 많은 새로운 경험들과 맞딱드리며 어떻게 변해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길지도 않지만 짧지만은 않았던 5개월은 내가 살고 있는 곳 이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에게 많은 변화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아띠로서의 해외 활동의 경험으로 앞으로 나의 삶에서 주어질 많은 변화들을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 다르게 변화하는 내가 더 기대된다.
개인에세이, 이유진
99+
누구나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말들, 그래서 어쩌면 진부할 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 마음으로 깨달았던 시간을 진솔 되게 풀어나갈까 한다. '다름'을 '마음'으로 이해하기.처음 라온아띠로 뽑혔을 때는 머리로는 나와 다른 사람,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에 자신만만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니까. 하지만 베트남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머리로 이해가 되었던 '틀림이 아닌 다름이' 실전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은 이해해야지 하다가도 이해 안 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때때로는 극단적으로 오히려 내가 이 생활을 경험하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타문화에 대한 다름과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더 하고 살지 않았을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한가지 예로 시간에 관대한 베트남인들. 5시 출발 예정이 6시 반이 되고 처음엔 버스에 앉아서 속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베트남 생활이 길어질수록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친구는 시간에 관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이들은 내가 무엇을 할 때도 재촉하지 않고 나를 편안히 기다려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음을 알았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가끔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가족 마냥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부정적으로 보였던 모습 하나둘이 이제는 내가 베트남을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 문화를 가진 베트남사람이 아닌 바로 내 옆에서 하루 24시간, 총 5개월을 사는 우리 4명의 팀원 역시 내가 이해해야 할 고민이었다. 나와 성격과 코드가 맞아서 친구가 된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른 성격일지라도 같이 5개월을 지내야 하는 친구였다. 내가 평소 '정말 이건 당연하다.'라고 여겼던 생각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땐 사실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다. 말로는 '그래 네 말도 맞아.'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내 말이 더 맞아.'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사람의 생각도 속으로도 '맞네!'라고 느끼는 나를 자연스레 발견할 수 있었고 그땐 스스로 놀라기도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엔 나와는 달라서 힘들었던 점들이 반대로 나와 다르므로 하나 둘 본받을 점들이 되기도 하였다. 라온아띠의 5개월은 '틀림이 아닌 다름' 그 당연한 말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만들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하기.라온아띠가 정말 정말 정말 되고 싶었다. 라온아띠가 되고 해외봉사만 떠나면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해외봉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그리고 꿈만 같았던 라온아띠에 합격하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하지만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올 리는 없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해외봉사이고 뭐든 행복할 것만 같았던 '이곳'에서 바보같이 나는 '한국'에 가면 가족도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겠지라며 '한국'에 가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여전히 '영어공부, 취직 걱정 등….' 걱정에 치여 사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나 자신을 보고 행복의 문제는 '환경'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다 접고 '지금 이 시간, 공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안에서 행복을 찾기'라는 작은 결심을 다짐했고 힘들 때마다 그 결심을 떠올렸다. 그 뒤로 내 생활은 정말 신기하게도 '행복'해졌다. 평소에는 제대로 의식조차 못했을 바람 한점이 아이와 나 사이에 불 때도 미소가 지어졌고. 하품하는 나를 보고 덩달아 하품하는 아이의 모습에도 나른하게 행복해졌다. 문장 그대로, 순간순간이 참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배웠다. 매 순간이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커다란 의미가 되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기'라는 나의 다짐은 초등학생 때 소풍 가기 전날 밤 잠자리에 들며 설레던 그 마음을 유치원에 가는 전날마다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기'는 지금뿐만 아니라 내일까지 나를 기대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나의 5개월간의 크나큰 교훈이자 에너지였다고 자신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은 수천 가지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좋은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좋은 생각들은 늘 가지고 살았지만 이를 실천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라온아띠 5개월간의 활동은 내 생각에서만 머물렀던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주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노력은 비단 5개월 활동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
개인에세이, 이새암
99+
컴퓨터 앞에 앉아 라온아띠 5기 지원서를 쓰던 때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5개월을 뒤돌아보는 마지막 일기를 쓰고 있는 내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모든 일정 하나하나 자세하게 짚어보고 회상해볼 수는 없지만 큼직큼직하게 되돌아보려한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행동들을 시작하게 된 우리는 가장 먼저 현지어인 베트남어를 배운다. 더운 날씨와 주변 사람들에 적응할 시간조차 없이 현지어 배우기에 돌입했던 난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정적인 코디와 다른 팀원들 덕분에 선의의 경쟁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공부했던 것 같다. 5주 배워서 쓸 일 없을 것 같던 현지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사항이 되었고 다른 생활과 활동들을 하면서 우리의 현지어는 점점 늘어갔다. 현지 적응시간을 갖고 난 뒤에 베트남 팀의 주된 활동인 홍안유치원 활동을 시작했다. 오고 가는 교통수단이 우릴 힘들게 했지만 갈 때마다 하얀 이빨 보이며 웃어주는 아이들 때문에 2달간의 유치원활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매일을 생활하며 언어와 문화, 그리고 나이를 넘어서 친구가 되었고 라온아띠가 되었다. 그 뒤에 있었던 워크캠프와 장애인학교, 장애인 체육대회 봉사, 그리고 베트남YMCA 워커들의 일 돕기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재미있게 보낸 듯하다. 적은 활동들을 꾸준히 하는 다른 팀들과는 다른 베트남 팀만의 특색인 다양한 활동을 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정말 많고 다양한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그들의 문화와 인생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지나와 보니 현지에 깊이 빠져들기엔 아쉬운 시간이었다. 이곳을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는 것이라고 국내훈련 때 배웠다. 내가 흔적을 남겼을까? 하하... 하나 확실한 것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흔적을 남긴 것이다. 흔적이라기보다 는 추억, 나중에 꺼내보며 웃을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개인에세이, 곽경필
99+
라온아띠 5기 베트남팀 곽경필입니다. 이제 5개월의 활동이 거의 끝나고 이주일의 시간만 남아있는 지금 활동을 한번 되돌아보면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시설을 방문하고 많은 행사에 참여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일까?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어떨 때는 그냥 방관해 버리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너무나 짧은 인연이 아쉬울 때도 있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 나는 항상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도 우리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회를 갖는다. 한국에서도 해보기 힘든 경험들을 나는 베트남에서 참 많이 경험했다. 여기서 했던 모든 활동들이 나에게 모두 신선한 활동들이고, 두 번 다시 하기 힘든 활동들이 많았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항상 언어라는 녀석을 나의 이런 마음가짐을 방해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 점도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잘 해온 것 같다. 여기서 활동을 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우리 라온아띠는 항상 베트남YMCA의 짐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언가를 할 때 마다 우리 곁에는 코디네이터, 혹은 봉사자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사실 외국인 5명이 돌아다니는데 현지인 1명씩 함께하는 것이 맞지만 항상 드는 미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베트남에 있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매우 추상적이지만, 다수에게 받은 고마움을 다른 이에게 또다시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남은 2주 동안 나는 다행히, 운 좋게도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분명 큰 나눔은 아니지만,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더 없이 좋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까지 일하고 싶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무언가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앞의 4개월만큼이나 중요한 마지막 1개월이 되는 것 같다.
개인에세이, 윤무종
99+
활동을 마무리하며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딱 5개월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많은 것을 얻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든다면 유용한 기술을 배워 간다든가, 아주 큰 규모의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든가, 나의 바람이었던 꿈을 찾는다든가... 하지만 지금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얻었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꼽자면 의식의 변화쯤이라고나 할까? 만약 라온아띠로 오지 못했다면 이 말레이시아라고 하는 매력적인 나라를 아주 늦게 알았을 것이다. 이 나라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 종교까지. 거기다 뛰어난 관광 요충지이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이 나라의 번화가 한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내가 정말 아시아에 있는 것인지, 아니 과연 이곳이 내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가난한 동남아시아의 나라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내훈련에서 배웠듯이 국제활동이 꼭 힘든 일을 맡아하거나 못사는 사람들에게 퍼담아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오기 전에 살짝 흘려들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우리는 장애인들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데 이 이유는 기본적 사회 바탕이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을 주변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였다. 내가 뭔가를 배워가자. 이 시간동안 뭔가를 받아가자. 긴 시간동안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왔다. 물론 일반적인 스태프들부터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봉사자들과 말레이시아의 일반적인 사람, 친구들. 덕분에 우습게도 눈에 띄게 얻어가는 것은 페이스북 친구목록이 많아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청각장애인들이다. 그들은 밝은 미소를 잃을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착해서 바보 같다. 항상 우리가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내가 이 시간동안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점은 받은 만큼 주지 못한 것이다. 이들 덕분에,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배운 수화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가게 되었다. 아마도 돌아가게 된다면 이제는 한국 수화를 배워 보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 정말로 내가 느낀 것은 별것 아니다. 이곳에서의 활동 중에 나 자신에게 가장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부모님의 생신을 잊었던 것이다. 그냥 새로운 환경에 도착하고, 마냥 모든 것이 신기해서 한국에서의 것들은 모두 잊었던 것 같다. 생신을 잊은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연락도 너무 소홀했다. 덕분에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에 대한 소홀함도 미안해졌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준 친구들과 지인들까지... 정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고 있었다. 5개월간 새로운 친구를 많이 만났던 만큼 내가 머물렀던 그 자리,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 가장 중요한 나의 깨달음이었다. 만약 나의 주변사람이 해외로 나가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정말 계획을 정확히 세우고 가는 것이냐고. 그만큼 나의 허술한 5개월에 후회가 남긴 하다. 물론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안목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자신이 위치해 있는 그 자리에서 더 발전해 나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 희노애락을 나누며 별탈없이 같이 생활했던 4명의 단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개인에세이, 문기
99+
말레이시아를 떠난다5개월간의 말레이시아 생활이 끝나가고 있다. 지금에 와서 자원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면접과 국내훈련 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지금도 자원 활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5개월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은 것을 공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나만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 와서 나의 무능력함을 다시 느꼈다. 영어와 말레이시아어를 못하는 나는 staff과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고, 미술과 율동에 능통하지 못하고 번뜩이는 창의력과 아이디어도 없는 나는 프로그램 준비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컴퓨터를 못하는 나는 보고서 제작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함께 활동한 단원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또한 나를 뽑아준 한국 YMCA에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나로 인하여 탈락한 지원자들에게 미안하다. 나 말고 다른 지원자가 왔었다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를 지극히 아껴주시는 아이린 선생님, 수화선생님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샌디, PMY 유치원 선생님인 에스더 누나, 베다니홈 체육 선생님인 아즈미 형, 나에게 많은 힘과 용기가 되어준 베다니홈 학생들, 페낭 YMCA 수화 선생님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메이메이. 그리고 모든 staff와 봉사자들은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받은 가장 큰 축복인 것 같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많은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했다. 수화 선생님인 샌디, 메이메이, PMY 유치원 선생님인 에스더는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또한 베다니홈 체육선생님인 아즈미도 청각장애인이다. 나는 이들에게 수화 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배웠다. 베다니 홈 학생들은 모두 지적 장애인이다. 나는 이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자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너무나도 행복했고, 많은 힘과 용기를 얻었다. 이것들은 내가 평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페낭 YMCA에서는 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소개 워크샵을 개최하고 청각장애인 학교를 방문해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한국 게임을 하고 한복을 입어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들은 모두 프로그램이 끝나면 한국 수화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이들에게 진정한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 곧 말레이시아를 떠난다. 말레이시아에 있으면서 항상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었다. 왜냐하면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의 지친 삶을 탈피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빨리 돌아가서 한국의 삶 속에서 나의 길을 찾고 싶다. 말레이시아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앞으로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개인에세이, 김지은
99+
김지은, 개인에세이 난 항상 내가 아는 것, 본 것이 다 옳고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내가 보고싶은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런 날 180도 변화시켜놓았다. 물론 말레이시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남아시아의 자원봉사활동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라고 느낀다. 내가 라온아띠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먼 곳에서 부족한 언어실력으로 대화를 하고, 수화로 deaf들과 친구가 되었을까? 이곳에서의 모든 생활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한편,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반송동. 아마 우리 팀원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할 테다. 그리고 사회복지나 지역운동, NGO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곳이다. 흔히 이곳을 빈곤지역이라고 부르며 마을공동체의 좋은 본보기인 곳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곳에서 엄마가 하는 지역운동들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반송동에 산다는 자체만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무엇인가를 하는데 내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나는 그걸 장점으로 이용할 줄만 알았지 정말 장점이라 몸소 느끼진 못한 것 같다. 라온아띠를 통해 진정으로 내가 자란 반송이란 곳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복지. 난 이런 분야에 대해 배웠으니깐, 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해봤으니깐, 난 이런 사람들을 만나봤으니깐, 난 사회복지를 공부하니깐……. 내가 더 잘알꺼야! 그렇지만 이건 틀린 것이었다. 3월의 나는 내가 제일 잘 알 것이라는 자만심에 모든 것을 내뜻대로 하길 원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의 여러 생각으로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사회복지를 보면서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학교에서 배운 것, 사회복지를 배우는 내가 느끼는 것, 사회복지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것의 차이를 경험하는 것, 때로는 괴리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것이 너무 즐겁다! 언어. 중학교 때부터 수화를 배웠다. 물론 동아리활동이었지만 나름의 애착으로 대학에 와서도 농아인 협회를 다니며 계속 배워왔다. 그렇지만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난 못하니깐 이라는 생각에 두려워만 졌고, 막상 대화를 해본적은 몇 번 없다. 요즘은 나 스스로에 깜짝 놀랄 때가있다. 한국수화보다 더 부족한 미국수화실력으로 이곳의 deaf들과 대화를 한다. 나 한국 가서도 할 수 있겠지? 영어도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곳은 영어또한공용어로 많이 쓰인다. 물론 바하사말라유를 배우긴 하지만 영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너무 싫어했었는데 부족한 언어능력 탓에 요즘은 영어와 바하사단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내모습을 보면 얼마나 웃긴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KL,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는 베다니홈, 유쾌하고 고마운 친구들이 있는 페낭! 나 너무 말레이시아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것 같아 기쁘다.
개인에세이, 한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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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온지 5개월째가 되던 날. 문득 3월의 내 모습이 궁금해 서랍을 뒤적거려 사진 한 장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찍은 사진인데 지금과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지인처럼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어색한 미소가 아닌 밝게 웃는 내 모습, 이 2가지 변화가 3월과 7월 현재의 내 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뜨거운 햇볕아래에 있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이 뜨거운 햇볕아래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내 자신이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곳 현실에 동화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낯설고 거리감이 있었다면 5개월이 지난 현 시점의 나 자신은 프놈끄라움 마을에 살고 있는 마을주민이 아닐까 싶다. 아침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아이들. 이 사람들이 있기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출국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매주 수업하러 다녔던 학교도 방학하게 되어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금까지도 강하게 받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벌써 그리워서 그러는 지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느낌들이 아이들을 더 못 잊게 만드는 게 아닐까? 라고 혼자 다짐하고 생각해본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날 행복하게 해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뭐라고 자세히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여기서 겪어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캄보디아에 왔건만 내가 더 좋은 친구들을 얻었기에 뭔가 반대로 되어 버렸다. 현지 스텝, 유치원, 중학교 아이들과 나이는 다르지만 함께 지내오면서 주고받았던 마음들을 통해 우리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자신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렇게 허둥지둥하다 소중한 것을 놓칠까봐 겁도 나지만, 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있기에 두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 시간이 흘러 몇 바퀴 돌고 돌아 다시 여기서 보낸 추억들을 만난다면 캄보디아가 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뒤늦은 고백을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에세이, 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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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충실함도 내일의 나 자신의 안락한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었다. 하지만, 내가 라온아띠가 되고, 현재, 이곳 캄보디아에 있는 5개월 동안 라온아띠는 내게, 인생에 있어서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게 만들고., 이곳에서 다른 이들과 “어떻게” 살지에 집중하며, 다같이 잘사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살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야 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다양성의 일치” 모든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가족간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같은 것이라고는 아시아 사람이란 것 외에 다양성의 극치인 이곳 캄보디아에 와서 캄보디아사람들과 그리고 한국스텝들과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사교성이 좋다고 해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잘 살기위해선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국외활동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에서 나는 한가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었다. 같은게 없다면? 닮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닮아가는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다. 향수병을 싼 종이에 향기가 배이듯이 말이다. 물론, 처음엔 내가 그들의 다름을 잘 알지 못해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때론, 그 다름이 너무도 커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있었고, 감정이 상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들과 나의 다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내 다름을 그들의 다름에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그들과 닮아져 가고 있었다. 타인을 내식대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다양성! 삶의 모든 형태의 가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부분은 그 사람과 닮아가고 그 사람도 나에게 닮아 가면 되는 것이었다. 다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다르기 때문에 나와 그들이 어울릴 수가 있었다. 이곳 캄보디아에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부딪혀 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고, 또한 다른 이들을 같은 문제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요즈음, 새끼손가락부터 피며 숫자를 세고, 빨리빨리 보단 천천히를 외치는 내 자신을 문득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또한, 내 주변의 아이들이 나에게 한국말로 말하면 나는 캄보디아말로 대답하는 상황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느새 나도 그들도 서로 닮아져 있음을 실감한다. 싫지 않다. 오히려 이 닮음을 오래토록 간직하며 나와 다름을 공유한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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