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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5기, 말레이시아팀의 5월 이야기입니다 !
★말레이시아팀의 4월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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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5기 말레이시아팀의 4월 이야기입니다 ! 여기를 클릭하세요 :D
★말레이시아팀의 3월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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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5기 말레이시아팀의 3월 이야기입니다 ! 여기를 클릭하세요 :D
4기 귀국보고_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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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4기, 귀국보고서 <말레이시아>4기 말레이시아팀이 2월 7일, 모든 현지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5개월 간의 자원활동을 마치고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어 돌아온 말레이시아팀! 그들의 5개월의 활동을 정리하는 귀국보고서입니다.
★말레이시아팀의 12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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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말레이시아팀의 12월 보고서입니다^ㅡ^
개인에세이, 신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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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제일 중요한 것? 해외봉사로 휴학을 한다 했을 때 담당 교수님께서 했던 단 한마디, ‘지금 네가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 좀 해 보아라!’ 대부분이 다 그럴 것이라 믿지는 않지만 미대에서 봉사활동이라 하면 벽화 활동 이외에는 글쎄.. 개인 과제작품이라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다보면 그 외에 것을 하기엔 버거워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나도 많은 고민을 했었다. 장기간 봉사활동 보다는 새로운 그림과 미술 분야의 경험을 키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5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시간낭비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되었었다. 하지만 그림만 그리며 과실에 처박혀 있다가 졸업하는 대학생활은 더욱이 끔찍했다. 또한 그림도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그림이 아닌 정형화되고 그저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하는 그림, 어떻게 해서든 시간 안에 완성만 하면 되는 그림, 그 모든 것이 지루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항상 미술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동경해 왔고, 그러한 면에서 ‘라온아띠’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다. 다른 지역, 다른 전공 그렇게 5명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구미 그리고 말레이시아 이 생활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아니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세 가지를 배웠다. 첫 번째는 마을의 힘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김포 훈련에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듣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구미의 아이들, 말레이시아의 deaf아이들과 베다니 홈의 정신지체아 아이들을 경험하면서 알 수가 있었다. 마을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베다니 홈 아이들을 보면서 처음엔 한국에서도 접해 보지 않은 정신지체 아동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런 나의 편견을 확실하게 깨 주었다. 오히려 베다니 홈의 주변 환경과 시선은 일반 아동들 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장애가 있기에 더욱더 신경을 써주는 어른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면, 비 장애의 아이들 보다 질서도 잘 지키고 기다릴 줄도 알고, 밝고 꾸밈이 없었다. 또한 아침마다 나를 보며 웃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아이들. 누군가 나를 향해 웃어준다는 것, 그런 아이들을 보면 아침부터 나도 뜻도 없이 웃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웃으면서 시작한다는 자체가 너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과연 한국에서 누가 나에게 아침부터 웃으며 반갑게 맞아 줄까? 두 번째는 말레이시아 팀 이다. 다르다. 정말 다르다 그래서 너무 배울 점이 많았다. 배울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인가? 어떤 날은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저런 점은 꼭 배우자!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자! 라고 생각 한 무수한 것들 중 두 가지를 뽑자면, 노력과 끝을 본다는 점.말레이어, 한국가면 과연 누가 알아줄까? 수화, 돌아가면 농아인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팀원들은 수업 내내 열정을 보였고, 숙소로 돌아가면 그날을 복습하면서 한국에서도 하지 않은 복습을 나도 하게 되었다. 또한 이 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아이들과 수업에 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우리팀원들은 꿋꿋이 참고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끝까지 수업에 임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팀원을 보고 따라하니 내 생활이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졌고 이런 다른 생활이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난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 그러한 배울 점을 팀원은 가지고 있기에 난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을 배웠다. 행복을 배웠다 보단 느꼈다. 그것도 그림을 그리면서. 정말 미대라면 이런 활동 추천해 주고 싶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말레이시아는 교육이 위주 여서 그런지 그림 그릴 일이 많았다. 그리고 매번 그리는 그림마다 좋아해 주고 더 그려달라고 부탁받고 다음 그림이 기대 된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그림으로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들 줄 상상도 못했다. 한국에선 그림을 그리면서 이걸 그려 나중에 뭘 하나 점수나 잘 받을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걱정만 했지, 그림을 즐길 줄을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리면 웃어주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덩달아 신이 나서 그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 그림이 일취월장 나아진 것도 아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들 숱하게 많을 것이다. 아니 많다. 하지만 난 이제 이런 것에 겁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걱정이 태산 이였겠지만)난 그림을 즐겼고, 내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점수라는 결과물 보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즐거움 이였다. 그러한 심리적 변화 이외에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꿈도 생겼고 ‘할 수 있다!’ 라는 용기도 생겼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은 나에겐 한마디로 상상화 같다. 정해진 것 없이 상상한 이상을 표현한 그림. 그 안에는 걱정 없이 웃고 있는 아이들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든든한 팀원들 그렇게 꾸며진 말레이시아라는 마을. 이런 마을에 와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개인에세이,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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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her Esther.는 미친 여자다. Esther.는 개념이 없다. Esther.는 한시도 우릴 가만 두지 않는다. Esther.는 정말 말이 많다. Esther.는 폭력적이다. Esther.는 나돌아 다니는 걸 좋아한다. Esther.는 많이 먹는다. Esther.는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Esther.는 내 절친이다. Esther.는 deaf다.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다는 말은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생각해 볼, 또 상상해 볼 기회도 없었던 일들을 경험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들을 꿈꾸며 살 마음을 먹게 됐다. 말레이시아에 오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내게 일어났고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조용한 세계의 평범함 이곳에서 deaf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과 친구가 되지 못했더라면. deaf들의 절대 조용하지 않은 이 세계에 들어와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 그들의 특별함을, 동시에 그들의 평범함을 알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평생 그들을 들리지 않는 사람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장애를 가져 불편한 사람들로 분류하며 나와는 다른 이들, 나와 섞일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예 그 존재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섭기도 하고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사실 처음 deaf들을 만났을 때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수화를 막연하게 바라보며,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마냥 조심스럽기만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는 항상 그렇게 어렵기 마련이지만 deaf들을 만났을 때는 처음 만나 어색한데다 그 어색함을 풀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들다보니 특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 안절부절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Esther, Sandy, Jasmin 이렇게 가까운 deaf 친구들이 생겨 수화도 배우고 매일 같이 밥도 먹고 여기저기 함께 다니다보니 그런 어색함이 사라진 건 물론 과장된 연기며 표정을 배워 표현이 풍부해지고 가끔 생기는 곤란한 상황들도 즐기게 됐다. 서로 연기자 다 됐다며 쓰러지게 웃는 우리들. 이런 우리 모습, 내 모습이 새롭고 신기하고, 또 좋다. 내 친구 Esther 이제 내게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내 친구 Esther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Esther는 우리와 함께 일하는 PMY deaf center 동료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내가 만들었던 ‘DEAF'의 개념을 모조리 깨준 한마디로 ’깨는‘ 여자다. KL에 있었던 고작 한 달의 시간동안 우리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되었고 창피한 얘기, 더러운 얘기, 야한 얘기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수화로 대화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껑충껑충 뛰며 연기를 하기도 하고 방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그냥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노력하며 친구가 된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됐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가 되기 위한 노력을 불편함이 아닌 또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관계도 재미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Esther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Esther는 그 짧은 시간동안 우리를 KL 구석구석까지 데려가주고 항상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소개해주고,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언어인 수화로 우리는 그 어떤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소통, 대화는 우리만의 방식이라 더 특별한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해 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상에서 나를 찾는 일 이런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상황, 새로운 친구, 그리고 새로운 내 자신. 이 모두는 내게 정말 소중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 꿈을 가진 내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이자 공부이다. 나는 남들이 다 알지만 동시에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전엔 언제나 그렇듯, 아직은 내가 아는 세상이 거기서 거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하는 답답함을 갖고 있었다. 학교생활에 쫓기고 동아리에 쫓기고 친구들에게 쫓기고 열등감에 쫓기고. 그렇게 쫓기듯 살며 완전히 새로운 것에 시선을 두고 있기란 그저 꿈같은 일이였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곳, 상상하기도 버거운 곳으로 나를 내몰고 싶었고 그곳에서 내가 아는 세상을 벗어난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의 환경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말레이시아라는 나라 자체보다 이 익숙한 환경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deaf들을 통해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고 그 속에 있는 내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또 상상하게 됐다. 처음엔 청각장애인들은. 그들은. 불편하겠지, 답답하겠지, 그야말로 조용하겠지, 참 내 멋대로 많은 상상을 했다. 말레이시아를 오게 되고 deaf들을 만나게 된다는 걸 알면서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구분 지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deaf들에 대한 다큐를 찍었다면 그 다큐는 정말 그런 부분만을 보여주는 재미없는 영상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 영상에는 자기 생각이 담기기 마련이니깐. 하지만 그런 내 부실한 상상을 완전히 깨주듯, 내가 여기서 만난 deaf들 중 얌전한 친구는 단 한명도 없다. 오히려 모두들 너무 정신이 없어 내 기를 빼앗길 정도다. 이제 내가 찍을 다큐에는 말 한마디 없이도, 쿵쾅대는 음악 없이도 시끄러운 deaf들의 모습이 담기게 될 것이다.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소리 없이 신나는. 이런 경험을 내가 하게 될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끔 deaf 친구들과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나중에 다시 돌려보면 그때의 우리가 소리도 내지 않고 저렇게 미친 듯이 떠들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우습다. 이제 들리지 않는 것, 소리 내지 않고 대화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내가 배운 세가지?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남들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서 무언가를 배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는 항상 재밌고 신나는 일을 했고 일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없다. 그래서 처음엔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꿈꾸게 하고 그 꿈속에서 넓은 세상을 보게 해준다는 생각을 한다. 가서 배워오기만 하라던 말이 지금은 이해가 간다. deaf들을 통해 남보다 어려운 점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우울할거란 단순한 상상은 하지도 말 것이며, 들리지 않는다고 정말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말하지 못한다고 조용한 건 절-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이 세 가지는 분명히 배웠다. 나는 이제 정신이 반쯤 나간 말레이시아 deaf 친구가 생겼다. 우리는 항상 Esther를 미친 여자라고 부른다. 그럼 Esther는 대답한다. “너희도 정상은 아니거든~”
개인에세이, 윤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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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인연 그리고 경험 가장 뜨거운 피가 끓는 20대,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특징 중 하나는 잃을 것 하나 없기 때문에 거침이 없고, 무엇보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 그래서 주변에 빽빽이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한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학생의 특권이다. 그리고 2010 6월... 나의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은 시작됐었다. 지원경쟁률이 엄청나게 높겠다는 우려 속에서도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라온아띠 4기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자원활동 경험이라고는 대학교에 들어와선 단기적으로 고작 몇 번의 경험밖에는 없었지만, TV 프로그램 중 “단비”프로젝트 프로그램을 애청하면서 해외 자원활동에 대한 희망은 점점 더 부풀고 있을 터였다. 물론 요즘 수많은 대학생들의 취업경쟁 속에서 스펙이라는 일부를 충족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앞서 내 삶에서의 새로운 경험,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의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놓쳐버리고 말, 값진 경험을 간구하고 있었다. 새로운 경험은 늘, 내 지식과 마음과 삶을 더욱 성숙하고 풍요롭게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꼭 합격하고 말겠다는 나의 강한 의지와 간절한 바램, 그리고 작은 운이 작용해 라온아띠 4기 말레이시아 팀에 내 피 꿇는 뜨거운 도전장은 받아들여졌다. 드디어 시작된 1개월의 국내활동, 29명의 전국 각지에서 온 단원들과의 새로운 첫 만남, 그리고 가족보다 더 가깝게 6개월을 동거동락하게 될 4명의 팀원들과의 만남... 처음 우리가 대면을 했던 그날을 잠시 떠올려본다. 벌써 4개월이 훌쩍 지나버린 이 시점과 굉장히 대조되기는 하다. 초면엔, 너도 나도 모두가 다 천사였고 온갖 갖은 내숭과 함께 눈에 뛰게 서로 조심스러웠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새로운 만남을 갖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가식적인 트라우마를 내세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4개여 월을 같이 형제, 자매마냥 지내온 우리 5명 모두는 그런 초면의 가식 섞인 가면을 벗어 던져 버린지는 오래... 각자의 마음 속 끝자락에 숨어있던 진짜 본인만의 트라우마를 맘껏 뽐내며 지내고 있다. 라온아띠, 변화와 성찰의 시간 나는 라온아띠를 활동을 통해서 단순히 국제 자원활동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자원활동에 대한 의식이 함양되는 정도 즉, 여느 자원활동 프로그램들과 같이 평범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난, 라온아띠를 통해서 내 일부분의 삶의 방식과 공동체 생활방식, 그리고 자아에 대한 크고 작은 변화와 성찰을 겪고 있고 한층 더 성숙해 가고 있음을 크게 느끼고 있다.내가 생각했던 라온아띠는 아니, 국제자원활동은 동남아시아의 어느 개발도상국에 가서 한국문화를 교류하고 한글, 태권도 등 학국의 전통과 그들에게는 새로울 많은 것들을 알리고, 육체노동을 하면서 5개월이라는 시간을 굉장히 바쁘게 보내느라 정신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아이 같은 생각은 라온아띠의 일원이 되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만의 아주 지극히 일반적이며 평범하고도 단면적인 생각이었다. 라온아띠는 5명의 팀원 모두의 원활한 공동체 생활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 큰 과제였다. 5명 각자가 서로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가지고 있고, 성격도 다를뿐더러 서로가 갖고 있는 지식, 생활방식, 태도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로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의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했다. 아직 국외활동이 1개월 하고도 보름정도가 남은 이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고, 이렇게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 같다. 다수도 아닌 고작 5명의 소수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생각해 보건데 아마도 생활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관해 서로간의 진솔한 대화가 조금 부족했었기 때문이며,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급급하면서 단순히 난처한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려고만 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의 선배기수들도 그래왔을 것이고 우리 기수의 다른 팀들도 역시 팀원들 간의 논쟁 속에 불화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 또한 그동안 많은 불화가 있었고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 고비를 몇 번이나 별 탈 없이 넘겨왔지만, 나는 이렇게 그 동안의 팀원 간의 갈등, 논쟁, 불화 속에서 오히려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팀원 간의 위기를 하나씩 극복해가게 되면서 몇 가지 긍정적인 사고와 더불어 내 자신이 한 층 더 성숙했음을 몸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안에서, 공동체를 배우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며 내 입장에서의 생각만으로 상대를 배려했었다면, 이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며 진정한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잘못이라는 것은 따지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그 잘못을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서로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단지 다르기 때문에 그 것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 위 몇 가지 언급한 내용들은 우리가 평상시에도 공동체 생활에 대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기본 상식으로 몇 번이고 들어봤을 만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직접 생활 속에서 부딪히며 리얼하게 겪어가면서 힘든 과정과 시간을 보내며 몸소 터득하게 된 아주 값진 경험이고 교훈이었다. 생각해 보건데, 라온아띠가 아니면, 이렇게 장기간, 남녀 혼성의 공동체생활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었을까... 라온아띠는 앞으로의 내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이제 1개월 하고 보름 남짓 남은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아쉬움이나 여운이 남지 않게, 한국에서 들고 왔던 열정을 남김없이 태우고 돌아가야겠다.
개인에세이, 박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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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고 고민했고 변해갔던, 그래서 행복했던 시간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곤 한다. ‘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됐어요?’ ‘말레이시아는 어때요?’ ‘일은 재미있어요?’ 그 광범위한 질문에 나는 어디에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항상 어렵 기만 했는데 이런 자리를 빌려 단박에 말로 풀어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쁘다. 그 중에서도 내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라온아띠에 지원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문과 고민들에 관한 것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아 쑥스럽고 부끄럽지만 혹여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혹은 하게 될 누군가가 있다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됐어요? 라온아띠 프로그램에 지원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에게는 외국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보는 기회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 에게는 이력서에 적어 낼 한 줄이기도 하며 또 다른 이에게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이 곳에 왔을까. 한가지로 귀결시키기 어렵지만 난 어떤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 요즘 흔히들 친구들이 떠나는 영미문화권이 아닌 (정말 관심 없던, 한번도 소속감을 가져보지 못한 그 곳) 아시아에 살아보는 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른 여타의 봉사활동 프로그램과는 달라 보였던 ‘아시아적 감수성을 지닌 청년 지도자를 양성한다’ ‘현지인들의 주인의식과 상호책임의식을 제고하는 참여형, 지역 밀착형 개발협력 모델을 구축한다’ 는 이 멋드러진 문구가 내 관심을 끌었다. 뭐랄까. 책으로만 배운 그래서 부족함을 느꼈던 ‘이해’ ‘연대’ ‘대안’ ‘지역’ ‘청년’ 이런 활자들이 라온아띠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힘 그런 내게 1개월간의 국내 훈련은 무엇보다 더욱 재미있고 신났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지역 공동체들을 방문하고 국제개발에 대해 강의를 듣기도 했으며 그 중 2주 동안은 지방 소도시로 내려가 그곳에 뿌리내리며 지역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조직들을 만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하는 일에 참여해보았다. 세상을 조금씩 움직여나가고 변화시키는 것이 어떤 한 큰 집단이 아닌 이런 작은 힘들이 모인 결과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 우리는 국내 훈련을 하는 동안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곤 했었는데 그러면서 얻는 것이 많았다. 팀원들 중 몇몇에게는 그곳에서 배우고 확인하는 것들이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의식이고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점 덕분에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로 다른 지역, 전공, 나이, 성별이라는 여러 요소가 겹치니 우리의 이야기는 날로 풍성해졌고 앞으로 5개월을 함께할 팀원들을 알아가는 데도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국내 훈련을 마치고 우리는 한 달 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팀원들과 수시로 회의를 하면서 활동계획을 세우고 준비물을 점검했으며 현지YMCA와 연락을 취해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 나갔다. 사무국에서는 우리에게 ‘이 시간을 잘 보내야 앞으로 활동도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당부하곤 했었는데 그 말은 현지에 와서 더욱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준비물을 체크하는 것뿐만 아니라 팀원들간의 의사소통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일과를 마친 여유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5명이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등 사소한 부분까지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오는 것은 5개월을 살아가는데 정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 차이를 이해하는 법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많이 부족한 준비였는데도 우리는 뭐가 그리 기대되고 좋았는지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 말레이시아로 떠나왔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KL YMCA- Bethany Home- Penang YMCA 크게 이렇게 세 곳을 옮겨 다니며 활동하는데 그 중 첫 번째로 머물렀던 KL YMCA에서 우리는 말레이어와 수화를 익히는 등 갖가지 Introduction을 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 곳에서 내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수화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YMCA staff인 deaf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자연스레 수화 실력이 늘고 그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실 내 수화 실력이 완벽한 의사전달을 할 만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짓과 표정을 십분 발휘해서 그들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있고 새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곳에서 친한 친구를 사귀었고 또 여러 deaf들로부터 과분한 관심과 도움을 받았다. 그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나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KL YMCA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그 곳 사람들과도 모두 친해질 무렵 우리는 Perak에 있는Bethany Home으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Bethany Home은 정신지체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시설인데 우리가 그 곳에서 하게 된 일은 노래, 춤, 미술, 과학, 요리 수업 진행과 선생님들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데 처음에 나는 정신지체 아동들을 만나는 것이 불편했다.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학생들이 달려올 때는 무언가 무서워 흠칫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더러운 손으로 나를 붙잡으려고 할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당황하기도 했었다. 동시에 나를 더욱 힘들게 했었던 것은 ‘이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 잘 해내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었다. 다행히 이런 고민들을 팀원들과 나누고 또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도 한층 여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도 훨씬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내가 Bethany Home에서 얻은 것은 요리를 잘 가르치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 그래서 익숙하지 않았고 언제나 힐끔힐끔 경계의 눈초리를 던졌던 그들을 이제는 함께 했던 나의 아이들로 친구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차이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고민, 더 깊고 풍성한 사람으로 돌이켜보면 지난 3개월은 나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고 매일이 새로운 배움의 시간들이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라는 공간에서 4명의 팀원들과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어울리는 일은 아마 라온아띠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활동지인 Penang YMCA에 도착했고 이 곳에서 약 두 달간을 남겨 놓고 있는 지금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까지 나는 잘 해왔는지 내가 한 일들이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닌지 부터 시작해서 이들이 보기에 그저 내가 휴가를 즐기러 온 이방인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내가 이곳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돌아가면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등등 여러가지 고민이 드는 까닭이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고민들을 잘 풀어나가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고민들이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에서 이 고민들이 해결되기를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깊고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래본다. 이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서는 이 고민이 해결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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