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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김희곤, by 송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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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우리 필리핀 팀은 팀원간의 좀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유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지금과는 좀 더 다른 화목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팀원들의 이름이 적힌 제비를 뽑아 그 사람에 대한 나름의 에세이를 쓰고 공유하며 “지금과는 좀 더 다른 화목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꾸리고자 하였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모두 글쓴이가 선별한 것임을 밝힙니다. 악의는 없습니다. 김희곤씨에게 송유림 이보시오. 내가 어제 기분이 좀 안 좋아서 틱틱댔기로서니 그런 식으로 맞받아치나 그래? 이런 좀스런 사람아. 왜 기분이 안 좋냐는 질문은 예의 상 한 것임을 알고 있소. 자네의 그 시선은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궁금함이 절대 묻어나지 않는 질문이었단 말이오! 에라이, 참 잘났소 그래. 그리고 아침에만 해도 그렇소.. 자고 일어났으면 인사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오? 그저 몇 초 응시하다가 다시 노트북으로 고개를 홱 돌렸던 자네의 눈은 ‘꼴이 왜 저래..’라고 말하는 듯 하였단 말이오. 자고 일어나면 꼴 사나운 건 당연하지, 내 미스코리아 머리 처음 봤소???!!!! 민상은 그럴 때마다 “쟤는 나쁜 남자야.”라고 하지만 나쁜 남자란, 성격을 제외한 모든 것이 완벽한 남자를 일컫는 말이지 자네처럼 성격마저도 나쁜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네. 겔겔. 농 한번 쳐 보았네. “나를 죽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또, “그런 에너지 낭비는 하고 싶지 않다”고 사랑스럽게 대답 할 텐가? 휴….. 내 자네를 치지 않는 이유는 자네의 조모님께서 소유하신 부동산 때문이니 괜한 착각 마시게. 어쨌든 난 아침부터 언짢았소. 조심하시오. 뭐… 한국을 떠나오기 전엔 내가 매 순간 평온하게 살 줄만 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생활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본성을 숨기기도 어렵고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해 나도 모르게 거친 성정을 마음껏 표출할 때가 있었소. 그럴 때 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자네 뿐이라 삐딱선을 타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경 써 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소. 자네는, 보기와는 다르게 꽤 다감한 면모가 있어 우리 중 누군가가 낯빛이 변하고 표정이 일그러지면 항상 이유를 물어보고 넉살 좋게 기분을 풀어주려 하지.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해서 매우 탐나는 능력 중의 하나라고나 할까? 어쨌든 내가 생 난리를 칠 때마다 방관하지 않아줘서 고맙네만 요즘 들어서는 말이야 ‘저러다 말겠지..’하는 한심한 표정이 보인다오. 조심하시오. By the way, 자네가 학을 떼며 부인하는 ‘엄친아’라는 타이틀은 자네에게 꽤 어울린다네. 뭐.. 부티가 나 보이진 않네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소. 자네에겐 내재적인 엄친아스러움이 있다 이 말일세. 그림을 그리는 그 손놀림하며 핸디크래프트 부스에서 일을 하며 하는 이런 저런 행위들을 보면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고 여겨지지. 손으로 하는 것 중 잘 하는 건 젓가락질 뿐인 나로썬 부럽기 짝이 없는 능력이라네. 게다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촘촘한 기억력(이왕이면 좋은 일을 좀 기억했으면 좋겠소…-_-^), 뿌리까지 파고드는 질문들, 뭐든 열심히 알고자 하는 그 노력은 가히 본받을 만하지. 또 장사는 어찌나 잘하는지.. 부스가 자네의 소유였다면 벌써 돈방석에 올라앉았을 거라는 게 나의 추측이네. 하나 더, 새벽부터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조깅하러 가는 그 부지런함. 아무리 가족력이라고 해도 감탄스럽네. 아, 우리가 늘 벌벌 떠는 자네의 그 검은 수첩을 빼놓을 수 없지. 기록은 또 어찌나 열심히 하시는지.. 국내 훈련 때부터 우리의 치부가 낱낱이 적혀 있을 것만 같은 그 데스노트. 가기 전에 연소할 계획이니 조심하시오. 기억하는가. 그 바닷가에서 자네가 “나의 단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사실 망설였었네. 왜 그랬는 줄 아는가? 너무 바로 말하면 그 다음 날 거기서 변사체로 발견될까봐 그랬네. ……….진담일세. 뭐 이런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자네는 단점을 찾기 어려운 사람일세. 단점인 듯 보이는 게 있기도 했지만 사실 그 것이 내 눈에만 그렇게 비치는 것 같아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 단점인 듯 비춰지지. 그래서 난 또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네.. 꽤 여러 번 그랬지.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나는 여기 와서도 혼란스럽고 대체 나의 역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어 암담한 날들을 보내고 있거든. 오히려 이 곳에서 내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망만 하고 있었는데 자네는 좀 다르더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고 더 다양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고 그것들을 우리와 공유하고 싶어하는 그런 모습이 여기에 매우 어울리는 듯 하네. 한국 가지 마시게. 자네가 돌아가길 원하지 않아도 아마 일터에서 스카우트 돼 여권 뺏길지도 모르겠소. 조심하시오^_^** 입만 열면 개구리가 나오는 남자에 관한 우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 얘기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굽고 휘어지는 거지. 본심과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난 참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라네. 그래서, 누구에게나 좋고 싫은 표현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래서 자네에게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감정이 많다오. 게다가 나는 기억력과 조직력이 제로라 자네가 뭔가에 대해 캐물으면 나는 그만 혼란스러워지고 말지. 논리적으로 대답하고 싶은데 시간이 걸리는 거야. 그래서 자꾸 헛소리만 하게 만드는 자네가 무던히도 미웠소-_- 어쨌든, 말없이 뚱해있던 때,, 괜히 툴툴댈 때,, 바락바락 소리 지를 때,, 헛소리 할 때, 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고백하고 싶소. 보기 좋은 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아주고 먼저 해결하려고 해주어서 고맙소. 앞으로도 좀 부탁함세^_^** 참 많이 배우고 있소.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봉사’라는 일, 지금도 내가 이것을 하고 있는 건지 뭔지 확실치는 않소. 보수를 안 받는다고 다 봉사인 것은 분명 아닐텐데.. 여튼 내가 ‘배운다’는 것은 봉사에 관련된 것 뿐만이 아니오. 지금까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인 자네들과의 반자발적 동거를 경험하며, 은유법도 철학적인 표현도 아닌 문자 그대로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소. 특히 자네랑 이런 저런 쓸데 있는 얘기를 하며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착 들어맞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는 그런 모든 과정들이 배움이다 이 말이지. 라온아띠라는 특수한 계기가 우리를 친구로 만든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나에게 이 것은 기막히게 마음에 드는 우연이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고 그렇게 될 리도 없지만, 만약 내가 이 5개월 간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꽤 맘에 차는 친구 하나는 남을 테니 어쨌든 뭔가는 벌어가는 거라 자신하네. 서울 가서 아무 때나 술 사달라고 불러내도 모른 척 마시게. 다른 것도 아니고 술을 거절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알고 있겠지? 조심하시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소. 이렇게 말하면 나머지 셋은 또 엄청난 가십거리를 양산해 내겠지만 어쨌든 솔직해지겠소. 자네에게도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소. 자네가 나에게 그렇듯. 이렇게 함께 무언가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좀 더 돈독해 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기쁘오. 내 좀 더 착해지려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잘 지내봄세^_^** SALAMAT!
[** 3월 필리핀 팀 활동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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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3월 4일 ~ 3월 31일까지의 활동을 필리핀 팀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혹독했던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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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Team Philippines 2009, 3, 9 두번째. 혹독했던 신고식 송유림 3월 9일, 우리는 마욘화산을 보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짐을 정리하고 잠깐 들른 YMCA사무실에서 지역 문화에 대한 강의를 잠시 듣고 린뇬 힐로 향했다. 린뇬 힐은 레가스피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힐’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산’에 가까웠다. 둔하디 둔한 몸을 이끌고 올라가는 힘겨운 산행이었지만 괜스레 들떠서 깔깔대는 우리들의 모습이 좋아 전혀 고되지 않았다. 린뇬 힐의 정상에 올라 조우한 레가스피의 전경은 실로 엄청났다.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어떤 곳이든 늘 낯선 매력이 있게 마련이지만 레가스피의 모습은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해질 녘의 전망이 근사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내 새로운 생활의 범주를 확인한 느낌이랄까. 그간의 일상과 사뭇 다를 날들이 지속될 터전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매우 거룩해졌고 그 곳이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 또한 감동스러웠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분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체감한 느낌으로만 기억하는데 그 날 린뇬힐에 서 있었던 그 시간은 유독 선명하다. 아마도 그 멋진 모습을 감상하며 한편으로는 앞날에 대한 나름의 다짐을 거듭했기 때문일 것이다. 5개월 동안,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날 동안 내 뇌가 이 기억을 삭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다소 무리한 바람을 가져보았다. INITIATION 일단, initiation을 거칠게 번역하자면 ‘신고식’ 정도이다. 신고식이란 늘 그렇듯, 절대 기대하지 않은 것들을, 매우 갑작스레 하게 되는 법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첫 날 이런 걸 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하지 않았는데 (혹은 말을 했는데 못 알아 들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혹독하고도 어안이 벙벙한 신고식을 하게 되었다. 린뇬힐 하이킹을 마친 우리는 집으로 가는 대신 YMCA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2009 YMCA-KB RAONATTI PROJECT” 라고 쓰여진 현수막이 정면에 걸려 있었고 의자 약 20개 정도가 같은 쪽을 향해 정렬되어 있었다. 일단 우리가 새로 왔으니 대충 '인사 정도 시키겠지'라고 생각을 하긴 했으나 그것이 우리의 환영식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떤 예고도 없었던 데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환영의 식을 받을 만한 위치라고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만을 위한 자리가 맞았고 어리둥절하며 서 있던 우리를 맨 앞에 일렬로 앉히고 나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알바이 지역 대학 Y멤버들이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린뇬힐에 같이 올랐던 친구가 그 때 흥얼댔던 한국 가요를 불렀으나 사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외국 생활 좀 해봤다고 뻐기면서도 나는 이 날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 대체 우리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못 알아들어도 그냥 싱긋 웃는 것에 너무나 능숙해 그저 하회탈처럼 웃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본다면 표정이 계속해서 굳어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다음부터 진행된 순서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진정한 '신고식'이었다. 진행을 하던 친구들은 준비한 것들을 쭉 보여주었다. 돌도 있었고, 물이 들어있는 유리병 같은 것도 있었는데 색깔은 탁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밀폐용기부터 하여튼 여러가지였다. 그러더니 자신들이 준비한 것들을 먹어야 된단다. 내가 춘천에서 태어나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닭갈비를 먹고 자랐듯이 어느 지역이나 그 곳에서만 유독 맛있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니 뭐 그런 것 중 하나겠지 싶었다. 그런데 말을 되짚어보니 언뜻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 I hate this moment to let you do this.” 그제서야 우리 먹으라고 준비한 음식이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를 보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들을 먹어야만 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권한 것은 (사실, 권한 것도 아니다. 그건 강제였다.) 돌이었다. 정말 그냥 돌이다. 한 번 깨물고 물로 입을 헹구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싶었다. 다음 순서는 과일이라고 해 잠시 잠깐 행복했었다. 분명 멜론이라고 했는데 앞에 아주 아름다운 수식어가 하나 붙었다. Bitter melon………..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멜론에서 이런 맛도 났었던가. 얘들은 왜 내게 익숙한 맛을 가진 것은 권하지 않는 걸까. 피클같이 쭈글쭈글하게 썰린 그 멜론 조각이 혀에 닿는 순간, 쓴 것도 신 것도 아닌 뭐가 신비한 맛의 세계를 엿본 것 같으면서도 앞으로 난 미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먹은 것은, 그들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의 침이었다. 믿기 싫었고 별로 믿기지도 않았지만 색깔이 꼭 그것인 것도 같았다. ‘이걸 어떻게 먹어..’ 라는 의문을 가질 시간이나 주면 반항이라도 했을 텐데 친절히 한 스푼 가득 떠 올려 내미는 걸 막아낼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린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든 절망적인 생각. ‘갈수록 태산…………..;;’ 다음 것은 좀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색깔도 노르스름한 게 단호박 같았는데 분명 그들은 누군가의 변이라고 얘기했다. 아마 새똥이라 했을 것이다. 뭐 이제 거기까지 갔으면 더 이상의 엽기적인 것은 나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앞으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하며 그 ‘변’을 먹으려고 할 때, 앞에 앉아 있던 우리 팀 멤버 강모씨가 “야, 그건 좀 먹을 만 해. 맛있어.” 라며 오지랖을 넓혔다. 똥이라고 했는데… 맛있단다. 우리의 적응 속도도 참 어지간히 빠르다 싶었다. 어쨌든 그 것은 정말 ‘먹을 만’ 했다. 그러나 ‘먹을 만 하다’는 의견에는 절대 ‘값을 지불하고 사먹고 싶다’는 뜻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제는 마지막이겠다 싶었던 네 번째. 내 생애 가장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현지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함께 해야 라뽀가 쉽게 형성된다는 인류학의 가르침을 받아온 지 어언 4년째.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즐겨 먹기 때문에 나에게 권했을 그 음식을 꼭 먹어야만 했는데 정말.. 그 것만큼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권한 것은 소의 눈이었다. 눈알 말이다. 그 전까지는 라뽀를 형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는 대로 먹었는데 그 눈알을 마주한 순간 심박수가 남달라졌다. 생김새로는 그것이 ‘눈’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기에, 어차피 먹일꺼면서 ‘그건 소의 눈이야’라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준 그들이 미웠다. 어쨌든 난 그 커다란 것을 입에 넣었다. 입에 넣고 맛을 보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뱉고 물을 내린 후 뭔가를 올려 보내려는 위를 진정시켰다. 그 물질을 선뜻 씹을 수 없던 이유는 그것이 입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내 입안엔 지금 누군가의 눈알이 들어있다….’ 그래도 그것을 씹을 수 있다면 그 자에게 우리가 다음에 먹은 것을 권하고 싶다. 드디어 악명 높은 그것이 등장했다. 국내 훈련 때 아주 많이 들었던 그 음식. ‘부화가 덜 된 달걀’ 이름하여 ‘발롯’이다. 달걀이 나타난 순간, 아. 이게 나온다면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었을 정도로 그것은 위대한 먹거리였다. 계란 모양이고 맛은 맥반석 달걀 같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그러나 그 적당히 맛 좋은 노른자 위에 있던 그 것. 껍질을 깨부수는 순간 나를 경악케 했던 그 것. 모양새를 형용할 수 없는 그 것은 아직 병아리가 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한 꾸물꾸물한 새끼였다. 사람으로 치면 태아 정도라고나 할까. 그 부분을 보지 못했더라면 난 그냥 덤덤히 먹을 수도 있었을텐데 운 없게도 유독 나만, 껍질을 깨자마자 그 안에 있던 그 친구와 아이컨택을 해버렸다. 몇 초간 세상의 시간은 멈춘 것 같았고 그걸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어쨌든 부숴진 껍질을 이용해 꾸물꾸물한 그 것을 긁어 내리고 ‘이건 그냥 계란이야’라는 별 말도 안 되는 최면을 걸어가며 태연한 척 먹었다. 그리고 심지어 다 먹는 순간 ‘맛있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내 참, 사막에 갖다 놔도 살아 날 팔자라는 내 사주는 틀리지 않았다. 이리하여,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된통 당한 신고식은 충격만 안겨준 채 끝났다. 그리고 우린 바로 밖으로 호송되어 초청받은 댄스 팀과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 같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지만 가무에 능한 필리피노답게 정말 멋지게, 또 즐거이 우리를 위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줬다. 그러나 식이 점점 진행 될 수록 우리의 '아노미현상'은 심해졌다.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손님’이기에 이리 분에 넘치는 환영식을 받고 있는 건지, 우리는 봉사가 뭔지도 모르고 그걸 하러 온 이방인일 뿐인데, 이들은 우리에게 특별히 뭔가를 기대하는 걸까, 혹은 hospitality정신이 충만하다고 자부하는 만큼 이런 환대의 문화는 일반적인 걸까.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맘 편히 즐기기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YMCA 앞마당에 정말 우리 다섯 명만 나란히 앉아 오롯이 우리만을 위해 춤을 추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황송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는 마치 회갑연을 하는 것과 같았는데 우리를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도 신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너무 갑작스러웠고 어안이 벙벙했다. 보는 내내 내가 반복해서 웅얼거렸던 말이 기억난다. "대체 우리가 뭐라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한 것도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우리는 그 날 ‘우리를 놀려 먹으려는 건가’라는 도전적인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우리를 환영하고, 좀 더 빨리 확실하게 이 곳을 소개하고 싶었고 또 우리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그들 나름의 방식이었다. 난 사실, 매우 고맙다. 그리고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그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춰 주고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먼저 해 주고 싶다. 뭐.. 워낙 까끌까끌한 성격이라 가능할 지는 모르겠으나 필리핀 친구들의 10%만 친절하게 해도 강산이 변한 것보다 큰 변화가 될 것이다. 난 오늘도 라온아띠가 된 나의 행운에 엄청나게 감사하고 있다. Tip: 우리가 먹었던 음식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돌을 먹은 건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한 의식’이라는 뜻이 있었구요, 비터멜론은 몸에 좋아서 약용으로도 쓰인다고 하네요. 침은 진짜 침이 아니라 계란 흰자인데 그게 끈적하니까 서로한테 착착 붙는 걸 의미한다고 해서 ‘가까워진다’뭐 이런 상징이 있습니다. 발롯, 소 눈은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다고 해서 우리에게도 먹인 건데 어쨌든 그것도 여기서는 먹는 사람이 많진 않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발롯은 그 모양새가 너무 심해서.. 밤에만 팝니다. 밤엔 잘 안보이니까요ㅋㅋㅋ-_-^
슈퍼맨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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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막상 무엇을 쓰려고 이렇게 펜을 아니 타자를 치다 보면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해 질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는 할 말들이 아우성을 치며 나오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내 손은 엉뚱한 잡담 같은 글을 길게 늘이며 망설이고 있다. 그래도 한번 뽑아보는 시도라도 해보련다. 왜 우리의 옛말 중에도 있지 않은가. 사내가 칼을 뽑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자원봉사자. 이곳 필리핀에 와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쓰는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 꼭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곳에 와서 많은 일들을 하고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뿔 나는 슈퍼맨이 아닌 것이다. 결국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을 위해서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 와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곰곰이 돌아보면 사실 별 것 없다. 엄밀히 따져 보자면 운동장 만드는 것이야 일꾼만 고용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나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놈의 몸뚱이가 그런 일에는 워낙 도가 터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 리는 없을 테고, 그 돈이면 전문가를 고용해서 5달 동안 파견해도 무언가 더 색다른 것이 나오리라. 그렇다면 무엇일까? 대학생이란 신분으로, 그것도 졸업할 때가 다 되어가는 이젠 정말 고학번이라 후배만 마주쳐도 계면쩍어지는, 지나가면 아저씨 소리를 들을법한 삭은 얼굴을 가진 내가 여기 와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술도 마시면서 어울리는 것. 그것 말고는 딱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녁마다 종종 나가 길거리를 배회하며 바람을 쐰다. 어슬렁어슬렁 내가 목적지로 하는 곳으로 걸어가 보면 이미 두어 명씩 모여 있다. 그러면 나 또한 씩 웃어주며 좋은 저녁이라느니 오늘은 좀 덥지 않느냐며 넉살좋게 한마디 던지며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민다. 차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모기에게 피도 좀 헌혈하고, 멍하니 서 있다가 한 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따갈로그어로 그들끼리 대화하는 걸 지켜보다 다시 한두 마디씩 끼어들고 다시 또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기도 하며 느지막한 저녁을 보낸다. 때로는 술을 마시러 가자는 정말 매력적인 제안 앞에 줄 묶인 강아지마냥 졸졸 쫓아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이 사람들과 진정 함께하는 것일까?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글쎄 이러한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을 뿐이고, 이러한 내 모습이 어찌 보면 시간을 버리는 아까운 짓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본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5개월 뒤엔 또 어떠한 생각을 가지며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난 아직 젊기에(외국 나와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24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 나이일 것이다.) 나를 굳이 정형화할 필요도 없고, 상황에 따라 배워가는 것 또한 늘어 갈 테고, 그럴 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한다. 지금의 이 에세이 또한 훗날 볼 때 ‘이때는 이렇게 생각했나?’ 하며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질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밥을 먹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 안에서 더욱 무언가를 알아보려 발버둥 치고 싶다. 삶이라는 매력적인, 정말 가슴 설레게 만드는 길을 걸어가는 중인 것이다. 남은 100여일 동안 열심히 걷고 뛰며 글을 적어보련다. 그런 후에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The Story of Team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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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Team Philippines 2009, 3, 9 첫번째. 레가스피를 만나다. 송유림 3월 5일, 우리는 한국을 떠나 여기 필리핀에 왔다. 우리가 5개월간 머물 ‘레가스피’라는 작은 도시로 이동하기 전 마닐라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4박 5일을 보냈다. 우리가 머물 알바이 주(레가스피에 속해 있는 주)에 대한 정보와 활동을 하게 될 커뮤니티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를 듣고, 너무나 촘촘히 짜여 있어 흠칫 놀랐던 5개월 간의 스케쥴도 보았다. 이 모든 것들을 접하고 나니 나의 신분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닌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명징해져 갑작스런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아직 커뮤니티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봉사활동이라는 것도, 그 것에 대한 걱정도 다 상상 속의 일이다. 앞으로 한 달 정도 후, 실제로 현지에 들어가게 되면 그 곳의 모든 것에 대해 뚜렷이 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그렇게 되면 ‘volunteer’라는 생소한 나의 역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9일 새벽 레가스피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마닐라에서의 오리엔테이션은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적절히 일깨워주었다. 봉사자이기 이전에, 평범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마다 이 때 했던 ‘겸손한 자세로 그들의 친구가 되자’는 다짐을 생각하려 한다. 라온아띠의 어떤 친구들이 ‘본분을 잃지 말자’고 열심히 주장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MAYON VOLCANO 레가스피에 오던 날은 무척 맑았다. 해외여행 경력이 좀 있는 걸 늘상 으스대는 나는 기내에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 처럼 유치한 행동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가스피로 오던 비행기 안에서 그간 유지해 온 나의 그 도도한 룰은 한 번에 깨져 버렸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생전 처음 보는 ‘야자수로 만들어진 산’ 위로 날아갔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던 날씨 덕분에 산의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는데, 처음 보는 그 생경한 모습이 신기해 과도하게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유치한 행동’을 금할 길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경이로운 자연의 빛깔에 압도되어 넋이 나가 있었다. 마닐라에서부터 함께 한 현지 스탭 틴틴은 ‘이렇게 맑은 날은 흔치 않다’며 먼 곳을 가리켰다. “See? You are lucky!” 그녀의 손가락이 닿은 곳엔 레가스피의 상징인 마욘 화산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정확히 측량한 후 갈고 깎아낸 것만 같은 대칭형 고깔모양이었다. 산의 윗 부분에 걸쳐있던 구름도 이를 신성하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몽롱한 기분에 젖어드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담담히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는 그 모습에 혼이 빠져 있던 나는 잠시 ‘그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출국 전 한국에서부터 익히 들었듯 마욘은 2006년 11월 폭발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은 활화산이다.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13000여가구가 거주지를 잃었다. 같은 시기에 태풍 ‘두리안’ 도 가세 해 피해를 가중시켰다. 그 후 화산재가 쌓인 곳에 불어닥친 태풍의 흔적 속에서 생존해야만 했던 이재민들을 위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필리핀 국내외 여러 단체들의 후원과 이재민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레가스피에는 현재 10개가 넘는 정착촌(Resettlement)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 중 하나인 애니슬락(Anislag)에서 5개월간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피해가 발생한지 2년이 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착은 다 되었겠지만 여전히 미완성된 부분이 많을 것이고 그것을 완벽히 가꾸어 나가는 일에 동참하는 만큼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욘 화산은 분명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정확하고도, 간결하게 설명할만한 수식어를 찾아보았으나 인간의 언어는 자연을 묘사하기엔 턱없이 모자랄 뿐이라는 사실만 깨달았다. 걸맞는 형용사가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그 산이 그렇게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던 주범이란 사실이 매우 묘했다. 게다가 또 언제 터질지 모른다니, 확실히 그 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욘, 그리고 그것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 레가스피에서 우리가 보낼 5개월이 어떨지 마음껏 상상해본다. 현지인들도 보기 힘들다는 선명한 마욘화산을, 첫 날 도착하자마자 보았다는 것은 어쩌면 밝디 밝은 우리의 앞날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싶다. 아직은 모든 것이 희망적이지만 잘 하겠다는 성급한 다짐만큼은 하지 않으려 한다. ‘해외봉사단’에 지원했으면서도 ‘봉사’보다는 ‘해외’라는 단어에 현혹되었던 나이다. 봉사정신 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하고 심지어 봉사란 성스럽고 고결한 행위이기에 온 몸에 희생정신이 배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내가 ‘volunteer’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 소름끼칠 정도로 낯설고 아직은 그 이름에 대한 값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실제로 커뮤니티에 가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봉사자로서의 마음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한번도 해 본적 없고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봉사’를 하게 된 사실이 부담스러워 봉사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를 정비하는 그 시간을 유예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다. 나는 여기 필리핀에 왔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봉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사람이 사람을 감히 ‘도와준다’고 말하는 것에 늘 반감을 가져왔던지라 난 아직 풋내기다. 이 풋내기가 어떻게 영글어가는지,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지 모든 것이 궁금하다. 열심히 하려고 한다. 마음이 탁해질때마다 눈부신 마욘화산의 정기를 받으면서 말이다.
모두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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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없네 이사진에;; 암튼 우린 잘 살고 있어요 다들 건강하시죠? 건강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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