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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이유정
1
99+
사랑하는 내 꼬마친구, 피읍에게. 안녕, 피읍! 우리가 만난지도 이제 다섯달이 다 되어 가는구나.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문득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그 동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니까, 너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내 다섯달은 꽉 차서 든든하거든. 3월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 도서관 2층에서 한창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 넌 그런 우리가 신기한 듯 늘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지. 우리말의 ‘ㅍ’ 발음과 똑같은 네 이름은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어. 우리 둘이 친해지게 된 건 니가 알려준 ‘미은 엇미은(있다 없다)’ 놀이를 같이 하면서부터였을거야. 그 당시 가장 자신있게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이름이 뭐니?”, “몇 살이니?”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내게, 나뭇잎을 양 손에 쥐고 어느 손에 있는지 맞추는 그 놀이는 다른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었지. 내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면접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만약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있겠나?’였어. 물론 에이즈가 그런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그 때 난 안아줄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 상황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은 없어서 실제로는 어떨지 잘 알지 못했었어.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아동결연 관련 서류를 보다가 니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이미 너와 음식을 많이 나눠 먹었고 너를 많이 안았지만, 그게 전혀 더럽다거나 걱정된다거나 하진 않더라. 아마 여덟살인 니가 보균자라는건 모자 감염일 가능성이 크겠지. 어찌됐건 너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편견도 깰 수 있었어. 한번은 유치원 수업을 가는데 너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잖아. 이 곳 유치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어려운 형편이고, 때문에 이들 역시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고 해서 교육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어. 하지만 너처럼 생계가 급급해 그런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걸 그제서야 알았어. 매일 너와 몇몇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색칠공부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시작하게 된거야. 피읍! 넌 내가 캄보디아에 있던 다섯 달 동안, 나를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해준 ‘수호천사’였다는거, 알지 모르겠다. 어느 날 센터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을 잡아끌고는 가방 안에서 선물상자를 꺼내줬었잖아.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 안에는 니가 그림공부한 종이들과 연필, 과자, 어디서 났는지 예쁜 머리핀까지 들어있었지. 그 날은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더 싱글벙글이었어. 오죽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자랑하고 다녔다니까! 또 5월이었나? 유독 그 날따라 지치고 힘들어서 혼자 의자에 앉아있는데, 니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늘이 예쁘다고 좀 보라고 했었잖아. 맑은 하늘엔 아주 크고 동그란 모양의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고, 그걸 보는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기분이 좋아졌어. 내가 여태껏 본 무지개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였거든. 얼마 전에 니가 접어준 별과 하트를 받고는 하나하나 접었을 생각에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 나에게 무언가를 주어서가 아니라, 너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참 고마워. 피읍. 너를 통해 캄보디아를 알았고, 이해했고, 더 사랑할 수 있었어.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자꾸만 아쉬워지는 이유도 아마 너를 비롯해 다섯달동안 아낌없이 사랑했던, 많은 꼬마친구들 때문일거야. 내 삶의 모토도 그렇고 이 곳 캄보디아에 오기 전 했던 다짐도 마찬가지인데, 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단 한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지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니가 나를 만나 행복했다면, 그럼 그것만으로 내 다섯달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해. 춤을 좋아해서 음악이 나오면 몇 시간이고 힘든줄 모르고 춤추는 너. 댄서가 되고 싶다는 꿈이 꼭 이뤄지길 응원할게. 다음에 니가 커서, 지금 타고 다니는 큰 자전거가 꼭 맞을 나이가 되면, 나 뒤에 태워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러려면 건강하게 쑥쑥 잘 커야한다! 안녕.
개인에세이, 여세린
99+
캄보디아에서의 151일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꿈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참 많이 웃고 뛰어다니며 정말 말 그대로 내 생애 가장 뜨거운 날들을 보냈다. 나는 원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편이다. 날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날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항상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만드느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신경쓰지 않고 내 생애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날 보면 항상 웃어주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태도나 겉모습보다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 역시도 나에게 웃어주는 사람들이 내 친구처럼 느껴졌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경계하지 않으며 가깝게 다가오는 이 사람들 덕분에 항상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꽉 차 있던 나도 더 자유롭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처음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때, 지원동기에 대한 물음에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할 때에는 내 현실을 떠나서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웃어주고 힘이 되어주면 그들도 나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나는 분명 행복하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이유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반겨주고 내게 웃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행복해졌다. 내가 해준 것이 없는데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해주고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함께 뛰어다니고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아이들은 내가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준다는 말을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써왔지만 이곳에서는 마음으로 그 말에 절절히 공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에서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많이도 안아주고 업어주고 함께 뛰어다녔다. 많이 뛰어다니고 많이 안아줄수록 내 몸이 곧 쓰러지겠구나, 곧 죽겠구나 싶었지만 의외로 나는 굉장히 튼튼했고 아프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꽉 차게 되었다. 이런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 이곳에서 떠난다는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내가 며칠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5개월은 정말 작은 기간이지만 이 5개월이 앞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런 5개월을 보내고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여기에서처럼 꿈과 같이 행복함으로 가득차서 살아가는 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5개월의 끝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돌아가서의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에서 배우고 느낀 부분들을 바탕으로 이전보다는 나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엄청 많이 변해서 책에서 나오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된다거나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부분 부분에서 이전보다는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오면서 인정하기 싫었던 부분, 몰랐던 부분들을 이곳에서 느끼고 알게 되면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내가 기대된다.
개인에세이, 문희진
99+
발등에 선명한 신발라인이 생기고 몸과 팔의 색이 확연하게 다르지만 난 지금의 얼룩덜룩 까만 내 피부가 참 맘에 든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현지인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인데, 캄보디아 사람들과 피부를 대보면 살색이 똑같거나 내가 오히려 더 까맣다. 태닝한 것처럼 골고루 예쁘게 탄 것도 아니고, 옷을 입고 다녔던 그대로 제멋대로 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쏙 든다. 한국에서 이렇게 탔다면 과연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센터에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들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살이 타지 않게 하려고 선크림을 수없이 바르는 모습을 많이 본다. 즐거운 여행이지만 부분부분 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일 것이다. 나 역시 캄보디아에 온 처음에는 한 달 동안 선크림 4통을 바를 정도로 열심히 바르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에까지 왔다면 그것도 5개월을 살았다면 까맣게 타지 않고 하얗게 있다 가는 건 참 이상하다.’ 무엇을 해주러 왔다기보다는 적어도 그들과 같이 살아 보려고 마음먹었다면 뜨거운 햇볕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그걸 막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직 캄보디아에 활짝 마음을 열고 다가서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든 후로는 선크림에 매이지 않게 되었다.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무 때나 자다가 눈뜨고도 바로 땡볕인 밖으로 거리낌 없이 나갈 수 있게 말이다. 나의 이런 변화가 순간적인 생각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고, 시간이 지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들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처음보다는 크메르어도 늘어서 현지 스텝들이나 애기들, 주변 사람들과 말이 통하게 되었다. 말이 통하게 되니까 이런저런 얘기들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장난도 더 많이 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다보니 캄보디아 음식, 간식들도 더 다양하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게 부족하던 붙임성도 늘게 되었다.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멈춰있는 사람이나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마구마구 말을 걸고 싶어졌다면 붙임성을 넘어선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내 모든 상황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이 행복하고 즐겁다면 다 좋은 변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캄보디아에 익숙해지니까 어느새 5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익숙해진 생활이라고 해서 혹시나 내가 상황에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행동한 적은 없는지, 조금 더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들과 조금 더 신나게 놀아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나의 5개월을 돌아보게 된다.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을 기분 좋게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되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남은 시간을 더욱 더 열심히, 신나고 행복하게, 마음껏 뛰어놀다 가야겠다. 캄보디아에서의 뜨거웠던 5개월. 나는 지금 참 행복하다.
개인에세이, 이혜영
1
99+
나의 진짜 이야기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시피 3월 아시아의 좋은 친구로서의 가슴 설레는 시작을 했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어느새 이곳에 삶과 작별의 인사를 나눌 때가 왔다.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이 단계를 수없이 거치면서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끝의 아쉬움과 이별의 서운함을 어떻게 달래야할지 모르겠다. 약 5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3월 초의 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3월,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며, 어떠한 색을 띠고 있는 사람인지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월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삼 놀라며 생소하고 두려운 마음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과연 이 모습이 나의 새로운 면이었을까. ‘나 역시 모르고 지낸 나의 진짜 모습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소 부정적인 면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바꿔 가면 되는데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5개월 동안 해외의 봉사활동을 온 것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의 태국에서의 5개월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서의 나를 접하고, 그 속에서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은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아직 끝없이 모자란 아기의 걸음마 단계인 내가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며 아무런 도움없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항상 함께 해준 우리 태국팀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태국에서 얻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그 모두가 우리들의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을 것 이다. 그리고 이 추억의 주인은 누구보다 우리 5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솔직한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라온아띠 활동은 ‘Real' 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꾸며내지 않은 도저히 꾸밀 수 없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활동이다. 이 진정성이 우리의 마음을 넘어 우리 자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버린다. 라온아띠 활동이 마무리 되는 순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을 향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정답 속으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과거의 아쉬움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더 크다. 이제 긴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개인에세이, 이하나
99+
성찰의 시간도, 고민의 시간도 이제는 그저 머릿속이 새까맣다. 난 뭘 바라고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걸까. 하루하루 치열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바라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실존을 도피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결국에는 벽에 부딪혀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느낌. 현실을 직시하게 하도록 도와준 시간들. 5개월을 태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 사는 곳에서 지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우리라는 말의 의미. 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형성되고 그것이 이루어내고 야기시키는 것들을 깨달은 시간임이 분명하다.힘든 시간, 좌절, 견딤, 아픔.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청춘이기 때문에 느끼고 감내해 낼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이런 아픔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일생 동안에 단 한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기회를 마무리 하고 있는 이 시점. 짜릿하고 떨리고 숨이 막히는, 땀 흐르는 나의 청춘. 그리고 돌이켜보면 변한 건 없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사람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 시간.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5개월. 지금, 이 순간 이라는 시간이 절실하게 받아들여지던 5개월.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절실히 매 순간 살아가도록 만들어준 5개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난 한 것도 없이 받기만 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받은 도움을 이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도움을 받았듯이, 나도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것. 이 글을 쓰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과 경험들을 별 무리 없이 글로 써 내려가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만이 겪은 추억이 아니기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지낸 추억이기에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언젠가 문득, 누군가 물어본다면. 지나간 이 기억이 아름다웠냐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기억 속에서, 나는 만나고 있을 거라는 것. 사람들을. 아, 정말 결국엔 사람이다.
개인에세이, 이정표
99+
라온아띠 이전에 아띠는 무엇일까?집에서만 한발자국 나가면 말이 안 통했다. 인터넷을 하려면 뭐가 이렇게 느린지 답답했다. 뭔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사람들은 굉장히 태연했다. 태국에 처음 와서 느낀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이 정도다. 이젠 나가서 태국사람들과 한 두마디 나눌 수 있고 인터넷 속도는 이제 익숙해졌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아직도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전보다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정말 내가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사소한 부분들은 또 잘 적응했나보다. 나도 인간이라 서 그런가?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 인간이라는 것이 난 적응이 되질 않는다.가족이외에 이렇게 다른 사람과 깊게 알고 지내본 적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물며 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 5개월이란 시간에 힘든 것을 다 구겨넣은 이런 상황은 더더욱 처음이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깊게 알수록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고 보니 사람이라는 거에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들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감정의 골들이 생겼다. 내가 정말 거부감이 많이 들을 만한 사람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라는 것이 모두 알고 보면 어느 정도 거부감이 들게 마련인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여 버린 것일까?과정은 위와 같았다. 좋진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로 얻은 생각은 생산적이고 좋은 결과물인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지금까진 사람관계를 중요하다 여기지 않았다. 겉으로는 세상에 사람관계가 어떻게 안 중요할 수 있냐고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사람관계와 사람의 속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좀 더 사람에게 다가가고 알아나 가고 싶어졌다. 라온아띠 단원으로서 내가 파견 중 얻은 가장 큰 결과물은 이것 인것 같다.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기 위해 파견을 와서 진짜 좋은 친구가 무엇인지 재고하게 된 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 무엇 이던 간에 나에겐 라온아띠가 상투적 표현이지만 ‘소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개인에세이, 김태훈
2
99+
사와디 캅 치앙마이. 사와디 캅 타이!추위가 가시기도 전인 3월,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시작한 태국생활. 이제 5개월이 지나 대장정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출국 전 떨림과 태국에 와서의 걱정과 흥분이 아직도 생생한데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처음 태국에 도착해서 기온부터 먹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들까지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생소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인사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되고, 사람들 앞을 지날 때면 몸을 낮추고 지나가게 되고, ‘김태훈’이라는 이름보다 ‘맥’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내 모습들을 보면서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태국에서의 생활이 내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태국어 수업과 유명 관광지 탐방을 하며 태국을 배우고, 쏭크란 축제와 휴일 자유시간을 통해 여행하며 태국을 느끼고, YMCA 주말활동과 1~2주일간의 체험활동을 하면서 태국을 이해하고, 마지막으로 홈스테이를 하면서 비로소 태국과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그 속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 만들어간 새로운 경험들과 추억들은 나를 미소짓게 만들고, 그 추억들은 꺼내고 꺼내도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즐거움과 서운함, 행복함과 슬픔이 공존하던 한편의 버라이어티 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라온아띠를 통해서 얻었던 가장 큰 것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계속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알게 된 소중한 시간 이었다.불완전한 존재였고 지금도 많은 것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파견 5개월 동안 완벽한 생활을 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활동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지금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5개월이라는 시간은 분명 가치있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이제 다시 내가 살아가야 할 공간으로 돌아가야 하고, 여전히 그곳은 바쁘게 돌아가고, 태국에서의 기억은 그 흐름 속에서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 바다 건너편에서 ‘선생님 안녕하세요’를 수줍게 말할 줄 알고, 나를 알고 그리워해 줄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오늘도 힘차게 나를 살아가게 한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대장정의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사와디 캅 치앙마이. 사와디 캅 타이!
개인에세이, 김지현
99+
김지현 에세이난 영화장르 중, 청춘영화나 성장영화를 좋아한다.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성장하거나 성숙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때론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영화의 판타지는 현실에선 경험하기 힘든 일임을 안다. 현실에서 개인의 성장과 성숙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기에. 태국으로 떠나오기 전, 5개월 뒤 나의 모습이 많이 변할 것이란 기대는 사실 하지 않았다. 5개월이란 시간은 한 사람이 변하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무언가 변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직접 경험하고 안하고의 차이에서 오는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많이 부딪혔고, 또 그만큼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 사는 동안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참고 견디며 끝끝내는 버티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저, ‘젊은 시절 해외봉사하며 좋은 경험했어요~’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하기엔 이 시간은 너무 많은걸 담고 있다. 활동하면서 만만치 않은 상황에 부딪혀 데이기도 했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버겁기도 했다. 물론, 힘에 부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의 사람들과 행복했던 추억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어왔습니다~’식의 추억담으로 아름답게 결론 짓는 것도 양심에 찔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라는 말을 함부로 못쓰겠고, 무엇이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만났던 이곳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했을까? ‘이해’라는 말보단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 속에서 어울려 지내다 조용히 나오는 것. 국내훈련 때 들었던 이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결국 우리는 떠나야 할 사람들이다. 그 잠시 동안 대단한 것을 이루려 혹은 무엇을 바꾸려 하지도 말고, 그들의 삶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가 잠시 머문 이곳에서 그들은 수십년, 수백년의 삶을 이어왔으며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러할 것이므로. 활동을 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정리된 답변보단 여전히 많은 고민으로 혼란스럽다. 활동에 대한 성찰과 의미해석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 그리고 가슴에 충분히 담아두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아쉬움이 뒤따른다. 이제 열흘 뒤면 태국을 떠난다. 그동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주는 것 없이, 넘치게 받은 기억밖에 없다. 무엇을 잘 해냈다는 성취감∙뿌듯함 같은 자기만족 보단, 미안함이 앞선다. 민폐나 끼치진 않았을까. 혹여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맘 상하게 하진 않았을까…하는 것들. 그동안의 생활이나 느낌이 정리돼서 명확해지기 보단, 오히려 싱숭생숭하다. 아마 이 고민과 생각들은 한국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현지 활동이 끝났다고, 내 삶 역시 땡!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 한꺼번에 많은 걸 깨닫고, 급 성숙한다는 영화 속 환상은 이곳에 없다. 대신, 고민과 깨달음 이 지난한 과정의 반복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개인에세이, 조현경
99+
NOTHINGS GONNA STOP US! 우리 필리핀 5기의 주제가이다. ‘젊음’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걸어온 길은 어떠한 것도 우릴 막을 수 없었다. 지금 그 여정의 목적지이지자 또 다른 시작점에서 돌아보는 지난 5개월은 정말 아무것도 우릴 막을 수 없었던 힘찬 여행이었다. 대단원의 시작2011년 3월 3일,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부터 7월 20일, 오늘까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3월, 발리 크루즈에서의 4월, 워크캠프와 오로라 마을에서의 추억 5월, 그리고 라온아띠NE와 함께한 6월과 7월.필리핀에서 보낸 모든 시간은 나의 20대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다.내가 왜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을까?나는 다른 지원자들만큼 화려한 스펙도, 자원봉사에 관한 경험도 지식도 부족했다. 지원 당시 계속되는 대학 생활에서 내 관심사는 오직 학점과 취업이었다. 모든 것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 그로 인해 언제부턴가 내가 다른 누구와 이야기를 할 때, 다른 무언가를 대할 때 가면을 뒤집어 쓴 듯한 나를 느꼈고 진짜 나를 잃어버린 듯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나에게 되묻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 학교 교정에서 5기 라온아띠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 그게 바로 내 안의 물음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나오게 된 필리핀에서 지난 5개월간 나는 참 많은 경험을 하고 또 성장했다. 순간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Day care centre 아이들과의 첫 만남, 100명의 넘는 사람들 앞에서 펼친 공연, 아이들을 위해 몇 일을 밤새 준비한 수업, 홈스테이,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한 워크캠프와 제 2의 엄마를 갖게 해준 오로라 마을, 라온아띠 of Nueva Ecija, 그리고 함께이기에 즐거웠던 우리 라온아띠 필리핀 5기. 이 짧은 글에 전부를 써내려 가기엔 너무나 방대한 양일뿐더러 글로는 미처 표현해 내지 못할 만큼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나의 젊음지난 우리의 활동은 ‘젊음’과 ‘꿈’에 초점이 맞춰 진행되었다. 활동의 일환으로 많은 필리핀의 청소년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꿈을 나누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는 친구가 되었고 나로 하여금 ‘나의 역할’에 대해서 또 다른 고민을 갖게 했다. 이 고민은 나에게 작은 변화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새로운 것을 맞기도 전에 온갖 걱정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도전하기도 전에 ‘안 될 것이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늘어놓는 일이 빈번했던 나는 어리광쟁이였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는 것에 대해 한결 여유로워 7월 22일에 열리는 콘서트에서 공연을 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배움에도 적극적이 되어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고 필리핀 요리도 할 줄 알게 되고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것들을 많이 습득하게 되었다. 내가 젊다는 것. 그 사실 하나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나를 답답하게 하던 가면을 조금씩 벗어가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진짜 나’를 세상에 보여주게 되면서 나의 20대는 비로소 반짝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시작점에서나에게 좋은 자극제였고 배움터였던 라온아띠.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안고 나는 이제 봉사자가 아닌 수혜자로 다시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그때의 나는 또 얼마나 변해있을까? 아니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이 곳에서의 나날을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 있음을,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는 이 순간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그 사실 하나로 지금까지 그래왔듯 남은 날을 소중히 여기며 계속 나아갈 것이다. 청춘소년(靑春少年)! 함께이기에 행복한 우리는 지금 이 곳 필리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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