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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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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사와디 캅 치앙마이. 사와디 캅 타이!추위가 가시기도 전인 3월,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시작한 태국생활. 이제 5개월이 지나 대장정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출국 전 떨림과 태국에 와서의 걱정과 흥분이 아직도 생생한데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처음 태국에 도착해서 기온부터 먹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들까지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생소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인사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되고, 사람들 앞을 지날 때면 몸을 낮추고 지나가게 되고, ‘김태훈’이라는 이름보다 ‘맥’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내 모습들을 보면서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태국에서의 생활이 내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태국어 수업과 유명 관광지 탐방을 하며 태국을 배우고, 쏭크란 축제와 휴일 자유시간을 통해 여행하며 태국을 느끼고, YMCA 주말활동과 1~2주일간의 체험활동을 하면서 태국을 이해하고, 마지막으로 홈스테이를 하면서 비로소 태국과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그 속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 만들어간 새로운 경험들과 추억들은 나를 미소짓게 만들고, 그 추억들은 꺼내고 꺼내도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즐거움과 서운함, 행복함과 슬픔이 공존하던 한편의 버라이어티 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라온아띠를 통해서 얻었던 가장 큰 것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계속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알게 된 소중한 시간 이었다.불완전한 존재였고 지금도 많은 것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파견 5개월 동안 완벽한 생활을 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활동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지금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5개월이라는 시간은 분명 가치있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이제 다시 내가 살아가야 할 공간으로 돌아가야 하고, 여전히 그곳은 바쁘게 돌아가고, 태국에서의 기억은 그 흐름 속에서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 바다 건너편에서 ‘선생님 안녕하세요’를 수줍게 말할 줄 알고, 나를 알고 그리워해 줄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오늘도 힘차게 나를 살아가게 한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대장정의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사와디 캅 치앙마이. 사와디 캅 타이!
개인에세이, 김지현
99+
김지현 에세이난 영화장르 중, 청춘영화나 성장영화를 좋아한다.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성장하거나 성숙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때론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영화의 판타지는 현실에선 경험하기 힘든 일임을 안다. 현실에서 개인의 성장과 성숙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기에. 태국으로 떠나오기 전, 5개월 뒤 나의 모습이 많이 변할 것이란 기대는 사실 하지 않았다. 5개월이란 시간은 한 사람이 변하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무언가 변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직접 경험하고 안하고의 차이에서 오는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많이 부딪혔고, 또 그만큼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 사는 동안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참고 견디며 끝끝내는 버티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저, ‘젊은 시절 해외봉사하며 좋은 경험했어요~’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하기엔 이 시간은 너무 많은걸 담고 있다. 활동하면서 만만치 않은 상황에 부딪혀 데이기도 했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버겁기도 했다. 물론, 힘에 부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의 사람들과 행복했던 추억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어왔습니다~’식의 추억담으로 아름답게 결론 짓는 것도 양심에 찔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라는 말을 함부로 못쓰겠고, 무엇이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만났던 이곳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했을까? ‘이해’라는 말보단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 속에서 어울려 지내다 조용히 나오는 것. 국내훈련 때 들었던 이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결국 우리는 떠나야 할 사람들이다. 그 잠시 동안 대단한 것을 이루려 혹은 무엇을 바꾸려 하지도 말고, 그들의 삶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가 잠시 머문 이곳에서 그들은 수십년, 수백년의 삶을 이어왔으며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러할 것이므로. 활동을 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정리된 답변보단 여전히 많은 고민으로 혼란스럽다. 활동에 대한 성찰과 의미해석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 그리고 가슴에 충분히 담아두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아쉬움이 뒤따른다. 이제 열흘 뒤면 태국을 떠난다. 그동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주는 것 없이, 넘치게 받은 기억밖에 없다. 무엇을 잘 해냈다는 성취감∙뿌듯함 같은 자기만족 보단, 미안함이 앞선다. 민폐나 끼치진 않았을까. 혹여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맘 상하게 하진 않았을까…하는 것들. 그동안의 생활이나 느낌이 정리돼서 명확해지기 보단, 오히려 싱숭생숭하다. 아마 이 고민과 생각들은 한국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현지 활동이 끝났다고, 내 삶 역시 땡!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 한꺼번에 많은 걸 깨닫고, 급 성숙한다는 영화 속 환상은 이곳에 없다. 대신, 고민과 깨달음 이 지난한 과정의 반복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개인에세이, 조현경
99+
NOTHINGS GONNA STOP US! 우리 필리핀 5기의 주제가이다. ‘젊음’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걸어온 길은 어떠한 것도 우릴 막을 수 없었다. 지금 그 여정의 목적지이지자 또 다른 시작점에서 돌아보는 지난 5개월은 정말 아무것도 우릴 막을 수 없었던 힘찬 여행이었다. 대단원의 시작2011년 3월 3일,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부터 7월 20일, 오늘까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3월, 발리 크루즈에서의 4월, 워크캠프와 오로라 마을에서의 추억 5월, 그리고 라온아띠NE와 함께한 6월과 7월.필리핀에서 보낸 모든 시간은 나의 20대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다.내가 왜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을까?나는 다른 지원자들만큼 화려한 스펙도, 자원봉사에 관한 경험도 지식도 부족했다. 지원 당시 계속되는 대학 생활에서 내 관심사는 오직 학점과 취업이었다. 모든 것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 그로 인해 언제부턴가 내가 다른 누구와 이야기를 할 때, 다른 무언가를 대할 때 가면을 뒤집어 쓴 듯한 나를 느꼈고 진짜 나를 잃어버린 듯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나에게 되묻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 학교 교정에서 5기 라온아띠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 그게 바로 내 안의 물음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나오게 된 필리핀에서 지난 5개월간 나는 참 많은 경험을 하고 또 성장했다. 순간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Day care centre 아이들과의 첫 만남, 100명의 넘는 사람들 앞에서 펼친 공연, 아이들을 위해 몇 일을 밤새 준비한 수업, 홈스테이,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한 워크캠프와 제 2의 엄마를 갖게 해준 오로라 마을, 라온아띠 of Nueva Ecija, 그리고 함께이기에 즐거웠던 우리 라온아띠 필리핀 5기. 이 짧은 글에 전부를 써내려 가기엔 너무나 방대한 양일뿐더러 글로는 미처 표현해 내지 못할 만큼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나의 젊음지난 우리의 활동은 ‘젊음’과 ‘꿈’에 초점이 맞춰 진행되었다. 활동의 일환으로 많은 필리핀의 청소년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꿈을 나누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는 친구가 되었고 나로 하여금 ‘나의 역할’에 대해서 또 다른 고민을 갖게 했다. 이 고민은 나에게 작은 변화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새로운 것을 맞기도 전에 온갖 걱정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도전하기도 전에 ‘안 될 것이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늘어놓는 일이 빈번했던 나는 어리광쟁이였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는 것에 대해 한결 여유로워 7월 22일에 열리는 콘서트에서 공연을 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배움에도 적극적이 되어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고 필리핀 요리도 할 줄 알게 되고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것들을 많이 습득하게 되었다. 내가 젊다는 것. 그 사실 하나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나를 답답하게 하던 가면을 조금씩 벗어가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진짜 나’를 세상에 보여주게 되면서 나의 20대는 비로소 반짝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시작점에서나에게 좋은 자극제였고 배움터였던 라온아띠.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안고 나는 이제 봉사자가 아닌 수혜자로 다시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그때의 나는 또 얼마나 변해있을까? 아니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이 곳에서의 나날을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 있음을,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는 이 순간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그 사실 하나로 지금까지 그래왔듯 남은 날을 소중히 여기며 계속 나아갈 것이다. 청춘소년(靑春少年)! 함께이기에 행복한 우리는 지금 이 곳 필리핀에 있다.
개인에세이, 이수진
99+
지난 5개월 동안 내가 한 거?합리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려는 생각이 결국에는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결국 인생이란, 단 번에 쓰여지는 게 아니라 매 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난 내가 지내온 반년의 인생을 내 나름 논리적으로 회고해 보려 한다. 매번 고쳐져야 하는 짧은 에세이 속에 모두 담아내기란 너무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는 내가 이 전에는 몰랐던 무수한 깨달음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함께 이것의 매력에 빠져있던 12월의 어느 날, 난 이것 저것에 치여 반쯤 방전된 내 젊음을 가지고 책 밖으로 뛰쳐 나가보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해보기로 했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었던 마음,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두려움을 버리고 보다 값진 것을 얻기 위한 나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3월. ‘인간’이수진이 되기 위해 미련 없이 감사하며 떠났다. 2011년의 마지막 날 2010년 보다 더 나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 그래서 2011년의 반이 지난 이 시점에 나는 더 나아진 나를 발견했을까를 자문해본다. 대답은? 난 아직이다. 사실 환경적인 영향에 의한 태도와 행동의 변화, 혹은 인간관계에서의 적응력 등 에서라면 많은 배움을 얻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감히 A4 용지 한 장에 다 넣을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낸 반년의 생활을 나 스스로가 돌이켜 보는 이 소중한 시간에 이젠 트라이 시클의 매연이 익숙해졌다거나 현지인들의 언어나 라이프스타일에 적응 되었다는 등의 당연한 변화들에 대해서는 열거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 살아본 사람들은 누구나 당연히 겪게 되는 변화들이기에 나에겐 더 이상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온아띠’라는 이 기회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를 통해 나는 나 스스로가 변화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는 혹은 만들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을 뿐. 아마 이 활동이 종료되고 난 후, 내가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를 머리 싸매고 비교해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자신에게 ‘넌 이래서 더 나아졌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객관적이기란 쉽지 않으니까^^ 단지 내가 자신 있게 “난 이랬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난 지난 5개월 동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려는, 귀에 들리는 것만 들으려는 그리고 입으로 말하는 것에만 대꾸하려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난 진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보석 같은 웃음 뒤에 숨겨진 비교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을 보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많은 유쾌한 사람 뒤에 묻어나는 극한의 외로움과 고독을 알고 어깨를 선 뜻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두 손 모두를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는 꽉 찬 한 해를 보내리라는 지난해 12월 31일의 다짐처럼 난 남은 여기에서의 생활도 내가 믿고 추구해왔던 의지와 신념대로 치열하고 재미있게 보내고 싶다. 이것이 이제 2주 남짓 남은 이 활동의 끝에서, 내가 보낸 지난 5개월을 논리적으로? (아마도 합리적이겠지,) 회고한 후 내린 결론이자 내 소망이다.
개인에세이, 이상엽
2
99+
좋은 예감5개월 전 정확히 시험준비기간 이었다. 도서관에서 가슴 높이만큼이나 쌓인 전공서적을 앞에 두고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지난 1년 반 동안의 영국 유학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며 향수에 젖어있을 때 문득 친구가 소개 해 준 라온아띠 프로그램이 떠 올랐다. 전공 시험을 앞두고 있던 지라 ‘뭐 떨어지면 어때’ 라는 마음에 일필휘지로 지원서를 작성하고 퇴고도 없이 보내 버렸다. 그렇게 시험기간이 지나고 나는 라온아띠 지원 사실도 잊어 버린 체로 바쁜 방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던 하루였다. 후배들을 이끌고 참여했던 공모전 결과 발표회 및 시상식이 있던 날이었다. 발표를 무사히 마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라온아띠 사무국에서 온 한 통의 문자,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문자였다. 그 뒤로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나는 두둑한 상금과 그보다 가치 있던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게 기분 좋은 예감 그대로 나는 라온아띠 5기 단원이 되었다. 그리고 Friends of Asia라는 로고를 내 큰 등짝에 새기고 당당히 필리핀에 도착하였다. 나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뒤엎어 버릴 만한 거대한 해일 같은 프로젝트를 한 번 해보겠다는 젊음의 열정이 마치 필리핀 열도를 흔드는 듯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사상누각과 같았던 그 의지는 자연스레 무너져 내렸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사람들 앞에 웃어 보이고 반갑다는 말 한마디가 다였다. 그 어떤 누가 미소와 인사로 세상을 뒤흔들 수 있겠는가? 꿈에서도 나오기 힘든 일이다. 현실을 맞이한 한국인 청년은 그 뒤로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러고 내가 무엇을 한들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나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 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필리핀 생활에 적응이 되고 이것저것 많이 경험을 하면서 내 생각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였다. 내가 한국에서의 잣대로 이 친구들을 표현하자면 여유가 없는 친구들이다. 등록비가 없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농장에서 일을 해가며 등록금을 마련한다. 이런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정말로 여유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YMCA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남을 돕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여유롭지 못한 이 친구들이 여유로운 나에게 어떤 것이 여유로운지를 몸소 가르쳐 주었다. 중간평가 하루 전날 이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350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그리고 거리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고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필리핀 사람도 아닌 낯선 이방인들이 나서서 자신들이 살고 지역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며 많이 느꼈다고 했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 하나가 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친구들과 가능한 많은 경험을 나누려고 노력 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나의 포부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다만 주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친구들 그리고 친구들이 사회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언젠가 세상을 뒤엎어 버리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이 친구들과 함께 있노라면 기분 좋은 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에세이, 박진영
99+
나는 ‘Super man’이 되기보단 ‘Raonatti’가 되고 싶다.이제는 짐을 싸야 할 시기이다. 단지, 물질적인 것들을 떠나서 나의 사고와 행동 또한 나 스스로가 정리를 해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느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정답은 없을지언정. 찰나같이 지나간 5개월의 모든 순간들은 반짝이는 기억의 조각이 되어 하나하나가 뇌리 속에 박혀있다. 일일이 왈가불가 하며 모든 기억들을 들춰낼 순 없지만, 꼭 되새겨 보고 싶은 소중한 기억들은 분명히 있기에 다시금 이렇게 글로써 되짚어보고자 한다.처음 막 필리핀에 발을 내디뎠던 3월. 그 당시 나와 우리 팀은 엄청난 열정과 패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곳에서 과연 어떠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여야지만 산뜻한 변화의 바람을 불어낼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했고,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다소 건방진 의무감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지만 그 당시 나는 확실히 그랬다. 마치 지구를 구하겠다는 바보스런 슈퍼맨인 양. 지역사회 깊숙이 침투한 4월.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많은 고민과 숙제가 함께 뒤따랐다. 내가 꿈꾸던 이상은 현실의 두터운 벽에 부딪혔고, 열정만으로 덤볐던 나는 그 험한 산마루를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라온아띠’라는 명찰 하나를 달았다고 해서 결코 슈퍼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울 좋게 그 흉내는 낼 수 있을 지라도.변화와 희망의 빛줄기를 보았던 5월. Aetas 지역의 워크캠프와 Aurora 지역에서의 C.O사업을 지켜보면서 -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지켜보면서 - 그 동안 풀이 죽어있던 우리는 희망의 불꽃을 보았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우리의 도전이 시작된 6,7월.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며, 위대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당찬 포부에 걸맞은 웅장한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은 충분히 많은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라면 더 많은 활동을 즐겁고 역동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것은 맞았다. 그들과 함께 팀(Raonatti of Nueva Ecija)을 조직하여 세계 환경의 날을 맞이해 350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 무엇보다도 모두가 즐기면서 했기에 적어도 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며 – 우리들이 꾸미고 만들어 나갈 콘서트 또한 기획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이 친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고로 나는 지금도 다이나믹의 연장선에 서있다. 물론, 모든 것을 즐기며. 지난 5개월간 정말 많은 경험을 했고, 정말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허나 누군가가 내게 “라온아띠 활동은 어땠니?”라고 묻는 다면 나는 절대 그리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정말 즐거웠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또 다시 “넌 일하러 간 거니? 놀려고 간 거니?” 라며 딴죽 걸듯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난 과감히 “내 친구들과 놀다가 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라고 당돌히 말할 것이다.그렇다. 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뛰어난 기술도 없다. 더구나 한 낯선 이방인이자, 아주 잠시 필리핀에 정착한 어린 나그네이기도 하다. 반 년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필리피노의 가면을 만들어내고 필리피노인 체 연극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이 지역의 사람이 되어 이 곳의 문화와 환경에 완벽히 적응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노력, 아니 우리 팀의 노력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 일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러한 것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우리는 이미 ‘좋은 친구들’이란 것이다. ‘라온아띠’의 의미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하며, 나 스스로도 이 활동에 대해 당당히 의미를 불어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좋은 친구들이 ‘영원한 친구들’이 되었으면 하는 작지만 서도 위대한 소망을 꿈꾼다. 단순히 활동이 종료됨과 동시에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요컨대, 지난 반 년의 시간을 내 나름대로 정의 내려본다면 ‘비록 훌륭하진 못했을지라도 행복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영원히 지속되길 기도한다.
개인에세이, 김이민경
99+
세계지도에서 한국와 필리핀 사이는 한 뼘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내가 필리핀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느끼는 실제 거리감은 그보다 멀다. ‘필리핀’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도 별로 없을뿐더러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그리고 더 자주 소식을 접하는 국가들을 더 크고 가깝게 지도로 재구성 해본다면 내가 살고 있는 필리핀은 한국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는 하나의 점으로 표현될 것이다. 바나나, 이주노동자, 한국기업의 공장, 결혼 이주 여성… 단편적인 이미지들로 멈춰 있던 나의 필리핀은 3월 2일을 이후로 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깝지만 먼 나라. 그리고 아시아라는 범주 안에 속한 우리. 그런데 나는 내가 아시아 사람인지, 아시아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살아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이 곳에 왔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정말 단순한 호기심으로. 알고 싶었고, 우리의 관계를 들여다 보고 싶었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서 국경을 넘어선 나는 더 작은 세상 속에서 바둥거리며 자라나게 되었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꼭 붙어 지내는 우리 다섯 명의 팀원, 그리고 현지 스텝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현지 친구들과의 교감. 말이 잘 통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그 단순한 마음은 나에게 큰 위로이자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더 가까워졌다. 필리핀은 나의 소중한 친구와 추억이 있는 특별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이 기억은 단지 앨범에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아 덮어버리진 못할 것 같다. 기대와는 달랐다. 그러나 그 변화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아시아’, ‘필리핀’… 이라는 큰 범주를 지우고 난 그냥 이 곳에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25살, 6개월간의 뜨거운 여름. 그리고 이 여름은 지속된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개인에세이, 전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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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는 편지 Part. 2 2011년 3월 3일, 우리는 콜롬보 국제공항을 통해 스리랑카라는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지금은 7월 19일. 이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정확히 12일 후에 타게 되는 시점이다. 글쎄, 뭐랄까,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좀 웃기긴 한 것 같다. 아직 이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국내훈련 할 때 시시콜콜 들어왔던, ‘귀국한다고 해서 라온아띠 활동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라온아띠는 평생 가는 활동이자, 이름입니다.’ 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나는, 적어도 여기에서의 경험들은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에 하고 싶었다. 좀 횡설수설 한 것 같긴 한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이 느낌이 절대 내가 비행기를 탈 때의 느낌과 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12일 동안, 또 어떤 것들이 나를 변화시킬지 모를 일이니까. 5월에 썼던 중간 에세이에서, ‘앞으로 남은 두 달 반 동안, 조급하지 않게,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여기 있는 그들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라고 썼던 것이 기억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은 정말로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따로 그들을 사랑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사랑이 필요한 존재’로 낙인을 찍어 놓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 속해 있는 사회 속에서 자신들과 관계되어있는 사람들과 ‘충분히 사랑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들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어달라고 구걸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좀 거칠긴 했지만, 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나나를 팔면서도, 하루에 슈퍼마켓에서 12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하며, 그 중에 외국에서 온 누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게 ‘안녕, 잘 지내니?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라고 따뜻한 인사 한 마디를 건넨다. 한국이라면, 참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 아닌가? 누군가 나에게 ‘스리랑카에서 5달을 살면서 뭘 배웠니?’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사람들과 사는 법을 배웠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여기 사람들과의 친밀한 삶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서로 다른 한국인 5명과의 삶에서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고, 또한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방식들이 눈앞에서 부정되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그 당시에는 인간적인 자괴감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고귀한 순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싶다. 현지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나면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새로운 친구들을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나를 괴롭게 했던 그 치열했던 고민의 순간들, 그것들을 정말 그리워할 것 같다. 스리랑카 모라투와에서라온아띠 5기 전경극
개인에세이,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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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오기 전에 생각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곳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진한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친구가 되기. 가서 마음껏 행복하고 마음껏 사랑하기. 이 목표만 두고 생각해보면, 사실 난 이 목표를 이루어 낸 것 같다. 이 곳에 와서 정말 매일 매일 마음껏 행복했고, 마음껏 사랑했다. 이 곳 사람들과 마주앉아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나는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은 적이 너무 많다. 아무런 고민 걱정 없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하다가도, 내가 이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있구나, 라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 하는 것도 힘이 들 때가 있었다. 팀 생활로 힘이 들어 가끔 기운이 없으면, 나와 가족과 같이 지내는 이 곳 사람들이 “오늘은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어디 아파?”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 이래서 힘들어요,” 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거기서 울상 짓고 있을 수도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사유리! 이리와!” “사유리, 이건 어떻게 된거야?” “사유리, 오늘 이건 왜 안 했어?” 음. .. . 사실 나도 왜 그렇게 됬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도 힘이 들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마세요. 라고 대답하고 싶을 땐, 그냥 울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팀장의 부담감? 있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이 곳에서의 팀장 역할은 여태까지 내가 해 왔던 리더의 자리와는 성격도 다르고 역할도 달랐다. 이러 저러해서, 이렇게 이 곳에 머무는 것이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부담이 되어도 좋으니 이 곳을 떠나기가 너무 싫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부담감은 언제든지 누려도 좋다. 돌이켜 보면 내 가슴속에 정말로 남는 것은, 프로젝트이고 무엇이고를 다 떠나서 이 곳 사람들과의 관계, 추억, 그리고 사랑밖에 없다. ... 몇 주전, 친하게 지냈던 꼬마 아이의 가족이 이사를 가서 더 이상 못 보게 되자 혼자 울고 있는 나에게, 쌈빳아이야가 그랬다. “사유리, 그게 인생인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하는 것뿐이야,” 라고. “사유리”라고 불리며 한국어와 영어가 아닌 “싱할라”어를 쓴지 이제 겨우 5개월인데. 이 곳 사람들과 정을 쌓은 지 겨우 5개월인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이렇게 눈물부터 나오지만 쌈빳 아이야의 말처럼 언제 어디를 가든 난 이 곳을, 이 곳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나에게 5개월 동안 사랑을 주신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언제 어디를 가든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그리고 나에게 주신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노력할게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이 곳에 다시 당신을 만나러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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