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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세이, 김지은
99+
김지은, 개인에세이 난 항상 내가 아는 것, 본 것이 다 옳고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내가 보고싶은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런 날 180도 변화시켜놓았다. 물론 말레이시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남아시아의 자원봉사활동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라고 느낀다. 내가 라온아띠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먼 곳에서 부족한 언어실력으로 대화를 하고, 수화로 deaf들과 친구가 되었을까? 이곳에서의 모든 생활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한편,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반송동. 아마 우리 팀원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할 테다. 그리고 사회복지나 지역운동, NGO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곳이다. 흔히 이곳을 빈곤지역이라고 부르며 마을공동체의 좋은 본보기인 곳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곳에서 엄마가 하는 지역운동들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반송동에 산다는 자체만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무엇인가를 하는데 내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나는 그걸 장점으로 이용할 줄만 알았지 정말 장점이라 몸소 느끼진 못한 것 같다. 라온아띠를 통해 진정으로 내가 자란 반송이란 곳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복지. 난 이런 분야에 대해 배웠으니깐, 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해봤으니깐, 난 이런 사람들을 만나봤으니깐, 난 사회복지를 공부하니깐……. 내가 더 잘알꺼야! 그렇지만 이건 틀린 것이었다. 3월의 나는 내가 제일 잘 알 것이라는 자만심에 모든 것을 내뜻대로 하길 원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의 여러 생각으로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사회복지를 보면서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학교에서 배운 것, 사회복지를 배우는 내가 느끼는 것, 사회복지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것의 차이를 경험하는 것, 때로는 괴리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것이 너무 즐겁다! 언어. 중학교 때부터 수화를 배웠다. 물론 동아리활동이었지만 나름의 애착으로 대학에 와서도 농아인 협회를 다니며 계속 배워왔다. 그렇지만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난 못하니깐 이라는 생각에 두려워만 졌고, 막상 대화를 해본적은 몇 번 없다. 요즘은 나 스스로에 깜짝 놀랄 때가있다. 한국수화보다 더 부족한 미국수화실력으로 이곳의 deaf들과 대화를 한다. 나 한국 가서도 할 수 있겠지? 영어도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곳은 영어또한공용어로 많이 쓰인다. 물론 바하사말라유를 배우긴 하지만 영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너무 싫어했었는데 부족한 언어능력 탓에 요즘은 영어와 바하사단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내모습을 보면 얼마나 웃긴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KL,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는 베다니홈, 유쾌하고 고마운 친구들이 있는 페낭! 나 너무 말레이시아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것 같아 기쁘다.
개인에세이, 한상우
99+
캄보디아에 온지 5개월째가 되던 날. 문득 3월의 내 모습이 궁금해 서랍을 뒤적거려 사진 한 장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찍은 사진인데 지금과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지인처럼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어색한 미소가 아닌 밝게 웃는 내 모습, 이 2가지 변화가 3월과 7월 현재의 내 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뜨거운 햇볕아래에 있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이 뜨거운 햇볕아래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내 자신이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곳 현실에 동화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낯설고 거리감이 있었다면 5개월이 지난 현 시점의 나 자신은 프놈끄라움 마을에 살고 있는 마을주민이 아닐까 싶다. 아침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아이들. 이 사람들이 있기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출국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매주 수업하러 다녔던 학교도 방학하게 되어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금까지도 강하게 받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벌써 그리워서 그러는 지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느낌들이 아이들을 더 못 잊게 만드는 게 아닐까? 라고 혼자 다짐하고 생각해본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날 행복하게 해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뭐라고 자세히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여기서 겪어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캄보디아에 왔건만 내가 더 좋은 친구들을 얻었기에 뭔가 반대로 되어 버렸다. 현지 스텝, 유치원, 중학교 아이들과 나이는 다르지만 함께 지내오면서 주고받았던 마음들을 통해 우리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자신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렇게 허둥지둥하다 소중한 것을 놓칠까봐 겁도 나지만, 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있기에 두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 시간이 흘러 몇 바퀴 돌고 돌아 다시 여기서 보낸 추억들을 만난다면 캄보디아가 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뒤늦은 고백을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에세이, 이정석
99+
이전의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충실함도 내일의 나 자신의 안락한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었다. 하지만, 내가 라온아띠가 되고, 현재, 이곳 캄보디아에 있는 5개월 동안 라온아띠는 내게, 인생에 있어서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게 만들고., 이곳에서 다른 이들과 “어떻게” 살지에 집중하며, 다같이 잘사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살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야 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다양성의 일치” 모든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가족간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같은 것이라고는 아시아 사람이란 것 외에 다양성의 극치인 이곳 캄보디아에 와서 캄보디아사람들과 그리고 한국스텝들과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사교성이 좋다고 해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잘 살기위해선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국외활동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에서 나는 한가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었다. 같은게 없다면? 닮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닮아가는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다. 향수병을 싼 종이에 향기가 배이듯이 말이다. 물론, 처음엔 내가 그들의 다름을 잘 알지 못해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때론, 그 다름이 너무도 커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있었고, 감정이 상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들과 나의 다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내 다름을 그들의 다름에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그들과 닮아져 가고 있었다. 타인을 내식대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다양성! 삶의 모든 형태의 가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부분은 그 사람과 닮아가고 그 사람도 나에게 닮아 가면 되는 것이었다. 다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다르기 때문에 나와 그들이 어울릴 수가 있었다. 이곳 캄보디아에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부딪혀 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고, 또한 다른 이들을 같은 문제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요즈음, 새끼손가락부터 피며 숫자를 세고, 빨리빨리 보단 천천히를 외치는 내 자신을 문득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또한, 내 주변의 아이들이 나에게 한국말로 말하면 나는 캄보디아말로 대답하는 상황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느새 나도 그들도 서로 닮아져 있음을 실감한다. 싫지 않다. 오히려 이 닮음을 오래토록 간직하며 나와 다름을 공유한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개인에세이, 이유정
1
99+
사랑하는 내 꼬마친구, 피읍에게. 안녕, 피읍! 우리가 만난지도 이제 다섯달이 다 되어 가는구나.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문득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그 동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니까, 너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내 다섯달은 꽉 차서 든든하거든. 3월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 도서관 2층에서 한창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 넌 그런 우리가 신기한 듯 늘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지. 우리말의 ‘ㅍ’ 발음과 똑같은 네 이름은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어. 우리 둘이 친해지게 된 건 니가 알려준 ‘미은 엇미은(있다 없다)’ 놀이를 같이 하면서부터였을거야. 그 당시 가장 자신있게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이름이 뭐니?”, “몇 살이니?”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내게, 나뭇잎을 양 손에 쥐고 어느 손에 있는지 맞추는 그 놀이는 다른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었지. 내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면접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만약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있겠나?’였어. 물론 에이즈가 그런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그 때 난 안아줄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 상황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은 없어서 실제로는 어떨지 잘 알지 못했었어.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아동결연 관련 서류를 보다가 니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이미 너와 음식을 많이 나눠 먹었고 너를 많이 안았지만, 그게 전혀 더럽다거나 걱정된다거나 하진 않더라. 아마 여덟살인 니가 보균자라는건 모자 감염일 가능성이 크겠지. 어찌됐건 너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편견도 깰 수 있었어. 한번은 유치원 수업을 가는데 너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잖아. 이 곳 유치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어려운 형편이고, 때문에 이들 역시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고 해서 교육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어. 하지만 너처럼 생계가 급급해 그런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걸 그제서야 알았어. 매일 너와 몇몇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색칠공부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시작하게 된거야. 피읍! 넌 내가 캄보디아에 있던 다섯 달 동안, 나를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해준 ‘수호천사’였다는거, 알지 모르겠다. 어느 날 센터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을 잡아끌고는 가방 안에서 선물상자를 꺼내줬었잖아.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 안에는 니가 그림공부한 종이들과 연필, 과자, 어디서 났는지 예쁜 머리핀까지 들어있었지. 그 날은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더 싱글벙글이었어. 오죽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자랑하고 다녔다니까! 또 5월이었나? 유독 그 날따라 지치고 힘들어서 혼자 의자에 앉아있는데, 니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늘이 예쁘다고 좀 보라고 했었잖아. 맑은 하늘엔 아주 크고 동그란 모양의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고, 그걸 보는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기분이 좋아졌어. 내가 여태껏 본 무지개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였거든. 얼마 전에 니가 접어준 별과 하트를 받고는 하나하나 접었을 생각에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 나에게 무언가를 주어서가 아니라, 너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참 고마워. 피읍. 너를 통해 캄보디아를 알았고, 이해했고, 더 사랑할 수 있었어.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자꾸만 아쉬워지는 이유도 아마 너를 비롯해 다섯달동안 아낌없이 사랑했던, 많은 꼬마친구들 때문일거야. 내 삶의 모토도 그렇고 이 곳 캄보디아에 오기 전 했던 다짐도 마찬가지인데, 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단 한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지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니가 나를 만나 행복했다면, 그럼 그것만으로 내 다섯달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해. 춤을 좋아해서 음악이 나오면 몇 시간이고 힘든줄 모르고 춤추는 너. 댄서가 되고 싶다는 꿈이 꼭 이뤄지길 응원할게. 다음에 니가 커서, 지금 타고 다니는 큰 자전거가 꼭 맞을 나이가 되면, 나 뒤에 태워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러려면 건강하게 쑥쑥 잘 커야한다! 안녕.
개인에세이, 여세린
99+
캄보디아에서의 151일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꿈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참 많이 웃고 뛰어다니며 정말 말 그대로 내 생애 가장 뜨거운 날들을 보냈다. 나는 원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편이다. 날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날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항상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만드느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신경쓰지 않고 내 생애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날 보면 항상 웃어주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태도나 겉모습보다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 역시도 나에게 웃어주는 사람들이 내 친구처럼 느껴졌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경계하지 않으며 가깝게 다가오는 이 사람들 덕분에 항상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꽉 차 있던 나도 더 자유롭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처음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때, 지원동기에 대한 물음에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할 때에는 내 현실을 떠나서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웃어주고 힘이 되어주면 그들도 나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나는 분명 행복하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이유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반겨주고 내게 웃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행복해졌다. 내가 해준 것이 없는데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해주고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함께 뛰어다니고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아이들은 내가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준다는 말을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써왔지만 이곳에서는 마음으로 그 말에 절절히 공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에서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많이도 안아주고 업어주고 함께 뛰어다녔다. 많이 뛰어다니고 많이 안아줄수록 내 몸이 곧 쓰러지겠구나, 곧 죽겠구나 싶었지만 의외로 나는 굉장히 튼튼했고 아프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꽉 차게 되었다. 이런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 이곳에서 떠난다는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내가 며칠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5개월은 정말 작은 기간이지만 이 5개월이 앞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런 5개월을 보내고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여기에서처럼 꿈과 같이 행복함으로 가득차서 살아가는 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5개월의 끝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돌아가서의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에서 배우고 느낀 부분들을 바탕으로 이전보다는 나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엄청 많이 변해서 책에서 나오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된다거나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부분 부분에서 이전보다는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오면서 인정하기 싫었던 부분, 몰랐던 부분들을 이곳에서 느끼고 알게 되면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내가 기대된다.
개인에세이, 문희진
99+
발등에 선명한 신발라인이 생기고 몸과 팔의 색이 확연하게 다르지만 난 지금의 얼룩덜룩 까만 내 피부가 참 맘에 든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현지인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인데, 캄보디아 사람들과 피부를 대보면 살색이 똑같거나 내가 오히려 더 까맣다. 태닝한 것처럼 골고루 예쁘게 탄 것도 아니고, 옷을 입고 다녔던 그대로 제멋대로 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쏙 든다. 한국에서 이렇게 탔다면 과연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센터에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들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살이 타지 않게 하려고 선크림을 수없이 바르는 모습을 많이 본다. 즐거운 여행이지만 부분부분 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일 것이다. 나 역시 캄보디아에 온 처음에는 한 달 동안 선크림 4통을 바를 정도로 열심히 바르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에까지 왔다면 그것도 5개월을 살았다면 까맣게 타지 않고 하얗게 있다 가는 건 참 이상하다.’ 무엇을 해주러 왔다기보다는 적어도 그들과 같이 살아 보려고 마음먹었다면 뜨거운 햇볕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그걸 막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직 캄보디아에 활짝 마음을 열고 다가서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든 후로는 선크림에 매이지 않게 되었다.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무 때나 자다가 눈뜨고도 바로 땡볕인 밖으로 거리낌 없이 나갈 수 있게 말이다. 나의 이런 변화가 순간적인 생각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고, 시간이 지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들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처음보다는 크메르어도 늘어서 현지 스텝들이나 애기들, 주변 사람들과 말이 통하게 되었다. 말이 통하게 되니까 이런저런 얘기들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장난도 더 많이 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다보니 캄보디아 음식, 간식들도 더 다양하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게 부족하던 붙임성도 늘게 되었다.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멈춰있는 사람이나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마구마구 말을 걸고 싶어졌다면 붙임성을 넘어선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내 모든 상황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이 행복하고 즐겁다면 다 좋은 변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캄보디아에 익숙해지니까 어느새 5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익숙해진 생활이라고 해서 혹시나 내가 상황에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행동한 적은 없는지, 조금 더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들과 조금 더 신나게 놀아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나의 5개월을 돌아보게 된다.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을 기분 좋게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되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남은 시간을 더욱 더 열심히, 신나고 행복하게, 마음껏 뛰어놀다 가야겠다. 캄보디아에서의 뜨거웠던 5개월. 나는 지금 참 행복하다.
개인에세이, 이혜영
1
99+
나의 진짜 이야기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시피 3월 아시아의 좋은 친구로서의 가슴 설레는 시작을 했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어느새 이곳에 삶과 작별의 인사를 나눌 때가 왔다.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이 단계를 수없이 거치면서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끝의 아쉬움과 이별의 서운함을 어떻게 달래야할지 모르겠다. 약 5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3월 초의 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3월,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며, 어떠한 색을 띠고 있는 사람인지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월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삼 놀라며 생소하고 두려운 마음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과연 이 모습이 나의 새로운 면이었을까. ‘나 역시 모르고 지낸 나의 진짜 모습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소 부정적인 면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바꿔 가면 되는데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5개월 동안 해외의 봉사활동을 온 것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의 태국에서의 5개월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서의 나를 접하고, 그 속에서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은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아직 끝없이 모자란 아기의 걸음마 단계인 내가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며 아무런 도움없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항상 함께 해준 우리 태국팀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태국에서 얻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그 모두가 우리들의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을 것 이다. 그리고 이 추억의 주인은 누구보다 우리 5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솔직한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라온아띠 활동은 ‘Real' 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꾸며내지 않은 도저히 꾸밀 수 없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활동이다. 이 진정성이 우리의 마음을 넘어 우리 자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버린다. 라온아띠 활동이 마무리 되는 순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을 향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정답 속으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과거의 아쉬움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더 크다. 이제 긴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개인에세이, 이하나
99+
성찰의 시간도, 고민의 시간도 이제는 그저 머릿속이 새까맣다. 난 뭘 바라고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걸까. 하루하루 치열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바라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실존을 도피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결국에는 벽에 부딪혀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느낌. 현실을 직시하게 하도록 도와준 시간들. 5개월을 태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 사는 곳에서 지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우리라는 말의 의미. 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형성되고 그것이 이루어내고 야기시키는 것들을 깨달은 시간임이 분명하다.힘든 시간, 좌절, 견딤, 아픔.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청춘이기 때문에 느끼고 감내해 낼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이런 아픔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일생 동안에 단 한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기회를 마무리 하고 있는 이 시점. 짜릿하고 떨리고 숨이 막히는, 땀 흐르는 나의 청춘. 그리고 돌이켜보면 변한 건 없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사람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 시간.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5개월. 지금, 이 순간 이라는 시간이 절실하게 받아들여지던 5개월.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절실히 매 순간 살아가도록 만들어준 5개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난 한 것도 없이 받기만 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받은 도움을 이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도움을 받았듯이, 나도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것. 이 글을 쓰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과 경험들을 별 무리 없이 글로 써 내려가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만이 겪은 추억이 아니기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지낸 추억이기에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언젠가 문득, 누군가 물어본다면. 지나간 이 기억이 아름다웠냐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기억 속에서, 나는 만나고 있을 거라는 것. 사람들을. 아, 정말 결국엔 사람이다.
개인에세이, 이정표
99+
라온아띠 이전에 아띠는 무엇일까?집에서만 한발자국 나가면 말이 안 통했다. 인터넷을 하려면 뭐가 이렇게 느린지 답답했다. 뭔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사람들은 굉장히 태연했다. 태국에 처음 와서 느낀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이 정도다. 이젠 나가서 태국사람들과 한 두마디 나눌 수 있고 인터넷 속도는 이제 익숙해졌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아직도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전보다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정말 내가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사소한 부분들은 또 잘 적응했나보다. 나도 인간이라 서 그런가?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 인간이라는 것이 난 적응이 되질 않는다.가족이외에 이렇게 다른 사람과 깊게 알고 지내본 적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물며 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 5개월이란 시간에 힘든 것을 다 구겨넣은 이런 상황은 더더욱 처음이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깊게 알수록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고 보니 사람이라는 거에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들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감정의 골들이 생겼다. 내가 정말 거부감이 많이 들을 만한 사람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라는 것이 모두 알고 보면 어느 정도 거부감이 들게 마련인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여 버린 것일까?과정은 위와 같았다. 좋진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로 얻은 생각은 생산적이고 좋은 결과물인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지금까진 사람관계를 중요하다 여기지 않았다. 겉으로는 세상에 사람관계가 어떻게 안 중요할 수 있냐고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사람관계와 사람의 속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좀 더 사람에게 다가가고 알아나 가고 싶어졌다. 라온아띠 단원으로서 내가 파견 중 얻은 가장 큰 결과물은 이것 인것 같다.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기 위해 파견을 와서 진짜 좋은 친구가 무엇인지 재고하게 된 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 무엇 이던 간에 나에겐 라온아띠가 상투적 표현이지만 ‘소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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