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YMCA
가 함께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
로그인
회원가입
라온아띠
프로그램
국내교육
국제자원활동
아시아 소식
모집
공지사항
모집안내
FAQ
Q&A
캠페인
350PPM 캠페인
End Poverty 캠페인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자료실
국내훈련 보고서
국제자원활동 보고서
CI 및 모집 포스터
기타 관련 자료
단원 놀이터
아띠, 서로를 소개하다
아띠, 이야기 나누다
아띠, 시간을 공유하다
아띠, 사진을 기록하다
아띠, 마음맞아 모이다
아띠, 작업실을 열다
자료실
국내훈련 보고서
국제자원활동 보고서
CI 및 모집 포스터
기타 관련 자료
국제자원활동 보고서
All categories
All categories
대한민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1기
All groups
23기
22기
21기
19기
18기
17기
16기
15기
14기
13기
12기
11기
10기
9기
8기
7기
6기
5기
4기
3기
2기
1기
[에세이-16] 알록달록 지구별에서 by 홍연지
99+
알록달록 지구별에서 라온아띠 1기, 동티모르 사메팀 1. 내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기억을 하듯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어린이용 크레파스에는 ‘살색’이란 것이 있었다. 사실 굳이 따지고 보면 어릴 때에도 썩 내 피부색이 그 색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사람을 그릴 때면 으레 그 색깔을 쓰곤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닳아 없어지는 색 중의 하나가 바로 ‘살색’이었다. 연한 살구 빛이기도 했고, 탁한 연주황 정도의 색이었다. 얼마 전 유색 인종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를 근거로 그 ‘살색’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잘된 일이다. 만화가 박광수 씨의 ‘광수생각’에도 나왔던 것처럼,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피부색이 존재하는데 감히 한낱 크레파스 하나가 ‘살색’이란 이름으로 서 있을 수 있으리오. 2. -말라이 무띤. 동티모르 사람들이 에마 꼬레아(한국 사람)를 보면 하는 소리다. ‘하얀 외국인’이라는 이야기인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황인종에 속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조금은 우스운 소리이긴 하나, 현지에선 일단 말라이 무띤으로 통한다. 호주와 가까워 호주에서 온 ‘백인(白人)’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티모르에서, 그 많은 백인들을 두고 왜 우릴 보고 말라이 무띤이라 하는가. 어쩌다 한 번씩 현지 친구들과 서로 피부를 맞대고 피부색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참 재미있다. 길가에 지나가는 백인들을 가리키며, 하얀 사람들은 저 사람이고, 우리는 말라이 끼누르(노란 외국인)라고 이야길 하면, 단번에 아니라고 손을 휘저으며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시라 말라이 메안!(쟤들은 빨간 외국인이지!)” 본디 하얀 피부의 백인종들이 쉽게 홍조를 띄는 걸 보고 나온 말일 거다. 와하하 웃고 말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백인들은 하얀 사람이기도 하지만 빨간 사람이기도 했다. 티모르 사람들이 관찰한 결과, 호주에서 온 백인들, UN 경찰로 근무하는 백인들은 아무래도 빨간 사람이고, 오직 한국 사람들만 하얗더라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아무래도 하얀 피부를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크게 칭찬해주는 거니, 백인종이니 황인종이니 인종계에 관한 머리 아픈 이야기는 그만 해야 했다. 현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부색을 꼬르 카페(커피색 피부)라고 한다. 운딜 대학교의 한 친구는 ‘Sexy Chocolate’라며 극찬을 한 바로 그 색이다. 적도를 살짝 비켜간 남반구의 나라, 건기며 우기며 일 년 내내 따가운 태양이 내리쬐는 동티모르에서, 피부색이 커피색을 닮아가는 건 당연한 것이고, 가을과 겨울이라는 휴식기를 거치는 우리의 피부색이 동티모르 사람들보다 조금 덜 ‘섹시 초콜릿’인 건 역시나 당연한 것. 그러나 피부색 이야길 하며 그만큼 자신들의 피부색에 대해 자긍심을 가진 친구를 만난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커피 공정 무역: 피스 커피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아저씨들과 어쩌다 수다 마당이 시작되면, ‘말라이 무띤’인 내 앞에서 에마 메딴(까만 사람) 아저씨들은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하얀 피부는 좋은 피부, 까맣게 그을린 피부는 나쁜 피부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아저씨들을 아무리 달래고 얼러도, 에마 무띤(하얀 사람)은 ‘그저 최고’라 하는 아저씨들. 그에 대한 나의 색깔론은 훨씬 더 정확하고 객관적이었다. (상대적으로) 하얀 피부를 가진 우리라는 것은 인정하되, 절대 허여멀건한 피부는 아니라는 걸 아띠(효정)의 피부로 설명하고(반례1), 나의 건강하게 탄 구릿빛 피부들(반례2)로 설명을 해도 고갤 절레절레 흔들자, 나는 라.면.을 가져왔다. 현지식 식사에 절대 빠지지 않는 인도네시아산 라면인 ‘슈퍼-미’. 우리나라 라면처럼 기름에 튀긴 인스턴트 면을 가리키며, 나는 정확하게 황인종을 표현할 수 있었다. “아미 에마 꼬르 슈퍼미.(Ami Ema-kor-Super-mi.)” 굳이 나의 뉘앙스와 함께 해석하자면, “우린 라면색 피부를 가진 노리끼리한 사람들이에요.” 정도가 맞지 않을까. 그러자 와하하하, 깔깔깔깔 호탕하게 웃는 아저씨들. 뜨거운 태양 아래 농사도 짓고 집도 짓고 말도 돌보고 소도 돌보며 일을 하는 사람들의 피부가 그을리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것이라고, 사람을 색깔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가를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눴다. 3. 외국인을 만나면, 우리는 종종(어쩌면 자주) 상대적으로 누구의 피부색이 더 어둡냐 밝으냐를 비교하게 된다. 피부색이 백인에 가까울수록 더 나은 인종이라는 생각은 서구 유럽의 식민지 개척 시기 때부터 흉물처럼 남은 부산물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피부 하얀 사람을 만나면 조금 주눅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아반이여, 어깨를 펴라!) 동남아를 ‘관광’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체구가 왜소하고 피부가 우리보다 검은 동남아 사람들 앞에서 황제나 왕비라도 되는 냥 한껏 콧대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는 우쭐대면서 거만하게 행동하거나, 행동거지를 아무렇게나 해대며 얼토당토않은 우월의식에 젖은 꼴불견들을 자주 보게 된다. 단지, 피부색이 좀 더 백인에 가깝다는 사실 하나로 그렇게 우쭐해질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생각이 크레파스의 색이름을 만들었고, 다시 우리의 생각이 크레파스의 색이름을 바꾸었다. 인간이란 본디 크레파스보다 만 배는 더 복잡다단하고 오묘한 생물인지라, 달깍, 바꾸자 한다고 바꿔지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색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조금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유색인종론에 대한 탁한 오류를 뽑아내자. 빨간 사람, 노란 사람, 하얀 사람, 까만 사람, 파란 사람 모두가 사는 이 좋은 지구별 위에서, 최소한 크레파스보다는 위대하게, 서로 다른 모습에 유쾌해 하며 어우러질 때이다. 홍연지(Aban) iamheypk@gmail.com
[에세이-15] 딜리 팀과 함께한 가브라키 학교 by 배효정
99+
- 11월 19일 딜리 팀과 함께한 가브라키 학교.. 배효정 중간평가를 위해 사메로 올라온 딜리 팀과 함께 가브라키 학교에서 작은 체육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하지만 운동장이 없는 가브라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란 너무나도 힘든 문제였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그런 거창한 행사는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1·2교시 총 2시간 30분을 진행해야 했었는데 긴 회의를 거쳐 1교시는 작은 놀이 활동 시간. 2교시에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씩 찍어주고 액자를 만들어서 선물하는 시간을 갖기로... 당일 아침. 학교에 도착해서 뜻밖에도 마지막 수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갑작스런 일이라 당황을 했지만 이왕 마지막 수업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들 열심히 하기로 했다. 1교시 1시간30분 동안에는 조를 편성해 다치지 않고, 간단히 할 수 있는 줄넘기. 신발 던지기. 풍선 떨어뜨리지 않기. 음악교실을 열어 진행하도록 하였다.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관심을 가져줄지.. 재미있어할지 고민을 많이 하였으나 게임 진행하면서 넘어져도.. 신발이 학교 지붕에 올라가버려 집에 돌아갈 때 맨발로 걸어가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에.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하지 않던 여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몰려들어 저희들끼리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2교시 수업시간에는 2교실이 있는데 한 교실에서는 액자를 만들고 또 한 교실에서는 사메팀 5명과 한 명씩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처음 보는 카메라에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진정시키느라 혼이났다. 사진 찍을 일이 없던 애들에게서는 환한 표정이 나오긴 힘들었는데 역시나 사진을 받고 자기 표정이 마음에 안들어서 삐져있는 아이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사진을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다들 들떠있었고. 서로서 자기 사진 자랑 하느라 진정시키는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라야했다. 그렇게 갑작스런 마지막 시간이 흘러가고.. 열심히 참여해주고 즐겁게 해준 고마운 마음에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를 한명도 빠지지 않고 나누어 주었다. 하루 동안 연필. 지우개. 폴라로이드 사진. 그리고 전 날 미술시간에 만든 비누까지 너무나도 많은 걸 받아서인지 어리둥절한. 또는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속에서 마지막 수업시간을.. 그렇게 마무리 지어야했다.
[에세이-14] 우기 by 심두보
3
99+
*우기 우기의 시작은 10월 말 즈음이다. 남반구니까 한국과 반대로 절기상 여름이기도 하다. 이즈음부터 바람은 동티모르 북쪽 바다로부터 불어온다. 바람은 물을 한껏 품고 온다. 물을 품고 온 바람은 동티모르 땅과 산을 만나 비구름을 만든다. 건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불어온다. 땅으로부터 시작된 바람이라 물을 품지 못한다. 건조한 바람. 이렇게 적도 근처에 있는 동티모르는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내가 도착한 8월부터 9월, 10월은 그야말로 날씨가 한창 좋을 때였다. 덥긴 했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은 시원했다. 항구도시인 딜리에는 항상 바닷바람이 불었다. 따갑게 더웠지만, 땀이 많이 나지 않는 그런 더위였다. 우기 때는 딜리에도 있어보았고, 산에도 있어보았지만 모두 건기보다 더웠다. 산에 있다 딜리에 가면 숨이 턱 막혔다. 산은 비교적 선선했지만 해가 따가울 때 걸을라치면 높은 습도 때문에 땀이 금방 얼굴을 덮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비가 온 후에는 동티모르에서 지냈던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이 맑고 선선했다. 밤하늘의 별은 무서울 치 만하게 빼곡하다. 별이 너무 많아 별자리조차 분간해내기 쉽지 않다. 또 하나 우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은 비가 내리는 시간이 일정하다는 것.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해가 가장 높은 곳을 찍고 내려올 무렵부터 비가 온다.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대비할 수 있다. 특히 이 곳 사람들은 기가 차게 잘 맞춘다. 하지만 우기의 비는 순간 하늘이 무너질 만치 내리기 때문에 조심해야하기도 한다. 동티모르로서는 우기를 다스리는 것이 발전과도 직결할 것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수로와 도로 공사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는 시기는 아무래도 우기가 지난 다음이 아닐까 싶다. 우기 때면 비 때문에 무너져 내린 바위와 나무로 길이 막히기 십상이다. 땅도 질어져 차로 움직일 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산 중턱에서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해결할 뚜렷한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12월이면 우기 한창 때이다. 판초우의 들고 다니기, 하늘의 구름색깔 보기, 비 내리는 오후에 책읽기. 나의 몸은 우기에 맞춰져 간다. 비는 그렇게 날 길들인다.
뉴스클리핑 5,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Doulos 배.
1
99+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Doulos 배. Doulos는 타이타닉 호보다 2살이 어린 배로써 1914년에 만들어졌고, 봉사자들을 포함해 320명의 선원이 지난 103년 동안 600개의 항구를 방문했고 2100만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Doulos는 2008년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동티모르에 104번째의 나라로써 첫 방문을 했다. 여전히 활동적인 Doulos는 8000권 이상의 영어 책을 실은 도서관을 운영한다. Doulos의 동티모르 방문은 동티모르 국민들과의 지식 공유를 위함이다. 동티모르 교육부 장관은 이 유명한 배는 그 배의 도서관을 통해 전세계를 돌며 세계의 600개의 항구를 돌았다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에 따르면, Doulos의 방문은 모든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큰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비록 대부분의 책이 영어로 된 책이지만, 이는 앞으로 9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영어교육을 하게 될 동티모르에 중요하다. 정보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학생들이 그들의 삶에서 한번 읽은 책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들은 열린 세상에 대한 지식과 상상을 담고 있다. 책들은 정보를 주고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독자들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글쓴이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을 열어준다. “동티모르가 처한 큰 문제는 비판적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적절한 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 것은 독자들이 무엇을 읽든 간에 단지 있는 그대로 소화하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석해 가며 읽는 큰 기회를 제공한다.” 라고 장관이 말했다. 영어를 3학기 째 전공하고 있는 UNTL(Universidade National Timor Leste-티모르 국립 대학교)의 한 학생은 티모르에는 학생들이 유용하게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있는 공공 도서관이 없기 때문에 책을 필요로 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은 그들이 필요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초등 교육자 한 사람은 이 배에 대한 그녀의 행복을 표현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배에 방문하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 Doulos 라는 배가 동티모르 딜리 항구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팀원들도 직접 가 보았다. 처음에는 위의 기사처럼 도서관 개념으로 생각을 하고 갔는데, 서점이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해야 할까,, 음... 공간의 한계와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차분히 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Doulos 라는 배가 세계의 많은 항구를 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고 이미 한국에도 들렸던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사람들의 책에 대한 관심은 현지 YMCA의 도서관 사업과도 관련이 있었다. 동티모르 YMCA에서는 Youth Center 에 도서관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영어로 된 책을 사서 현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현지어인 테튬어로 번역을 하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도서관을 통하여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더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 5명의 라온아띠는 이 도서관에 쓰일 책장 만들기 작업을 했다. 총 8개의 책장을 만들었고, 예쁘게 노란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여 며칠전 준비가 한창인 도서관에 옮겨다 놓았다 ^^
뉴스클리핑 4 ^^ - 산타크루즈 사건
1
99+
2008.11.30. The Dili Weekly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제목이 좀...^^;) 동티모르의 대통령 호르타는 동티모르 국민들에게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가 서로 사랑할 것을 요구했다. 1991년 11월 12일에 일어난 산타크루즈 사건은 인도네시아 점령기의 결정으로부터 발생했다. “우리는 많은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정치 체제 때문에 우리 나라에 와서 죽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들과 부인 또한 그들의 부모와 남편을 잃은 것이다.” 호르타는 지난주에 딜리에서 열린 17번째 세레모니에서 말했다. 지도자들을 포함해 거의 5000명의 사람들이 세레모니에 참가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특별히 참가했다. 그들은 딜리에서 11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린 International Youth Conference에 참가하기 위해 동티모르에 온 학생들이었다. 그는 최근에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국가 간의 관계 강화의 목적은 사람들이 평화 상태 속에서 사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최근 인도네시아가 정부와 그 밖에서 큰 변화를 겪는 것을 보았다. 2000년 2월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이 동티모르를 방문했었고, 2007년 4월에도 대통령이 동티모르를 방문했다. 그 둘은 모두 산타크루즈를 방문했고, 인도네시아가 그 사건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호르타 대통령이 말했다. 비록, 호르타가 인지하고 있지만, 24년간의 인도네시아 점령기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동티모르는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고통을 겪었고, 결국 독립을 쟁취했다. Sebastiao Gomes의 사건에서부터 산타크루즈 학살 사건까지는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열었다. Max Sthall 의 영상은 대학살과 독립을 갈망하는 동티모르 국민들의 모습의 진실한 증거가 되었다. 1999년 대다수의 국민들은 독립을 택했다. 2002년 UN은 동티모르에 완전한 독립을 주었다. 독립 이후 발전기간 동안, 동티모르는 함께 일하고, 서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 “나는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의 동티모르 국민들이 단결하고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더 발전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호르타가 덧붙였다. === 산타클루즈 사건에 대하여 이시바시 간사님과 스터디한 내용을 함께 올립니다. 산타클루즈는 Saint + cross라는 뜻의 지명이고 이곳은 원래 공동묘지로 쓰이고 있었다. ‘세바스찬 고메즈’라는 청년이 저항세력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해서 그 청년이 죽음을 당했다. 그는 산타클루즈 묘지에 묻혔고, 그를 애도하기 위해 묘지로 미사 행진할 때, 인도네시아 군이 학살을 일으켰다. 행진이 자연스레 동티모르의 자유와 해방을 외치는 행진(시위)로 번졌고, 인도네시아 군과 시위대가 산타클루즈에서 대립했고, 인도네시아군이 발포했다. 미국사람들에 의한 자료에서는 사망자 271명과 278명 부상, 그 중 104명이 입원. 행방불명자 27*명으로 나온다. 다른 책에는 사망자 100명 정도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외국인 저널리스트가 당시의 상황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해외로 알렸다. 당시의 영상은 Youtube 동영상사이트에서 검색하여 볼 수 있다. 이 영상을 통하여 해외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어났다. === 산타클루즈 사건을 애도하기 위해 현재 YMCA 숙소와 붙어있는 딜리 대학교에서 행사를 했다. 사건 기념 전날, 대학생들이 라온아띠 친구들을 초대해서 우리도 참가했다. 전날밤 행사에는 산타클루즈 사건에 대한 연극과 연설, 그리고 티모르 노래가 이어졌다. 그리고서는 산타클루즈 학살사건이라고 적힌 바닥에 사람들이 촛불을 전달해 올려놓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 전날밤 애도 행사와 다음날 오전 산타클루즈 묘지에 직접 다녀온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11. 23) 에세이4. 지난 절반을 돌아보며 - 정현
2
99+
지난 절반을 돌아보며. 어느덧 동티모르에 와서 지낸 지도 3개월이 다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하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티모르 식 인사인 눈인사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 날마다 조롱조로 듣는 “xina xina” 라는 소리도 웃으면서 넘기는 정도가 되었다. 이곳에서 봉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처음에 고등학교 때 봉사를 했을 때에는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봉사를 한다.” 라고 말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진정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닌, 봉사활동을 하면서 따라오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영향 (봉사시간의 증가, 여러 봉사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을 보면서 했던 것이 없지 않아 있다. 처음에 라온 아띠에 지원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말하기를 “해외봉사 가면 나중에 이력서를 쓸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되니 정말 좋은 기회다.” 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여기에 3개월 정도 봉사를 하고 나니 처음에 오기 전에 들었던 그 생각보다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sao Miguel 이라는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같이 종이 접기 수업을 하고 있다. 한 반에 70~80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함께 종이 접기를 하려니 아이들이 진정도 안 되고, 버벅 되는 부분도 많아서 힘들긴 하지만 종이 접기 수업을 끝낸 후에 아이들이 결과를 보고 좋아하고, 나중에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가르쳐주는 종이 접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걸 보면서 많이 느낀다. 사람들이 봉사를 하는 목적은 내 편의를 위해서나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기 때문에 봉사를 한다는 것을. 새로운 경험들. 티모르에 와서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충전 식으로 쓰는 전화. 열매로 보는 망고나 잠부아(자몽), 구아바, 코코넛. 나무에 매달려 있는 파인애플, 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맑고 깨끗한 에메랄드 빛 색 바다. 맹그로브 숲. 우리나라의
[에세이-13] 난민 혹은 범죄자 by 심두보
1
99+
2003년 엘메라도 앗사베 마을에서는 서티모르에서 귀환했던 난민의 습격을 받아 주민 5명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와 반대로 귀환했던 통합파의 민병이 주민들로부터 공격받았다는 보고도 있다. 동티모르의 난민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동티모르의 난민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분류를 하자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인도네시아 침공 시기에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 두 번째로 1999년 소란 이전 인도네시아 점령 시기에 떠난 사람, 세 번째는 1999년 소란 시 탈출했던 30만 명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에 대항했던 세력이고, 세 번째의 경우가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세 번째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동티모르로 이주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 동티모르 사람이지만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원했던 사람들, 인도네시아와의 합병을 주장했던 통합파 민병으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연행되었던 사람들과 정치적 신조와 무관하게 폭력을 피해 갔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지금의 난민 문제는 세 번째 경우에서 발생하고 있다. 반 인도네시아 합병의 성향인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귀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보복이나 법에 의한 처벌에 있어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정부와 UNHCR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많은 수가 돌아왔고, 대략 2만 5000명 정도(2005년 추정)가 외국에 난민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은 이들은 귀환 후 복수를 우려하고 있거나, 실제 민병대로 활동을 하며 살인을 했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범죄의 사실이 있을 경우, 동티모르 정부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2005년 여름, 자발적 귀환은 거의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귀환과 재정착을 위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게 되었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도저히 해결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합파의 유력자와 민병대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분이다. 이들을 전쟁 난민으로 분류해야 할지, 전쟁 범죄자로 고려해야 할지 쉽지 않은 결정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귀환이 정치적 문제가 되어 다시금 복수의 피바람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어려운 결정 사이에서 동티모르 내부와 국제사회 모두 확실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실 화해 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관과 몇 개의 NGO(한국의 경우, ‘개척자들’)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감정의 고리를 풀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오래 떨어진 사람 사이의 영상을 운반해주거나,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확인하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체로 본다면 극히 적은 사람들의 경우이다.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격변의 시기의 감정의 골이 한 세대 안에서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낙관적이다 못해 어설픈 기대가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과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몇 해 전, 한국에도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사법적인 힘은 없었다. 친일파 규정문제에서도 많은 논란을 빚었다. 한세대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끝내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어설픈 낙관은 미래에 더 큰 문제로, 해결하기 점점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진 후에야 날개를 편다.
[에세이-12] 아반이의 수업 일지(1) by 홍연지
1
99+
아반이의 수업 일지(1) 라온아띠 1기, 동티모르 사메팀 홍연지(Aban) iamheypk@gmail.com 이번에 수필로 올리는 글은 아띠와 내가 가브라키 초등학교와 로뚜뚜 초등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진행하며 쓰고 있는 수업일지의 일부분이다. 일기와 함께 하루 하루를 정리하며 남기는 글이라서, 아무런 편집 없이 머리말만 조금 붙여 그대로 올린다. (가브라키 학교의 수업 일지는 내가 담당하고 있고, 로뚜뚜의 수업 기록은 아띠가 담당하고 있다.) 2008. 10. 22 수 다섯 번째 미술/놀이 수업 장소: 동티모르 사메, 가브라키 초등학교 색종이로 다양한 문양 만들기 작성자: 아반(홍연지) 준비물: 색종이, 가위, 연필, (풀: 공책에 완성된 문양을 붙여줄 수 있다.) 수업개요: 1)색종이를 접어 다양한 모양을 그린다. -접기 과정까지는 앞에서 설명을 하고, 다양한 모양 그리기는 한 명 한 명 지도를 해준다. -그림을 그릴 때, 지나치게 작지 않게 그리고, 가장자리 주변에 그릴 수 있도록 지도한다. -각자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릴 수 있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2)스케치한 모양을 오려내 다양한 문양을 완성한다. -가위질은 아이들이 두 명씩 앞으로 나와, 아띠와 아반이 한다. -실내가 소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지도한다. 수업노트➊ 대상: 가브라키 초등학교 4학년( 명) 수업시간: 8:30~10:00 1)출석을 부른다. 2)색종이를 나눠주고 색종이를 1/4로 함께 접는다. 3)색종이 가장자리 주변에 다양한 모양을 그린다. 4)색종이 오리기는 아띠와 아반이 도와준다. 아침에 급하게 색종이를 챙겼다. 종이접기, 그리기, 오리기가 복합적으로 작용된 색종이 문양 만들기를 하기로 했다. 4학년 교실에서 먼저 시작한 수업. 결론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오늘따라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유인즉슨, 숙제가 있었는데 아직 안 한 녀석들이 있어 미술 수업 하지 말고 공부를 하자는 거다. 그래도 수업은 시작되었고, 색종이 위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니, 굉장히 어려워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 수록 ‘모르겠어요’ 하면서 아띠와 내가 그려주기를 바랬다. 마음껏,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 칠판에 그려주거나, 일일이 지침사항을 전달해주며 그려라고 하면 곧잘 따라 그리다가도, 그리고 싶은 것 그리기,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기는 어려워한다. 결국 간단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서, 눈은 아이를 쳐다보고, ‘어려워, 안 어려워?’ 하니, ‘안 어려워요.’하는 아이들. 툭툭 어깰 쳐주면서 ‘한 번 해봐.’하니, 그제서야 스스로 그리기 시작하는 아이들. 지난 번 가위질을 하는 걸로 보아,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가위로 오리는 걸 시켰다가는 날이 다 새도 오늘 활동을 완료하지 못할 것 같아서, 간밤에 수업 활동안을 짜면서 오늘 가위질은 아띠와 내가 직접 해주기로 했다. 차례대로 두명씩 앞으로 나오게 했고, 완성된 것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게 했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시끄러울까봐, 한 번 주의를 준 다음 우리는 가위질에 몰두했는데, 아이들이 유심히 교실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고 있었다. 재빠르게 가위질을 하는 우리와, 완성된 색종이 문양을 들고 돌아서는 친구를 향해 ‘다 같이 박수!’하자, 모두들 환호하며 함께 기뻐해주고 좋아해주었다. 종종 자신의 문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 뾰루퉁한 녀석도, 꼼꼼히 하나씩 짚어주며 ‘이건 새를 그린거구나, 와, 여기 별 그림도 있네!’하면서 ‘멋있어.’라고 해주면,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가위질을 할 때 아띠와 특별히 신경을 썼던 부분은, 아이들이 몇 번씩 수정을 해서 지저분해진 스케치를, 가위질을 할 때 어느 선을 오려야 하고 어느 선을 오리면 안 되는지, 그림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물어 결정하도록 한 부분이었다. 지나치게 작게 그렸거나, 오리기에 지나치게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경우, 우리 마음대로 오리지 않고 그림을 그린 친구를 불러 ‘이 부분은 너무 작아서 오리기 어려워. 이 새를 조금 잘라도 되니?’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모두 ‘네. 되요.’라고 했고, 우리는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가위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작은 부분이지만, 아이들의 작품을 존중해주고, 저마다 작은 자긍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논의했던 내용이었다. 가위질 작업까지 모두 끝난 다음에, 모두 자신의 문양을 높이 들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풀을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보관이 어렵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잘 간직하라고 하며, 내일 가져오면 공책에 붙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시간에 남은 종이 쓰레기는 모두 모아 모자이크 수업 때 쓰기 위해 비닐에 넣어 두었다. (쉬는 시간에 6학년 교실의 니끌라우가 우리 반 아이 종이 문양을 홱 찢어버렸다. 유난히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낙인효과’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음 시간 준비물이니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해둔 터라, 괘씸한 마음에 크게 혼을 냈다. 사과를 하라고 한 다음에, 이름을 물어 빈 종이에 적어두었다.) 참고: 아반(홍연지), 아띠(배효정)
[에세이-11] 우리들의 숙소 by 김두호
2
99+
우리들은 동티모르 사메팀. 전기가 전혀 없는 로뚜뚜, 해진 이후 전기가 불규칙적으로 들어오는 사메, 2개의 지역을 1주일에 한 번씩 이동하는 우리들 이런 우리들은 숙소가 4개다. “딜리 YMCA", "사메”, “로뚜뚜 천막”, “로뚜뚜 clinic" 에어컨이 있는 좋은 환경에서부터,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시멘트 바닥에서 자야 되는 열악한 환경까지 우리들은 이미 모든 적응이 끝났다. 1. 딜리 YMCA('08. 8. 20 ~ 9. 29) <에어컨> 운딜 대학교와 전기를 같이 쓰는 YMCA. 전기가 공짜다. 그래서 에어컨은 24시간 풀가동이다.(머리 자르고 좋아하는 두보 그 옆에 일본 YMCA 이시바시 간사님) <세탁기> 새로 들어온 세탁기를 보며 좋아하는 연지 <거실> 책상. 의자, 에어컨, TV, DVD, 칠판 모든 게 잘 갖춰져 있다.(열심히 현지 언어인 테툼어 공부를 하고 있는 연지와 효정) 동티모르에 왔을 때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딜리 YMCA 숙소. 딜리의 환경은 생각처럼 나쁘지가 않았다. 완벽하진 않지만 잘 나오는 상수도, 자주 정전되지만 24시간 계속 쓸 수 있는 전기. 손빨래를 못하게 만든 세탁기.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는 다른 동티모르의 지역과는 완전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동티모르의 딜리”가 아닌 그저 “딜리라는 도시” 라는 느낌이다. 2. 사메 (‘08. 9. 30 ~ 계속) <남자 방> 방은 작지만 창문과 2층 침대가 있고, 비싼 타일이 있다. <창고> 커피 시즌에는 커피 포대로 가득 찬다. 하지만 비시즌에는 두보의 기타 공연장이다. <거실> 잘 꾸며진 거실. 우리들의 식사 공간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부엌> 사메의 다른 집에는 없는 가스레인지. 가스는 딜리에서만 구입 가능하다. <앞 베란다> 좋은 타일이 깔려있고, 그늘이 잘 져서 커피 고르기 작업 등 여러 용도로 사용 가능하다.(현지인들과 함께 커피 힐리 작업을 하고 있는 두호) <뒤 베란다> 말세로 아저씨가 직접 만든 운동기구 나와 두보가 날마다 이용한다.사메는 해 지고 나서 밤 12시까지 전기가 들어온다. 하지만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숙소에는 우리들만 지내는 게 아니라, 피스커피 일을 하는 현지 아저씨들도 같이 지낸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시설은 잘 갖추어져있다.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3. 로뚜뚜 천막(‘08. 9. 30 ~ 계속) <숙소 풍경> 양철 지붕으로 된 건물이 숙소, 노란 색 천막 지붕은 부엌, 그 옆에 작은 건물은 화장실이다. (재킷과 긴팔은 로뚜뚜에서 필수다) <방> 따로 방은 없다. 바닥엔 매트릭스를 깔고, 벽은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천막을 씌웠다. 두꺼운 옷과 침낭이 없으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거실> 현지 주민들의 집의 벽과 같은 대나무이다. 고산지역의 로뚜뚜에서 이런 벽은 외풍이 매우 심하다. 바닥은 시멘트라서 먼지가 많이 난다. (일기를 쓰고 있는 은정) <부엌> 장작을 태워서 요리한다. 연기 때문에 눈물이 장난 아니다. 로뚜뚜의 숙소는 우리들의 상상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로뚜뚜에는 전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로뚜뚜에서의 밤은 항상 캔들 라이트이다. 여기는 너무 추워 모기가 없다. 다만, 콧물이 많이 나온다. 날마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러한 현실을 암울하게만 보지 말아 달라. 우리는 이런 로뚜뚜의 생활을 즐긴다. 밤에 다들 모여 별과 은하수를 보며, 팀원들끼리의 깊은 대화를 나눈다. 로뚜뚜의 생활은 참으로 불편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팀의 연대와 단합을 키워주고 있는거같다. (토~화요일은 사메 숙소, 수~금요일은 로뚜뚜 숙소에서 생활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육 봉사 학교는 2곳이기 때문이다) 4. 로뚜뚜 clinic(‘08. 9. 30 ~ 계속)<클리닉 풍경> 하얀색 페인트의 깨끗한 클리닉 <방> 원래 용도는 환자용 방이다. 바닥에 매트릭스를 깔고 잔다. <거실> 원래 용도는 환자 진찰실이다. 모든 바닥이 타일로 깔려있다.(동티모르에서 타일은 무척 비싸다) <베란다> 클리닉에 들어오는 통로. 하지만 우리들은 베란다로 쓰고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경치를 감상한다. <화장실> 말 그대로 수세식 화장실. 용무를 다 마치고, 물을 부어 그것을 처리한다. 클리닉 바로 앞에 우리들의 천막 숙소가 있다. 클리닉 건물은 의사가 없을 때 일시적으로 우리들이 사용한다. 즉, 잠깐 빌려 쓸 수 있는 것이다. 클리닉과 천막을 비교하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듯, 로뚜뚜에서 최고의 시설의 클리닉 이지만 우리들은 이상하게도 천막 숙소를 선호한다. 하나의 공간이 아닌 여러 공간과 숙소를 사용하다 보니 사메팀은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 강해졌다.
1
...
5
6
7
8
9
Title
All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6-11 | 02-754-7892 |
asiaraonatti@gmail.com
| 2024 한국 YMCA 전국연맹
오시는 길